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510화 (510/634)

510.

레슬 임페리움 2012가 끝났다.

세리모니를 마치고 백스테이지로 돌아오자 기다렸다는 듯 선수들이 내 머리 위로 얼음 버켓을 들이부었다.

촤악-!

“축하합니다! 신!”

“최고의 경기였어!!”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리고 날아드는 맥주 캔.

하나도 아니었다.

“야, 야?!”

나는 순간 당황해 소리쳤다.

머리 위로 날아드는 맥주 캔들을 피해 허리를 숙이자 그게 바로 내 뒤쪽의 벽에 부딪혀서 엉망진창이 되었다.

분사되는 맥주.

뭐가 좋은지 실실 웃는 동료들.

그걸 보고 있자니 지친 상태였던 나도 에라 모르겠다 싶어 그냥 땅에 떨어진 맥주 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그러자 웃음을 터뜨리는 선수들.

나도 등신 같은 건 안다.

하지만 그런, 뭐랄까.

마초적인 성향이 짙은 이곳에는 그런 등신 같은 짓이 숭배되는 경향이 있다.

벽에 부딪혀서 터진 맥주를 집어 마시자 선수들이 모두 나를 따라서 했다.

그걸 어이가 없어 지켜보던 나는.

‘에라, 모르겠다.’

피로에 스며드는 맥주를 느꼈다.

“푸후우.”

얼큰하군.

“신.”

러셀이 다가왔다.

그 옆에는 오튼도 함께였다.

“어, 경기 어땠냐.”

“너 앞으로 고생 좀 하겠던데.”

“내 말이.”

오튼이 건배를 제안했고.

카앙-!

약간 흥분했던 우리는 캔을 우그러뜨릴 기세로 부딪히면서 레슬 임페리움의 성공을 자축했다.

그런 식이었다.

나는 연속해서 맥주를 들이켰다.

‘죽여주는구먼.’

오늘 같은 날은 마셔야지.

복도는 엉망진창이었다.

등신들이 맥주를 반쯤 흘리면서 마셔대는 탓에 소란으로 엉망진창이었다.

그 가운데에서.

“푸후.”

나는 계속 맥주를 마셨다.

양어깨에 벨트를 걸친 채로.

그러자니 다가오는 시나.

“신.”

“오늘 고마웠다.”

“나야말로.”

“네 팬들이 많이 울던데.”

“이겨낼 거야. 다들 강하니까.”

“너다운 말이군.”

나는 쓰게 웃었다.

그러자니 느껴지는 의문 하나.

“그런데 말이다.”

“응?”

“계획이 있다면서. 은퇴 안 하고 어떻게 잘 빗겨나갈 좋은 아이디어가.”

“그렇지.”

“그게 대체 뭐냐?”

“아, 그게…….”

시나가 대답하려는 순간이었다.

콰앙-!!

순간 울려 퍼지는 소음.

깜짝 놀란 나와 선수들이 돌아보자.

“……저기요?”

고릴라 포지션에서 고개를 내민 티파니가 도끼눈을 뜨고 우리를 노려보았다.

어.

분명히 다들 겁먹었다.

그중 내가 제일 쫄았고.

“지금 관객 퇴장 중이니까요.”

“어, 넵.”

“다들 락커룸으로.”

“……Yes, Boss.”

누군가가 대답했다.

2미터에 달하는 거한 수십 명이 티파니의 명령에 락커룸으로 돌아갔다.

참고로 내가 선두에 섰다.

* * *

그렇게 쇼가 끝난 뒤.

나는 일주일의 휴가를 신청했다.

그리고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갔다.

사실, 원래대로라면 애프터 쇼에 출연해 챔피언으로서 소감을 팬들에게 이야기하는 게 정석적인 루트겠지만.

단체 간 더블 타이틀 홀더는 아무래도 ACW와 PWA, WWF라는 세 단체에서 협의를 해야만 했기 때문에.

아주 잠깐, 휴식 시간이 생겼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가 없더라도 버닝콩의 애프터 쇼에서는 시나의 은퇴가 있을 예정이었고.

반대로 나이트로에서는 러셀이 자신의 포부를 밝힐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잠깐의 휴식을 즐기기로 했다.

“준호야~!”

날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

아버지가 또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사오셔서, 오랜만에 바비큐 파티가 열렸다.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는 한인 가족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나도 거기에 참석해 경기의 피로를 풀고 있었다.

그래도 시나 놈이 꽤 잘해줘서 그다지 큰 부상은 없었다.

몸은 욱신거렸지만 밤의 차가운 날씨와 맥주의 취기가 중화를 시켜주었다.

“준호야!”

“예, 예.”

“예예는 무슨! 장작 좀 가져와!”

가벼운 핀잔.

피식 웃으며 뒤뜰로 나간 나는 장작을 패고 계시던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음.”

“엄마가 장작 좀 달래서.”

“미리 패둘 걸 그랬구나.”

“제가 할게요.”

나는 아버지에게 도끼를 받아 그대로 몇 번인가 장작을 패 조각을 냈다.

“이 정도면, 되겠지.”

“…….”

“왜요?”

“아니.”

아버지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좋은 남자가 되었구나 싶어서.”

“……예?”

“멋진 얼굴을 할 수 있게 되었어.”

나는 얼굴이 빨개지는 걸 느꼈다.

“네 엄마도 요새 네 이야기만 한다. 그건, 솔직히 말해, 남자 대 남자로 너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구나.”

아버지가 미소를 지었다.

“크흠.”

나는 헛기침을 했다.

“솔직히, 학교 졸업하자마자 나갔을 때는 어떻게 되려나 싶었는데 말이야.”

“걱정 좀 하셨어요?”

“그건 아니다. 아는 놈들한테 말해서 네 정보는 계속 전해 듣고 있었지.”

“……어떤, 사람들이죠.”

“네가 알 필요 없는 사람들.”

아버지가 장작을 번쩍 들었다.

왠지.

좀 두려워졌다.

나는 패둔 장작더미를 들고 아버지와 함께 한창 바비큐 파티가 벌어지고 있는 장소로 향했다.

“어, 아버지.”

“뭐냐.”

“엄마를 사랑하세요?”

“그래.”

“어떻게 결혼하셨댔죠?”

“네 엄마가 말하지 않았더냐.”

“아, 제가 들어서서.”

“그건 그냥 한 말이고.”

“……어, 그래요?”

“내가 느꼈다.”

“뭐죠.”

“이 사람이 없이 내 삶은 완성될 수 없겠다고. 그래서 결혼하자고 말했지.”

“로맨티스트셨군요.”

“넌 어떠냐.”

“글쎄요.”

나는 쓰게 웃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먼저 바비큐 파티가 벌어지고 있는 장소로 나갔고, 한참 전전긍긍하던 엄마가 달려왔다.

“아이고, 이 화상아! 뭘 그렇게 늦었어? 지금 다 춥다고 난리를 피우는데!”

“음.”

“음은 무슨 음이야! 가서 불 피워!”

아버지가 등짝을 세게 얻어맞고는 모닥불 앞으로 향해 그대로 불을 피웠다.

그리고 엄마는.

방금 아버지한테 화를 냈다는 게 다 뭐냐는 듯이 웃으며 날 돌아보았다.

“준호는 엄마랑 고기 먹자.”

“…….”

“에구구, 밖에서 햄버거 같은 거 먹으니까 애 얼굴이 어째 반쪽이 됐어.”

“제가요?”

“자자, 여기 고기.”

엄마한테는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군.

그래도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전생과 달리, 두 분 다 건강하셨다.

거기에 무엇보다도 감사했다.

내 삶이 이렇게 바뀐 것에 대해.

‘좋군.’

그나마 좀 안타까운 건 무슨 이유에선지 두 분 다 내가 이사를 시켜드린다고 해도 한사코 거절하신단 거지만.

그 이유도 또 가관이었다.

엄마는 그나마 이해가 갔다.

여기에서는 편히 대화할 수 있는 분들도 많고 하니까 떠나기 싫으시겠지.

하지만 아버지는.

전에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지하에 있는 물건들을 밖으로 옮겼다가는 인터폴이 경계를 해서 말이야.]

“…….”

그 이상 묻지 않기로 결심했었지.

그 사실을 기억에서도 애써 지워내면서, 나는 엄마가 거위한테 사료를 들이붓듯이 주는 고기를 마음껏 먹었다.

그리고 애들이 다가왔다.

“준호 형!”

“신!”

동네 꼬마들도 이제는 다 많이 자라서 대학을 간 놈도 있다고 들었다.

“그래, 이놈들아.”

“형! 어제 진짜 개쩔었어!”

“오늘 시나 그 등신 놈이 은퇴한다고 하니까 같이 봐도 돼? 되지?”

“……그, 그래.”

현재 하이스쿨에 다니고 있는 영진이가 한 말에 그 옆의 시네이션 소년들이 모두 눈을 부라리며 날 노려보았다.

나는 식은땀이 나는 걸 느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이 자식들.

나 자는 사이 집에 들어와 WWF 월드 챔피언 벨트를 훔쳐가지는 않겠지.

어쨌거나.

우리는 함께 방송을 보았다.

월요일 밤의 버닝콩.

그 오프닝.

링에 오른 시나는 팬들의 어마어마한 환호를 받으며 일단 먼저 사과를 했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니, 저는 ‘약속’한 대로 링을 떠날 수밖에 없군요]

[No! No! No! No! No! No! No! No! No! No! No! No! No! No! No! No!]

[여러분이 저를, 울게 하는군요.]

시나가 눈물을 글썽거렸다.

[평소에 ‘Cena S-ck’을 외치던 친구들도 지금은 모두 저에게 떠나지 말라고 하는군요. Cenation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제가 지금까지 해온 일이 수포가 되지 않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시나가 결국 눈물을 훔쳤다.

……내 옆에 있는 씨네이션 소년들도 눈물을 흘리더니 곧 나를 노려보았다.

[여러분 인생에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그렇다면 저도 감사히, 여러분과 함께할 겁니다.]

[Let’s Go! Cena! Let’s Go! Cena! Let’s Go! Cena! Let’s Go! Cena! Let’s Go! Cena! Let’s Go! Cena!]

팬들이 그를 응원했다.

그리고 시나는 링을 떠났다.

경례를 하고.

백스테이지로 돌아가자 수많은 WWF 슈퍼스타들이 그를 위해 길을 만들었다.

그렇게 떠나는 시나.

“시나아아아!”

“안 돼애애애!”

애들이 결국 오열을 했다.

“신 개새끼!”

“푸하하하!”

“…….”

이거.

시나가 돌아온다고 말해줘야 하나.

* * *

그렇게 시나가 떠나고 다음날.

놀랍게도 WWF의 주가가 폭락했다.

“…….”

아침에 일어나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확인해본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반대로 ACW의 주가는 폭등했다.

PWA도.

아니.

‘각본’을 넘어선 일이 발생했다.

그런 상황에서 WWF는 당연히 시나의 복귀를 바로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돈이 걸린 문제니까요.]

화면 속의 티파니가 한숨을 쉬었다.

시나의 복귀 각본을 위해 회장인 티파니와 숀 시나, 각 팀장들이 참석해서 화상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거기에 내가 참여한 것은 어쨌든 단체 간 더블 타이틀 홀더로서 의무가 있기 때문이었다.

[자, 아이디어를 내주세요.]

상황은 좀 급박했다.

특히나 나와 시나가 마지막까지 경기의 결과를 밝히지 않은 것이 악재가 되어, 도의적으로 나는 시나의 복귀 각본을 도와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리고.

[어, 저 아이디어 있어요.]

시나가 손을 들었다.

그래, 드디어.

시나에게서 제대로 듣지 못했던 놈의 복귀 시나리오를 들을 때였다.

그러자니.

[가면을 쓰겠습니다.]

“……??”

[멕시코의 후안 시나도 좋고요. 미국 대장을 패러디한 캐릭터는 어떨까요?]

그건.

슈퍼 구렸다.

“자, 잠깐만 시나.”

그러고 보니 이 자식.

GCW에 있을 때도 타이거 어쩌고 하는 이상한 고양이 귀 캐릭터를 만들었지. 그거 여성용 소품이었는데.

“…….”

시나가 캐릭터를 짜는데 그다지 소질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후안 시나요?]

[좋지 않나요?]

[예, 안 좋네요.]

티파니의 일침.

시나가 순간 시무룩해졌다.

그리고 그녀가 날 돌아보았다.

“…….”

음.

아이디어가 없지는 않은데.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나서도 될까.

에라 모르겠다.

티파니에게 할 말도 있고.

“제너럴 매니저나 해.”

[응?]

“선수로서 은퇴한 거지, 아예 나간 건 아니잖아. 존 마이클스도 은퇴 후에 제너럴 매니저로 한동안 근무했잖아?”

물론 마이클스는 등 부상으로 인해서 그대로 재기하지 못하고 은퇴했지만.

[그 후에 회장님이 돈 때문에 다시 부르는 각본으로 가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바로 그거죠.”

[환상적인 아이디어군요.]

[재미있네요. 저는 저걸로 가고 싶은데. 시나, 당신 생각은 어때요?]

[후안 시나가 좋은데…….]

아니.

슈퍼 구렸다.

분명히 말해두겠다.

약에도 못 쓸 개똥같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게 바로 ‘후안 시나’였다.

어쨌거나.

시나가 고집을 부리는 타입은 아니라서 회의는 적당히 잘 마무리가 되었고.

나와 티파니는 다들 퇴장하고 나서도 서로를 보면서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먼저 한숨을 내쉬었다.

“요새 죽겠어요.”

“……그래?”

“예, 누가 참 얄궂게도 경기 결과를 알려주지 않는 바람에 후폭풍이 거셌죠. 끝나고 데릭 비숍하고 또 회의가 있어요. 당신을 어떻게 쓸지에 대해서.”

“미, 미안합니다.”

“뭐 어쩌겠어요.”

티파니가 빙긋 웃었다.

“정말로 다행이에요.”

“뭐가?”

“당신의 꿈이 이루어져서.”

“…….”

“그걸, 가장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생각해요.”

“당신은 어때.”

“저요?”

“그래,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이 그렸던 꿈에 조금은 근접했을까?”

“이제 시작이죠.”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사랑스럽군.

누굴 닮아 저렇게 아름다울까.

그래서 나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당신 시간 되는 때에 한번 볼까?”

“응? 왜요?”

“할 말이 있어서.”

“드디어 말하는구나.”

“…….”

“안 말하나 했더니.”

“아니, 그.”

나는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아니.

어떻게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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