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499화 (499/634)

499.

나는 숀 시나를 싫어했다.

놈을 존경하는 것과는 별개로 난 시나가 제시한 세계를 극도로 혐오했다.

업계는 놈이 주인공이었을 때를 ‘전체이용가 시대’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것을 이러한 단어로 표현하고 싶었다.

‘희망’.

Hope Era.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나아가지 못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전달해준 시대.

정말 시나기에 만들 수 있던 시대.

현대의 프로레슬링은 각본뿐만 아니라 그것을 수행하는 선수의 실제 인성까지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미디어의 발달로 이제는 링 밖에서의 모습을 숨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과거에는 선수의 인성이 개차반이어도 업계 내부의 결속이 단단해 소식이 그다지 밖으로 새어나가진 않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대립을 하며 일부러 선수들의 그런 점을 끌어내 각본을 더 흥미로운 방향으로 만드는 걸 선호했다.

캡틴 로건은 링 뒤에서 사악한 악당이었다. 락커룸을 지배하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정치적인 싸움을 벌였지.

그래서 나는 그의 그런 점을 공격해 할리우드 로건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캐스켓-테이커는 존경을 받는 거물이었다. 딱히 잡음도 없이 거대한 카리스마로 팬과 선수들의 귀감이 되었지.

하지만 늙어갔다.

그렇기에 난 ‘데드맨’을 쓰러뜨리고 더 높은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러셀 오메가.

놈과 나에게는 GCW 시절부터 함께 성장해온 라이벌이란 관계가 존재했다.

우리는 싸우기로 약속했다.

최고의 자리에서, 최고의 순간에.

그리고 나는 그걸 위해서 끔찍한 배신을 겪은 러셀 오메가를 따라 일부러 WWF를 떠나서 ACW로 갔던 거다.

그리고 숀 시나는.

완전무결한 영웅이었다.

물론, 정말 그렇지는 않았다.

놈은 2010년 신인 스테이블과의 대립에서 잡을 거부하고 그 위상을 완전히 곤두박질시킨 전적이 있으며.

그 외에는…… 없었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또한 팬들 대부분이 아는 녀석은 인간적인 흠결이 눈에 띄는 인물은 절대로 아니었다.

“너는 정말 대단한 놈이야. 시나.”

그렇기에 나는 이런 표현을 썼다.

현실의 내가 느끼는 숀 시나에 대한 감정은 단지 그것밖에 없었다. 인간으로서 시나는 흠결을 잡기 힘들었다.

“모두가 너를 롤-모델로 삼고 있지. 너는 분명 여기 이 업계에서 유일하게 ‘그런 식으로 싸워도 되는’ 남자고.”

나는 에둘러 말했다.

이 업계에서 ‘영웅’이라는 ‘역할’은 오직 시나만이 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매일, 매일. 너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너를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을 위해 ‘절대 포기하지 않고’ 싸우잖아?”

뿐만이랴.

“위시메이커 재단에서 영웅을 만나고 싶어 하는 아이의 요청에 응하며, 매년 천문학적인 액수를 기부하고 있지.”

나는 시나를 이렇게 표현했다.

“너는 현대의 슈퍼맨이야. 시나.”

실제로 롤-모델이 될 만한 인간.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아이에게 용기를, 난치병으로 의지를 잃은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게 바로 시나였다.

Never Give Up.

맞서 싸워라.

너는 할 수 있다.

그걸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면 다들 그것이 궁금하겠지. 왜 신은 시나를 싫어할까? 신은 정말로 개자식인가? 역겨운 인간쓰레기인가?”

나는 다시 말했다.

“만약 여기 이 시네이션들이 나를 그런 도덕적 잣대에 밀어 넣는다면, 나는 기꺼이 악당 역할을 맡아주겠어.”

[Yeeeeeeeeeeeeeeeeeaaaahhhh!]

[Booooooooooooooooooooooo-!]

환호와 야유가 갈렸다.

이를 통해 나는 완벽하게 시나가 제시하는 선과 악의 논리에서 벗어났다.

나는 숀 시나를 긍정했다.

놈이 누구보다 위대한 레슬러라고 이야기하며 놈이 이룬 업적을 칭송했다.

그럼에도 그로 인한 결과.

“나는 세상에서 오직 숀 시나만이 옳은 이 Universe를 증오한다는 말이야.”

각본이 현실에 다시 근접했다.

“왜냐면 그로 인해 선수들은 너와 네 사랑하는 팬들에게 맞춰줘야 하거든.”

간단한 이야기였다.

숀 시나가 만든 희망의 시대에서 선수들의 역할은 오직 둘 중 하나였다.

시나를 긍정해 선이 되거나.

부정해 악이 되거나.

“그게, 내가 널 싫어하는 이유다.”

“……확실히 그럴 법하군.”

시나는 의외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왜 화를 내는지 알겠어, 신.”

이번에도 녀석은.

나를 다시 열 받게 했다.

“너는 이 비즈니스에 참여하는 모든 이를 긍정해왔지. 그러니 나를 싫어하는 것도, 그래. 분명 이해가 가.”

“…….”

“너는 트리플H 같은, 나와 상극일 수밖에 없는 그런 남자의 유지도 이어받았지. 그런 점은 확실히 나와 달라.”

시나는 그렇게 말했다.

놈이 프로레슬링에 헌신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여기에 지켜야만 하는 절대불변의 법칙이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난 그와 달랐다.

나는 그런 법칙이 아닌 프로레슬링이라고 하는 비즈니스 자체를 존중했다.

아무리 사악한 악당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이 업계에 피와 땀, 눈물을 바쳤다면 얼마든지 내 존경을 바쳐왔다.

그게 바로 내가 제시한 드리밍 에라.

선과 악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이 업계에 몸을 던진 자가 꿈을 좇는 시대.

그렇기에.

나는 시나를 싫어했다.

그 말을 들은 녀석이 피식 웃었다.

“놀라운 사실을 하나 가르쳐줄까?”

“…….”

“나도 너를 존경해, 신. 딱히 설명은 필요 없지. 네가 누군지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럴 수밖에 없을 테니까.”

[Uooooooooooooooooooohhhh!]

“하지만 이건 전혀 다른 문제군.”

시나가 눈썹을 찡그렸다.

“네가 말하는 것처럼 말이야. 나 역시 널 존경하는 것과 별개로 나를 부정하는 태도는 용납하기가 힘들어.”

[Let’s Go Cena!]

팬들의 챈트가 이어졌다.

물론 반대자들도 많았다.

[SIN! SIN! SIN! SIN! SIN!]

[Let’s Go Cena!]

[SIN! SIN! SIN! SIN! SIN!]

[Let’s Go Cena!]

[SIN! SIN! SIN! SIN! SIN!]

“왜냐면 이게 바로 나니까. 나는 링에서 팬들에게 불변하는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서 숀 시나로 싸워왔으니까.”

시나가 관객석을 돌아보았다.

“물론 여러분, 여기 이 남자도 충분히 그걸 보여주었어. Mr. Man On Fire. The Breaker. 절대 해내지 못할 거라고 말했던 세상에 증명을 해 보였지.”

“아니, 아니, 아니.”

나는 시나를 향해 바싹 다가섰다.

분노로 순간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렇게 포장해주지 않아도 돼.”

[Uoooooooooooooooooohhh……!]

“네가 말하니 그게 무슨 치명적인 아픔을 가진 내가 그것을 딛고 성공한 미담처럼 느껴지는군. 하지만 아니야.”

나는 단지.

내 실력을 보여줬을 뿐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래야만 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나는 일평생 쿵-퓨리로 커리어를 보냈을 테니까. 넌 그리고 그런 사실을 보고 나에게 한마디 했겠지. ‘Never Give Up!’ 열 받네.”

실제로 그랬었다.

전생에 나는 언제나 시나와 그 시대가 내거는 가치를 동경하면서도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그 말은 싫어했다.

알고 있다.

그게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쩔 수 없다.

인간은.

‘노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그 노력이라는 말이 만능의 단어가 되는 게 싫은 거야.

뭐든지.

‘네가 노력하지 않았잖아.’

‘좀 더 노력하지.’

‘열심히 하지.’

“알아! 그 누구보다도 내가 알아! 그런데 그걸 네가 말하는 건 역겹다고!!”

[Yeeeeeeeeeeeeeeeeeeeaaahhh!]

[Boooooooooooooooooooooo-!!]

“왜냐면 넌 회사의 선택을 받은 선수였잖아! 나는 그렇게 됐을까? ‘노력’한다면 바트 맥센이 날 알아줬을까?”

물론, 나는 그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어디까지나 성과를 거두고 있기에 할 수 있었던 거였다.

만약 회귀하고도 지난 생처럼 누구도 나를 알아주지 않았다면 집으로 가서 전 재산을 털어 액플 주식이나 샀겠지.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걸 위해 돌아온 게 아니었다.

“나는 널 끝장내기 위해 온 거야.”

“…….”

시나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그래.

이건 나의 ‘진심’이었다.

인간 김준호가.

프로레슬링에 인생을 바칠 각오가 된 한 남자가, 숀 시나가 없어지자 멸망의 길을 걷게 된 업계를 되살리기 위해.

지옥에서 돌아왔다.

“정신 차려. 시나. 이건 누구를 존경하고 말고 하면서 적당히 싸울 게 아니야. 나는 널 반드시 개박살 낼 거야.”

“…….”

“둘이서 경기 끝나고 훈훈하게 악수 주고받고 그러는 건 없어. 나는 프로레슬링을 망친 너와 네 시네이션을 반드시 여기서 쫓아내 버리고 말 테니까.”

[Boooooooooooooooooooooooo-!]

야유는 걷잡을 수 없었다.

환호가 묻혔다.

팬들은 분열되었지만.

시나를 지지하는 동시에 나를 부정하는 쪽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해졌다.

시나가 도와줘야만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놈은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계속해봐, ……신.”

“이게 너의 문제야, 시나.”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날 사랑하게 만들었으니,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날 싫어하게 만드는 것도 괜찮겠지 싶군.

“넌 다리가 없는 사람에게 노력하면 뛸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 그게 너의 또 다른 문제점이고 말이야.”

“난 노력하면 뛸 수 있다고 하지 않았어.”

“내게는 그렇게 들리는데?”

“네가 말을 곡해하는 거야.”

그래, 알고 있다.

시나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 노력하면 뛸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

녀석은 그저 그런 장애를 마주한 사람에게 ‘포기하지 마.’라고 메시지를 전하는 것뿐이지.

하지만 뭐 어떤가.

그걸 듣는 쪽에서는 열이 받는데.

동양인으로 태어나.

일평생 미국의 주류 사회에 편입되어본 적이 없었던 남자가 ‘절대 포기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그게 열이 안 받겠나?

왜냐면.

“인간은 걷기 위해 사는 거야.”

“…….”

시나가 마이크를 내렸다.

그리고 내게 입 모양으로 말했다.

‘이러지 마.’

제기랄.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바로 그때였다.

링 아래에 서 있던 진행요원이 고릴라 포지션으로부터 오더를 들었는지 우리쪽으로 다가와서 손을 휘저었다.

“슬슬 끝내! 시간!”

시간이 다 됐다.

그런 뜻이겠지.

하지만 링 세그먼트는 마무리 단계로 가기 위한 준비가 하나도 되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정말 열이 받은 시나가 나를 주먹으로 후려치면서 그대로 내가 링 밖으로 나가 끝을 낼 생각인데.

바로 그때였다.

“신.”

시나가 주먹을 꽉 쥐었다.

날리겠다는 이야기였다.

아니, 아니.

아직 안 끝났다니까?

그래서 그런 시나에 대응해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시나의 주먹을 잡아냈다.

[Uooooooooooooooooooohhh!!]

순간 놈이 눈을 동그랗게 떴고 관객석의 팬들은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

그런 외부적인 사정을 빼면 링 세그먼트는 그야말로 과포화되겠다 싶을 정도로 멋진 반응을 뽑고 있었다.

나는 시나의 주먹을 최대한 세게 움켜쥔 채 마이크를 다시 입에 댔다.

“다시 말하지. 이건 자유와 다양성을 포용하는 이 미국이 절대로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은 진실이야. 잘 들어.”

나는 말했다.

* * *

고릴라 포지션은 완전히 난리였다.

“회장님!”

“티파니!”

프로레슬링은 TV 방송이었다.

그렇기에 그 룰을 따라야만 했다.

더군다나 지금 신이 하려는 말은 어딘가 위험했다. 분명 저걸 말하는 순간 돌이킬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애초에.

‘인간은 걷기 위해 사는 거야.’

그 발언부터가 위험했다.

사고나 태생으로 다리를 잃은 이들에게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티파니는.

계속 침묵했다.

“티파니이이이!!”

현장 팀의 2인자인 총괄 프로듀서가 명령을 바라면서 반쯤 절규를 해댔다.

당장 광고로 바꿔라.

이 링 세그먼트는 오히려 그렇게 끝났기에 더 큰 화제를 몰고 올 터였다.

하지만 티파니는 꿋꿋했다.

“그냥 놔둬요.”

신을 가장 가까이에서 이해하는.

동시에 그를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서 그녀는 확실히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를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느꼈다.

이어질 말은 분명 신이 ‘김준호’라는 인물로 태어나 살아오며 느낀 모든 바가 함축되어 있는 대사일 터였다.

그렇기에 막을 수가 없었다.

티파니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그냥 둬요.”

“하지만……!”

“책임은 내가 져요.”

이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위치였다.

티파니는 신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바로 그게.

도움을 받았던 자신의 역할이니까.

다들 긴장했다.

경기장의 선수들.

직원들.

그 밖의.

전 세계에 있는 프로레슬링이라는 콘텐츠의 관계자들 모두가 침을 삼켰다.

링 안에는 이것이 도저히 각본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전류가 흘렀다.

관객들마저도 입을 다물었다.

‘각본’대로 내지른 시나의 주먹을 보란 듯이 움켜쥔 신이 이내 입을 열었다.

[다시 말하지. 이건 자유와 다양성을 포용하는 이 미국이 절대로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은 진실이야. 잘 들어.]

그리고 그가 말했다.

[다리가 없으면, 인간은 불행해.]

바로 그건.

언제나 ‘Never Give Up’을 이야기하는 시나의 사상을 부정하는 말이었다.

시나도 순간 흥분했다.

관객들도 충격에 빠졌다.

그건 그런 식으로 아픈 일을 겪고 있는 사람을 상처 주는 말이었으니까.

시나는 저도 모르게 움직였다.

그는 왼손잡이였지만 프로레슬링을 할 때만큼은 기술의 합을 맞추기 쉽다는 이유로 오른손을 주로 사용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왼손으로 내지른 펀치.

그게 신의 안면에 정확히 꽂혔다.

빠악!

둔탁한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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