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4.
그렇게 찾아온 11월 4주차.
공동 페이퍼뷰까지 이제 정확히 일주일이 남은 가운데, 각 단체에서는 마지막 각본을 전개해나가기 시작했다.
나이트로에서는 먼저 지난주의 일을 만회하기 위해 케인 맥센이 나섰다.
[Booooooooooooooooooooooo-!]
첫 등장 때와는 달리 이제 팬들로부터 큰 야유를 받게 된 그였지만, 본인은 전혀 개의치 않고 링에 올랐다.
표정은 딱히 좋지 못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PWA와 WWF에 맞섰다 본전도 찾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런 것뿐.
하지만 그것도 오늘까지였다.
“다들 알겠지만 상황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아. ‘우리’ ACW는 두 단체 모두를 적으로 돌리고 있는 상황이지.”
[Booooooooooooooooooooooo-!]
더더욱 커지는 야유.
팬들은 케인 맥센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 이 상황을 만든 장본인을 좋게 받아들일 리 없었다.
그 말대로.
상황은 좋지 못했다.
“제기랄, 너희들은 열도 받지 않아? 티파니 맥센은 ACW를 모욕했다고!!”
케인도 반쯤 멘탈이 나가 호소했다.
물론 통할 리는 없었다.
[You S-ck! You S-ck! You S-ck! You S-ck! You S-ck! You S-ck!]
“닥쳐! 지금 상황의 심각성이 와 닿지 않는 모양인데! 까딱하다가는 정말로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Bullsh-t! Bullsh-t! Bullsh-t!]
[Bullsh-t! Bullsh-t! Bullsh-t!]
팬들은 계속 야유를 보냈다.
링으로 온갖 욕설이 쏟아졌다.
거기에 케인이 뭔가 대답을 하려고 할 때마다 더 큰 야유가 이어져서 마이크워크를 이어갈 수도 없었다.
결국 케인은 다 집어치우라는 듯 마이크를 내던지고 링을 나가려고 했다.
ACW는 완전히 막장이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날카로운 기타 리프 소리와 함께 드디어 ACW의 영웅이 링으로 돌아왔다.
러셀 오메가.
케인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고 그가 링으로 나오자 나온 환호가 순간적으로 경기장을 떨리게 만들었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숀 시나와의 2연전에서 패배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그가 팀 ACW를 돕기 위해 링으로 돌아왔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그 복귀를 환영하는 폭죽.
경기복에 코트까지 갖춰 입은 그는 링으로 올라와 황당하다는 얼굴로 서 있는 케인 맥센과 마주하고 섰다.
케인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넌, 분명히…….”
“내 얼굴을 잊으셨나. 케인.”
“아니, 그게 아니라. 너에게도 분명히 내가 연락을 했었지. 하지만 넌 그걸 무시했고. 내 말이 틀렸나? 러셀.”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챈트가 이어졌다.
이유가 어찌되었던 간에 팬들은 러셀 오메가의 귀환을 축하해주었다. 케인은 황당한 듯 관객석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ACW의 메인 이벤터.
러셀 오메가의 마이크워크.
“맞아, 케인. 하지만 그건 당신의 행동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이 좀 필요했거든.”
러셀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나는 졌어.”
[Uooooooooooohhhh……!]
“하지만 속이 좀 후련하더군. 이제야 드디어 과거와 결별한 기분이야.”
러셀은 그렇게 대립을 정리했다.
시나의 위선을 까발려고 했던 대립은 결국 원하는 대로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 러셀 오메가와 숀 시나의 관계를 정립하며 마무리되었다.
WWF에서는 상대를 인정하지 못하고 죽어라 싸워댔던 두 사람이었지만.
그건 예전의 일이었다.
회사를 나간 뒤 방황하던 러셀 오메가는 결국 자신의 길을 찾아냈고 시나와 맞서 싸우며 그에 확신을 가졌다.
자신은 이제 러셀 오메가였다.
이 업계의 최후에 서게 될 남자.
그렇기에.
“나는 기꺼이 팀을 이끌겠어.”
[Yeeeeeeeeeeeeeeeeeeeaaahhh!!]
“당신은 닥치고 있어. 케인 맥센. 이건 우리들의 싸움이야. ACW의 위대함을 알리기 위한 성전(聖戰)이라고.”
“아니…….”
“물론 시작은 당신의 말도 안 되는 권력 욕심 때문이었지. 하지만 내가 온 이상 절대로 그렇게 되지는 않아.”
러셀은 호기롭게 외쳤다.
“ACW! 이제 다시 일어설 때다!”
[ACW! ACW! ACW! ACW! ACW! ACW! ACW! ACW! ACW! ACW!]
팬들의 챈트가 빗발쳤다.
러셀 오메가라는 프랜차이즈 스타의 복귀로 초상집에 가까웠던 ACW의 분위기는 단숨에 최고조에 이르렀다.
케인 맥센의 전횡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던 러셀 오메가가 복귀했다.
“PWA! WWF! 한번 붙어보자고! 물론, WWF는 팀의 리더가 겁쟁이라 반응을 안 하시겠지만 PWA만이라도 좋아! 단체 대 단체로! 레슬링 월드 시리즈를 개최해보자 이거야!!”
결국, 페이퍼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며 팬들의 환호는 극한에 다다랐다.
모두가 기대하고 있었다.
‘레슬링 월드 시리즈’를.
* * *
한편.
WWF에서는 지금까지의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단 한 번도 하지 않던 방식으로 각본을 전개해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오프닝.
티파니 맥센은 팬들의 야유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태도를 관철했다.
“이런저런 의견들로 시끄럽지만, 제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WWF는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Booooooooooooooooooooooo-!]
“선수들도 제 생각을 이해해주리라고 믿어요. 저희에게 이득이 될 게 없는데 남 좋은 일만 할 수는…….”
바로 그때였다.
‘No Chance In Hell’.
바트 맥센의 테마와 함께 은퇴를 준비하고 있는 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Yeeeeeeeeeeeeeeeeeeaaahhhh!]
팬들은 거센 환호를 보냈다.
그리고 링에 올라온 바트는 그런 기대에 맞게 티파니 맥센을 설득했다.
“티파니, 네 마음은 안다. 분명히 저기 저 PWA 나부랭이나 ACW 쓰레기들은 WWF와는 비교도 안 되지.”
그럼에도 싸워야 한다.
그 이유를 바트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앉아있는 빌어먹을 놈들이 그걸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그것을 바로 ‘팬’이라고 부르지.”
[Yeeeeeeeeeeeeeeeeeeeaaahhh!]
바트가 자신들을 대놓고 욕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팬들은 환호를 보냈다.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재미있네요. 누가 본다면 팬들의 말을 아주 귀 기울여 들은 줄 알겠어요.”
“그래, 나도 그랬지.”
한숨을 내쉬는 바트.
“그러다 큰 코 다치기도 했고 제발 나와 똑같은 실수를 하지 마라. 딸아.”
“아뇨, 제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Boooooooooooooooooooooo-!]
“WWF는 이번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겁니다.”
티파니가 그렇게 말한 순간.
[워-어! 워-어! 워-어! 워-어! 워-어! 워-어! 워-어! 워-어! 워-어!]
이번에는 사모아 고가 링에 나왔다.
[Yeeeeeeeeeeeeeeeeeeeeaaahhh!]
하지만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분노한 고가 마이크를 들려는 순간 이번에는 숀 시나가 링에 나타났다.
그러자 팬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지금까지 나온 적이 없던 거대한 반응을 링에 쏟아내기 시작했다.
시나의 팬과 안티들이 서로에게 지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크게 높였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팬들은 엄청난 환호를.
안티들은 시나의 음악에 맞춰서 노래를 하며 그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Shawn Cena S-cks! Shawn Cena S-cks! Shawn Cena S-cks!]
하지만 그 야유는 진심이 아니었다.
이제 시나에게 가해지는 어른 팬들의 야유는, ‘각본’의 일부가 되었다.
그런 세상의 거센 풍파에 맞서서 시나는 계속해서 링에 올랐고 이제는 안티들도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시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핑크색 티셔츠와 캡 모자.
WWF에서 이번에 추진하고 있는 유방암 환자들에 대한 캠페인 티셔츠.
시나는 그 티셔츠를 꾸준히 입고 나오며 팬들의 기부와 관심을 끌어냈다.
[Shawn Cena S-cks! Shawn Cena S-cks! Shawn Cena S-cks!]
조롱이 계속되었고 시나는 어깨를 흔들면서 오히려 더 조롱을 유도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소년과 웃으며 사진을 찍어준 뒤, 링으로 단숨에 달려 올라갔다.
[Waaaaaaaaaaaaaaaaaaaggghhh!]
그것을 불편하게 지켜보는 세 사람.
시나는 마이크를 들고 마치 마술을 부리듯이 팬들을 단숨에 집중시켰다.
“이게 바로 직장인의 슬픈 점이지. 새로운 리더가 나오면 그 리더와 꼭 뭔가 문제가 생긴다는 말이야.”
[Yeeeeeeeeeeeeeeeeeeeaaahhh!]
“일단, 축하해. 티파니 맥센. 당신이 이제부터 이 회사를 이끌어나가겠군.”
악수를 청하는 시나.
잠시 의아해하던 티파니는 조심스럽게 시나의 손을 맞잡고 악수를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 없이 말이야.”
시나는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Yeeeeeeeeeeeeeeeeeeeaaahhh!!]
“당신이 계속해서 이런 태도를 고수하겠다면, 난 이 회사를 나갈 거야. 그건 여기에 있는 이 남자, 사모아 고 역시도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거겠지.”
시나는 그렇게 고를 띄워주었다.
“이 남자가 지난 주 수요일에 보여준 의기는 정말로 대단했어. PWA로 가서 그 대단한 신을 상대하다니.”
고개를 끄덕이는 고.
“내가 겁쟁이였음을 느끼는군.”
시나가 악수를 청했고 고가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다시 환호가 나왔다.
[Waaaaaaaaaaaaaaaaaggghhh!]
시나는 그렇게 링으로 올라오자마자 단숨에 지금 이 상황을 정리해나갔다.
단체의 탑 페이스이자 메인 이벤터.
동시에 시대의 아이콘인 그였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시나?”
“이걸 보라고.”
시나는 초대형 스크린을 가리켰다.
그리고 바로 이 시점에서, 지금까지 이 업계에서 실행된 적이 없는 방식으로 각본이 전개되었다.
WWF에서는 실제로 현재 방영 중인 ACW 나이트로의 방송을 틀어버렸다.
[Uoooooooooooooooooooohhh!!]
깜짝 놀라는 팬들.
러셀 오메가가 나와 말했다.
[레슬링 월드 시리즈를 개최해보자 이거야!!]
‘레슬링 월드 시리즈’.
그 말에 모두가 하나를 떠올렸다.
WWF.
ACW.
PWA.
세 개의 단체에서 최고의 선수들이 나와 펼치는 업계 최초의 페이퍼뷰.
시나가 진지하게 말했다.
“여기서 도망칠 텐가?”
“…….”
“그렇다면 나는 나가겠어.”
“나도 마찬가지다.”
고가 한마디 거들었다.
[Uoooooooooooooooohhh……!]
상황이 묘해졌다.
아무리 티파니라고 하더라도 선수들이, 그것도 아이콘인 시나가 이처럼 강하게 나오니 당황스러운 듯했다.
“걸어온 싸움은 절대 피하지 않는다! 여기 이 사모아 고가 말했지! 사이즈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여기 이 사람들이 우리를 믿어주느냐 마느냐!”
시나는 관객석을 돌아보았다.
“어때?! WWF! 당신들은 우리가 질 거라고 생각하나?! 어디 대답해봐!!”
[No! No! No! No! No! No! No! No! No! No! No! No! No! No! No!]
“여기 팬들이 우리를 믿어주고 있어! 그런데도 당신은 싸움을 거부할 셈인가?! 어디 대답해봐! 티파니 맥센!”
“……그럼 기회를 주지!”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 티파니는 여유를 잃고서 자신의 분노를 토해냈다.
“어디 한번 선수들을 끌고 나가서 싸워봐! 대신 패배한다면 대가를 치를 준비는 해두라고!!”
흥분해 소리친 티파니는 그대로 링을 빠져나가 백스테이지로 퇴장했다.
[Yeeeeeeeeeeeeeeeeeeeaaahhh!!]
드디어 WWF도 참전이 결정되어, 환호가 쏟아지는 가운데, 링 안의 고와 시나가 씨익 웃으며 기뻐했다.
이제 남은 건 PWA뿐.
하지만 그들은 일찌감치 내부를 정리하고 싸울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 * *
두 대형 단체에서 참전이 결정된 상황에서 시간이 흘렀고, 수요일 밤이 찾아와 모두가 기대 속에 TV를 켰다.
그 전날 이어진 반대 단체의 재방송까지도 모조리 시청한 팬들은 이 각본이 완성되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 완성이란 바로.
세 단체의 메인 이벤터 레벨의 선수들이 링으로 나와 신경전을 벌이며 싸움을 결의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내가 가장 꿈꾸던 장면.
‘……그런가?’
아니, 정확히는.
누구든 꿈꾸고 있는 상황일 터였다.
우리는 과거에 인베이전을 보고 자랐다.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모두가.
과거의 전설들이 링에 올라와서 자신의 단체를 대표하며 그 소속으로 싸우는 것을 빠짐없이 다 지켜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자신도 언젠가.
저곳에서 싸우기를 원한다고.
나 역시도 그랬다.
나와 함께 내 시대의 재능 있는 선수들이 팬들에게 기억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오늘 우리는 그걸 증명한다.
PWA의 오프닝.
[Uooooooooooooooooooohhhh!!]
화면이 좌우로 분할되어서 WWF와 ACW의 선수들이 PWA에 도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숀 시나를 필두로 한 WWF 선수들.
러셀 오메가를 내세운 ACW 선수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카메라 감독이 신호를 보냈고 나는 모니터링TV를 통해서 화면이 전환되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천천히 일어섰다.
나와 PWA 선수들.
[Yeeeeeeeeeeeeeeeeeeaaaahhh!]
팬들이 가장 큰 함성을 보냈다.
아, 물론 방송이 수요일 밤의 PWA이니만큼 이게 당연한 반응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