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4.
Wrestle Imperium 2012.
그 포스터는 뉴욕 전역에 붙었다.
내용은 심플했다.
왼쪽에는 신이.
오른쪽에는 숀 시나가.
각각 어깨에 벨트를 걸치고 있는 두 거물의 우반신과 좌반신이 나왔고, 그 사이에 VS라는 글자가 들어간 게 전부.
하지만 그게 시사하는 바는 컸다.
“오.”
“신하고 시나하고?”
“신이 언제 챔피언이 됐대?”
팬은 아니었지만 두 사람이 갖는 가치를 이해하는 이들이 지나가다 보면서 페이퍼뷰를 구매할 마음을 먹었다.
지금 미국에서 두 사람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좋았다.
그렇기에 선수 여럿의 얼굴이 들어간 포스터가 아니라도 효과는 확실했다.
“엄마! 여기! 여기이!”
“그래, 죠니, 그대로 서있으렴.”
포스터 앞에서 사진을 찍는 가족.
그들은 아깝게 레슬 임페리움 2012의 티켓팅에는 실패했지만 대신 열기가 느껴지는 뉴욕에 놀러와 호텔에서 경기를 보기로 다 함께 계획을 잡았다.
그리고 오늘은 근처의 작은 경기장을 잡고 흥행을 개최한 인디 단체의 레슬링 쇼를 보러갈 예정이었다.
한 달 내내, 그런 식이었다.
온 도시가, 아니, 주州가, 아니, 미국이, 아니, 전 세계가, 프로레슬링의 열기에 빠져들어 쇼가 열리길 기다렸다.
아틀랜타도 마찬가지였다.
비번이었던 그녀는 얼마 전 아마추어 레슬링 부에 들어간 딸과 함께 식료품을 사고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딸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레슬 임페리움을 본다고 해서 한창 그 일로 옥신각신 말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엄마는 혼자 보게 되겠네.”
“아, 엄마! 장난이라도 그렇게 말하지 말라니까! 괜히 죄책감 들잖아!”
“들라고 하는 건데.”
“……안 그래도 처음에 엄마 말대로 신하고 친구라고 했다가 팀 내에서 왕따 당할 뻔했거든요. 그거 만회하려고 가는 건데 좀 봐주면 안 될까?”
“사실인데 뭐 어때!”
“아니…… 증거도 없는데 믿겠어?”
“전에 전화했잖아.”
“아, 그게요.”
한숨을 내쉬는 딸.
대충 이러했다.
전에 아무도 안 믿어서 신에게 부탁을 해 전화를 한 번 달라고 말을 했다.
물론 신은 정말 쿨하게 그 부탁을 들어주었고 아마추어 레슬링 부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극적인 통화가 이루어졌다.
[Hey, It’s Sin.]
그리고 그것은.
신의 목소리를 교묘한 성대모사라고 착각해 피식 웃은 팀 캡틴의.
‘그래, 난 러셀 오메가고.’
그 말과 함께 끝났다.
“……바보 멍청이들.”
“푸하! 러셀 오메가라고?!”
“엄마, 나 진지해.”
“알아, 알아. 뭐, 못 믿는 것도 당연하지. 신과 러셀, 시나 같은 친구들이 이제 세계적인 슈퍼스타니 말이야.”
‘에보니’는 잠시 기억을 떠올렸다.
그래.
10년 전만 해도 이곳에서 꿈을 기르던 청년들이, 어느 샌가 그렇게 성장해 큰 시합을 남겨두고 있었다.
“엄마는 누가 이기기를 원해?”
“……글쎄.”
“신? 내 아빠가 됐을지도 모르잖아.”
“제시.”
그런 거 아니라니까.
한숨을 내쉰 에보니는 헛소리 말라고 일축하며 집으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 * *
그렇게 전 세계의 기대감을 착실하게 쌓아올리며 WWF는 준비를 해나갔다.
레슬 임페리움 2012.
티파니 맥센의 지휘로 뉴욕시 외곽의 국제 올림픽 스타디움에 레슬링 경기를 위한 시설이 하나둘씩 세워졌다.
레슬 임페리움 2012의 경기장 콘셉트는, 한마디로 말해 ‘뉴욕’이었다.
브루클린 브릿지가 늘어섰고, 그 옆에 자그마한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진 채 거대한 마천루까지 표현한 세트장.
많은 조명을 받치기 위한 철골 구조물이 세워져 그게 중앙의 링까지 이어지고 주변으로 바리게이트가 섰다.
바리게이트 바깥에는 철제 의자가 높이를 맞춰 5만 석 가량 설치되었고 경기장 4층까지 점검이 이뤄졌다.
그리고 내부 시설의 체크.
각 동선의 확인.
영상과 음향을 체크하고.
리허설이 이루어졌다.
모든 과정이 착착 진행되는 것을 보며 티파니 맥센은 머릿속에 남아있던 응어리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 응어리란 바로.
‘결과’였다.
신과 숀 시나의 경기 결과.
두 사람은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경기 결과를 어떻게 했으면 좋은지 의견을 내주지 않았고.
결국 각본팀에서는 에라 모르겠다면서 시나가 승리하는 것으로 내버렸다.
하지만 티파니는 느꼈다.
두 사람이 그것을 신경도 쓰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일반적인 선수라면 징계감인 일이었지만 티파니는 그냥 놔두었다.
둘 모두 아이콘이었다.
그러므로 선수들이 원하는 대로 하게 해주는 게 맞는 답이겠지 싶었다.
‘정말로 안 정한 걸까.’
경기 결과를 말이다.
초유의 사태였다.
하지만.
분명 멋진 경기가 나오리라.
티파니는 그걸 의심하지 않았다.
* * *
2012년 4월 8일.
미국 서부 기준 오후 네 시.
마침내 레슬 임페리움이 시작되었다.
정규 방송은 오후 다섯 시부터였지만 WWF는 팬들이 미리 자리에 앉도록 만들기 위해 킥 오프 매치를 진행했다.
15분 간 경기를 진행하고.
15분간은 아나운서들이 레슬 임페리움의 열기를 전하며 팬들이 모두 자기 객석에 앉도록 진행을 해나갔다.
그리고 15분 경기 진행.
15분 동안 또 다시.
그렇게 해서 총 20만의 관객 대부분이 자리에 앉았고 방송이 시작된 순간부터 어마어마한 열기가 전해졌다.
레슬 임페리움 2012.
그 시작은 지금껏 그래왔듯이 미국을 상징하는 노래, ‘America the Beautiful’의 제창과 함께 이루어졌다.
그 제창자는 무려 ‘아메리칸 스윗하트’라고 불리는 가수, 휘트니 옥스턴.
신을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스타라고 말하며 적극적인 팬심을 보이기로 유명한 그녀가 노래를 부르자 모든 미국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를 갖췄다.
노래의 절정 부분에서는 근처의 아메리칸 에어포스에서 전투기 편대를 보내 저공비행을 하며 분위기를 살렸다.
[Yeeeeeeeeeeeeeeeeeeeaaahhh!]
애국심에 고취된 사람들.
오늘이 바로 더없이 미국적인 쇼.
프로레슬링의 개최일이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폭죽과 함께 시작되는 페이퍼뷰.
거의 미국 가구의 절반 이상이 실시간으로 시청한다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행사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오프닝 매치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Six-Man Ladder Match가 진행되었다.
신인이나 경기력이 좋은 미드 카더들이 등장해 인터컨티넨탈 타이틀을 가져가기 위한 한판 승부를 벌였다.
지금은 저렇게 링 위에서 반응을 얻기 위해 필사적이지만, 시대가 지나면 그들이 새로운 주인공이 될 터였다.
‘항상 그런 식이었지.’
락커룸에서 대기 중이던 남자는 모니터링TV로 경기를 지켜보면서 생각했다.
[아!! 우와아아아아!!]
[안 돼! 안 돼요!! 너무 위험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터프한 개자식들이 자신의 가치를 빛내고 꿈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이 가짜에 동참했다.
그리하여 서로 협력하고 하나의 극을 연출하는 장면에서 많은 것이 느껴졌다.
그 자체로도 즐거웠으며 내부의 시스템을 이해할수록 깊이를 느끼게 했다.
바로 이것이 프로레슬링.
‘이거지.’
남자는 긍지를 느꼈다.
이 업계에 종사할 수 있던 사실에.
레슬 임페리움은 광고와 경기가 번갈아 진행되는 방식으로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찾아온 자신의 차례.
세미 메인이벤트.
남자는 옆에 놓아둔 중절모를 쓰고 자신의 옆에서 계속 함께 쇼를 지켜본 후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다녀오마.”
캐스켓-테이커의 차례였다.
크로우와의 경기.
두 사람의 2차전.
굳이 따지자면 지금 이 경기는 이후 업계의 흐름과는 별다른 상관이 없는, 이벤트전에 가까웠다.
그럼에 그것이 갖는 상징성과 의미가 워낙 컸기에 세미 메인이벤트로서 메인이벤트의 흥을 돋우게 되었다.
테이커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내가 이렇게 될 줄이야.’
하지만 슬슬 그럴 때이기는 했다.
그리고 늦지 않게.
자신의 후계자가 될 만한 선수를 만들어둘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신이었다.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테이커는 적어도 그가 데드맨의 뒤를 이어줄 만한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시작된 입장.
까악-! 까악-!!
[Yeeeeeeeeeeeeeeeeeeeaaahhh!!]
환호하는 팬들.
ACW에서 건너온 선수였으나 레전드의 반열에 오른 크로우는 역할이나 선악에 관계없이 환호를 받고는 했다.
더군다나 오늘 레슬 임페리움은 ACW 팬들도 상당수 티켓팅을 해 두 단체의 팬이 엇비슷하게 모인 상황이었다.
그렇게 환호 속에 입장한 그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다운 카리스마를 보이며 테이커가 등장하는 것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만종.
대-앵-!
[Waaaaaaaaaaaaaaaaaaaaggghhh!]
순간 거대한 환호가 나왔으나.
테이커가 모습을 드러내자 팬들은 그 압도적인 광경에 전부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상징성만으로 따지자면 메인이벤트와 비교했을 때 부족함이 전혀 없는 두 전설 간의 경기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땡땡땡-!!
[Waaaaaaaaaaaaaaaaaaaaggghhh!]
팬들 모두가 최면에 빠진 듯했다.
실제로, 두 사람 모두 나이 50에 가까워 전성기 기량을 한참 지난 상태라 경기의 퀄리티는 별로 좋지 못했다.
하지만 테이커와 크로우가 각자 가진 시그니처 무브를 하나씩 사용할 때마다 어마어마한 환호가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프로레슬링이 추구하는 이상에 어쩌면 더없이 걸맞은 경기였다.
선수를 하나의 상품이라고 생각했을 때 두 사람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빛이 나는 명품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두 베테랑은 노련하게 서로 협력하며 자신들의 체력이 허락하는 선에서 계속해서 멋진 스팟과 스팟을 만들어나갔다.
그것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관계자들에게도 역사적인 장면이 되었다.
WWF와 ACW.
두 단체의 협업이 끌어낸 멋진 결과.
그리고 마침내.
투콰앙-!!
[툼스톤 파일 드라이버! 툼스톤 파일 드라이버!!]
[Waaaaaaaaaaaaaaaaaaaaggghhh!]
[마침내! 그 기술이 나왔습니다!]
[커버!!]
[1……!]
[2……!]
[3……!!]
땡땡땡-!!
경기는 테이커의 승리로 끝났다.
핀 폴을 마친 뒤 크로우의 위에 엎어진 그는 자신의 마지막 경기를 돋보이게 만들어준 동료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맙네, 크로우.”
“나야말로 고마워.”
미소를 지은 테이커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크로우와 악수를 나눴다.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멋진 결말이었다.
일대일로 주고받았고 끝내 서로를 인정했다. 이야기적으로 봤을 때 더 나아갈 구석은 없었지만 그 자체로 훌륭했다.
크로우가 먼저 퇴장했고.
대-앵-!!
[Waaaaaaaaaaaaaaaaaaaggghhh!!]
울려 퍼지는 만종 속에서 테이커는 현역 시절 마지막 세리모니를 펼쳤다.
관객들은 박수를 보냈다.
개중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이도 존재했다. 그 정도로 테이커라는 존재가 가지는 의미는 업계 역사에서 깊었다.
그는 비록.
주인공은 되지 못했지만.
그보다 더 거대한 존재였다.
레슬 임페리움 총 전적 19승 1패.
전설은 그렇게 세리모니를 마쳤고.
링 위에 가만히 서있었다.
팬들은 모두 의아해했다.
무대 위를 비추던 조명이 꺼졌고 레슬 임페리움은 메인이벤트를 남겨두고 잠깐 광고 타임을 가질 예정이었다.
TV 광고가 나가는 동안 보통 관객들은 화장실을 다녀오는 시간을 가졌지만 오늘은 다들 그렇게 하지 못했다.
테이커는 계속 링에 서있었다.
마치 뭔가를 남겨둔 사람처럼.
“뭐지 저게?”
“뭐 할 게 있나?”
관객들 대부분은 그런 반응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테이커에게는 역할이 존재했다.
늙은 데드맨이 할 수 있는 역할.
그는 입을 다물고 기다렸다.
어둠 속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돌아보며.
팬들도 테이커가 어렴풋이 거기에 존재한다는 사실만 알았지, 무얼 하고 있는지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리고 광고가 끝나자.
그 모습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정확히는 링 아래로 내려와 있는 상황이었지만 카메라가 잡지 않아서 경기장의 관객들이 순간 그 존재를 놓쳤다.
그리고 어느덧, 링 위에 올라선 릴리 가르시아가 맑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다음으로 이어질 경기는! 오늘의 메인이벤트! 통합 월드 챔피언 매치입니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쏟아지는 환호.
그 가운데 릴리 가르시아가 외쳤다.
“먼저 챔피언을 소개하겠습니다!!”
그 말이 뭔가 경건한 것이라도 되듯.
테이커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음악을 들었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Yeeeeeeeeeeeeeeeeeeeeaaahhh!]
먼저 나오는 것은 신이었다.
경기장이 순간 암전되었고 입장로로서 건설된 브루클린 브릿지 위의 거대한 스크린에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SIN]
그 로고가 박힌 문이 서있었다.
뒤를 이어 그 문이 벌컥 열리며 선글라스에 재킷을 갖춰 입은 신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환호가 경기장을 뒤덮었다.
레슬 임페리움.
스페셜 엔트런스 씬.
신의 콘셉트는 바로 ‘역사’였다.
내용은 간단했지만 파괴적이었다.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며 앞으로 걸어오는 신의 모습을 계속해서 촬영했다.
자신의 전용 락커룸을 나와 백스테이지를 걸으며 경기장으로 향하는 신.
그 테마곡의 비장함과 더불어 이어질 경기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커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리에서 멈춰선 신은 어깨의 벨트를 여미며 가만히 옆을 돌아보았다.
돌아가는 카메라.
그 앞에 그렉 하트가 나타났다.
[Uooooooooooooooooooooohhh!!]
그랬다.
오늘 신의 입장 콘셉트는 ‘역사’.
그가 꿈을 이뤄오는 동안 만나온 수많은 난적들이, 그를 응원하기 위해 지금 이 경기장에 모인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