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3.
무슨 농담을 들은 걸까.
“푸하하하! 진짜요?!”
티파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걸 조금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자 이내 시선이 마주쳤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를 보며 웃었다.
She Said Yes.
그녀는 좋다고 말했다.
프러포즈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티파니의 주도 아래에 나의 더블 타이틀 홀더 등극을 축하하는 파티가 열렸다.
순서가 완전히 엉망진창이었지만.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나는 티파니의 왼손 약지에 자리 잡은 약혼반지를 보며 잠시 생각했다.
‘딱 맞아서 다행이군.’
사실, 티파니가 잘 때 몰래 사이즈를 재서 혹시 안 맞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니.
“신.”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전직 WWF 슈퍼 스타이자 현재는 우리 PWA 소속으로 곧 은퇴를 앞두고 있는 프로레슬링 업계의 슈퍼 레전드.
바로 리키타였다.
“축하해. 아, 양쪽 다 말하는 거야.”
“감사합니다.”
“프러포즈는 멋지게 성공하고, 역사상 최초의 단체 간 더블 타이틀 홀더가 되다니 좋은 일이 연이어 터지는데.”
그녀가 내게 맥주를 내밀었다.
가볍게 캔이 부딪쳤고.
이 전설적인 선수는 나를 인정했다.
“너에게는 자격이 있어.”
“과찬이십니다.”
“에이, 또 빼기는.”
리키타가 내 옆구리를 툭 건드렸다.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은 크건 작건 네 덕을 톡톡히 봤어. 나도 그렇지.”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신이 PWA를 출범시키지 않았더라면 WWF에서의 굴욕적인 은퇴가 리키타라는 레슬러의 마지막이 되었을 거라고.
“그 말이 맞다.”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누군가 싶어 돌아보자 할리와 바쿠가 내 곁으로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여기 있는 모두가 네 덕을 봤지.”
“이, 이거 부끄럽게 왜 이러십니까.”
“다들 그래서 온 거다. 이 녀석아.”
할리가 내 뒷목을 툭툭 쓰다듬었다.
“오고 싶어 했지만 스케줄이 안 맞아서 아깝게 못 온 놈들도 많고 말이야.”
“다들 네 이름을 대니까 언제냐면서 바로 시간부터 묻더군. 심지어는 그 성질 더러운 로건마저도 말이다!”
할리가 껄껄 웃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잠시 주변을 확인했다.
“…….”
정말 수많은 이들이 모였다.
그렉 하트.
존 마이클스.
부커-리.
캐스켓-테이커.
레이 미스테리우스.
리키타.
릴리 가르시아.
수많은 전설들로부터 시작해.
숀 시나.
러셀 오메가.
랜스 오튼.
사모아 고.
C.M. 펑크.
니키 제임스.
스테이시 치글러.
나와 같은 시대의 선수들.
코디 로스.
드류 맥킨마이어.
아니, 아니.
이런 분류는…… 와닿지 않는군.
다시 말하겠다.
GCW 시절부터 시작해.
버닝콩을 거쳐.
랙다운을 지나.
PWA로 와서.
ACW와 WWF, 다시 ACW.
그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을 커리어에서 내가 만났던 수많은 동료들이 왔다.
선수들뿐만이 아니었다.
링 위의 우리를 빛나게 해주는 직원들까지도 나를 축하해주기 위해 왔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입을 열었다.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이런 기회가 다시 주어져서.
그로써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서.
거기에 정말로 감사했다.
“겸손한 자식.”
“멋진 말이라도 하나 해봐라.”
“좋습니다.”
나는 씨익 웃었다.
그러자 앞으로 나선 바쿠가 크게 박수를 치며 사람들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자자, 오늘 주인공께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니까 다 같이 들어보자고!!”
“오, 신!”
“그래! 주인공이 좀 나서야지!”
다들 한마디씩 건넸다.
그렇게 경기장 안에서 자유롭게 술을 마시던 이들이 모두 내게 주목했다.
사실 아까 말했듯이.
이조차 엉망진창이었다.
서프라이즈 파티가 서프라이즈 프러포즈가 되었고, 이제는 그 주인공이 링에 올라 멋진 말을 하려고 한다니.
하지만.
이 정도가, 우리처럼 거친 인간들에게는 딱 맞는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링 위로 올라간 나는 주변으로 모인 사람들을 보고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거 뭔가 좀 어색한데.”
“이야, 사람이 수십만 명 모여 있는 곳에서도 안 쫄고 낼름 챔피언을 먹던 놈이 이러는 걸 보니 또 신선하네.”
“입 닥쳐, 오튼.”
내 말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 말 덕에 다음에 내가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가 좀 확신이 섰다.
“고맙습니다. 여러분.”
나는 일단 감사를 표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여러분이 없었다면 전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을 거예요.”
훈훈한 분위기.
그걸 뒤집으며 나는 씨익 웃었다.
“……이러는 게 이상적이겠지만.”
순간 의아해 하는 사람들.
“내가 개쩔었던 건 맞잖아. 진심, 내가 아니었다면 이 업계는 진작 바트 맥센으로 인해 내리막을 탔을걸?”
[Booooooooooooooooooo-!]
순간 야유가 나왔다.
‘다들 바로 따라와 주는군.’
나는 씨익 웃었다.
여기는 링 위였다.
그러므로 내가 하는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사실쯤은 모두가 알았고, 거기에 맞춰서 멋진 반응을 보여주었다.
나는 안심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실제로 그렇지.”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하나하나.
나는 내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을 ‘디스’하기 시작했다.
“그렉 하트. 당신을 은퇴시키면서 나는 내가 이 업계에서 확실히 기억할 만한 선수라는 사실을 증명해보였지.”
그렉이 맥주를 들었다.
“그 과정에서 존 마이클스가 쓰던 슈퍼 킥을 훔쳐서 좀 더 섹시한 방법으로 사용하게 되었군. 존, 나는 언제나 당신을 뛰어넘기 위해 레슬링을 해왔어.”
마이클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식이었다.
“케인 맥센, 그리고 랙다운.”
너희가 나를 밀어주었다.
“캐스켓-테이커.”
[Uooooooooooooohhh……!]
“나는 당신의 연승을 끊어내고. 업계에서 평범한 메인 이벤터가 아니라 그 이상이 될 자격이 있음을 증명했지.”
그런 식이었다.
내 모든 커리어는 그렇게.
“랜스 오튼, 러셀 오메가.”
그리고.
“숀 시나.”
나 혼자 이룬 게 절대로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
왜냐면 이건 경쟁이었으니까.
나는 기다리고 있으니까.
새로운 상대를.
내가 패배하는 그날을 기꺼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닐 거야. 팬들은 날 너무나도 사랑하고, 나는 여기 있는 너희들 중 가장 잘하는 놈이니까.”
하지만.
여기에 있는 자식들은 업계에서 최고였던 또, 최고가 될 야망을 가지고 있는 Toughest Son Of Bitch들이었다.
나는 맥주를 들었다.
“이것은 끝이 아니야. 오히려 시작이지. 해보자고. 우리의 시대를. 그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인 시절이었다고 기억하게 하는 거야.”
딱히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맥주를 들었다.
나는 전율을 느꼈다.
분명 모두와 함께 해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숀 시나.
저 개자식은 상대가 누구든 간에 자신의 팬들과 함께 싸우는, 분명 이 시대에서 가장 거대한 이름이었다.
지금은 내가 이겼지만 이어진 싸움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노릇이지.
러셀 오메가.
나의 영원한 라이벌.
녀석은 ACW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어 레슬링 가문에서 태어난 자신의 드라마를 잘 활용하며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랜스 오튼.
타고난 게으른 천재.
하지만 그 게으름조차 매력으로 작용해 팬들로부터 리스펙트를 받게 되었다.
코디 로스.
떠오르는 신성.
드류 맥킨마이어.
충성심 있는 스코틀랜드의 전사.
핀 발로.
The Demon King.
빌어먹을.
온갖 멋진 놈들이 가득한 리그였다.
우리는 할 수 있다.
나는 캔을 움켜쥐며 맥주를 들이켰다.
* * *
멋진 파티였다.
이 세상에서 오직 프로레슬러만이 할 수 있는 링 위에서의 파티.
결국 가장 먼저 뻗은 건 사람들이 주는 술을 마구 받아 마셨던 신이었다.
결국, 새벽이 되자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 그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고.
티파니는 슬슬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깨닫고는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신은 내내 그 옆에 찰싹 달라붙어 술에 취한 채 횡설수설 말을 내뱉었다.
“으헤헤, 띠파뉘이~.”
“……이렇게 됐어요.”
“둘이서 괜찮겠어?”
“네, 마신 거 같지도 않아요.”
“그, 그렇군.”
바쿠가 당황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여기 올 때부터 몇 잔 마신 거 같았는데, 돌아갈 때가 되니 저렇게 쌩쌩해지는 것을 보자 좀 두려웠다.
“가서 또 할 게 있는데, 이렇게 뻗어버렸으니 내일 좀 이야기를 하려고요.”
그런 식으로 말하며 웃는 티파니.
“…….”
“…….”
자리에 있던 유부남들이 순간적으로 어깨를 파르르 떨며 두려워했다.
모두가 신의 명복을 빌어주었고.
그렇게 만취한 신과 그걸 마음에 담아둔(?) 티파니가 호텔로 돌아간 뒤, 축하 파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신이 없는 신의 파티였지만.
오랜만에 다들 모여서 신이 났다.
그러다 먼저 취한 이들은 링 곳곳에서 나자빠져서 자거나 돌아가기도 하고.
숀 시나와 오튼, 러셀까지 호텔로 돌아가자 링 위에 남아있는 건 테이커와 그렉 하트, 단 두 사람뿐이었다.
슬슬 새벽이 밝아오는 가운데.
“푸하아.”
맥주도 다 떨어졌고.
두 사람은 위스키를 주고받았다.
잔이랄 것도 없었다.
병째로 서로 한 모금씩.
안주도 없었지만 얼큰하게 취한 채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가 즐거웠다.
먼저, 테이커가 입을 열었다.
“정말 대단한 놈이라니까요.”
“……또 신의 이야기냐.”
“녀석을 축하하는 파티잖습니까.”
테이커가 씨익 웃었다.
“내내 그 녀석 생각만 했다고요. 방금 링 위에서도 멋지지 않았습니까?”
“그러고 보면, 녀석을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나는군. 그 재능이 흥미롭게 느껴져서 내가 직접 GCW로 갔었지.”
“저도. 링 서바이벌을 하면서 처음으로 만났는데 신인 주제에 좋은 아이디어를 내질 않나, 행동도 아주 좋았죠.”
그럴 수밖에 없는 놈이었다.
신은 분명히 숀 시나나 러셀 하트보다 처음부터 더 눈에 띄는 존재였다.
하지만 업계인들 모두가 그 성공을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물론 신의 인종 때문이었다.
동양인으로서 이 업계의 정점에.
그렇기에 참으로 드라마틱했다.
테이커와 그렉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테이커. 이제 정말 은퇴할 생각이라고 했던가?”
“예, 더 하라고 해도 못 합니다.”
테이커가 허벅지 부근을 매만졌다.
“고관절 상태가 많이 나빠요. 여름쯤에는 수술을 한 번 더 받을 것 같은데.”
“은퇴 후 관리가 또 지옥이지.”
“선배는 좀 어떻습니까.”
“자잘하게 나빠. 물론 자네처럼 어디 하나가 크게 박살이 난 건 아니지만.”
“타고 난 강골이시로군요.”
“하지만 대부분은 안 그렇지.”
존 마이클스는 등.
테이커는 고관절.
그 외에도 선수들 대부분은 자신의 커리어나 경기 스타일, 아니면 한때의 불운으로 인해 은퇴하고도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다들 헌신했다.
프로레슬링이라는 일에.
“은퇴하면 우리 쪽으로 오지?”
“예?”
“슬슬 사업 확장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야. 지부를 두 개로 나눠서 쇼를 두 개로 늘려보자는 이야기를 하더군.”
“……제가 맡을 일은 뭐죠?”
“선수도 가르치고 쇼 운영에도 참가하고 뭐 그런 식이겠지. 베이다도 PWA에 와서는 얼굴이 많이 좋아졌어.”
“나쁘지 않은 제안이군요.”
생각을 좀 해보겠다.
그런 식으로 대답을 잠시 보류한 테이커는 이내 뭔가를 떠올리고는 웃었다.
“그러고 보니 그거 알고 있습니까?”
“뭐?”
“왜 가끔 그런 거 있잖습니까. 은퇴한 선수들이 돌아와서 경기 하나 갖는 거 말이죠.”
“자주 있는 일이지.”
이유는 굉장히 다양했다.
“일단은 돈이 되니까.”
전설적인 선수의 리턴 매치.
그건 분명히 화제가 됐다.
동시에.
선수 개인으로서는 링의 열기를 잊을 수 없기에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했다.
“물론 그런 선수들이 주류가 되어서는 안 되겠죠. 노장은 보통 체력 문제 때문에 일반적인 선수들처럼 풀–타임 스케줄을 소화할 수 없으니까요.”
“음.”
그런 테이커의 이야기를 얌전히 듣던 그렉 하트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 설마…….”
“아니, 말씀드렸다시피 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죠. 마음은 굴뚝같지만, 사실 다시 싸울 이유도 전혀 없고.”
왜냐면 이미 졌으니까.
신에게.
이겼을 때 그에게 줄 수 있는 게 거의 없을 터였다. 그러므로 데드맨은 딱히 다시 돌아갈 마음은 없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 ‘Kid’와 가졌던.
자신의 레슬 임페리움 사상 가장 열광적이었던 경기가 이미 있으니까.
“그렇다면…….”
“신, 그놈이 불을 붙였죠.”
“제기랄, 뜸 들이지 말고. 누군가?”
살짝 짜증마저 내는 그렉.
거기에 테이커가 이름을 말했고.
그렉은 깜짝 놀랐지만.
이내 웃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Show Must Go On이군.”
쇼는 계속될 것이다.
신의 단체 간 더블 타이틀 홀더 집권기는, 처음부터 그 전설적인 선수와 대립을 가지며 시작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