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5.
“후우.”
나는 심호흡을 했다.
[Waaaaaaaaaaaaaaaaaaaggghhh!]
팬들이 환호를 보내는 가운데 찾아온 경기의 종반부. 나와 시나는 드디어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섰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단순했다.
투쟁.
누가 더 나은 남자인가.
그것을 기리기 위한 다툼.
시나가 먼저 주먹을 날렸다.
뻐억!
둔탁한 통증.
그대로 돌려주었다.
쩌억!
주먹과 주먹.
킥과 헤드벗, 그리고 찹까지.
우리는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온갖 기술을 다 동원해서 상대를 공격했다.
온갖 충격이 몸을 덮쳤지만 나는 피하지 않고 다음 공격으로 이어나갔다.
빠악!
헤드벗.
시나의 몸이 순간 멈췄다.
[Uoooooooooohhh……!]
나는 다시 헤드벗을 날렸다.
뻐억!!
시나가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한 번 더.
빠악!!
결국 무릎을 꿇고 마는 시나.
“허억, 허억…….”
숨을 몰아쉰 나는 그대로 시나의 몸을 붙잡고 반대편으로 넘기려고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Uooooooooooooooooohhhh?!]
시나는 버텨냈다.
엄청난 힘이었다.
반대로 내 몸이 들렸다.
“크윽?!”
시야가 빙글 돌며 충격이 찾아왔다.
투콰앙!
피셔맨 수플렉스.
순간 숨이 막혔다.
뒤를 이어 내 다리 쪽으로 넘어온 시나가 그대로 STF를 시전하려고 했다.
STF.
Step over Toe hold with Facelock.
상대방의 다리를 자신의 다리에 엮어 조이면서 동시에 페이스락을 걸어버리는 숀 시나의 서브미션 피니시 무브.
[Uoooooooooooooooooohhh!]
페이스락이 걸리기 직전 얼굴을 비틀어 빠져나온 나는 그대로 등으로 위에 올라탄 시나를 튕겨내며 몸을 돌렸다.
그대로 허리의 힘을 이용해 일어서며, 시나의 다리에 내 다리를 엮고 꽉 조인 상태에서 샤프 슈터를 걸었다.
[Uooooooooooooooooooohhhh?!]
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단단히 시나의 다리를 붙잡은 상태에서 나는 녀석에게 고통을 선사했다.
“러셀 오메가로부터다! 개새끼야!”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시나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눈앞의 관객석.
바리게이트에 매달린 소년 하나가 시나의 이름을 목 놓아 외치고 있었다.
거기에 시나가 반응했다.
[Yeeeeeeeeeeeeeeeeeeeeaaahhh!]
바닥에 엎어져 있던 시나가 상반신과 팔을 써서 엉금엉금 앞으로 기어갔다.
“큭……!”
버텨보려고 했지만.
“으아아아아아아!!”
시나는 괴력을 발휘했고 그렇게 계속 기어간 녀석은 끝내 로프를 붙잡았다.
“로프 브레이크!”
심판의 선언을 들은 나는 시나에게 건 샤프 슈터를 풀고 숨을 몰아쉬었다.
[Let’s Go! Cena!]
[SIN! SIN! SIN! SIN!]
[Let’s Go! Cena!]
[SIN! SIN! SIN! SIN!]
[Let’s Go! Cena!]
[SIN! SIN! SIN! SIN!]
환호는 계속 이어졌다.
팬들은 나와 시나가 맞붙고 일련의 스팟이 끝나면 꼭 그렇게 챈트를 하면서 각자 지지하는 선수를 응원했다.
나는 무릎을 움켜쥐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시나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 경기가 갖는 의미는 정말로 컸다.
내가 상상하던 것 이상이었다.
* * *
그렇게 이어진 경기는 결국 고와 시나가 기회를 잡고 드류 맥킨마이어에게 피니시 무브를 꽂아 넣으며 끝났다.
신은 탑 턴버클에서 링 밖의 아나운서 테이블로 떨어지며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패배를 막아내지는 못했다.
[Yeeeeeeeeeeeeeeeeeeeaaaahhh!]
[Booooooooooooooooooooooo-!]
숀 시나가 핀 폴을 마친 순간 경기장 안은 떠내려갈 듯 반응이 휘몰아쳤다.
환호와 야유 속에서 숀 시나는 사모아 고와 세리모니를 펼쳤고, 소울 아웃은 WWF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여러모로 시사할 점이 많았다.
‘시험을 해보았군.’
늦은 밤.
생방송으로 마지막까지 쇼를 본 할리우드 스타, 팍은 그런 결론을 내렸다.
자주 쓰이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아마.
그들의 예상보다 효과가 더 컸다.
신과 시나가 경기장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설 때마다 각 지지자들로 인해 순간 마이크 소리가 깨질 정도였으니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각자가 서로 다른 시대의 대표자.
그런 두 사람의 싸움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행위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흥미를 끄는 거지.’
팍은 보드카를 홀짝이며 생각했다.
경기도 그런 식이었다.
타격은 신이 위.
힘은 시나가 위.
기술은 신이 위.
근성은 시나가 위.
그런 식으로 잘 구성을 해놓았다.
팬들은 그걸 그저 느낄 뿐이겠지만.
오늘의 경기는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컸고, 두 사람의 이어질 대립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녔는지를 보여주었다.
분명히 업계 최대의 싸움이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업계 파이가 커졌으니까.’
팍 본인이 활동하던 때는 어디까지나 WWF라는 단체가 전부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선수들이 조금은 부럽게 느껴지다가도 자신은 링에서 내려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은 길은 하나였다.
지켜보는 것.
이 긴 싸움의 종착역이 어디일지.
‘팬으로서 말이야.’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 * *
소울 아웃은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숀 시나의 활약을 통해 WWF가 승리했고 버닝콩에서 세리모니가 펼쳐졌다.
반면.
ACW도 분위기가 처지지는 않았다.
크로우가 캐스켓-테이커로부터 승리를 거둔 그 사실을 자축하면서, 비록 패배는 했지만 잘 싸웠다고 이야기했다.
전쟁은 그렇게 끝났다.
각본 외적으로 세 단체의 협업은 엄청난 이득을 얻었고 계속 교류를 이어나가도 좋다는 근거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각본 내적으로는 각 단체가 잃은 것과 얻은 것이 명확히 나뉘었다.
팬들은 간과하는 부분이었고, 각 단체들도 딱히 짚고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다음 협업은 분명히 무언가를 잃은 선수들에 의해서 시작이 될 터였다.
그래.
‘나지. 나야.’
그리고 테이커도.
아직 대화만 오고 가는 정도였지만 분명히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나의 감이었다.
이 흐름을 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할 수 없다.
인생에는 때가 있다.
정말로 운이 좋아서 나는 이유도 모르는 채 한 번의 기회를 더 얻었지만.
이걸 놓쳐서 후회하고 한 번의 기회를 더 바라는 건 양심 없는 짓이겠지.
그렇기에 나도 잠깐의 휴식 동안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할 생각이었다.
아직 정리가 좀 더 필요했다.
이 대립을 위해서는 내가 지금껏 걸어온 길을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걸 위한 여행이었다.
……바로 이것을 내가 말하자 바쿠는 무슨 하이틴 로맨스의 여자 주인공처럼 감상에 젖어있냐며 핀잔을 주었지만.
제기랄.
남자라도 감상에 젖을 수 있는 법.
그렇게 나는 GCW를 찾아갔다.
아직 추운 2월의 초순.
바닥에 눈이 쌓인 공장 같은 건물 앞에 차를 대고 내리자 누군가 다가왔다.
바로 바트 맥센이었다.
“늦었군.”
“……누구랑 달리 전용기가 아니라.”
“춥군. 들어가지.”
“갈 수 있어요?”
“내가 누군데.”
참으로 기묘한 조합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나머지가 시간이 안 난대서.’
숀 시나는 WWF를 이끌고.
러셀 오메가는 ACW를 이끌고.
PWA는 아주 그냥 난리가 났다.
나를 지지하는 선수들과 아닌 선수들 간에 한바탕 큰 싸움이 벌어져서 서로가 상대를 크게 증오하고 있었다.
코트를 입은 바트와 나는 나란히 걸으며 일단 GCW의 건물을 둘러보았다.
그대로였다.
내가 바트에게 헐값에 넘겨받아 훨씬 비싼 가격을 받고 넘긴 여기 이 GCW는 아직도 운영 중이었다.
현재는 ACW의 산하 단체로서, 나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꽤 인기를 끌었다.
듣자하니 이제는 로만 니키라는 선수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했던가.
많이 변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그대로였다.
거의 10년의 세월.
하지만 그 가치는 퇴색되지 않았다.
“…….”
“왜 나를 데려온 거냐?”
바로 그때.
바트가 물었다.
“어, 사실 여기 곰이 좀 나오거든요.”
“……?”
“한 명이 먹히는 동안에 다른 한 명이 도망치면 괜찮지 않을까 해서 되도록 저보다 느린 사람을 데려온 거죠.”
“널 총으로 쏘고 싶구나.”
“곰을 쏘는 게 가능성이 높을 텐데.”
나는 피식 웃었다.
사실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해당했지만.
“영감님.”
“뭐냐.”
“여기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구리군.”
“하지만 여기에서 시대의 아이콘이 두 명이나 나왔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숀 시나 말이냐.”
“또 하나는?”
“러셀 오메가겠군.”
“…….”
“아, 그래. 너다.”
바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이 추위로 빨개진 영감이 내 얼굴을 진득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었다.
“하나 여쭤보죠.”
나는 추위 속에서 다시 물었다.
“숀 시나와 저를 애송이 시절부터 봐온 당신이니까 할 수 있는 평가겠죠.”
“누가 더 낫냐고?”
“예.”
“물론 숀 시나다.”
“진심으로요?”
“나한테 묻지 마라.”
바트가 눈썹을 찡그렸다.
“내가 너라고 대답해주리라고 생각했냐? 왜 내가 그렇게 말해야만 하지?”
그러더니 내게 다가왔다.
“너는 내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갔어. 이 업계와 팬, 그리고 프로레슬링의 판도 전체를 너 혼자서 바꾸고 말았지.”
“……딱히 혼자인 건.”
“아니, 혼자다.”
영감은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다. 넌 무슨 마법이라도 쓰듯이 너에게 주어진 한계를 뛰어넘고 여기에 이르렀지.”
“사실 그거 다 사깁니다.”
“사기면 뭐 어떠냐.”
“…….”
“중요한 건 결과다. 왜 여기까지 와서 찌질하게 남의 확인을 받는 거냐.”
“그 상대가 당신이니까요.”
“뭐?”
“프로레슬링을 이 위치까지 올려놓은 분 아닙니까. 그런 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번 여쭤보고 싶었던 거죠.”
“난 널 증오한다. 그러니 묻지 마라.”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쓰게 웃었다.
그렇게 말한 것과는 달리, 바트 맥센은 내가 한 칭찬이 싫진 않은 눈치였다.
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나와 시나는 어찌되었든 바트 맥센이라는 남자로부터 기회를 받았기 때문에 지금 이 위치까지 올라올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냥 물어보고 싶었다.
답은 뭐, 나쁘지 않았고.
나는 계속 걸었다.
딱히 연락을 하고 온 건 아니라서 눈치를 좀 보다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걸리면 바로 쫓겨나려나. 혹시라도 경비원이 테이저를 쏘려 하면 바트 맥센의 뒤로 숨어야지.
하지만.
딱히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건물 안으로 트럭이 들어서는 시점에서 모두들 나와 바트 맥센이 여기에 왔다는 사실을 모를 리는 없을 텐데.
대응책을 정하고 있나?
그렇게 생각한 시점이었다.
“저, 저기.”
누가 나왔다.
“신 선수, 맞으시죠?”
“옙. 함부로 들어와서 죄송합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모두’가 나왔다.
“오오!”
“정말 신이야?!”
“여기는 무슨 일로……!”
숙식하는 선수진을 포함해 단체를 운영하는 팀이 나와서 나를 둘러쌌다.
나는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일단, 어.
뒤에 또 하나 있는데.
“신 선수! 죄송합니다! 오신다는 걸 알았으면 저희가 맞으러 갔을 텐데!”
“아, 아뇨.”
나는 대충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이 팀의 리더로 보이는 덩치 큰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여기 이 친구들의 선배님이셨죠.”
“아직도 기록을 인정해주나요.”
“바트 맥센, That Bi-ch 때문에 고민을 했습니다만. 당신과 러셀은 업계 전체에서 존경 받는 사내였으므로.”
그 Bit-h가 뒤에 있다.
내가 쓰게 웃으며 얼굴을 확인하자 바트는 잔뜩 심술이 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내 행동에 같이 돌아본 리더가 바트 맥센을 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바, 바……!”
“예, 바트 ‘The Bi-ch’ 맥센이죠.”
“아, 아이고! 회장님!”
“이제 회장 아니에요.”
“아, 그러시다면.”
상황 판단이 빠르군.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아무튼, 모쪼록 신 선수께서 편하신 대로 둘러봐주셨으면 좋겠군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신 선수는 여기 이 멍청이들의 꿈과 희망 같은 존재니까요.”
리더가 씨익 웃었다.
나는 선수들을 돌아보았다.
남성 선수가 대략 스무 명 남짓.
여성 선수들은 열 명 정도.
다들 트레이닝복을 제각기 갖춰 입은 가운데, 나는 개중에서 가장 거대한 사내에게 다가가려다가…….
그 옆에 서있는 남자를 돌아보았다.
“호오.”
바트의 눈이 반짝였다.
“네가 리더로군.”
“어, 어.”
순가 말문이 막힌 청년.
“아, 예. 로만이라고 합니다.”
“알고 있어요. 잘 나간다지?”
“가, 감사합니다! 신 선수. 정말로 큰 영광입니다. 어, 으…… 옙.”
꼿꼿하게 허리를 펴는 남자.
로만 니키.
190을 넘는 큰 키와 덩치. 아너아이 패밀리의 일원인 사모아인으로 그답지 않게 잘생긴 외모가 큰 장점이었다.
원래의 역사에서는 향후 ‘로만 레긴스’라는 이름으로 숀 시나의 뒤를 이어 WWF의 차세대 스타로 낙점 받았다.
선수 자체는 괜찮았는데 바트 맥센의 폭거에 가까운 ‘제2의 숀 시나 만들기’의 희생양으로 커리어 중반까지 팬들의 엄청난 야유를 감내해야만 했다.
그리고.
나로 인해 역사가 이렇게 되자 로만은 어찌된 영문인지 ACW의 산하 단체인 GCW에 몸을 담고 있는 상태였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ACW로 데뷔해서 바트 맥센의 마수를 비껴가게 되려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로만이라고?”
바트 맥센이 앞으로 나섰다.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건 막아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