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490화 (490/634)

490.

여기서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안타깝고 쓸쓸한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

바로 탈모였다.

탈모.

여러 요인으로 인해 두피에서 머리카락이 탈락하는 현상을 뜻했다.

그리고 슬프게도 프로레슬러에게 있어서 이 탈모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일단 아이콘들이 죄다 탈모였다.

캡틴 로건.

락콜드 스티비 스틴.

나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더 팍.

그리고 숀 시나까지.

그 외에도.

테이커, 헌터, 마이클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선수들이 나이를 먹으며 이 탈모라는 현상과 마주 해야만 했다.

나이를 좀 먹은 선수들 중에서 탈모가 오지 않은 건 그렉 하트 정도?

핀 발로도 탈모가 있고.

드류 맥킨마이어도 탈모가 왔다.

그래서 나는 항상 선수들에게 젊어서부터 머리카락 관리를 하라고 조언했다.

이미지 때문이었다.

락콜드나 팍 같은 경우에는 애초부터 머리를 짧게 치거나 밀고 다녔기에 탈모가 그다지 많이 부각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테이커나 헌터, 마이클스 같은 선수들이 말년에 앞머리가 휑한 걸 보고 있자면 안구에 습기가 차올랐다.

더욱이 핀이나 드류는 여성 팬들에게 인기가 좋은 핸섬한 마스크의 소유자니까. 최대한 탈모를 막아야만 했다.

어쨌든.

‘……내가 왜 이 생각을 했더라.’

기억을 더듬거리던 나는 이내 이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탈모의 대명사를 한 명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폴 헤이건이었다.

업계의 혁명가.

동시에 악마의 입담.

그 역시 대머리였다.

윗머리가 흉하게 빠져서 밀어버리고 옆머리를 길게 길러 하나로 묶는 헤어스타일을 오래도록 고수해오고 있었다.

그런 그가.

WWF의 링에 섰다.

“…….”

천장의 조명을 반사해 반들반들 빛나는 머리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거기다 뚱뚱한 체구와 다소 순박하게 보이는 얼굴은 분명히 눈에 띄거나 기억해둘 만한 인물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그가 마이크를 쥐면 모든 게 변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제 이름은 폴 헤이건이라고 합니다. 지금 제가 구역질나는 여기 이 볼티모어에 온 것은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Booooooooooooooooooooooo-!]

순간 야유가 쏟아졌다.

1월 2주차. 금요일 밤의 랙다운.

ACW에서 나를 습격하는 데 실패했던 헤이건은 뻔뻔하게도 WWF로 돌아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링에 올랐다.

[그전에, 여기 있는 모두가 나이트로를 보았으리라 믿고 말하겠습니다.]

헤이건은 허공을 가리켰다.

[The Alpha!]

그리고 ‘선동’이 이어졌다.

그는 링에서 선수들을 띄우는데 누구보다도 강한 재능을 가진 인물이었다.

[The Breaker!]

[Boooooooooooooooooooooooo-!]

야유가 쏟아졌다.

[Maaaaaannn On Firreeeeeeee-!]

그건 바로 나를 수식하는 말이었다.

[저희는 그 남자를 박살 내려고 했습니다! 바로 그가! 지금 이 업계의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선수이기 때문이죠!!]

헤이건은 나를 그렇게 표현했다.

확시히 그것만으로 지금 내가 업계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알 수 있었다.

[누구보다도 마이너한 상태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그 누구보다도 메이저한 게 바로 지금의 신이란 말입니다!!]

게다가.

[그 카리스마는 어딜 가지 않죠! 그쪽으로 붙은 선수도 물론 있습니다!!]

드류 맥킨마이어.

그리고 핀 발로.

[다들 이 WWF의 웬만한 중견급 선수보다 나은 기량의 소유자들이죠!]

[Booooooooooooooooooooooo-!]

[거기다 그쪽의 계약대로 한다면 우리는 적지에서 싸워야만 합니다! 당신들이 이걸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헤이건은 WWF 팬들에게 말했다.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다.

WWF는 등신이고, ACW는 강력하고, 신과 그에 붙은 PWA 선수들은 신화 속에 나오는 영웅들과도 같았다.

그런 표현.

선동은.

헤이건의 말 솜씨와 맞물려서 우리와 이어질 싸움을 크게 띄워주고 있었다.

[분명 이곳……!]

바로 그때였다.

경기장에 숀 시나의 테마곡이 울려 퍼지며 그 등장을 알렸다.

[Yeeeeeeeeeeeeeeeaaahhh!!]

[Booooooooooooooooooo-!!]

환호와 야유가 뒤섞였다.

그리고 시작되는 노래.

[Shawn Cena S-ck~! Shawn Cena S-ck~! Shawn Cena S-ck~!]

시나가 그 모습을 드러내자 그 안티 팬들이 조롱 섞인 챈트를 보냈다.

하지만 시나는 평소와 달리 그에 반응해주지 않았고 링 위의 헤이건을 노려보면서 천천히 링으로 올라갔다.

헤이건은 박수를 치며 그를 환영했고 거기에서 안티들도 입을 다물었다.

시나에 대한 조롱은 이제 진짜라기보다는 안티들이 시나를 부정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행위에 가까웠다.

아니, 설령 정말 싫어해서 그렇게 야유를 하는 것이라고 해도 시나가 가진 진실성이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숀 시나가 헤이건의 입을 막아버렸으면 좋겠군요!]

[시나는 지금 신이 두려울 겁니다.]

그런 식으로 해설자들이 말을 곁들여서 지금 시나의 감정을 예측해보였다.

헤이건은 그걸 알기에 시나가 나오자 곧바로 다음과 같이 말을 시작했다.

[Mr. Hustle Loyalty Respect.]

[Yeeeeeeeeeeeeeeeaaahhh!!]

[Booooooooooooooooooo-!!]

[당신의 이야기를 막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시나. 때마침 나와주셨군요.]

[그래, 당신이 슬슬 내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까 해서 직접 나왔지. 해봐.]

시나가 손을 뻗었다.

거기에 헤이건은 조금 전 WWF를 깎아내렸던 게 다 거짓이라는 듯 시나를 또 어마어마하게 띄워주기 시작했다.

[당신은 역대 최고의 WWF 챔피언이죠. 당신이 내거는 가치는 미국인들에게 크나큰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런 시나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내가 높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기 위한 칭찬이었다.

시나는 위대한 레슬러였다.

하지만 더 높은 곳에 내가 있다.

[Yeeeeeeeeeeeeeeaaaahhhh……!]

거기에 쏟아지는 팬들의 환호.

시나를 싫어하는 팬들이 모여서 나의 이름을 외쳐대기 시작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거기에 시나의 팬들이 또 나섰다.

[Let’s Go! Cena!]

그리고 안티들이 반격했다.

[Cena S-cks!]

한동안 이어지는 챈트.

[Let’s Go! Cena!]

[Cena S-cks!]

[Let’s Go! Cena!]

[Cena S-cks!]

시나의 팬과 안티들이 극명하게 대립하는 모습은 순식간에 내 존재감을 링에서 완벽히 지워버렸다.

그게 헤이건이 노린 바였다.

그는 ‘악당’으로서 시나를 깎아내렸지만 시나는 자신의 영향력 하나만으로 팬과 안티들을 한데 묶어냈다.

그게 바로 아이콘이었다.

[여전히, 시네이션은 강력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군요. 그리고 시나 당신은 자신을 부정하는 이들까지도 시네이션이라고 부르며 포용하려고 하죠.]

[Boooooooooooooooooooooo-!]

[그게 뭐 문제인가?]

[예, 아주 큰 문제죠.]

헤이건이 씨익 웃었다.

[그러니까 시나, 당신이 신에게 이길 수 없는 겁니다. 언제나 올바른 길을 선택하기에 거기에 먹혀버린 거죠.]

[헤이건, 일단 한마디 해두지.]

시나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토너먼트를 열어서 적절한 선수를 선발한 뒤, 소울 아웃에서 신과 팀 ACW에게 맞서 싸울 생각이다.]

아무리 그가 비겁한 방식을 써서 승리를 했다고 한들, 시나는 거기에 맞서서 정정당당하게 싸울 생각이었다.

[그게 당신의 문제라고! 시나!!]

헤이건이 돌연 소리를 질렀다.

[당신은 그러니까 신에게 이길 수 없는 거야! 신은 이기기 위해서라면! 자기 자신의 꿈을 위해서라면 그야말로 얼마든지 잔혹해질 수 있는 사나이지!!]

[Boooooooooooooooooooooo-!!]

[시나! 물론 너도 위대한 챔피언이야! 하지만 제발! 이번 한 번만 나를 믿고 이들을 져버리고 내 말을 들어줘!]

헤이건은 관객석을 가리켰다.

[저기 저놈 보여?! 6번째 줄에 앉은 백수 돼지 새끼! 넌 저런 놈에게 야유를 받으면서도 자기 자신의 가치를 대변하기 위해 어울려주고 있지!!]

너는 그런 사내가 아니다.

숀 시나는 저런 놈들에게 욕을 먹을 만한 존재가 절대로 아니었다. 헤이건은 그런 식으로 시나에게 말했다.

[저놈들에게 말해! 닥치라고! 네 안의 분노를 터뜨려! 예전의 그 Thug했던 너를 생각하라고!! 그렇게 하면 너는 신을 쓰러뜨리는 남자가 될 수 있어!!]

[미안하지만, 헤이건.]

시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내 전략은 세 단어로 요약이 가능해. Never Give Up.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Yeeeeeeeeeeeeeeeeeaaahhh!!]

[Booooooooooo……!]

야유가 줄어들었다.

[Let’s Go! Cena! Let’s Go! Cena!]

[Let’s Go! Cena! Let’s Go! Cena!]

팬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세상을 살아갈 때,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준을 가지고 있지. 그리고 난 이렇게 태어났어. 이게 너무 좋기 때문에 바꾼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지.]

시나는 관객석에서 아버지의 무등을 타고 있는 소년을 손으로 가리켰다.

[난 오늘 먼데이 나이트 버닝콩을 보기 위해서 숙제를 일찍 끝마치고 온 저 꼬마의 롤 모델이 되기 위해 살아가.]

[Waaaaaaaaaaaaaaaaaaggghhh!!]

[날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지. 하지만 그들은 항상 쇼가 끝나고 내게 이렇게 말해. ‘시나, 나는 당신이 싫습니다. 하지만 제 아이들을 기쁘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난 거기에 자부심을 느껴!]

시나의 목소리가 약간 잠겼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느꼈다.

숀 시나라면 응당 그런 사나이다.

자신이 버는 돈의 상당수를 기부하고 언제 어느때나 바쁜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싸우는 그런 사나이다.

[나는 아이들이 숀 시나와 함께 놀고 싶어 하는 그런 상황이 자랑스러워!]

그뿐만이 아니었다.

케빈 듀말 중사.

시나는 그에 대해서 말했다.

그가 지난 주, 실제로 병원을 찾아가 만난 ‘메달 오브 아너’의 수훈자.

[분쟁 지역에서 다리를 잃은 듀말 중사는 나를 보자 이렇게 말했어! 당신을 보고 힘을 냈습니다. Never Give Up을 생각하면서 재활을 했습니다!!]

나는 그게 자랑스럽다.

시나는 감정을 참지 않고 외쳤다.

그것은 실제 사건이었다.

실제로 시나는 쇼가 끝난 뒤, 병원의 케빈 듀말 중사를 찾아가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각본의 시나가.

현실의 시나가 되었다.

그는 시대의 롤 모델이었다.

[PWA! 멋진 단체지! 하지만 내가 숀 시나로서 살아가는 걸 막을 순 없어! 폴 헤이건! 내 생각은 그대로야! 나는 계속 숀 시나로서 살아갈 거다!!]

거기까지 듣고.

나는 입 안이 바싹 마른 걸 느꼈다.

옆에 둔 생수를 한 모금 마시고 링에 나가서 스스로 할 일을 정리했다.

나는 지금 관객석을 통한 난입을 준비하며 세그먼트를 지켜보고 있었다.

숀 시나와 나의 대립.

그건 시나를 시나로, 나를 나로 포지셔닝한 채로 시작될 예정이었다.

이건 그를 위한 빌드 업.

그렇기에.

나는 오늘 시나를 공격한다.

신호가 떨어졌다.

나는 곧바로 방문을 열고 나가 보안요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관객석 출입구 쪽으로 들어섰다.

“어?!”

“우워어어어?!”

바로 옆에서 날 발견한 팬들이 깜짝 놀라 소리쳤고 뒤를 이어 그것이 마치 불처럼 경기장 전체로 번져나갔다.

[Uooooooooooooooooooohhhh?!]

팬들이 깜짝 놀랐다.

내가 WWF에 왔다.

그것도 혼자서.

어깨에 걸친 ACW 챔피언 벨트.

보안요원들이 먼저 나서서 길을 터주었고 나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링 위의 시나와 헤이건이 날 놀란 얼굴로 돌아보았고, 나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안 돼!!”

돌연 관객석 사이에서 조그마한 여자애 하나가 튀어나와 내게 와락 안겼다.

이건 나라도 순간 당황했다.

부모님의 품을 빠져나왔는지 뒤를 이어 바로 옆의 좌석에서 성인 남녀 두 명이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얘, 아이샤!”

“그만하렴!!”

인도계인 걸까.

아이, 샤, 샤, 샤.

행여나 잘못 발음하지 않도록 입 안에서 발음을 한 번 굴려보는 사이.

뒤를 돌아본 보안요원들이 다가와 내게서 소녀를 떼어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제지했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돌아갔다.

지금 이 순간을 각본에 활용하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일단 보안요원들에게 마이크를 가져다달라고 주문을 한 뒤 나는 당황해 나온 소녀의 보호자들을 바라보았다.

“보호자이신가요?”

“예, 예.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혹시 절 믿고 잠시 이 애를 맡겨주실 수 있을까요?”

“예……?”

“최고의 밤을 만들어드리죠.”

나는 싱긋 웃었다.

거기에 반신반의 하는 아이샤의 부모님. 나는 곧바로 전달되어 올라오는 마이크를 손에 쥐고 입을 열었다.

“바로 여기에 시네이션의 가장 큰 전사가 있군. 어른들도 모두 나에게 겁을 먹었는데 용기 있게 막아섰어.”

[Yeeeeeeeeeeeeeeeeeeeeaaahhh!]

거기에 환호가 쏟아졌다.

“이름이 뭐니, 꼬마야.”

내가 마이크를 내밀자 순간 흥분해서 달려들었던 아이샤가 입을 열었다.

“아이샤.”

“그래, 아이샤. 내가 나쁜 사람 같다고 생각하니? 시나가 걱정되는 거야?”

아이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경기장 안의 팬들이 순간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지금 내가 펼치고 있는 애드리브에 응해주었다.

[Aisha! Aisha! Aisha! Aisha! Aisha! Aisha! Aisha! Aisha! Aisha! Aisha!]

팬들이 소녀의 이름을 외쳤다.

순간 놀라 돌아본 아이샤가 이내 내게 의지하듯이 덥석 달라붙었다.

한 네다섯 살쯤 됐으려나.

순간 악당인 나를 막으려고 다가왔지만, 그조차도 진심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쓰게 웃으며 시나를 보았다.

녀석이 도와주었다.

[신, 그 용기 있는 소녀를 놓아줘.]

“오히려 내 팬이 된 것 같은데.”

나는 지지 않고 받아쳤다.

아이샤는 이내 진정하고 부모님에게 안겨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절대로 현실의 일은 아니었지만.

때로 지극히 현실에 가까운 레슬링.

그게 숀 시나와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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