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3.
2012년 4월 2일. 월요일.
드디어 레슬 임페리움까지 일주일.
오늘로부터 정확히 6일 뒤, 나와 시나는 링 위에서 맞붙을 예정이었다.
ACW 월드 챔피언십.
WWF 월드 챔피언십.
두 개의 벨트를 걸고서.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시나와 나는 아직까지 이 대립의 결말을 제대로 정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인 만큼 주변에서 닦달도 심해졌다.
문자 메시지가 왔다.
[빨리 좀 정해주세요!]
WWF 측과 협업해 지금 대립을 총괄하고 있는 우리 각본팀장으로부터였다.
나는 쓰게 웃으며 답장했다.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그리고 메시지가 바로 왔지만.
……그냥 무시해버리기로 했다.
시나와 나의 대립은 사실,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완전히 개판 그 자체였다.
각본팀에서 써준 각본은 제대로 따르지도 않았으며 그냥 서로 원하는 대로 마음껏 디스하는 게 전부였으니까.
그렇기에 각본팀장도 처음에는 나한테 온갖 결말을 다 던져주면서 어떻게든 당면한 문제를 처리하고자 했다.
애초에 그러다가 시나가 경기에 은퇴를 걸면서 상황이 개막장이 되었지.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내게 말했다.
‘시나가 이기는 게 맞는 그림이다.’
‘이번에는 한발 물러서자.’
그런 식이었다.
시나가 은퇴를 걸었으니까.
일단 이번에는 시나가 이기고 2차전을 펼치든 뭘 하든 하는 게 낫지 않겠냐. 각본이기에 할 수 있는 대화였다.
하지만 다들 모르는 게 있다.
이건 각본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시나와 나는 질 생각이 없었다.
시나도 자신이 이기는 각본을 추진하기 위해서 은퇴를 건 게 아닐 터였다.
이건 ‘현실’이니까.
프로레슬링이라는 업에 영혼을 걸고 여정을 이어온 두 남자의 싸움이니까.
그러므로 시나는.
자신이 절대 지지 않겠다고 하는 의사를 그런 식으로 표명한 것뿐이겠지.
시나의 팬들은 그걸 믿었고.
내 팬들은 그것을 부정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서로 대립하는 시대가 충돌하고 분명 우리는 제대로 결말을 낼 생각이었다.
다행히 티파니는 우릴 지지해주었다.
‘시나에게 화를 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건 어디까지나 시나가 자기 멋대로 은퇴를 걸어서 나온 반응이었을 뿐 그 자체는 시나를 존중해주었다.
팬들의 반응을 얻는 싸움.
그게 우리의 경쟁 방식이었다.
그리고 오늘 밤.
녀석과 난 링에서 팬들의 반응을 마지막으로 한 번 확인해볼 생각이었다.
월요일 밤의 버닝콩.
경기 계약식이 남았다.
오프닝부터 시작된 쇼는 좋은 반응을 얻으며 레슬 임페리움 직전까지 이어진 선수들의 대립을 하나하나 끝내갔다.
그러는 사이, 나는 기다렸다.
몸을 충분히 풀어두고.
감정을 정돈하며.
혼자 락커룸에서 묵묵히 기다렸다.
[너와는 결판을 낼 때라고 생각했다고! 랜스 오튼! 여기 이 사람들이 우리의 싸움을 기대하고 있지.]
열 개의 경기 중에서 여덟 번째 경기를 맡을 랜스 오튼과 사모아 고 간의 신경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게 보였다.
[사모아 고가 랜스 오튼을 공격합니다! 이럴 수가! 정말 엄청난 힘입니다!]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해설자들의 코멘트와 관객들의 반응이 그 기대감을 한껏 높여주었고 그것을 본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레슬 임페리움 2012의 판매량은 또 다시 전년도의 기록을 갱신했다고 들었고 그로서 엄청난 파급 효과를 낳았다.
개최지인 뉴욕에는 벌써부터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프로레슬링’과 관련된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고.
인디 레슬러들이 활약할 공간이 많아지고 그로써 이 시장이 한층 더 성장한다면 나로서는 바랄 것이 없었다.
모두가 꿈을 꾸고 있다.
나와 같은 꿈이었다.
“…….”
그리고 찾아온 메인이벤트.
광고가 나가는 동안 링 위에 테이블과 의자가 놓였고, 나는 나갈 때가 되었음을 느끼고는 벨트를 집어 들었다.
락커룸 바깥으로 나가자 반대편 복도에서 걸어오던 시나와 마주하게 되었다.
“……신.”
“시나.”
서로 인사를 나눈 뒤.
우리는 고릴라 포지션으로 들어서 곧바로 이어질 상황에 대해 보고받았다.
“시나부터 나가겠습니다!”
시나가 앞으로 나섰다.
캡 모자와 티셔츠, 리스트 밴드.
밀리터리 팬츠와 운동화까지.
레슬러라기에는 이질적인 모습.
하지만 이 녀석으로 인해 프로레슬링은 업계 최고의 호황기를 맞게 되었다.
그런 놈이 링으로 나섰다.
[Waaaaaaaaaaaaaaaaaaaggghhh!!]
[Booooooooooooooooooooooo-!]
각기 각층의 다양한 반응이 모였다.
그런 가운데, 씨익 웃은 시나는 주머니에 꽂아두었던 미니 타월을 꺼냈다.
‘Never Give Up.’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여러분! 저와 함께 레슬 임페리움으로 갑시다!!]
그렇게 이야기한 시나는 허리에 두르고 있던 벨트를 풀어 들고는 곧바로 링을 향해서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카메라가 그 뒤를 따라가며 경기장에 모인 팬들과 시나의 모습을 촬영했다.
그렇게 달려가면서도 시나는 링으로 나올 때 미리 봐두었던 소년을 향해 자신이 들고 있던 타월을 던져 주었다.
[Shawn Cena S-ck~! Shawn Cena S-ck~! Shawn Cena S-ck~!]
[Waaaaaaaaaaaaaaaaaaaaggghhh!]
경기장은 완전히 엉망진창이었다.
팬들의 환호와 야유가 뒤섞여서 모두가 시나에게 엄청난 반응을 보냈다.
그리고 그건 녀석을 지금 이 순간 가장 거대하고 위대한 선수로 만들었다.
녀석을 부정하는 자와 지지하는 자들 모두가 시나를 한 시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콘으로 인정했다.
역사상 이런 선수가 있던가.
링 위에 올라간 시나는 자신의 손에 들고 있던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입 안의 침은 바싹 말랐다.
그리고 내 차례가 찾아왔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좋아.’
간다.
나의 영혼을 증명하기 위해.
내가 옳다는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어깨에 벨트를 걸친 나는 모니터링TV로 입장로 위의 상황을 한 번 확인했다.
분사되는 연기.
지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꽃.
나는 그렇게 링으로 나갔다.
[Waaaaaaaaaaaaaaaaaaaaggghhh!]
[Boooooooooooooooooooooooo-!]
시나와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이르는 팬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아이콘이라는 단어로 설명이 됐다.
입장로 위로 가득 찬 연기를 몸에 휘감은 채 앞으로 나아간 나는 어깨의 벨트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Boooooooooooooooooooo-!!]
야유가 좀 더 거세졌다.
그래, 이곳은 WWF의 링.
하지만 ACW 월드 챔피언인 내가 상황이 불리해진다고 해서 이 벨트를 무시할 수는 없는 법 아니겠는가.
나는 그렇게 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숀 시나와 얼굴을 마주했다.
[Yeeeeeeeeeeeeeeeeeeaaaahhh!!]
[This Is Awesome!]
짝! 짝! 짝짝짝!
[This Is Awesome!]
짝! 짝! 짝짝짝!
[This Is Awesome!]
짝! 짝! 짝짝짝!
팬들이 박수를 보냈다.
나와 시나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각자 가진 월드 챔피언 벨트를 머리 위로 번쩍 치켜들면서 기 싸움을 벌였다.
[Uoooooooooooooooooooohhh!!]
시대.
벨트.
단체.
녀석과 나.
정말 많은 게 걸린 싸움이었다.
바로 그때, 옆에 있던 링 아나운서가 우리를 만류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두 분 다 좀 앉으시죠.”
그렇게 해주기로 했다.
시나가 먼저 한쪽 의자에 앉았고 나 역시도 반대편 의자에 앉아서…….
물론 얌전히 앉을 내가 아니었다.
다리를 꼬아, 올려놓았다.
책상 위에.
턱.
[Uoooooooooooooooooooooohhh!]
시나가 불쾌하다는 듯 날 보았다.
“뭐하는 거야?”
“기믹 수행.”
나는 선글라스를 손가락에 걸어 내리고 시나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시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 일단…….”
링 아나운서가 입을 열자 그 직후 시나가 마이크를 들고 내게 이야기했다.
“나를 은퇴시키겠다고?”
[Uooooooooooooooooooooohhh!!]
“너로는 불가능해. 신. 왜냐면 나에게는 절대 그 경기에서 패배할 수 없는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이지.”
“근거가 고작 그건가?”
“그래. 너도 같은 말을 하는군.”
시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놀라운 일이지. 이곳의 수많은 사람들. 나를 지지하건 아니건, 나를 봐주러 오는 이 수많은 프로레슬링 팬들이 나를 지금 지탱하고 있다는 말이야.”
시나는 잠시 마이크를 내렸다.
그리고 관객석을 돌아보았다.
수많은.
별 같은 팬들.
우리의 지지자들.
프로레슬링이라는 ‘가짜’를 ‘진짜’로 만들어주고 있는 너무나 감사한 이들.
나도 일어섰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벗고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며 이 많은 이들을 보았다.
그들이 외쳤다.
[Let’s Go! Cena!]
[SIN! SIN! SIN! SIN!]
[Let’s Go! Cena!]
[SIN! SIN! SIN! SIN!]
[Let’s Go! Cena!]
[SIN! SIN! SIN! SIN!]
나는 별의 저편에 서있다.
그 누구도 서있지 못한 곳에 서있다.
시나와 함께.
하지만.
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달랐다.
정확히는 표현 방식의 차이였다.
“웃기는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감히 말하지. 나는 여기 이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힘이 난다고.”
[Yeeeeeeeeeeeeeeeeeeeaaaahhh!]
“그리고 현재, 이 경기에 이들이 갖는 기대와 나에 대한 성원은 이전까지의 그 어떤 경기보다 거대하지. 왜냐면 그 상대가 바로 너니까 말이야. 신.”
숀 시나 VS 신.
신 VS 숀 시나.
“내가 은퇴를 걸었다는 사실에, 몇몇 팬들이 내 진의를 의심하더군. 네가 혹시라도 날 공격하는 걸 망설이지 않을까 싶어서 꺼낸 말이라고 말이야.”
“그럴 리가 없지.”
“그래. 나는 널 잘 알거든.”
고개를 끄덕이는 시나.
“그리고 넌 그렇게 말해줬지.”
“너를 은퇴시키겠다고 말이야.”
내가 그 말을 받았다.
“진심이야. 시나. 그리고 나는, 너에게 맞춰서 똑같이 은퇴를 걸지는 않겠어. 나는 오히려 징글징글할 때까지 이 업계에 붙어있을 생각이라서 말이야.”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왜일까.
고통뿐인 업계였다.
프로레슬러가 감내해야만 하는 신체적인 부하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렇기에 매년 금지되는 기술이 많아졌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내가 안티 크라이스트를 사용하는 것조차도 기적이었다.
수직낙하기는 지극히 위험한 기술이었고 매년 봉인이 되는 추세였으니까.
모두가 우려를 표했다.
우리가 너무 위험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나는 프로레슬링을 했다.
우리는 프로레슬링을 했다.
나는 해나갈 예정이었다.
우리는 해나갈 예정이었다.
왜냐면.
“반했으니까. 이 프로레슬링에.”
수많은 옛 전설들을 봐오면서.
내가 그들에 절대 뒤지지 않는 기록을 남기길 기원하며 여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그걸 불멸이라고 하지.”
나는 시대에.
불멸의 순간을 새기고 싶었다.
그게 시나와 나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나의 패배로 끝나지는 않을 거다.”
“……그렇게 될 텐데. 신.”
“어디 한번 두고 보자고.”
나는 호기롭게 말하고 그대로 테이블 위의 펜을 들어서 계약서에 사인했다.
시나도 마찬가지였다.
[Uooooooooooooooooohhhh……!!]
그제야 나오는 팬들의 반응.
시나와 내가 대화를 하는 동안 그에 압도되어 찍 소리도 내지 못하던 관객들이 그제야 좀 숨을 내뱉었다.
사인은 이루어졌다.
레슬 임페리움 2012.
우리는 확실한 결말을 낸다.
링 위에서.
* * *
그렇게 버닝콩이 끝난 뒤.
땀에 흠뻑 젖은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나는 퇴근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티파니는 이따 온다고 했고.’
기다릴까 했는데 회의가 있다고.
선수인 나는 쇼와 다크 매치가 끝나면 딱히 할 일도 없어 먼저 호텔 방으로 돌아가 있는 게 보통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스포츠 백을 챙겨든 나는 느긋하게 구는 다른 동료들과 인사를 나눈 뒤 락커룸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나쁘지 않은 결말이었다.
‘5대5 정도인가.’
다들 생각하는 바는 다르겠지만 나는 일단 그 정도쯤 될 거라고 판단했다.
일견 복잡해 보이는 시나와 나의 대립은, 사실 굉장히 단순한 편이었다.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는 현실과 줄타기를 했다.
그러자 드러난 것은 1년 365일 내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팬들에게 희망을 주는 무적의 슈퍼 히어로 숀 시나였다.
나는 그런 시나를 존경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다른 선수들이 모조리 묻히고 마는 시나의 시대는 혐오했다.
대립은 거기에서 촉발되었다.
놀랍게도 시나 역시 같았다.
녀석은 나를 존경한다고 말했지만.
내 시대는 긍정하지 않았다.
불변하는 가치를 대변하는 녀석이 느끼기에 나의 시대는 역겨운 것일 터.
그렇기에.
우리는 싸울 예정이었다.
레슬 임페리움에서.
‘그렇지.’
결말은 아직 못 정했지만.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복도를 다 지나 주차장으로 빠져나온 나는 누군가 내 트럭 앞에 서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바로.
숀 시나였다.
“……신.”
빙긋 웃는 시나.
“시나.”
아까처럼 인사를 나누고, 트럭 뒷좌석에 스포츠 백을 던진 나는 그대로 시나에게 차키를 휙 던졌다.
그리고 말했다.
“운전해.”
“그럴게.”
쓰게 웃는 시나.
녀석과 같은 생각을 한 나도 참 아이러니한 기분이 드는 것을 느꼈다.
대립이 끝나고 경기만이 남은 시점에서야 우리 둘 모두 결심이 선 듯했다.
대화를 나눌 결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