481.
상황은 점점 극한으로 치달았다.
티파니 맥센에 대한 공격으로 반쯤 정신이 나가 케인을 습격했던 나는 본전도 찾지 못하고 깨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일보 후퇴일 뿐.
어쨌든.
이것으로 모두 완성되었다.
WWF와 신은 케인 맥센에게 크나큰 굴욕을 맛보았으며 그렇게 되면 팬들은 자연히 한 가지를 상상할 터였다.
우리가 어떻게 반격할까.
그래야만 했다.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나는 의외로 평범하지 않은 방식으로 우리가 쌓아놓은 기대감을 확인할 만한 기회를 한 가지 얻게 되었다.
바로 트리플H로부터의 연락이었다.
[그래, 잘 지내냐?]
“예, 헌터. 어쩐 일로 전화를 다.”
[아, 그냥.]
“……?”
[음. 별일 없지?]
“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현역 시절의 당당하던 태도는 다 어디로 갔는지 절절매셔서 좀 슬퍼졌다.
그 강하던 아버지가 나이를 잡수시면 이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 싶은데.
어쨌거나.
헌터는 내게 말했다.
[요새 잘 보고 있다.]
“…….”
[내가 처음 봤을 때의 네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군. 신. 인베이전도 아주 멋지고.]
“가, 감사합니다.”
뭐지.
왜 코끝이 찡해지지.
[그런 김에 말이다. 슬레지 해머도 아주 잘 쓰는 거 같아서 다행이군.]
“선배님 하시던 것의 반이라도 따라가면 선방이겠다 싶을 정도지만요.”
[아니야. 이제 반까지는 왔어.]
헌터는 그렇게 칭찬을 늘어놓았다.
나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전생에도 그렇고, 현역 시절 자신의 높은 프로의식으로 인해서 많은 선수들과 마찰을 빚었던 헌터였다.
그런 남자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은 영광이었고 솔직히 말해서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직후.
몇 마디 덕담(?)을 주고받은 뒤, 헌터는 그제야 내게 본론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되냐?]
“……?”
[아니, 아내가 궁금해해서.]
“자이나 말이군요.”
나는 쓰게 웃었다.
자이나.
태도 불량 시대에 활동하며 크게 명성을 쌓았었던 WWF의 레전드 선수.
전생에는 안타깝게도 헌터와의 관계가 틀어진 뒤 회사를 나가 비참한 인생을 보내다가 사망한 그녀였지만.
지금은 그와는 정반대로 헌터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전설적인 선배들의 부탁이니까.
“일단.”
[그, 그래. 그래.]
“…….”
자기가 더 궁금해하는 것 같은데.
나는 피식 웃었다.
이 양반.
나 말고 물어볼 사람도 많으면서 굳이 내게 전화를 건 게 뭔가 고마웠다.
그래도 내가 헌터의 머릿속에서 이후의 각본 전개를 물어보기에 가장 좋은 인물로 각인된 것 같아서 말이다.
따라서 나는.
최대한 성실하게 답변해주었다.
“분명히 뭔가 일어날 겁니다.”
[그, 그래! 그래서……!]
“예.”
그리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다시 헌터에게 전화가 걸려왔지만, 받지 않고 그냥 무시했다.
‘아무리 업계의 레전드 선배라고 한들, 규칙은 지켜야만 하는 법이지.’
방송은 매주 월, 수, 목, 금.
그다음 내용이 궁금하더라도.
기다려야지 별수 있겠는가.
* * *
업계는 폭발 직전의 화산 같았다.
수많은 팬들이 11월 3주차에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리고 11월 4주차까지 무사히 이을 수 있을지.
과연 4대 페이퍼뷰 중 하나인 링 서바이벌은 제대로 개최될 수 있을지.
이런저런 걱정과 기대감으로 한 주가 지나갔고, 11월 3주 차가 되었다.
월요일 밤.
충분히 뜸을 들인 한 주인 만큼 나이트로는 오프닝부터 화끈하게 갔다.
초대형 스크린으로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WWF의 선수들이 나타났다.
[Uoooooooooooooooooooohhh!!]
팬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나오는 오프닝 영상.
[ACW! ACW! ACW! ACW! ACW! ACW! ACW! ACW! ACW! ACW!]
경기장의 ACW 팬들은 일단 WWF에 맞서서 싸울 자신들의 단체 이름을 크게 외치기 시작했고.
시청자들은 곧바로 WWF가 나오면 부르라던 가족이나 친구들을 TV 앞으로 모아 흥미롭게 시청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오프닝이 끝나고.
방송은 경기장의 전경을 비추는 대신 다시 백스테이지 영상을 내보냈다.
그만큼 상황이 급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듯이, 카메라가 마구 흔들리며 WWF 선수들을 찍기 시작했다.
[이 개자식들!!]
그 중심에 선 것은 사모아 고였다.
WWF에서 가장 흉포한 맹수.
그 외에도 WWF에서 호전적인 선수들이 다수 참가해서 분노를 터뜨렸다.
C.M. 펑크.
셰무스.
바비 애슐리.
코피 퀸스턴.
브로큰 와이엇.
그들 모두가 신과 함께 일을 하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을 받은 선수들.
‘모니터링TV’로 나오는 영상을 지켜보면서 신은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팬들의 반응도 좋았다.
WWF의 선수들을 막기 위해 우선 경기장의 보안요원들이 막아섰다.
[꼼짝 마!!]
[발포한다!]
테이저를 들고 위협하는 그들.
하지만 거리가 좀 떨어진 상황에서 쏘지는 못했고, 바비 애슐리가 무언가를 들고 와 사모아 고에게 건넸다.
경찰들이 쓰는 진압 방패였다.
그것도 전신을 커버할 수 있는 길쭉한 모델을 손에 드는 사모아 고.
보안요원들이 깜짝 놀랐고.
[뚫어!!]
고가 방패를 앞세우고 돌진했다.
콰앙-!!
마치 거대한 황소처럼 돌진한 그와 바비 애슐리가 순간 보안요원들이 세우고 있던 스크럼을 단숨에 돌파했다.
[크악!!]
[뚫었습니다!! 뚫었어요!!]
[Uoooooooooooooooooohhhh!!]
[제기랄! 시큐리티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역시 선수들 앞에서는 상대가 안 되는군요!!]
열 명이 넘는 선수들이 가세해 보안 요원들을 완전히 개박살을 내버렸다.
개중에서 몇몇이 테이저를 들고 어떻게든 선수들을 진압하려고 했지만.
어느새 높은 곳으로 올라간 WWF의 코피 퀸스턴이 그대로 몸을 던졌다.
[막을 수가 없군요!!]
해설자들이 놀라 소리쳤다.
[좋아!!]
[가자! 다 박살 내!]
WWF 선수들도 기세가 올랐다.
사모아 고를 필두로 해서 WWF 소속 선수들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로비에서 곧바로 백스테이지 방향으로 돌아선 그들은 지난주 ACW의 선수들이 그런 것처럼 깽판을 쳐댔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ACW의 선공에 당해 화가 머리끝까지 난 선수들은 그야말로 진짜 전쟁이라도 되는 것처럼 공격을 시작했다.
콰앙-!!
각종 기자재가 힘으로 부서지고 넘어가면서 일대 난장판이 벌어졌다. 직원들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도망쳤다.
그리고 뒤를 이어.
[Uooooooooooooooooooooohhh!]
ACW 선수들이 등장했다.
[이 새끼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와?!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마라!]
[걱정 마라.]
스탠 슈타이너의 위협을 들은 사모아 고는 주먹을 말아서 우드득 손가락을 꺾으며 호기롭게 대답했다.
[여기 있는 놈들을 모조리 조져버리기 전까지는 그럴 마음 없으니까.]
그리고 싸움이 시작되었다.
[Waaaaaaaaaaaaaaaagggghhhh!]
팬들은 어마어마한 환호를 보냈다.
선수들 간의 난투는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인 만큼 항상 인기가 좋았다.
스탠 슈타이너와 사모아 고가 충돌하는 것을 기점으로 수많은 선수들이 충돌해서 거친 싸움을 시작했다.
퍼억!
빠악!
덩치들의 주먹과 기술이 오갈 때마다 팬들의 환호는 계속해서 상승했다.
그런 와중 수적인 우위를 갖추고 있는 WWF의 습격자들이 좀 더 앞섰다.
[크아아악!!]
투콰앙-!
스탠 슈타이너를 벽 쪽으로 힘껏 내던진 사모아 고가 그대로 포효했다.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WWF 선수들은 링까지 진격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박자 늦게, 이상한 점을 파악한 나이트로의 해설자가 말문을 열었다.
[선수들이 모두 오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건 사모아 고와 몇몇 선수들이 단독으로 행동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ACW 선수들은 대체 어디로 간 거죠! 모두가 사라졌습니다!]
[고릴라 포지션까지……!]
[저리 꺼져!]
입장로 바로 뒤의 HQ.
그곳을 침범한 WWF 선수들이 기자재들을 박살을 내면서 난동을 피웠다.
그리고 그사이.
[승자의 음악을 틀어!]
[히익……!]
[당장 틀라고!]
사모아 고는 지난주 ACW에서 그랬듯이 오디오를 조작하라고 윽박질렀다.
거기에 겁을 먹은 음향팀장이 기기를 조작했고, WWF의 테마곡을 ‘뉴튜브’를 통해 곧바로 재생을 시켰다.
이 또한 감각적인 간접 광고였다.
거기에 맞춰.
일부러 최대 음질로 설정해둔 버닝콩의 테마, ‘Burn It To The Ground’가 ACW의 경기장에 재생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입장.
[Booooooooooooooooooooooo-!]
팬들은 야유를 보냈지만.
고는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앞장섰다. 그리고 WWF의 선수들이 링 안으로 들어서서 아예 점거를 해버렸다.
고가 마이크를 들었다.
[구린 날에 구린 쇼, 구린 관객들이로군. 하지만 걱정은 하지 마. WWF가 직접 반격을 위해 찾아와줬으니까.]
[Boooooooooooooooooooooo-!!]
[오, 지금 히어로를 기다리고 있나? 말 그대로 ‘I Need A Hero’로군.]
팬들의 야유를 한때 유행했던 노래를 언급하며 센스 있게 받아치는 고.
단순히 재능 하나로 따지자면 업계에서 최고급에 속하는 그가 그렇게 링을 자신의 카리스마로 휘어잡았다.
ACW 팬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저런 카리스마를 가진 선수가 ACW를 완전히 박살 내고 있다. 다른 선수들은 어디서 뭘 하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열이 받을 만한 상황이었다.
[이 멍청한 자식들. 이렇게 다 숨어버릴 거였으면서 왜 쳐들어온 거야?]
[Boooooooooooooooooooooo-!!]
다시금 이어지는 야유.
바로 그때였다.
[왜긴 왜겠어?]
케인 맥센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Uoooooooooooooooooooohhh!!]
그리고 링으로 나오는 케인.
그 뒤로 지금껏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ACW의 선수들이 함께 나왔다.
열 명, 스무 명, 그리고 거의 서른 명 가까운 선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너희를 몰아넣기 위해서였지.]
[Waaaaaaaaaaaaaaaaaaaggghhh!]
상황이 반전되었다.
숫자로 한참은 밀리는 상황.
하지만 거기까지는 예상한 범주 내였다. WWF 선수들은 각자 백스테이지에서 가져온 무기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싸움.
[Waaaaaaaaaaaaaaaaaaggghhhh!]
링 안이 가득 찼다.
선수들은 눈앞에 보이는 적에게 마구 주먹과 무기를 휘두르며 싸웠다.
처음에는 무기를 든 WWF 팀이 유리했지만 이내 숫자에서 밀려 하나둘씩 바닥에 쓰러져 린치를 당했다.
마치 반군을 제압하는 듯했다.
링으로 천천히 걸어오며 케인 맥센은 미소를 지었다. 오만한 왕은 객기를 부린 WWF 선수들을 조롱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벼락처럼 쏟아지는 한 음악
[Uooooooooooooooooooohhhh!!]
팬들이 깜짝 놀라 비명을 내질렀고 케인 맥센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서 무너져내릴 정도로 경악했다.
신이었다.
하지만 대체 어디에?
케인 맥센이 미어캣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팬들도, 링 위의 선수들도 모두 놀라 주변을 살폈다.
신이 나온다.
ACW와 케인 맥센에 의해서 벨트를 빼앗겼던 그가 복수를 위해 돌아왔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었다.
[Uooooooooooooooooooohhhh!!]
초대형 스크린을 물들이는 깃발.
졸리 로저.
그와 함께, PWA에 소속된 선수들이 관객석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링 위의 선수들이 순간 당황했다.
드류 맥킨마이어.
AK 스타일스.
대니얼 라이언.
쟈니 에이스.
작은 리그였지만 그 안에서 메이저 회사의 선수들에 절대 뒤지지 않는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PWA 선수들.
관객석을 통해 나와 링을 포위하는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냈고 폴 헤이건마저 등장해 마이크를 쥐고 외쳤다.
[케인 맥센-!!]
[Waaaaaaaaaaaaaaaaaggghhhh!!]
캡틴인 신을 돕기 위해서 PWA 선수들이 모조리 전쟁에 참여하게 됐다.
업계의 혁명가.
선동가.
악마의 혓바닥.
그가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외쳤다.
[너희는 사람을 잘못 건드렸어! 단체를 잘못 건드렸어! 해수면에 저주받은 동전을 던져서 해적을 깨웠어!!]
거의 절규에 가깝게 외치는 헤이건.
열 명 남짓한 정도의 PWA 선수들.
[너희는 악마와 싸워야 할 거다! 이 업계에서 가장 잔혹한 남자가 돌아왔으니까! 정당한 복수를 위해서!!]
그리고 헤이건이 그를 맞이했다.
슬레지 해머를 든 신이 나타났다.
살기가 등등한 얼굴로 고개를 든 그가 그대로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경기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이어진 행동은 모두를 진심으로 경악하게 만들었다.
단 한 사람.
그 기술을 맞아주기로 사전에 약속을 해두었던 코디 로스를 빼고서.
링 아래의 계단을 타고 올라온 신은 그대로 하단 로프를 양발로 밟고 그 반동을 이용해서 힘껏 뛰어올랐다.
그리고 탑 로프에 이르러.
그대로 링 중앙에 서있던 코디 로스의 안면에 슬레지 해머 샷을 날렸다.
빠악-!!
그 광경을 본 모두가 생각했다.
‘저 미친 새끼.’
[Uoooooooooooooooooooohhhh!]
관객들도 그랬다.
저만한 탄력을 발휘하다니. 무슨 몸에 용수철이라도 달아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충격이었다.
그렇게 날아서 이마를 향해 내지른 슬레지 해머 샷이 과연 상대에게 부상을 입히지 않고 꽂혔을 것인가.
다행히 코디 로스는 바닥에 쓰러져서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셀링을 했다.
퍼펙트한 기술 시전.
그리고 안전하기까지.
정말 완벽한 마무리였다.
그렇기에.
“모조리 다 쓸어버려!!”
링 위의 선수들은 신을 보고 안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높은 위상을 지닌 그가 두려워지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