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
시나는 오랜만에 구역감을 느꼈다.
옛날에는 자주 있던 일이었다.
시나는 팬들의 역반응이 일어날 때마다 그냥 악과 깡으로 버틴 게 아니었다.
너무나도 힘든 나날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바라고 기다리는 팬들의 성원에 응답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기에 억지로 버틴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런 역반응이 심할 때면 시나는 남몰래 구역질을 해대고는 했다.
그런 게 바로 오늘 같은 날이었다.
“우욱……!”
화장실 변기를 부여잡고 제대로 먹은 것도 없는데 속을 한바탕 게워낸 시나는 참혹한 현실을 느끼며 신음했다.
호텔.
이른 아침의 햇살이 반짝이는 가운데 세 시간도 채 잠을 못잔 시나는 심호흡을 하며 마인드 컨트롤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려고 해도 머릿속이 얼마 전 신이 한 말로 가득 찼다.
너는 동료를 돕지 않았다.
너는 네가 전하는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서 악당이 만들어지기를 방조했다.
너에게는 힘이 있다.
하지만 너는 그 힘을 쓰지 않았다.
그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뭔가 할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시나는 그때 제 코가 석자였다. 인정받는 존재가 아니었던 그는 역반응으로 인해 항상 괴로움을 겪었다.
그래서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걸 말하더라도 팬들은 분명 변명이라고 느낄 터였다.
시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에게는 신 같은 재능이 없었다.
그렇기에 1년 365일, 매해, 매년.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어떻게든 팬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노력을 해왔다.
그리고 그걸 통해 벌어들이는 돈으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길은 잘못되었는가.
애초에 아무런 재능도 없는 숀 시나가 신에게 대적하는 것은 잘못되었나.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모든 재능을 발휘해 다가오는 그에게 패배하는 것인가.
그런 생각과 함께.
시나는 스케줄로 향했다.
밀리터리 팬츠와 스니커즈, 푸른색과 주황색이 조합된 티셔츠와 캡 모자.
Never Give Up.
그런 문구의 티셔츠를 입는 게 이처럼 무겁게 느껴질 줄은 생각 못했다.
Hustle, Loyalty, Respect.
오늘 스케줄은, 미국의 무선 서비스 회사인 클릭캣 와이어리스 컴퍼니에서 주최한 팬레터 읽기 행사였다.
시나가 거기에 광고 모델로 출연하게 되면서 ‘클릭캣’의 사회 환원 시스템을 홍보하는데 도움을 주기로 했다.
출연료는 전액 기부.
“후우.”
판넬을 세워놓은 촬영장.
불편했던 마음을 다잡은 시나는 직원의 안내를 따라 카메라 앞에 앉았다.
“시나, 당신은 끝내주는 팬들을 보유하고 있죠? 그중 몇몇이 오늘 당신을 위해서 편지를 보냈습니다.”
“아, 그래요? 어디 한번 읽어보죠.”
시나는 목소리가 잠기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편지를 받아서 읽기 시작했다.
[시나, 내 인생을 바꿔줘서 고마워요. 2008년에 나는 트럭에 치여서 거의 죽을 뻔했죠. 의사가 말하길, 저에게 다시는 걸을 수 없을 거라고 하더군요.]
[당신에게 하나 배운 게 있다면 바로 Never Give Up이죠. 자라나는 아이들의 롤-모델이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시나 정말 많이 들은 말이겠지만 당신은 그만큼 들을 가치가 있어요. 고맙습니다. 제가 19살이 되던 해, 양친이 모두 돌아가셨어요. 슬픈 일이죠.]
[Never Give Up. 이 말이 계속 어둠 속에 멈춰있던 제 안에 맴돌았어요.]
[당신의 Never Give Up은 내가 입양 절차를 통해 어머니가 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심어줬어요. 고맙습니다.]
시나는 모든 메시지를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 메시지는 비디오였다.
“이걸 봐주시죠.”
“……Okay.”
시나는 목이 잠긴 채 말했다.
노트북이 펼쳐졌고 영상 하나가 재생되었다. 그 안에는 소년 하나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저희 엄마가 유방암 진단을 받으셨고, 저는 그 결과를 여쭤봤어요.]
소년이 눈물을 흘렸다.
[진단 결과가, 양성이라고…….]
시나는 입을 다물었다.
[시나, 당신의 메시지는 저희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되어줬어요. 저는 버닝콩에서 당신의 리스트 밴드를 받았어요.]
다른 영상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시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소년이 경기장의 맨 앞자리에 앉아서 시나로부터 Never Give Up이라고 적혀진 리스트밴드를 받는 영상이었다.
시나는 기억하지 못했다.
왜냐면 그건 자신의 전부였기에.
숀 시나의 모든 인생이었기에.
다시 소년이 말을 이어갔다.
[저는 엄마가 수술하시기 전에 그 밴드를 전해드렸어요. Never Give Up. 엄마는 올해 완치 판정을 받으셨죠.]
고마워요. 시나.
당신이 우리 가족에게 용기를 줬어요.
영상은 거기까지였다.
시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 눈가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재능 하나 없는 몸으로.
이렇게까지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면 자신은 정말 행운아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정말, 멋지네요.”
바로 그때였다.
퍽!
깜짝 놀라 돌아본 시나는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광고 판넬이 뚫리고 그 안에 소년 하나가 서있는 걸 발견했다.
영상 속의 소년이었다.
그것이 몇 개월 전 촬영했던 광고의 반대 버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때, 시나는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 팬들 앞에 깜짝 등장하는 콘셉트의 홍보 영상을 하나 촬영했었다.
그 반대 버전.
이번에는 팬들이 판넬을 뚫고서 깜짝 등장해 시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푸핫……!”
시나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머릿속이 순간 맑아졌다.
소년이 나와 시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저희 가족을 위해 해주신 것들, 너무나도 감사드려요. 저는…….”
“하지 마…….”
시나는 일어섰다.
“이리 오렴. 꼬마야.”
소년이 다가왔고 시나는 그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포옹을 하며 말했다.
“최고의 깜짝 등장이야.”
소년은 눈물을 흘렸다.
“넌 정말로 강한 아이야.”
그 뒤에 서있던 한 여인.
시나는 그 손에 들린 낡은 리스트밴드를 보고는 정체에 대해 확신했다.
“그거…… 정말 멋지네요.”
“당신이 준 선물이죠.”
소년의 어머니가 말했다.
“이 아이가 말했어요. ‘엄마, 시나가 Never Give Up이라고 했어.’ 길고 긴 투병 생활에서 큰 힘이 되어줬죠.”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왔다.
그들이 바로.
숀 시나가 온갖 역반응과 야유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고집했던 ‘소외된 이들’이었다.
한 번쯤 세상으로부터 버림 받은 이들이 나와 시나를 향해서 인사했다.
“안녕, 숀.”
“알콜 중독이 심했어요. 저를 거의 놓기 전이었죠. 재활 센터에서 당신이 한 말이 제게 큰 희망이 되어주었어요.”
“당신의 말이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큰 희망이 되어주었습니다. 고마워요.”
그렇게 하나둘씩.
스무 명이 넘어.
그들 하나하나를 안아주며.
시나는 감사했다.
이 모든 것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여인이 나왔다.
왼쪽 다리에 의족을 찬 여성이었다.
“Hi.”
“Hi.”
어색하게 웃는 두 사람.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신의 말에 동의해요.”
“오, 그렇군요.”
“이 불행에 대한 희망을 가지는 것은 제 선택이죠. 하지만 당신이 있었기에 제가 희망을 가질 수 있었어요.”
“…….”
“지금은 말할 수 있어요. 이건 제게 있어 불행함이 아니고 특별함이에요.”
이걸 통해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의 삶에 주어진 감사한 것들을.
그렇기에 살아갈 수 있었다.
이 불행을 인정하면서.
계기로 삼으면서.
“…….”
시나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그를 상냥한 눈으로 바라봐주고 있는 이 세상의 ‘소외된 사람들’.
뭐라도 말할 차례였다.
“나는, 어.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이 모든 것은 그들의 힘이었다.
“그래도 고맙습니다. 제 진심을 알아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여러분.”
역반응 속에서 살아온 사나이.
그 포기하지 않는 마음.
자신의 진심을 전하고자 하는 Never Give Up이 팬들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바로 그때였다.
“사인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럼, 얼마든지.”
소년 하나가 나서서 분위기를 풀었고 시나는 그들과 한데 어울렸다.
무척이나 의미 깊은 날이었지만.
하지만 개중에서도 좀 당황스러웠던 점은, 의족을 단 여성이 나서서 거기에 사인을 해달라고 했을 때였다.
그녀가 말했다.
“의족을 다니 좋네요. 말 그대로 평생 닦지 않아도 되니까요. 시나.”
“…….”
“웃어도 돼요.”
“크흠, 죄, 죄송.”
WWF 슈퍼스타이자 아이콘인 그가 진심으로 놀란 몇 안 되는 순간이었다.
이어지는 사람들의 인터뷰.
“자신의 영웅에게 감사를 표할 수 있는 순간이 얼마나 있을까요. 저는 시나와 이 순간에 정말로 감사합니다.”
완전무결한.
아니, 사실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 Never Give Up 해온 시나의 노력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 * *
그 방송은 곧바로 클릭캣의 뉴튜브에 업로드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시나는 팬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거기에서 나는 느꼈다.
‘완전히 회복했군.’
엄청난 순간이었다.
세상에, 그 어떤 스포츠 선수가 팬들과 저렇게 깊이 연결이 될 수 있을까.
스토리가 있는 프로레슬링이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는 멋진 모먼트였다.
프로레슬링은 가짜였다.
하지만 그것은 현대에 이를수록 현실과 교묘하게 연결되었다. 그리고 이내 그런 각본만이 호응을 얻는 날이 왔다.
시나의 경우에도.
역반응이 일었던 초반에는 백스테이지에서의 인성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안티로부터 야유를 받았다.
진심이 담긴 야유를.
하지만 그런 영웅을 원하는 팬들에게서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회사가 밀어줄 수 있었다.
그리고.
현실의 시나가 그렇게 올라간 자신의 위상으로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칠수록 안티들 역시도 그에게 감화되었다.
그게 Never Give Up이었다.
나와는 다르지만.
나와는 전혀 맞지 않았지만.
그 또한 프로레슬링이었다.
아니.
이게 프로레슬링이었다.
숀 시나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현 시대에서.
아니, 업계 전체.
전 세계를 통틀어.
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나는 거기에 단언했다.
한 명도 없다고.
시나는 내가 현실의 일을 끌어들여서 디스를 해도 무너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해졌다.
‘쉽지 않겠군.’
그런 생각은.
이어진 3월 3주차의 버닝콩에서 시나의 링 세그먼트에서 확신이 되었다.
메인 이벤트.
[Waaaaaaaaaaaaaaaaaaaggghhh!!]
[Shawn Cena S-ck~! Shawn Cena S-ck~! Shawn Cena S-ck~!]
자신을 조롱하는 팬들의 노래에 시나는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조롱하는 성인 팬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같이 어깨춤을 춰주었다.
[Shawn Cena S-ck~!!]
남자 팬도 신나서 노래했다.
[Waaaaaaaaaaaaaaaaaaaaggghhh!]
팬들의 환호는 더 거세졌고.
링에 오른 시나는 마이크를 쥐지 못하고 그저 말을 듣는 수밖에 없었다.
[Let’s Go Cena!]
[Cena S-ck!]
[Let’s Go Cena!]
[Cena S-ck!]
[Let’s Go Cena!]
[Cena S-ck!]
팬들과 안티가 맞붙었다.
시나가 피식 웃으며 마이크를 내리자 팬들의 챈트는 훨씬 더 거대해졌다.
저런 반응을 이끌어내는 남자.
현실의 슈퍼 히어로.
그게 바로 숀 시나였다.
“다들 보셨으리라고 믿습니다. 오늘 쇼의 오프닝에서, 저는 커리어에서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을 맞이하였죠.”
클릭캣과의 연계로 뉴튜브에 업로드된 영상이 버닝콩의 오프닝에 나왔다.
팬들은 이제 시나가 어떤 감격스러운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고 그것은 이어지는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놈은 예의를 갖춰 말했다.
[신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악당을 방조했다고. 또, 저는 위선자라고 말이죠. 반박할 말은 없군요.]
[Uoooooooooooooooooooohhhh!!]
[변명의 여지는 없습니다. 저는 완벽하지 못한 선수고 여러분의 인정을 받아 겨우 여기 서있을 뿐이니까요.]
시나는 그렇게 주장을 했다.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나를 바보로 만드는군.’
녀석은 내 말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나가 내거는 가치가 훼손되는 건 절대로 아니었다.
그 압도적인 팬들.
그 메시지에 감동한 이들.
그건 불멸이었다.
하지만 그 불멸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오직 숀 시나뿐이었다.
Never Give Up.
말이야 쉽지.
엿이나 먹어라.
프로레슬러로서의 천부적인 재능.
팬들의 사랑을 받는 면을 타고 난 네가 나와 같은 남자를 이해할 순 없겠지.
그러려고도 하지 않겠지.
왜냐면 전생에도 넌 그랬으니까.
Never Give Up.
단지 그렇게 말했을 뿐이니까.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Yeeeeeeeeeeeeeeeeeeeeaaahhh!!]
[고전적인 말이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신이라는 거물을 상대로 제가 여러분께 약속드릴 수 있는 건 그것과.]
이어서 시나는.
각본에 없던 충격적인 말을 한마디 더 내뱉으면서 날 당황하게 만들었다.
[은퇴하겠습니다.]
“……?”
[신과 레슬 임페리움에서 더블 타이틀 매치. 패배하면 저 숀 시나는 모든 걸 내려놓고 은퇴하겠습니다.]
[Boooooooooooooooooooooooo-!]
야유가 쏟아졌다.
하지만 시나는 정말 그렇게 말했다.
나와의 경기에서 지면 은퇴하겠다고.
“…….”
나는 무어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건 그야말로.
선수로서 모든 게 걸린 각오였다.
반드시 이기고 말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