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2.
캐스켓-테이커.
그리고 크로우.
살아있는 두 전설.
그들의 커리어는 합한 것으로 반세기가 넘어가고 존재만으로도 프랜차이즈가 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물론 실질적으로 대중들에게 더 이름이 알려진 것은 WWF라는 초대형 단체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테이커였다.
하지만 크로우 역시도 그에 못지않은 전설적인 커리어를 보내온 선수였다.
NWA, TMA, 그리고 ACW까지.
다양한 단체를 거치면서 크로우는 반 WWF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가 되었다.
그런 두 사람의 경기.
한마디로 요약이 가능했다.
드림 매치.
[Uoooooooooooooooooooohhhh-!]
그걸 위해.
테이커가 돌아왔다.
팬들은 완전히 미쳐 날뛰었다.
근 1년만의 복귀.
작년 레슬 임페리움에서 트리플H와 일전을 치렀던 그는 지금에야말로 자신의 마지막 경기를 위해 돌아왔다.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테이커가 천천히 링에 올라왔다.
그 카리스마는 여전했다.
링 위의 모두가 긴장했고 드류와 핀을 중심으로 한 젊은 선수들이 테이커를 포위하고 공격의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직후.
앞으로 나선 크로우가 테이커와 얼굴을 마주 보고 Face To Face를 했다.
[Yeeeeeeeeeeeeeeeeeeeeaaahhh!!]
거기에 쏟아지는 환호.
돌고 돌아.
드디어 이 두 남자가 만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싸움.
빠악!
테이커가 먼저 펀치를 날렸고 휘청거리며 밀려난 크로우가 반격을 가하면서 링에는 다시금 불길이 번졌다.
[This Is Awesome!]
짝! 짝! 짝짝짝!
[This Is Awesome!]
짝! 짝! 짝짝짝!
[This Is Awesome!]
짝! 짝! 짝짝짝!
‘엄청난 반응이군.’
나는 나설 타이밍을 보며 생각했다.
커리어의 대부분을 각자 다른 단체에서 보낸 테이커와 크로우. 그렇기에 전생에는 열리지 못했던 드림 매치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두 선수 모두 은퇴 직전이라서 몸 상태는 그다지 좋지 못했지만, 열린다는 사실만으로도 굉장히 상징적이었다.
오늘 시작된 이 두 사람의 대립 역시도 나와 시나의 대립처럼 레슬 임페리움까지 이어질 예정이었다.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두 사람 모두 챈트를 받았다.
단체를 떠나 존경을 받는 레슬러.
더욱이 드림 매치에 대한 기대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잠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뒤로 물러나 있던 내 발목을 누군가 붙잡았다.
바로 사모아 고였다.
테이커의 등장이 모든 걸 바꿨다.
WWF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큭……?!”
시나가 내게 돌진해왔다.
발목을 붙잡힌 상황에서 나는 순간적으로 슬레지 해머를 휘두르지 못했다.
콰앙!
복부를 깊숙이 찌르는 통증.
태클을 당해 넘어진 나는 자연스럽게 슬레지 해머를 놓쳤고, 이어서 WWF 선수들이 공격을 해왔다.
안면에 꽂히는 펀치.
[Waaaaaaaaaaaaaaaaaaaggghhh!!]
테이커의 등장으로 전부 달라졌다.
그는 단체를 떠나서 선수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줄 수 있는 거물이었다.
그렇게 공격을 당하던 나를 누군가가 뒤에서 잡고 당겨서 구해주었다.
뭔가 싶어 돌아보자.
“괜찮냐?”
러셀이었다.
“제기랄…….”
나는 그대로 몸을 가눴다.
링 위의 선수들이 진영을 갖췄다.
WWF&PWA.
ACW&PWA.
[This Is Awesome!]
짝! 짝! 짝짝짝!
[This Is Awesome!]
짝! 짝! 짝짝짝!
[This Is Awesome!]
짝! 짝! 짝짝짝!
단지 그렇게.
두 단체의 선수들이 서로 자리를 잡고 대치하는 것만으로 챈트가 나왔다.
정말 그런 순간이었다.
그야말로 개쩌는 모먼트였다.
신과 숀 시나.
러셀 오메가와 랜스 오튼.
크로우와 캐스켓-테이커.
드류와 사모아 고.
핀 발로와 대니얼 라이언.
코디 로스와 C.M. 펑크.
이전 시대의.
현 시대의.
그리고 미래의.
각 순간을 책임진 선수들이 만들어내 Face TO Face는 너무나도 특별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싸움.
나는 다짜고짜 시나에게 달려들어 그대로 안면에 헤드벗을 꽂아넣었다.
[Uooooooooooooooooooohhhh!]
좋아.
최고의 순간이었다.
나는 빛을 느꼈다.
승리와 성공이라는 이름의 빛을.
게다가.
나 혼자만의 승리가 아니었다.
우리 모두의 승리였다.
프로레슬링의 승리였다.
* * *
그렇게 모든 일을 마친 뒤.
선수들이 모두 락커룸에 모였다.
땀으로 범벅인 놈들이 죄다 씻지도 않고 모여서 썩은 콩나물 냄새가 났다.
하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좌우로 선 오튼과 시나의 어깨가 묘하게 걸리적거렸지만 오늘은 우리의 유산이 팬들에게 인정받은 날이었다.
티파니가 테이블 위로 올라섰다.
이어 맥주 캔을 툭 까서 손에 든 그녀는 선수들을 향해 내밀며 소리쳤다.
“취하지 않을 만큼 마시고 음주 운전하지 말고. 계산은 내가 할 테니까!”
[Uoooooooooooooooooohhhh!!]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다 같이 맥주 캔을 까서 번쩍 들었고 우리는 건배를 하고 뒤풀이를 즐겼다.
ACW와 WWF, PWA의 협력.
과거와는 달랐다.
과거의 락커룸과는 달리, 지금 선수들은 이 비즈니스를 사랑하고 프로의식이 강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타 단체건, 자신과 경쟁 상대건 상관없이 일단 살갑게 다가갔다.
혹자는 날카로운 면도날 위를 걷는 락커룸의 분위기가 사라져서 선수들의 카리스마가 줄었다고 말을 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이 딱 좋았다.
“그렇지, 오튼.”
“……뭐가 말이냐.”
“너 옛날에 졸라 찌질했잖아.”
“갑자기 왜 그래?”
“안 그래, 시나?”
“랜스가 좀 그랬지. 하하.”
맥주를 들이키는 시나.
그렇게 동료들과 맥주를 마시고.
드류가 다가와서 ‘짠’을 하고는 칭찬을 바라는 듯이 눈을 반짝이길래.
“오늘 잘했다.”
“감사합니다!”
“너 수염 어떻게 관리하냐.”
오튼이 물었다.
이 멍청한 자식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뺨과 턱을 따라 수염을 기르는 ‘친 커튼’ 스타일을 했다가 다 밀어버렸다.
본인의 설명에 따르면 관리하기가 귀찮고 힘이 든다나. 그렇다고 해서 관리사를 따로 들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반면 드류는 내가 조언을 한 이후 계속해서 고티 + 친 커튼 수염을 했다.
입 주변으로 낸 수염을 고티.
거기에 턱과 구레나룻이 이어지게 한 수염을 친 커튼이라고 불렀는데.
아니, 근데 왜.
남자들끼리 모이면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일까. 참으로 궁금했다.
“신, 너는 수염 안 기르냐?”
“……귀찮아서.”
나도 동양인 남성답지 않게 꽤 수염이 풍성하게 나는 스타일이기는 했지만 정말 관리가 귀찮아서 안 길렀다.
그러자니 드류가 대답했다.
“수염의 명인이 있죠.”
“……?”
“대니얼!”
대니얼 라이언.
그는 거의 목을 다 뒤덮을 정도로 수염을 정말 길게 길렀고 매번 수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평가를 내렸다.
그가 다가와 수염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오튼에게 말해주기 시작했다.
“수염은 염색을 하면 안 돼.”
“호오.”
“정돈을 해서도 안 되지. 수염은 나는 대로 길러야 한다고. 머리카락을 정돈하는 거 본 적 있어?”
“…….”
일반인은 보통 하지.
“내 수염을 봐.”
“어떻게 관리하냐?”
“말 샴푸.”
“…….”
그래서 그런 냄새가 났구먼.
“맥주나 마셔. 이것들아.”
나는 황당한 기분을 느끼며 드류와 오튼, 대니얼에게 각각 맥주를 던졌다.
그걸 받아든 대니얼이 반발했다.
“수염이 얼마나 멋진데!”
“스테이블이라도 만들던가.”
“그럴까?”
“…….”
너희 모멘텀이 다 박살 나겠지만.
링에 올라 수염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프로레슬러라니, 정말로 끔찍하군.
바로 그때였다.
“신.”
테이커가 내게 다가왔다.
“아, 테이커.”
“수염에 대해서 말하는 모양이군. 좋은 수염은 남자의 가치를 높여주지.”
테이커의 수염은 깔끔하게 정돈한 고티 수염이었다. 대니얼의 평가에 따르면 ‘어린애들이나 기르는 수염’이라나.
애들은 수염이 안 나는데.
“수염보다, 몸은 어떠시죠.”
“1,000퍼센트다. 지금 당장 너와 붙어도 쉽게 지지는 않을 정도로 말이지.”
“ACW 월드 챔피언 말이군요.”
“뭐?!”
누가 소리쳐서 돌아보자 티파니 맥센이 성큼 걸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얼굴이 벌건데.
이따 선생님이 운전하신다면서요.
“테이커는 못 줘요!”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차기 회장님이 퇴물이 다 된 늙은이를 이렇게 챙겨주다니, 기쁘군.”
“퇴물이라니. 당신은 전설이죠.”
“맞아요. 테이커 당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신도 없었을 거라고요.”
히히, 하고 웃는 티파니.
“그랬다면 정말 다행이군.”
테이커가 미소를 지으며 왁자지껄하게 사람들이 모인 락커룸을 돌아보았다.
다들 맥주에 취해서 완전 어디 대학생 파티처럼 미친 듯이 놀고 있었다.
누가 가져왔는지 맥주를 깔때기에 연결해서 긴 호스에 끼운 뒤 누가 더 많이 마시는지 겨루는 승부를 펼쳤다.
사모아 고와 AK 스타일스가 나섰다.
“Go! Go! Go! Go! Go! Go!”
“Go! Go! Go! Go! Go! Go!”
각 단체의 등신들이 주변에서 소리를 질러댔고 나는 어이가 없어져 웃었다.
“꼭 이런다니까. 멍청한 놈들.”
“다음엔 나도 할래요!”
“…….”
“티파니도 그런 모양이군.”
테이커가 쓰게 웃더니 주머니를 뒤적거려 힙 플라스크를 꺼내 손에 들었다.
뭔가, 어질어질한 냄새가 났다.
“테, 테이커?”
“응?”
“그게 뭐죠.”
“술이다. 너도 먹겠냐?”
살짝 호기심에 생겨서 한 입.
겨우, 삼켰다.
속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목 줄기를 타고 꽃이 울었다.
그렇게 표현되는 깊고 풍부한 향.
오크통, 꽃, 나무, 탄향, 잔향.
“오……. 죽겠는데요.”
“맛있다면 다행이군.”
실제로 그렇기는 했지만.
한 모금 더 했다가는 저기서 WWF의 4번 타자로 깔때기 맥주 승부에 참여하고 있는 티파니를 데리고 호텔에 못 돌아갈 것 같았으므로, 참기로 했다.
다들 즐거워 보였다.
그런 가운데.
멘토가 내게 이야기했다.
“네가 만든 거다. 신.”
“…….”
“나의 유지를 이어받아줘서 고맙다.”
“별말씀을요.”
역시 나도 그냥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마셔버릴까 싶을 정도의 밤이었다.
* * *
WWF&PWA.
ACW&PWA.
두 연합군의 마지막 전투는 ACW의 1월 페이퍼뷰인 소울 아웃에서 열렸다.
11월에 개최된 레슬링 월드 시리즈에서 승리한 ACW가 차지한 권리였다.
물론 실제로 세 단체 간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괜찮았다. 일단 함께 일을 할 의지가 강하다는 점이 그러했다.
이제는 모두가 깨달았다.
협업은 돈이 된다고.
그렇기에 앞으로도, 이 일이 돈이 되는 이상 그들은 계속해서 서로 함께 일할 수 있는 길을 추구할 터였다.
그리고 시작된 소울 아웃.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사실 오늘의 페이퍼뷰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는 나와 시나의 경기가 아니라 바로 테이커와 크로우의 경기였다.
사실 그보다 크다고 할 수 있는 나와 시나의 경기는 각각 드류와 고를 포함한 태그 팀 경기로 치러지게 되었다.
아무래도 단체의 얼굴인 메인 챔피언 간의 경기였던 만큼, 결과에 대한 협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결과는 오늘이 아니라 지상 최대의 프로레슬링 이벤트인 ‘레슬 임페리움’에서 날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그때.
이 시대의 진짜 주인을 가린다.
오늘은 그를 위한 과정일 뿐.
그래도 오늘은 세 개의 단체가 함께 한 인베이전 각본이 끝날 예정이었다.
케인 맥센으로부터 시작되어 각 단체의 수장들의 기 싸움으로 이어진 끝에 결국에는 선수와 선수 간의 대립까지.
그렇게 시작된 경기.
러셀 오메가가 이겼고.
랜스 오튼이 승리했다.
그 외에도 제각각의 선수들이 정해진 각본대로 팬들에게 멋진 경기를 선보이면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총 아홉 경기.
WWF 1 : ACW 1
WWF 2 : ACW 1
WWF 2 : ACW 2
그렇게 올라간 끝에.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를 받았던 크로우와 테이커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스코어는 WWF 4 : ACW 3
여기에서 크로우가 경기를 내주면 메인 이벤트 결과와는 상관없이 WWF 측의 승리로 끝이 나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팬들 역시 크게 기대했다.
캐스켓-테이커.
그리고 크로우.
업계에서 한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영향과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두 선수의 대결이었다.
입장부터가 남달랐다.
대-앵-!
The Deadman.
검은 경기복에 코트, 중절모.
그 키는 무려 2미터 8센티미터.
거대한 위압감과 카리스마를 가진 테이커가 링에 올랐고, 경기장에 모인 팬들은 그 희생양이 될 자를 걱정했다.
하지만 그건.
까악-! 까악-!
크로우가 까마귀의 울음소리와 함께 입장을 시작하자 곧바로 뒤바뀌었다.
캐스켓-테이커 VS 크로우.
레슬 임페리움까지 이어질 두 사람의 첫 번째 경기가 지금 시작되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