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3.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섰다.
[Uoooooooooooooooooohhh……!]
단지 그것만으로도 반응은 엄청났다.
[This Is Awesome!]
짝! 짝! 짝짝짝!
[This Is Awesome!]
짝! 짝! 짝짝짝!
[This Is Awesome!]
짝! 짝! 짝짝짝!
테이커와 크로우는 무표정한 채 서로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키는 크로우가 좀 더 작았지만 팬들이 느끼는 카리스마는 막상막하였다.
규칙을 설명하려던 심판도 감히 끼어들지 못했고 곧장 경기가 시작되었다.
땡땡땡-!
울려 퍼지는 링 벨.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그렇게 경기가 시작되었다.
업계의 전설들 모두가 경악했다.
캐스켓-테이커 VS 크로우.
절대로 열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전설의 경기가 지금 눈앞에서 펼쳐졌다.
이미 나이는 먹을 대로 먹었다.
몸도 정상이 아니었다.
크로우는 긴 커리어를 이어오며 이미 목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고, 테이커는 고관절 쪽이 정상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예전과 같은 완벽한 경기는 두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이 경기는 해야만 했다.
팬들 모두가 그것을 원했다.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기기 위해.
거기에 제대로 결과를 쓰기 위해.
지금 여기에서 두 남자는 싸운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팬들의 반응도 열광적이었다.
초반은 탐색전이었다.
락 업을 걸고 곧바로 힘에 밀려난 크로우는 자세를 바꿔 테이커의 허벅지를 잡고 그대로 힘껏 들어올렸다.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테이커.
달려드는 크로우.
바로 그 순간 테이커의 서브미션 피니시 무브인 헬즈 게이트가 들어갔다.
[Uooooooooooooooooohhh……?!]
모두가 다시 놀랐다.
고고 플라타 계통의 기술을 깔끔하고 재빠른 동작으로 소화해내는 테이커.
하지만 이어진 크로우의 행동은 모두가 순간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크하아악!!”
들었다.
목울대가 조여들고 있는 상황에서 곧바로 체중이 130kg에 달하는 거한, 테이커를 그대로 힘껏 뽑아드는 크로우.
스쿨보이 파워 밤.
투콰앙-!!
내동댕이쳐지는 테이커.
초장부터 큰 기술이 나왔다.
“저 자식들…….”
그 장면을 PWA에서 보고 있던 그렉 하트는 순간적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테이커와 크로우.
커리어의 말년임에도 두 사람이 이 경기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게 느껴졌다.
바로 불멸이었다.
누군가 말을 했었다.
‘나는 여기에 불멸을 새긴다.’
아, 그래.
“할리.”
“응? 뭐냐. 그렉.”
“‘나는 여기에 불멸을 새긴다.’ 옛날에 제게 해주셨던 말 아닙니까?”
“그랬었지.”
할리는 쓰게 웃었다.
WWF는 아니고 인디 단체에서였다.
그때 당시 그렉은 신인이고 멍청한데다 겁쟁이라서 할리 레이시 같은 거물을 상대하는 데 잔뜩 겁먹고 있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해줬다.
그건 모든 선수들의 목적이었다.
아니지.
모든 인간의 목적이었다.
불멸을 남긴다.
“나도 들은 말이다.”
“누구에게 말입니까?”
“버디 로거스 형님에게.”
“버디 로거스…….”
60년대 최고의 스타.
그와 함께 활동한 루 테스와 함께 시대를 양분했던 업계의 아이콘 중 하나.
“결국 이 말을 누가 한 걸까.”
할리는 쓰게 웃었다.
어쩌면 그것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그 말이 불멸로 남은 것일 수도 있겠지.
경기는 계속 이어졌다.
초장부터 화끈하게 치고받으며 시작된 싸움은 크로우가 주도권을 가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테이커는 싯 업으로 순간 상황을 반전시키면서 자신이 주도권을 가져갔고.
그렇게 두 전설적인 선수는 한 치도 물러섬 없이 멋진 경기를 보여주었다.
모두에게 영감을 주는 장면이었다.
천하의 바트 맥센이라고 할지라도 지금 이 경기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캐스켓-테이커.
언제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트 맥센이 인터뷰를 할 때마다 망설임 없이 최고의 선수로 꼽았던 남자가 바로 그였다.
그 마지막 대립이 다른 단체에서 전설적인 커리어를 쌓아올린 사내라니.
처음에는 약간 불만스러웠지만.
경기를 보자 그 생각은 사라졌다.
[테이커가 크로우를 잡아챕니다!!]
[초크 슬램! 초크 슬램!!]
투콰앙!
[Yeeeeeeeeeeeeeeeeeeeaaahhh!!]
“티파니.”
“네, 아버지.”
“이게 바로 네가 원하던 거냐?”
“그을, 쎄요.”
티파니는 쓰게 웃었다.
맥센 저택.
은퇴한 황제와 그 뒤를 이어받은 제국의 황제는, 소울 아웃을 함께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티파니는 생각했다.
‘이 지점에서 그러실 거 같더라니.’
캐스켓-테이커.
WWF에 대한 그 충성심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딱히 변함이 없었다.
그렇기에 분명 그 커리어의 마지막이 될 대립에 특별한 감정을 느낄 테지.
티파니도 그렇기는 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흥.”
“그러는 아버지는 어떠신가요. 당신이 가장 사랑하던 선수가 링에서 자신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는데.”
“정확히는 그랬었지.”
바트는 티파니의 말을 정정했다.
그리고 땀으로 범벅이 된 채 경기를 펼쳐나가고 있는 테이커를 보며 말했다.
“나쁘지는 않군.”
“…….”
“그래, 이게 옳은 거군.”
만약 자신이 계속 업계의 정상에 군림했더라면 절대 테이커와 크로우 간의 경기를 부킹하지는 않았겠지.
“잘하고 있구나. 티파니.”
“모든 게 신의 생각이죠.”
“그러냐.”
“예, 신이…… 증명했잖아요.”
업계가 어떤 식으로 가야 하는지.
그는 선구자였다.
동시에 우두머리였다.
“그렇지.”
바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 후, 경기가 끝났다.
[1……!]
[2……!]
[3……!]
땡땡땡-!
[Waaaaaaaaaaaaaaaaaggghhh!!]
팬들의 환호성이 이어졌다.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크로우의 스콜피온 데스 드랍.
그리고 이어진 핀 폴, 테이커는 깔끔하게 쓰리 카운트를 내주고 말았다.
그것으로 ACW의 추격이 이어졌다.
“……티파니?”
바트 맥센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설마 이것도 다 네 계산이냐?”
“그럼요.”
“감히, 테이커를.”
“상대의 안방이잖아요.”
티파니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ACW의 레전드인 크로우가 아니었더라면 누가 테이커로부터 깔끔하게 쓰리 카운트를 가져올 수 있을까 싶었다.
다음으로 이어질 메인이벤트가 그런 협의가 불가능했던 것을 생각하자면 오히려 이 경기는 깔끔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테이커와 크로우 사이의 경기는 드림 매치기는 해도 확실하게 결과를 내 누군가를 띄워줄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반대로.
신과 시나의 경기는 그것이 갖는 상징성과 현재 두 사람의 위치를 생각했을 때 조심스럽게 접근해야만 했다.
* * *
세미 메인이벤트가 크로우의 승리로 끝나면서 스코어는 4:4 동점이 되었다.
전형적인 결과였다.
또한 그만큼 치열하고 드라마틱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두 연합군 간의 실력이 그만큼 비등비등하다는 거였으니.
그렇기에 메인이벤트가 중요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 메인이벤트에서 WWF의 아이콘인 숀 시나에게 패배를 할 예정이었다.
지난 레슬링 월드 시리즈에서는 나와 팀 ACW가 승리를 거뒀으니 서로 한 대씩 주고받는 게 일반적인 결말이었다.
그래야 대립이 깔끔하게 끝나고 내가 시나에게 도전하는 그림이 만들어지지.
‘좋아.’
나는 심호흡을 했다.
목표는 정했다.
망설이지 않는다.
오늘의 경기부터.
레슬 임페리움까지.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전력으로 부딪힌다.
[Yeeeeeeeeeeeeeeeeeeeaaahhh!!]
팬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커튼을 걷고 나간 나는 눈앞을 휘감은 연기와 불꽃을 밀어내며 소리쳤다.
“기다렸지?! 너희 챔피언이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이 나의 이름을 외쳤다.
그런 가운데, 벨트를 번쩍 들어 올린 나는 먼저 입장해 링 위에 서있는 시나와 사모아 고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드류가 내 옆에 섰다.
[Uoooooooooooooooooooohhhh!!]
거기에서부터 이미 팬들의 환호는 절정에 달했다. 나는 씨익 웃으며 코트를 입고 있는 드류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이렇게 반응이 좋으면 초장부터 화끈하게 밀어붙여야만 하는 법이었다.
“코트 벗어라.”
“예……?”
“바로 가자고.”
그렇게 말한 나는 어깨 위에 걸쳐둔 ACW 월드 챔피언 벨트를 잠시 내리고 그대로 입고 있던 가죽 재킷을 벗었다.
드류도 나를 따라 겉옷을 내던졌고 우리는 그대로 링 위에 서있는 두 사람에게 투쟁심을 보여주었다.
[Waaaaaaaaaaaaaaaaaggghhh!!]
환호성이 더욱 커졌다.
링 위의 시나와 고가 상황을 이해하고는 곧바로 링 아래로 내려왔다.
우리는 대치했다.
입장로를 사이에 두고.
나는 시나를, 드류는 고를.
그렇게 각각 한 사람씩을 맡은 가운데, 눈치 빠르게도 고릴라 포지션이 알아서 내 테마 음악을 멈춰주었다.
[Uooooooooooooooooooohhh!!]
나는 곧바로 뛰었다.
드류 역시 달려들었다.
그리고 충돌이 일어났다.
콰앙-!
먼저 뛰어든 드류가 고를 어깨로 들이받으면서 반대편으로 힘껏 날아갔다.
이어서 한 박자 늦게 달려든 나는 그대로 시나의 안면에 헤드벗을 날렸다.
빠악-!!
‘최고로군.’
[Waaaaaaaaaaaaaaaaaaggghhh!!]
팬들의 환호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 이 짧은 시퀀스는 내가 팬들의 반응을 보고 즉석에서 결정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모아 고가.
드류 맥킨마이어가.
숀 시나가.
카메라맨까지.
모두가 하나가 되어 날 따라주었다.
방금 일어난 일련의 시퀀스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내가 재킷을 벗는 신호에 고와 시나가 내려와 즉석에서 각본을 바꿨고.
드류가 달려들 때 나는 걸음을 아주 약간 늦춰서 놈이 먼저 달려들게 했다.
그리고 고가 덤비라는 듯이 신호를 주어서 드류가 태클을 먹이게 했다.
그로써 카메라맨은 손쉽게 ‘누구를 먼저’ 잡아야 하는지 알게 되었고 나와 시나를 카메라에 포착해냈다.
그렇게 시작되는 싸움.
퍼억!
[SIN! SIN! SIN! SIN!]
[Let’s Go Cena!]
[SIN! SIN! SIN! SIN!]
[Let’s Go Cena!]
[SIN! SIN! SIN! SIN!]
[Let’s Go Cena!]
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고와 드류가 서로 뒤엉킨 채 포커스에서 빠졌고 시나와 주먹을 주고받던 나는 놈을 바리게이트로 내던졌다.
콰앙-!
관객석과 링을 구분하기 위해서 쳐둔 검은색 바리게이트.
거기에 부딪힌 시나가 순간 힘이 빠졌는지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그대로 놈에게 다가갔다.
그 직후, 자리에 주저앉아있던 시나가 눈을 빛내며 내게 달려들었다.
태클.
빠악!
그대로 밀려난 나는 링의 뼈대를 구성하고 있는 철제 기둥에 등을 박았다.
“거, 흑……!”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몸에서 뭔가가 어긋났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
[Waaaaaaaaaaaaaaaggghhh!]
[Booooooooooooooooooo-!]
압도적인 환호와 반대되는 야유.
“후우.”
팔을 붕붕 휘두르며 다가온 시나는 내 팔을 잡고 당겨서 일으켜 세웠다.
거기에 끌려간 나는 그대로 바리게이트에 부딪히고는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
이쯤 하니 시나도 뭔가를 느꼈다.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중심을 잡지 못했고 그대로 쓰러져서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고통으로 찡그린 표정.
거기에 시나가 다가오더니 곧바로 내 상황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이봐, 신.”
“안 될 것 같아.”
“…….”
이를 악물며 뒤를 돌아보는 시나.
나는 억지로 일어서려고 했다.
팀 닥터들이 달려 나왔다.
시나가 나를 부축하려고 했다.
“이봐, 신. 움직이지 마.”
“시나.”
“응?”
“너라면 이럴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순간 거리를 벌렷다.
그리고 이어지는 슈퍼 킥.
쫘악-!!
[Uoooooooooooooooooooohhhh?!]
팬들이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
내가 진짜로 부상을 당하지는 않았을까 걱정을 하던 그들은 모두 연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다시 환호했다.
킥을 맞고 나가떨어진 시나.
나는 허리를 두들기면서 외쳤다.
“너라면 이럴 거라고 생각했다!”
교묘하게 뒤섞은 Reality.
실제로 내 허리는 멀쩡했다.
나는 씨익 웃으며 관객석을 돌아보고는 그대로 머리 위로 주먹을 들었다.
[Yeeeeeeeeeeeeeeeeeeaaaahhh!!]
순간 방심하던 턱에 제대로 킥이 들어갔고 지금은 시나가 제대로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나는 놈의 머리를 붙잡고 그대로 링 위로 올려 보낸 뒤, 따라서 올라갔다.
그러자 울리는 링 벨.
땡땡땡-!
경기가 시작되었다.
포커스 바깥에 있던 드류와 고가 흩어져 각자의 진영으로 돌아왔다.
고는 좀 놀란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시나가 왜인지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반면 나는 멀쩡했고 크게 여유를 부리며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팬들을 향해 소리를 쳤다.
“Say Hello To The Bad Guy!”
[Yeeeeeeeeeeeeeeeeeaaaahhhh!]
‘악당에게 인사해라.’
거기에 쏟아지는 환호.
각본 상의 시나는 현실의 시나와 밀접하게 닮은 부분이 존재했다. 그렇기에 나는 그 성격을 이용해 기회를 잡았다.
이게 시나와 나의 다른 점이었다.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존중을 얻기 위해서라면.
좋아.
최고의 경기를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