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
성명서가 나왔다.
[용납하기 힘든 불쾌한 언행.]
[전 세계에 거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프로레슬링 슈퍼스타로서 자각이 없는 듯한 몰상식하고 저급한 언행.]
바로 미국 장애인 협회로부터였다.
그로부터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티파니 맥센은 잔뜩 열이 받은 데릭 비숍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저기.”
[그걸 안 끊고 내보내요?! 지금 미국 전체가 난리가 났습니다! 다들 신을 불에 매달아버릴 기세란 말이에요!]
“아니, 그.”
[당장 사과하셔야 합니다!]
“좀 들으라고!”
티파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안 그래도 그 일에 대한 처리를 논하느라 잠을 못 잔 상태라 피로를 느꼈다.
비숍은 순간 입을 다물었고 티파니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나갔다.
“성명은 내보내지 않아요.”
[예……?]
“말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랬다.
신의 발언은 분명 과격했지만 그렇다고 말할 권리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게 미국이 내거는 ‘자유’였다.
아, 물론.
그로 인해 광고사가 줄줄이 계약 해지 의사를 표명해와서 말 그대로 회사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는 상태였지만.
그게 오히려 지금 신이 미국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고작 프로레슬링이.
고작 남자 하나가.
고작 그런 한마디가.
엄청난 파장을 낳았다.
‘정말 악당이로군요. 신.’
물론 티파니는 신이 어떤 뜻을 갖고 그 말을 꺼냈는지 어렴풋이 이해했다.
이 대립을 심화시키기 위해 숀 시나와 자신 간의 견해 차이를 보여주려고.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이겠지.
즉, 이런 논리였다.
신은 이렇게 말했다.
다들 쉬쉬할 뿐이지 않은가.
다리가 없는 인간은 불행하다.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그 인생 전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었다. 신이 그 점을 더 조심해서 말했다면 분명 아무 문제도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신은 그렇게 말해버렸고.
미국인 전체가 분노해 던지는 화살을 맞으면서도 자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다리가 없는 인간은 불행했다.
아, 물론.
그걸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건 인간에게 염치라는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사람이 불행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다리를 잃고 찾아온 새 삶을 견뎌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지.
그걸 위선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시나의 Never Give Up은.
절대로 위선 따위가 아니었다.
시나는 자신이 대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일어나! 너는 다리가 없어도 불행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에 지지 말고 자신과 함께 싸우자고 독려하는 것에 가까웠지.
하지만 신은 왜.
결국 시나와 같은 생각을 할 텐데.
‘대체 왜…….’
티파니는 고민에 빠졌다.
그렇게 말하면서 신은 과연 이 대립을 어떤 식으로 끌고 나가려는 것일까.
하지만 고민할 새는 없었다.
내부적으로도 문제가 벌어졌다.
백스테이지로 돌아온 신과 시나는 미리 정해두지 않은 세그먼트 대사를 썼다는 이유로 서로 크게 다퉜다.
두 사람의 상황을 걱정했는지 고릴라 포지션으로 나온 랜스 오튼이 가장 먼저 상황을 파악하고 놀라 소리쳤다.
“야, 야! 그만해!”
신과 시나가 가까이 다가섰다.
잔뜩 열이 받은 시나가 외쳤다.
“왜 그딴 식으로 말한 거야!”
“말 못 할 건 뭔데?”
“자각을 하라고! 신! 네 그 한마디에 영향을 받을 수많은 사람들을 지금 한번 생각해 보라는 말이야!!”
“내가 그걸 왜 생각해야 되는데?”
결국 일이 벌어졌다.
신이 먼저 시나를 밀쳤고 시나가 참지 못하고 과격하게 대응하며 고릴라 포지션에서 한동안 소란이 벌어졌다.
뒤따라온 선수들이 다 달려들었다.
“어어?!”
“마, 말려!”
하룻밤 쇼에 출연하는 것으로 천문학적인 액수의 가치를 발휘하는 두 사람 간에 몸 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시나가 자신에게 매달리는 선수들을 매단 채 신에게 다가갔고 신은 뒤로 빠지면서 시나의 가슴을 세게 걷어찼다.
어쨌든 죄다 몰려들어 말린 덕에 그다지 큰일은 벌어지지 않고 끝났지만.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거대한 대립을 이어나가고 있는 두 선수가 첫 세그먼트부터 그렇게 난리가 났으니.
‘후우.’
잠시 그때의 일을 떠올렸던 티파니는 아찔한 상황이었음을 느끼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랬다.
상황은 막장이었다.
대립하는 두 선수가 다퉜고.
미국 전체가 난리가 났으며.
그 메시지는 잔혹할 만큼 강렬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이와 같이 이어진 일련의 상황이 모조리 신의 계획대로라는 부분이었다.
사건은 크게 점화되었다.
성명서가 나오고 어디서 새어나갔는지 두 사람이 세그먼트가 끝나고 싸움을 벌였다는 소식이 기사로 퍼졌다.
각본은 현실을 침범했다.
각본의 방파제가 무너지고 현실이 들이닥치면서 모든 게 마구 뒤엉켰다.
그리고 현실에 있던 미국인들 모두가 거기에 빠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바로 그게 티파니가 이것들이 모조리 신이 꾸민 대로임을 확신한 근거였다.
상황이 너무 커졌다.
자신들의 예상 이상으로.
그래서 물어봤는데.
“그럼, 다 짠 거지.”
“…….”
“당신을 믿지만, 혹시나 괜한 걱정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예에, 죽을 맛이죠.”
그래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이 모든 게 신의 계획대로라면 분명히 해결책이 준비되어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 죠?”
“물론이지.”
고개를 끄덕인 신은 이렇게 말했다.
“시나가 알아서 해줄 거야.”
기이한 말이었다.
정작 시나와 실제로 치고받기 직전까지 갔던 주제에, 신은 그 누구보다 숀 시나라는 선수를 신뢰하고 있었다.
* * *
시나는 냉정을 되찾았다.
처음에는 흥분해 신이 육체적인 다툼을 걸어오자 거기에 맞섰던 그였지만.
신은 절대 프로레슬링을 하며 사적인 감정을 각본에 넣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시나는 선수들이 자신을 말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이 의도한 바를 어렵지 않게 깨달았지만.
그걸 제외하고도 열이 받았다.
그건 지금껏 시나가 내세운 이상을 말 그대로 부숴버리는 말이었고, 따라서 반대의 메시지를 던져야만 했다.
2012년 3월 2주차.
숀 시나는 링에 올랐다.
경기장 전체에 그를 상징하는 테마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의외로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환호로 답을 해주었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Shawn Cena S-ck……!]
평소와 달리 노래의 멜로디에 따라서 그를 조롱하는 목소리는 무척 적었다.
그만큼, 신이 미국 사회에 던진 메시지가 강렬하다는 반증이었고 팬들이 이 대립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었다.
신은 선을 넘었다.
시나는 마이크를 잡았다.
“완전히 시끌벅적하던데.”
이것은 각본이 아니었다.
인간, 숀 시나의 진심이었다.
“다들 내가 신의 말을 반박하면서 내 나름대로의 논리를 펼치리라고 기대하겠지. 하지만 나는 그게 반박할 수준조차도 되지 않는 헛소리라고 생각해.”
[Uooooooooooooooooooooohhh!]
“우리 모두가 알아. 세상에는 분명히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있지. 그리고 우리는 그걸 ‘불행’이라고 이야기해.”
시나는 그렇게 말을 조심했다.
신이 한 말을 다시 이야기하는 건 예시로 들어진 사람들에게 정말로 큰 상처가 될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걸 통해서 내가 내거는 가치에 허점이 있다고 공격했지. 하지만 나는 불행을 겪는 사람에게 다시 일어서서 싸우라고 이걸 말하는 게 아니야.”
시나가 리스트 밴드를 감아둔 손목을 펼쳐서 카메라 앞으로 들이댔다.
‘Never Give Up’.
“나는 단지, 이걸 보는 이들이 나로 인해 용기를 얻었으면 하는 거야. 내가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모습…….”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Booooooooooooooooooooooo-!]
야유가 쏟아졌다.
신의 음악이 이어졌고 시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입장로 쪽을 돌아보았다.
각본과 달랐다.
한 박자 빠르게 링으로 나온 신은 팬들의 맹렬한 야유를 받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내 말을 곡해하려고 하시는데!”
“…….”
“시나! 정말 이해하지 못하는군! 너는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겠지! 왜냐면 너는 언더독 행세를 해왔지만 언제 어느 때나 ‘권력자’였으니까 말이야!”
“적당히 해둬, 신.”
“오, 내가? 그럼~ 그래야지. 위대하신 숀 시나 선생께서 그렇게 명령하신다면 WWF가 멈추기도 하니까!”
신은 계속해서 조롱을 이어갔다.
“하지만 나는 그런 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PWA를 만들었어! ACW를 되살렸지! 그러니까 할 말은 해야겠군!!”
[Booooooooooooooooooooooo-!]
“내 이야기는 간단해. 인간은 불행한 일을 겪어. 그리고 그 일을 겪은 인간은 그렇게 쉽게 일어날 수가 없다고.”
신은 천천히 시나를 향해 다가갔다.
입장로를 걸어가는 동안 팬들은 그에게 계속해서 야유를 보냈으나 신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왜냐면 나 또한 그렇거든!”
“네가 그렇다고?”
“그래, 나는 불행한 일을 수도 없이 겪었어. 그런데, 그 앞에서 내가 Never Give Up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숀 시나의 메시지대로.
Never Give Up, 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망했겠지.”
그건 신의 고백이었다.
“내가 너의 방식으로 싸웠다면 쿵-퓨리로 계속 있었을 거야. 그리고 30살쯤에 프로듀서로 전향해 어떻게든 아득바득 이 업계에서 내 흔적을 남기려고 처량히 발버둥 치다, 결국 파멸하겠지.”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인생은 망하고.
하루하루 먹을 고민을 하며.
실버타운 입주를 그리며.
그런 인생을 이어갔을 터였다.
시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뭐야?’
갑작스레 나온 마이크워크.
아니, 그것까지는 이해했다.
하지만 신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 표정이 독기로 물들어, 그는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한 채 숀 시나의 얼굴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뭐라고 말 좀 해봐.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다.
순간 시나조차도 당황했다.
그러자니 신은.
“메시지만으로는 할 수 없어.”
“…….”
[……………….]
“메시지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시나. 네가 정말 뭔가를 바꾸길 원했다면 바트 맥센을 죽였어야 해.”
[Uoooooooooooooooooooohhhh!]
“나는 다리가 없는 인간이었거든.”
이 업계에서.
신은 그런 존재였다.
“나야말로 언더독이라고! 그리고 나는 그런 남자로서 네가 던지는 메시지를 혐오해! 희망만 가지고 있으면 뭐든지 된다는 그 태도가 역겹다고!!”
신은 시나를 몰아붙였다.
팬들도 대답하지 못했다.
“다리가 없는 인간은 그 불행을 앞에 두고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희망찬 메시지 따위를 원하는 게 아니야! 그 다리를 갖고 싸우는 방법을 원하지!”
신은 폭풍처럼 말을 쏟아냈다.
“그게 내가 아는 프로페셔널 레슬링이다! 시나! 이 리그에는 전 세계로부터 모인 온갖 개새끼들이 가득하지! 캐나다 출신 개새끼! 3대째 레슬링 가문인 병신! 그런 새끼들이 모여서, 근거가 확실한 놈만이 위로 올라가지……!!”
그렇기에 신은 그들을 긍정했다.
“링에서 슬레지 해머를 쓰는 악당이 ‘된다고’ 그게 뭐 잘못된 거라도 있나?”
그 역할을 맡는다고 해서.
그게 성공과 연결이 된다면.
팬들의 반응을 얻을 수 있다면.
“우리는 각자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을 수행할 뿐인 거야. 시나. 허나 너는……! 네 불행인지 안타깝게도 그런 이들을 부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지!”
그 덕분에 많은 이들이 죽었다.
악당은 악당일 뿐이었다.
신은 그런 프로레슬링을 혐오했다.
“언젠가 내가 이런 말을 했었지. 프로레슬링은 세상에 선이 승리한다는 고전적인 메시지를 던진다고 말이야.”
하지만 신은 그걸 부숴버렸다.
프로레슬링 자체를 박살 내버렸다.
“왜냐면 현실은 절대로 달콤하지 않기 때문이지. 랜스 오튼이 에디 비테레로를 욕해야만 했을 때 너는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지? 정의의 영웅이 고인을 모욕하는데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
그렇게 세기의 ‘악당’ 랜스 오튼이라는 선수가 만들어졌다.
신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난 그걸 박살 냈어! 케인 맥센을 조져버리고 링 서바이벌에서 에디 비테레로라는 남자가 얼마나 위대했는지! 전 세계의 팬들에게 알렸지!!”
신은 그래서 시나를 싫어했다.
전 세계의 프로레슬링 팬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정작 락커룸의 다른 동료들에게는 무심했다.
왜냐면 그들이 악당이 되어줘야만 자신의 메시지가 빛이 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프로레슬링을 혐오해. 프로레슬링은 세상의 그 어떤 스포츠보다도 헌신을 요구로 하니까 말이야.”
그렇게 많은 고생을 한 선수들이 단순한 악당으로 끝나는 게 싫었다.
숀 시나가 제시하는 고전적인 프로레슬링의 시대가 너무나도 싫었다.
“시나.”
“…….”
“나는 위선자인 널 박살 낼 거다.”
바로 그때였다.
링 어디에선가 목소리가 이어졌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그것은 바로.
시나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아이콘을 응원하는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