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498화 (498/634)

498.

신이 PWA에 돌아와 숀 시나에게 도전을 선언하기 며칠 전, 각 단체의 대표들이 참석한 회의가 열렸다.

WWF의 티파니 맥센.

ACW의 데릭 비숍.

PWA의 할리 레이시까지.

거물들이 모인 장소는 말하자면 ‘중립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 PWA였다.

티파니는 그곳에서 환영을 받았다.

“티파니!”

“아~ 회장님 오셨네!”

“다들 잘 지냈어요?”

폴 헤이건과 운영팀의 각 팀장들.

그들은 짓궂게 말을 해왔다.

“옷이 아주 멋있어졌는데.”

“아니, 회장이 됐다고 해서 전보다 수입이 그렇게 커지지는 않았거든요.”

“혹시 PWA 내부 정보가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저에게 연락을 주세요.”

“그건 참고해두죠.”

그걸 멋지게 받아친 그녀는 주말이라 그런지 한산한 경기장의 공기를 느끼며 가볍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들 안 나왔나?”

“오늘 신이 자기 없는 동안에 각본으로 도와줘서 고맙다고 다같이 라스베이거스에 놀러간다고 말하던데.”

“……호오.”

“어, 어라? 그거 말 안했어?”

“저한테는 산으로 특훈을 간다던데.”

“그걸, 믿었나.”

“믿어주려고 했죠.”

티파니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신의 용돈이 줄어들었다.

“아무튼, 다 왔어요?”

“그래, 회장님만 오시길 기다렸지.”

“그럼 천천히 가야겠군요.”

원래 주인공은 늦게 등장하는 법이라며 장난스럽게 웃은 티파니는 옛 동료들과 인사를 마치고 회의실로 향했다.

폴 헤이건의 말대로 이미 할리와 비숍 모두 자리에 모여있는 상황이었다.

일부러 티파니가 셋이서만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기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제가 늦었네요.”

“왔군. 티파니.”

“오랜만입니다.”

“예, 잘 지내셨죠?”

PWA의 센스가 빛났다.

원형 테이블.

이미 앉아있는 두 사람 사이에 자리 잡은 티파니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이어지는 회의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안건은 크게 두 가지였다.

그중 하나는 대충 결론이 났다.

“크로우를 빌려주시기로 했고.”

“……수익만 잘 셰어해주시면.”

비숍도 테이커와 크로우의 경기가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이리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인지 거절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머지 하나는.

역시 좀 조심스러웠다.

“신은요.”

“그, 거언.”

“해보자고요. 챔피언 VS 챔피언.”

“그럼 저희 단체는 어떻게 하죠?”

“음, 일주일 단위니까 경기 한 번 더 시키는 것도 괜찮지 않나 싶은데.”

“그러면 가치가 떨어지죠.”

죽도 밥도 안 된다.

비숍의 생각은 이랬다.

“그쪽에서 그렇게 큰 경기를 여는데 저희가 스타게이트를 연다고 해서 과연 흥행이 되겠느냐는 말입니다.”

“어머, 그래서 저희는 그냥 킹스 럼블을 개최도 하지 않았잖아요?”

“그건…… 맞군요.”

비숍은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그게 발목을 잡았다.

신이 나서 소울 아웃 개최를 받아들였더니 이렇게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비숍.

그걸 도와주기 위해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할리 레이시가 나섰다.

“접근 방법이 다르군.”

“응?”

“…….”

“애초에 말이야. 부사장님. 프로레슬링이란 게 사업적으로 접근하기만 하면 안 돼. 딱히 좋은 것은 아니지만.”

“무슨 말씀이시죠?”

“그러니까, 여기 이 새 회장님은 고작 돈 몇 푼 때문에 그 개최를 노리고 있다는 게 아니라는 말이네.”

“돈 때문인데요.”

“…….”

“…….”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 그렇겠지.”

할리가 쓰게 웃었다.

“신 VS 숀 시나는 분명히 돈이 되겠지. 하지만 굳이 개최할 이유는 없어.”

왜냐면 둘 다 챔피언이니까.

동시에 아이콘이니까.

“시대를 대표한다니 뭐니 다 제쳐두고 그 둘이 인기가 가장 많아. 그러니까 둘을 붙이는 것보다 따로 떨어뜨려서 각자 시합을 시키는 게 돈은 더 벌겠지.”

하지만.

“제기랄, 보고 싶지 않나?”

할리는 씨익 웃었다.

누구든 그렇게 생각할 터였다.

신과 숀 시나의 대결.

“전부 걸고 싸우는 걸.”

“음…….”

“분명히 역사에 남을 걸세.”

단지 그것뿐이었다.

비숍은 두 사람을 나눠 개최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서 저렇게 고민을 하는 거지만.

티파니는 달랐다.

거국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분명 이후 업계는 한층 더 크게 성장할 터였다.

“물론 승자는 한 반년 정도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내야겠지만요.”

“그러려나요.”

“예, 모든 단체에 출연해서 모든 페이퍼뷰를 소화해야만 할 테니까요.”

그게 챔피언의 의무였다.

물론 티파니가 하는 말은 그런 각본을 전개해서 챔피언의 위상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를 보자는 말이었다.

더블 타이틀을 오래 유지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히 단체 간의 더블 챔피언을 남기는 것은 의미가 있을 터였다.

한숨을 내쉰 비숍이 물었다.

“그럼, 챔피언은.”

“그건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

“비숍 씨도 잘 모르시죠?”

우리 모두가 모른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티파니의 이야기를 이해한 할리는 피식 웃으며 누군가를 점찍었다.

신 VS 숀 시나의 승자.

그건 분명.

쉽게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 * *

2012년 3월 5일, 월요일.

나는 WWF의 링에 올랐다.

그런 단순한 표현이 적절하리라.

왜냐면 그 외에 수식할 말은 없었다.

쓰고 싶지 않았다.

왜냐면 ‘상상’하게 하고 싶었다.

만약 미래에 내 위인전이나 일대기, 자서전 같은 게 출판이 된다고 치자.

분명 멀지 않은 미래겠지.

거기에 그냥 위처럼 적는 거다.

그러면 나를 롤-모델로 설정한 수많은 꼬꼬마 소년들은 그전의 상황을 통해서 분명히 한 장면을 떠올리겠지.

내가 링에 나서는 순간을.

음악과 조명.

스크린의 로고.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

놀란 시나.

“…….”

보통 내가 이렇게 쓸데없는 농담을 생각할 때면, 내색하지는 않아도 꽤나 긴장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였다.

지금이 딱 그랬다.

[지난주의 일을 말해볼까.]

[Yeeeeeeeeeeeeaaahhh!]

[Boooooooooooooooo-!]

환호와 야유가 정확히 반반.

신기한 놈이었다.

쇼의 오프닝.

링에 나선 시나는 마이크를 손에 쥐고 내가 그랬듯이 전 세계의 팬들에게 지난주의 내용을 정리해 말해줬다.

[우리는 레슬 임페리움이라는 이름의 스릴 라이드를 앞둔 상황이지만 안타깝게도 내 도전자는 정해지지 않았어.]

시나는 능숙하게 그걸 말했다.

[엘리미네이션 챔버에서 나는 도전자들을 모조리 꺾었고, 다시 이 벨트의 가치를 증명해냈거든. 원래대로라면 럼블 매치의 승자와 대립을 시작했겠지만.]

우연의 일치로.

럼블 매치는 열리지 않았다.

[대신 나는 소울 아웃에서 ACW 연합군을 박살 내고 여기를 지켜냈지!!]

[Waaaaaaaaaaaaaaaaaaggghhh!!]

[그 경기의 패배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친구가 지금 나와 맞붙는다면서 큰 소린데! 내 의견을 한마디로 말해주자면 다음과 같다고! 친구들!!]

팬들이 함께 소리쳤다.

시나의 시그니처 대사.

[You Want Some?!]

[Come Get Some!]

얻고 싶다면 가져가라.

멋진 말이었다.

그리고 이제 내가 나설 차례였다.

바로 그때, 날 부르는 목소리.

“신!!”

티파니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게 무슨 탑 건도 아니고.’

탐 크로스가 나오는 영화 말이다.

거기에서도 전투기 조종사인 주인공이 애인에게 엄지를 치켜세우지.

나도, 비슷하군.

긴장감은 그에 못지않았다.

나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러자 울려 퍼지는 음악.

[Yeeeeeeeeeeeeeeeeeaaaahhh!!]

경기장이 순간 흔들렸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닌 듯했다.

돌아보자 스탭 중 누군가가 깜짝 놀라 귀를 틀어막고 있는 게 보였다.

제기랄.

‘대박이군.’

나는 심호흡을 했다.

팬들의 환호성이 생각하던 것 이상이라 감정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했다.

모니터링TV를 보자 결연한 표정으로 서있는 시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분사되는 연기.

커튼을 걷고 나가면 나오는 입장로의 전면부가 완전히 회색빛의 안개에 뒤덮였고 파이로가 마구 분사되었다.

극적인 오케스트라 스타일 메탈.

‘좋아.’

대충 됐다.

나는 커튼을 걷고 나아갔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울려 퍼지는 챈트.

버닝콩의 팬들이 신을 외쳐대는 상황에서 나는 연기를 꿰뚫고 나아갔다.

표정은 짓지 않았다.

아주 약간, 눈썹을 찡그리고.

나는 나아갔다.

시나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시나뿐이었다.

숀 시나.

내 일생일대의 목표.

원래라면.

이 시대의 주인공.

네 목을 꺾기 위해 내가 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랬다.

네가 어린애들의 영웅이건 뭐건, 엿이나 먹으라지.

나는 신경 안 쓴다.

나는 오직.

내 꿈.

너라는 남자를 꺾기 위해 왔다.

지옥에서 돌아왔다.

In Ring.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챈트가 이어지는 가운데, 로프를 밟고 올라선 나는 ACW 월드 챔피언 벨트를 손에 쥐고 호응을 유도했다.

[Boooooooooooooooooooooo-!]

그러자 환호는 야유로 바뀌었다.

상관없었다.

나는 시나와 마주 보고 섰다.

Face To Face.

[Uoooooooooooooooooohhh……!]

경악을 금치 못하는 팬들.

두 챔피언이 나란히 보고 섰다.

지금쯤 난리가 났겠지.

‘정말로 둘이 붙는다고?’

‘아니, 벨트는 걸고?’

‘소울 아웃에서도 둘이 위상 유지하려고 일부러 태그 팀으로 붙였잖아!’

‘그럼 어디에서 붙는 건데?!’

팬들의 생각이 전해져왔다.

‘일단 뉴스부터 써!’

‘인터뷰 좀 따와 봐!!’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와, 이걸 한다고?! 미치겠다!’

각지의 전문가들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한 것까지도 느껴졌다.

그 정도였다.

단지 얼굴을 마주하고 섰을 뿐인데.

시나와 나는.

전 세계를 들썩거리게 했다.

이게 현재의 프로레슬링.

현재의 시나.

그리고 현재의 김준호이자 쿵-퓨리.

SIN이었다.

각자 왼쪽 어깨에 벨트를 걸치고.

마이크를 먼저 든 것은 시나였다.

“여기는 무슨 일이지?”

“다 알면서 뭘 그래?”

“……정말 할 생각인가?”

“이제 와서 겁이라도 먹은 거야?”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Uooooooooooooooooohhhh……!]

“솔직히, 시나. 여기에 모인 바보들이 대결을 원하는 건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아. 하지만 확실하게 말해서.”

[Boooooooooooooooooooooo-!]

확연한 야유가 나왔다.

“아무래도 확실히 정해야지.”

나는 더 팍을 위시로 한 다른 선수들처럼 시나가 ‘애들에게 어필하는 아이콘’이라고 해서 무시할 생각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건 정말 대단한 부분이었다.

“넌 모든 소년들의 꿈이야.”

[Yeeeeeeeeeeeeaaaahhh!!]

“여기 이기적인 성인 남자들은 죄다 너에게 야유를 보내지만, 그조차도 이제는 진심이 아니지! 너는 지금껏 증명해왔어! 네가 내거는 메시지가 지금 이 시대에도 충분히 통용된다는 것을!”

나는 버럭 소리쳤다.

나는 오히려 팬들을 욕했다.

그런 시나에게 야유를 보내고 시나를 헐뜯으며 비난했던 마니아 팬들을.

“하지만 그게 지금에서는 오히려 너를 도와주는 요소가 되었지! 너는 그들 모두를 포용해서! 여기 이 ‘프로레슬링’을 떠난 개새끼들을 조지고 있잖아!”

나는 예시를 들었다.

“더 팍! 브룩 레스너! 내가 그 새끼들을 왜 싫어하는지 알아?! 이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서 있는 너를 모욕했기 때문이야!”

팍은 시나를 ‘어린애들이나 좋아하는 반쪽짜리 아이콘’이라고 비하했었다.

브룩 레스너 역시도 시나를 자신이 회사를 나가서 뜬 등신으로 취급했지.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새끼들이 이 업계를 나가서 얼마나 잘 되고 엄청나게 대단한 삶을 살고 계신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중요한 건 그 새끼들이 널 모욕했다는 거야. 시나. 너와 이 시대를 모욕해 수많은 사람들을 등신으로 만들었지.”

[Yeeeeeeeeeeeeeeeeeaaahhh!!]

환호가 나왔다.

하지만 그런 반응은 10초도 채 지나지 않아 곧바로 야유로 변하게 되었다.

“그리고 난, 그 새끼들이 너를 싫어하는 것보다 훨씬 너를 더 싫어해.”

[Booooooooooooooooooooo-!!]

하지만 거기에.

[Yeeeeeeeeeeeeeeeeeaaaahhh!!]

그 등신 같은 마니아들이 환호했다.

이게 내가 놈을 싫어하는 이유였다.

놈은 기존과 다른 세계를 만들었다.

그렇기에 녀석과 대립하는 모든 것은 결국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게 싫었다.

언제나.

지금도.

나는 숀 시나를 싫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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