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497화 (497/634)

497.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누가 이길 거냐.’

나는 바쿠의 그런 질문을 듣고는 순간적으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나와 시나의 대결.

승자는 어떻게 정할 거냐.

두 단체의 타이틀이 모두 걸려 있는 만큼 솔직히 말해 대답이 힘들었다.

WWF 월드 타이틀.

ACW 월드 타이틀.

두 단체 모두 상대 단체의 선수에게 타이틀을 내주고 싶지는 않을 테고, 월드 챔피언은 단체의 중심이었으니까.

스토리, 수익, 가치 등.

여러 요소를 총합해 그 시기에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선수가 월드 챔피언을 보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악역 챔피언이 타이틀을 가지면 선역 선수들이 상승세를 가지거나 악역이 턴 페이스를 하며 도전을 기대하게 되고.

반대로 선역 챔피언이 타이틀을 가지면 악역 선수들이 성장한다는 말이지.

숀 시나와 트리플H가 선역과 악역 챔피언의 좋은 예시라고 할 수 있었다.

숀 시나가 타이틀을 가졌을 때, 당시 ‘하트’였던 러셀 오메가는 그 상대 역할로 악역 메인 이벤터에 등극했고.

랜스 오튼도 마찬가지로 시나와의 대립을 통해 악역으로서 거물이 되었다.

반대로 트리플H가 챔피언이었을 때는 선역 선수들의 상승세가 꽤 강했지.

둘을 반반씩 섞은 타입도 존재하고.

‘나처럼.’

요는, 무슨 이유로든 절대, 타이틀이 대충 오고 가지는 않는다는 말이었다.

챔피언은 단체의 간판 그 자체였다.

그러므로 ACW와 WWF, 두 단체 모두 타이틀을 내주기도 싫고, 받는 것 역시 부담스럽게 느끼고 있을 터였다.

왜냐면 월드 챔피언 더블 타이틀 홀더가 되면 양 단체 모두 출연을 해야만 하니까. 내 경우에는 단체 세 개고.

자기 단체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벌어다 주는 선수가 타이틀을 잃을 때까지 상대 단체에 출연해야만 하는데.

그걸 누가 반길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 사정이었고 내 생각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이기고 싶지.’

그걸 위해 준비를 해왔으니까.

어두운 밤.

PWA의 경기장이자 사무실이기도 한 트럼프 아레나의 옥상에서 나는 운치를 느끼며 불빛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SIN City.

그런 이름으로 유명한 라스베이거스는 이 늦은 밤에도 항상 빛을 발했다.

그런 가운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뭔가 싶어 돌아본 나는 옥상 위로 올라온 바쿠가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거 물었다.

“여기서 뭐하냐.”

“그냥, 생각이요.”

“경기 결과에 대해서?”

“예.”

“그거라면 네가 이겨야지.”

“……?”

“뭘 멍청한 얼굴로 보냐.”

“아까는 왜 물어보셨죠. 그럼.”

“네 생각이 궁금했으니까.”

“사람들 다 있는데 내가 이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힘든 일이라고요.”

“예전에는 잘 그랬잖냐.”

“그건 근거가 확실했으니까요.”

“테이커와 싸울 때도?”

“물론이죠.”

나는 확신에 차 말했다.

“그건 제가 이겼어야 했다고요.”

“그럼 시나와의 싸움은?”

“그것도 제가 이기고 싶죠.”

“……아까도 그렇게 말하지 그랬냐.”

“아니, 어떻게 그러냐니까요.”

나와 테이커의 싸움에서는 확실하게 내가 이겨야만 하는 근거가 존재했다.

그 대립을 통해 테이커의 연승을 깬 나는 일반적인 메인 이벤터 수준을 벗어나 그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딱히 그런 이유를 내세울 수가 없었다. 내가 시나를 이긴다고 해서 위상이 올라가진 않으니까.

아니, 정확히는 올라가긴 하겠지만.

시나도 날 이기면 위상이 올라갈 테니 그 부분을 근거로 삼을 순 없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구나.”

“‘아이콘’과의 싸움이잖아요.”

거기다 그 상대인 나도 아이콘.

두 사람 다, 미래가 창창했다.

그러므로 앞선 현실적인 부분에 더해 함부로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바쿠가 피식 웃었다.

“하, 언제나 러셀과 너의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던 그 시나가 말이야.”

“…….”

“입사 시험도 떨어졌던 그놈이, 너희들 중에서 가장 빨리 성공할 줄은.”

“아무도 몰랐죠.”

나는 쓰게 웃었다.

“하지만 네가 더 놀랍다.”

“네?”

“실력만으로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업계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로 네가 이렇게까지 대단한 거물이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바쿠는 한바탕 연설을 시작했다.

“너는 항상 그랬어. 멋진 아이디어를 내놓고는 그걸 보란 듯이 성공시켰지.”

오랜 과거를 떠올리는 듯한 모습.

그래.

10년 전 GCW에서도 우리는 이런 식으로 일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는 했다.

왠지 나도 그때가 떠올랐다.

바쿠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넌 항상 교묘한 말솜씨로 사람들이 너를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지.”

그렉 하트와의 대결부터 시작해서.

“랙다운으로 넘어가서는 왜 안 나오나 했더니…… 링 서바이벌로 복귀하자마자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리고 테이커를 이기고.

회사를 나와.

PWA를 만들고.

ACW와 대립하고.

WWF와 싸우고.

“결국, 모든 걸 가졌구나.”

“…….”

“이번에도 같을 거라고 본다.”

바쿠는 확신에 차 말했다.

“시나가 현실의 슈퍼 히어로라고 한들, 네가 분명히 말로 조져버릴 테지?”

나는 씨익 웃었다.

뭐, 상자를 까봐야 그 안의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알 수 있겠지만.

일단은 그럴 생각이기는 했다.

“날 너무 잘 아는군요. 바쿠.”

그렇게 이야기한 우리는 한동안 옥상에 서서 옛날 이야기를 좀 주고받았다.

슬슬 돌아갈 때였다.

링으로.

* * *

2월 4주차.

수요일 밤의 PWA.

나는 드디어 링에 돌아가게 되었다.

[오늘 밤! 오랜 공백을 깨고 신이 귀환합니다! PWA와 프로레슬링 업계 전체에 어떤 메시지를 던진다는데요!]

[지금 PWA에서는 신을 지지하는 세력과 아닌 세력 간에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신이 이걸 어떻게 해결할지가 정말 궁금해지는군요.]

단지 그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출연한다는 코멘트와 광고가 나가자마자 곧바로 시청률이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신!”

할리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긴 말은 필요 없었다.

나는 이제 등장만으로 한 단체의 시청률 수준을 바꿔놓는 선수가 되었다.

그렇기에 가해지는 기대감도 컸다.

‘후우.’

가볍게 심호흡.

쇼의 오프닝 영상이 나갔고 나는 고릴라 포지션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음악이 시작되었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Waaaaaaaaaaaaaaaaaaggghhh!!]

오늘도 경기장에 한가득 모인 팬들이 엄청난 환호성으로 보답을 해주었다.

나는 커튼을 걷고 나갔다.

몰아치는 연기.

터져 오르는 불꽃.

역십자의 마크.

어깨에 ACW 월드 챔피언 벨트를 걸친 채로 돌아온 나는 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마이크를 쥐었다.

“다들 내가 없는 동안 힘들었겠군.”

[Waaaaaaaaaaaaaaaaaaaggghhh!]

“여기 있는 놈들이 죄다 분열해서 싸우고 붙고 난리가 났으니까 말이야.”

그것도 나로 인해서 말이다.

솔직히 고마운 일이었다.

모두가 도와준 덕분에 나는 쉬는 동안에도 이곳에서 존재감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뭐, 변명은 필요 없겠지. 이유는 다들 알다시피 이것 때문이고.”

나는 ACW 쪽에 붙었다.

ACW 월드 챔피언으로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너희가 날 배신자로 규정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 다들 내가 나를 배신한 헤이건이나 그 친구들을 싫어할 거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의외로 그런 건 아니었다.

“놈들은 ‘소울 아웃’에서도. 바로 이 PWA에서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지.”

[Waaaaaaaaaaaaaaaaaaggghhh!!]

쏟아지는 환호.

그리고 챈트가 이어졌다.

쟈니 에이스, 대니얼 라이언, AK 스타일스. 팬들이 제각각 좋아하는 선수들의 이름을 외치며 박수를 보냈다.

바로 이게 내 스타일이었다.

나는 누군가를 부정하지 않는다.

싸움의 끝에서 최종적으로 내게 도전했던 선수의 위상이 올라갔으면 했다.

“그리고 물론, 나를 따라준 놈들 역시도 엄청났지. 확실히 드류 맥킨타이어 그놈은 거물이 될 자격이 있어.”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나도 모범을 보여야겠지.”

거기에서 나는 뜸을 들였다.

“전쟁은 끝났어. ACW와 WWF에서도 이제 서로가 무시할 수 없는 상대임을 느끼고 힘을 비축하기 시작하겠지.”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는 내가 이 시대의 아이콘임을 증명하는 내용이었다.

숀 시나부터 시작해서.

각 단체의 얼굴들은 항상 링에서 팬들을 조련하며 이야기의 진행을 정리하는 마이크워크를 수행해야만 했다.

나도 그러는 것이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너희가 정말로 부럽군. 텔레비전에서 나를 볼 수 있으니까! 그리고 러셀 오메가가 나오는 ACW와 숀 시나가 있는 WWF도 얼마든지 볼 수 있으니 말이야!”

[Yeeeeeeeeeeeeeeeeeeaaahhh!]

“하지만, 언제 어느 때나, 너희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의 이름은 나겠지.”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챈트가 들려왔다.

나는 잠시 마이크를 들었다.

오디오에 그걸 담아냈다.

관객석에서 들려온 팬들의 소리는 마이크를 타고 전 세계로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어서.

내 방향성을 말할 차례였다.

신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다들 궁금해하던 바를.

나는 먼저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아니야.”

순간 의아해하는 관객들.

그렇게 관심을 끌고.

나는 좀 더 정확히 말했다.

“내 전쟁은 끝나지 않았어.”

[Uooooooooooooooooooooohhh!!]

“지난 싸움에서, 나는 책임을 통감했어. 월드 챔피언으로서 마지막 경기에서만 승리하면 되는데, 패배를 했지.”

안타까운 기억이었다.

사실 그래서 좀 집에서 슬퍼하며 보냈다……는 ‘뒷설정’이 좀 있기는 하지만, 굳이 거기까지 말하지는 않았다.

나는 손가락을 들었다.

“아직 한 명이 남아 있지.”

그러자 쏟아진 반응은 순간적으로 내 귀를 먹먹하게 만들 정도로 거대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완전히 엉망진창이었다.

경기장 안은 열기로 가득 찼다.

나는 씨익 웃었다.

“뭐야, 누구라고?”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너희가 사랑하는 남자의 이름이야?! 아니면 싫어하는 남자의 이름이야?!”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말해봐! PWA! 내가 어떤 개자식이랑 싸우기를 원해! 내가 어떤 걸 또 약탈해오기를 원하는 거야!!”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반응이 하나로 모였다.

팬들은 그 싸움을 원했다.

내가 시나에게 도전하기를.

그리고 한 남자가 나왔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믹싱 기타 사운드.

러셀 오메가였다.

[Yeeeeeeeeeeeeeeeeeeeaaahhh!!]

팬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나의 라이벌.

동시에 ACW의 간판스타인 러셀 오메가가 PWA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나도 순간 놀라 돌아보았다.

청바지에 셔츠.

가벼운 차림으로 나온 러셀은 곧바로 링에 올랐고 나를 지나쳐 아나운서 테이블에서 마이크를 주문해 받았다.

그리고 돌아섰다.

내가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뭐야?”

“왜, 너도 이러잖아.”

관객석에서 순간 웃음이 나왔다.

“네 어깨의 타이틀이 증명하지.”

[Uoooooooooooooooooohhh……!]

“물론, 내가 지금 당장 너에게 도전하겠다는 것은 아니야. 신. 나는 타이틀 말고도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거든.”

“그렇다면?”

“일단 말해두고 싶어서.”

러셀이 싱긋 웃었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네가 시나에게 도전하면 다음에 그 타이틀을 노리는 건 내가 될 거야.”

“만약 내가 진다면?”

“아무래도 내 논리의 허점을 파고들어서 당황하게 만들려는 모양인데.”

러셀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 입으로 말하는 것도 그렇지만 너희 둘 모두와 싸워봤고, 정말 운이 안 좋아서 진 남자가 하는 말이야.”

“……정말로 운이 안 좋아서?”

“닥치고 악수나 받아.”

나는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환호성이 이어졌고.

나는 러셀과 악수를 나눴다.

이걸로 물릴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숀 시나에게 도전한다.

WWF 레슬 임페리움 201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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