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2.
쨍그랑-!
정말 죽여주는 인트로였다.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
그게 들리는 순간, 팬들은 누가 링으로 나오는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 임팩트 하나는 최고봉이었다.
하지만.
그 죽여주는 카리스마에 비하면 훌륭한 테마 음악조차 상대가 되지 못했다.
락콜드 스티비 스틴.
그가 링으로 나왔다.
입장로를 통해 당당하게.
[Yeeeeeeeeeeeeeeeeeeeeaaahhh!]
팬들이 엄청난 환호를 보냈고 사모아 고를 링 밖으로 내쫓았던 나는 순간 얼이 빠져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어진 행동은 단순했다.
아까의 빚을 갚아주겠다는 듯 링으로 올라온 락콜드는 곧바로 내 얼굴에 대고 양손으로 중지를 세우더니.
퍼억-!
내 배를 걷어찼다.
정확히는 그보다 조금 더 위.
횡경막이 위치한 부분을.
“끄흑?!”
순간 생각이 사라졌다.
몸속의 산소가 모두 빠져나가며 순간적으로 머리의 사고가 모두 정지했다.
락콜드는 바로 그 순간을 노렸다.
뒤로 돌아선 락콜드가 그대로 내 머리통을 움켜쥐고 자신의 어깨에 단단하게 고정한 뒤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락콜드 스터너.
투콰앙-!!
그 이름대로, 순간적으로 망치에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 몸을 덮쳤다.
뒤쪽으로 튕겨 나가서 바닥을 나뒹군 나는 갑작스러운 스터너로 인해서 순간적으로 거의 정신을 잃고 말았다.
[Uoooooooooooooooooooooohhh!]
락콜드 스터너.
그는 제대로 보여주었다.
자신이 어떤 남자인지를.
하지만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관객들의 반응은 환상적이었고 락콜드는 자신의 현역 시절의 캐릭터에 걸맞은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었다.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그것은 현역 선수들이 링으로 돌아온 선배에게 갖출 수 있는 최대의 예우.
콰앙-!
연이은 락콜드 스터너.
랜스 오튼이 나가떨어졌고.
경기는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었다.
땡땡땡-!
경기는 우리 쪽의 DQ승으로 끝났지만, 락콜드는 기어코 사모아 고에게까지 스터너를 넣으며 링을 장악했다.
휘말리기 싫었던 웨이드가 링 바깥으로 도망친 가운데, 내게 다가온 락콜드는 대자로 뻗은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대고 흔들며 조롱을 했다.
“You-! Piece! Of! Crap! I’m Gonna Get your A-s Any time Any Moment!”
[Yeeeeeeeeeeeeeeeeeeeeaaahhh!]
관객들의 환호 속에.
나와 락콜드의 대립이 점화되었다.
* * *
반응은 환상적이었다.
락콜드 스티비 스틴.
다른 전설적인 선수들과는 다르게 이 남자는 은퇴한 뒤에는 아예 프로레슬링 쪽으로는, 어, 좀 구린 표현이었지만 ‘오줌조차도 누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회사와 관계가 틀어졌다거나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이 어떤 형태로든 가끔씩 팬들 앞에 나타난 것과는 달리.
락콜드는 나를 인터뷰하는 방송 같은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고향에서 사냥에 몰두하는 식으로 조용히 지내왔다.
그러므로 그 10년 만의 복귀에 세간의 관심이 쏠린 건, 어쩌면 당연했다.
안 그래도 나와 락콜드의 대립은 팬들이 오랫동안 원해온 드림 매치였다.
락콜드와 내가 출연한 영상을 짜깁기해서 뉴튜브에 팬 메이드 영상이 올라오는 경우가 꽤 많았으니까 말이다.
그런 만큼 분명히 돈이 될 대립이겠지만, 나는 왠지 입맛이 쓴 걸 느꼈다.
첫 주차의 대립이 끝나고 다음 날.
대중의 반응을 확인한 나는 계속 고민하다 일단 락콜드와 직접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누어보기로 결심했다.
복귀 날에도 일이 끝나고, 나에게 고맙다며 먼저 말을 걸어왔을 정도로 지금 상황에 만족하는 듯 보이는 그.
전생에는 끝끝내 복귀하지 않았던 그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돌아온 걸까.
마침 다음 출연이 수요일 밤의 PWA였으므로 락콜드는 수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곧장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다.
그리고 경기장에 온 옛 아이콘을 회사의 직원들 대부분이 나가서 맞이했다.
그 선두에 서있던 할리 레이시가 먼저 다가가 락콜드를 와락 끌어안았다.
“락콜드!”
“오랜만입니다. 할리.”
“허허, 이게 꿈이야 생시야!”
바쿠, 그렉 하트, 베이다, 폴 헤이건.
수많은 이들이 그를 반겼다.
락콜드는 자신의 커리어 하반기에 정상의 위치에 있을 때에 성격이 좋아 주변하고 잘 융화되는 편이었다고 들었다.
그렇다고 권력을 가지려고 하지도 않아서 그렉이나 테이커처럼 락커룸 리더를 맡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그렇기에.
“오, AK 스타일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현역 선수들과도 인사를 나눈 락콜드는 마지막으로 무리로부터 조금 멀찍이 떨어져 있던 내 앞으로 다가왔다.
“락콜드.”
“신.”
“오는데 고생 많으셨어요.”
“아니다. 멋진 회사로군.”
“작지만 알찬 곳이죠.”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눈 뒤 다들 위클리 쇼를 준비하기 위해서 흩어졌고 자연스럽게 락콜드의 안내는 내가 맡았다.
“락커룸은 이쪽입니다.”
“세련됐는데.”
“이쪽으로 나와서 쭉 걸어가면…… 바로 여기가 고릴라 포지션입니다.”
“아직도 그 이름을 쓰나?”
“당연하죠. 고릴라니까요.”
나는 다시 웃었다.
고릴라 포지션.
쇼의 진행을 총괄하며 링으로 나가기 직전의 장소를 그런 이름으로 불렀는데.
바트 맥센의 아버지, 바트 맥센 시니어의 동업자였던 ‘고릴라 몬손’의 고릴라에서 따와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거, 정말 오랜만이군.”
“그저께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아직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어. 데뷔한 그때처럼 이 장소만 봐도 마음이 뛰는군. 오랜만에 심장 소리가 느껴져.”
“…….”
슬슬 때인가.
“하나만 여쭤 봐도 됩니까?”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 뭔가?”
“왜 복귀를 결심하신 겁니까?”
“복귀까지는 아니야. 챔피언.”
락콜드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뭐,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것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널 보고 반해서기도 하고. 하지만 딱히, ‘그 이외’의 이유를 말해주고 싶지는 않군.”
“몸 상태는 괜찮으신 겁니까?”
“그래.”
“정말로요.”
“걱정하지 마라.”
락콜드가 씨익 웃었다.
“죽으러 온 건 아니니까.”
하지만 영락없이 그렇게 느껴졌다.
다른 그 어떤 부상도, 언제나 선수의 생활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목 부상은 평생을 안고 가야만 했다.
척추 쪽과 연관이 되어서 정말 죽거나 평생 불구로 살아갈 수도 있는 녀석이 바로 목 부상이라는 악마였다.
하지만.
나도 이 대립이 흥미롭기는 했다.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락콜드가 나와 싸우고 싶다는 이유로 돌아왔으니.
“락콜드.”
“뭔가.”
“까짓거, 도와드리죠.”
“……푸하하하!”
“어라, 뭐가 웃기시죠?”
“아니, 이 락콜드 스티비 스틴을 도와준다고 말한 건 네가 처음이라서.”
“지금은 목 부러진 영감이잖습니까.”
“애송이 자식이.”
“현 챔피언이죠.”
나는 빙긋 웃으며 받아쳤다.
우리는 가볍게 주먹을 부딪혔다.
* * *
말은 그렇게 했지만.
확실히 몸 상태가 좋지는 않았다.
다시는 그 시절로.
그 완벽했던 ‘락콜드 스티비 스틴’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게 느껴졌다.
몸은 늙었고.
목은 부서졌고.
철심에 유지해 겨우 달랑거리지 않고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후유증 때문에 손이 덜덜덜 떨리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자는 돌아오기로 결심했다.
확인해야 할 게 있기 때문이었다.
쨍그랑-!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온몸의 아드레날린이 순간적으로 폭발했다.
과거에 해왔던 대로 락콜드는 링 기어를 갖추고 커튼을 밀어내며 등장했다.
물론, 40대 후반의 남자가 팬티 한 장만 달랑 걸치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은 염치도 없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근육을 키웠다고 해도 이전과 같지는 않았고 살은 쭉쭉 늘어지는 상태였다.
하지만.
[Waaaaaaaaaaaaaaaaaaaggghhh!!]
팬들은 PWA에 모습을 드러낸 락콜드에게 어마어마한 환호를 보내주었다.
바로 그게 용기를 주었다.
락콜드는 링 위의 신을 바라보았다.
현존하는 아이콘.
그를 의심할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숀 시나를 꺾으면서 시대의 일인자로 우뚝 올라선 신은 두 단체의 월드 챔피언 벨트를 가져도 위화감이 없었다.
그야말로 위상의 절정.
나이를 먹고 은퇴한 아이콘이 상대하기에는 너무나도 버거웠지만 그래도 한 가지 요소로 인해 겨우 대등해졌다.
바로 ‘복귀’였다.
무려 10년만의 복귀.
그 징조도 보이지 않았던.
그로 인해 락콜드는 지금 당당히 링에 올라가 신을 상대할 수가 있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Rockcold! Rockcold! Rockcold!]
[Rockcold! Rockcold! Rockcold!]
빗발치는 챈트.
두 남자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월요일에 락콜드 스터너를 맞고 링에 오른 신은 무척이나 불편한 눈치였다.
하지만 그 등장을 기다렸다.
“락콜드 스티비 스틴.”
[Waaaaaaaaaaaaaaaaaaggghhh!!]
“늙었지만 재주는 아직 남아있더군. 사람을 열 받게 만드는 재주 말이야.”
신은 가감 없이 디스를 해나갔다.
“갑자기 등장해서 짜증나는 상대에게 락콜드 스터너. 당신 시그니처지. 확실히 당해보니 꽤 신경이 쓰이던데.”
그리고 앞으로 나섰다.
두 사람의 키는 거의 비슷했다.
실제로는 신이 5센티미터 정도 더 컸지만 팬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묘한 각도로 허리를 굽혀서 키를 맞췄다.
그게 상대를 존중하는 방식이었다.
락콜드 스티비 스틴.
바닥에 털썩 앉는 피니시 무브인 락콜드 스터너를 계속 쓰면서 그 키는 전성기에 비해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하지만 팬들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락콜드의 카리스마는 그대로였고.
신이 그를 도와주었다.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런 와중에도 은근히 락콜드가 무시할 수 없는 상대임을 어필했다.
그렇기에 락콜드를 이로서 처음 보는 팬들도 그 강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선은 그어야만 했다.
자신은 ‘현역’ 월드 챔피언.
상대는 ‘과거’의 아이콘.
“그냥 여기서 끝내지?”
[Waaaaaaaaaaaaaaaaaaaaggghhh!]
“오래갈 필요 없잖아. 링은 있어. 팬들도 있지. 여기서 한판 붙어보자고.”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쏟아지는 환호.
그로서 팬들이 락콜드와 신의 경기를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가 드러났다.
그런 상황에서, 락콜드는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미안하지만, 신.”
“…….”
“여기는 그 무대가 아니야.”
락콜드는 손가락을 들었다.
그게 신호였다.
“여기는 페이퍼뷰가 아니고.”
[What?]
“우리는 아직 준비가 덜 됐지.”
[What?]
“나는 할 이야기가 남았고.”
[What?]
“여기 인간들은 그걸 듣고 싶어 해.”
[What?]
“그러니까 거기에서 닥치고 서서 그 빛나는 벨트를 움켜쥐고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챔피언. that's the bottom line, 'Cuz Rock Cold said so.”
['Cuz Rock Cold said so!]
락콜드의 시그니처 대사를 팬들이 따라했고, 분위기는 완전히 넘어갔다.
락콜드는 팬들을 돌아보았다.
“너희가 만약 신과 락콜드 스티비 스틴의 경기가 보고 싶다면.”
Gimme A Hell Yeah!
마이크를 높이며 외치는 락콜드.
[Hell Yeah!!]
팬들이 환호했다.
그게 바로 그가 살아가던 순간인 ‘태도 불량 시대’를 상징하는 모습이었다.
그때는 아직 프로레슬링에 만화적인 요소가 강하게 남은 때였고 팬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선수들이 마이크 워크 때마다 ‘시그니처 대사’를 넣었다.
“What?!”
[Hell Yeah!!]
물론 그건 지금도 유효했다.
락콜드는 마음이 뻥 뚫리는 것을 느끼며 신의 앞에서 마음껏 팬들을 조련하며 자신의 대사를 외쳐나갔다.
그리고 그가 돌아본 순간.
쩌억-!!
그 안면에 슈퍼 킥이 작렬했다.
[Uoooooooooooooooooooohhh?!]
순간 당황하는 관객들.
마이크를 쥐고 물러나는 듯했던 신은 바닥에 널브러진 락콜드를 꽤나 불쾌하다는 듯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내 순간을 빼앗아가지 말라고.”
신은 그렇게 이야기했다.
“여기는 내 링이야. 누가 감히 말하고 싶다면, 내 말을 들어야 하지.”
[Yeeeeeeeeeeeeeeeeeeeaaahhh!!]
거기에 쏟아지는 환호.
신의 카리스마도 대단했다.
그는 그렇게, 10년만에 복귀한 아이콘을 상대로도 팬들의 반응을 가져오면서 각본을 전개할 수 있는 사내였다.
“내가 당신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해. 락콜드. 이 벨트는 어디까지나 지금 이 순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선수들의 것이기 때문이야.”
[Yeeeeeeeeeeeeeeeeeeeeaaahhh!]
“당장 저기 뒤에서 쟈니 에이스가 순서를 기다리고 있어! 저 새끼는 언제라도 내 목을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 있지! 대니얼 라이언도! AK 스타일스도!!”
하지만.
프로레슬러는 어디까지나 팬들이 원하는 경기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했다.
그렇기에 신은 이렇게 말했다.
“락콜드 스티비 스틴. 나는 당신과의 싸움에서 반드시 이길 거야. 이 벨트를 떠받들고 있는 건 나만이 아니니까.”
챔피언이란 무엇인가.
이게 가진 가치는 무엇인가.
무려 10년 만에 돌아온 아이콘을 상대로 신은 다른 선수들을 위해 벨트의 가치를 지켜내겠다 말하고 있었다.
바로 그게 그가 그리는 레슬링.
락콜드는 통증 속에서 생각했다.
‘이런 녀석이었군.’
완벽한 리더.
시대의 주인공.
존재만으로도. 말 한마디만으로도.
다른 선수들의 가치를 더없이 끌어올려줄 수 있는 남자.
그게 바로 SIN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