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3.
락콜드 스티비 스틴의 복귀는 WWF에서 추진한 레전드 계약의 일환이었다.
프로레슬링 업계 전반의 인식 상승과 더불어 은퇴한 선수가 다른 단체에 출연하지 않도록 묶어두기 위한 계약.
하지만.
티파니는 그게 영 께름칙했다.
영광스러운 레전드 계약의 첫 대상이 된 ‘락콜드 스티비 스틴’부터가 이미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걸어버렸으니.
그 뒤로 나오는 레전드 선수들이 다 그런 식으로 행동할까 영 두려워졌다.
‘신과 경기가 하고 싶다.’
‘무대는 어디라도 좋다.’
사실 꽤 오래된 이야기였다.
적어도 1년 정도.
그때는 락콜드의 몸이 WWF의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할 수가 없다고 생각해 알겠다고 하며 넘겼지만.
락콜드는 기어코 테스트를 통과해 당당히 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경기를 뛰고 싶다는 락콜드 본인의 의지가 너무 강해 여러 조건을 걸고 겨우 통과를 시켜준 것이었다.
그럼에도 티파니 맥센은 락콜드가 정말 경기에 뛸 수 있는 몸 상태인지를 확인해보기 위해 은밀히 공작에 들어갔다.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음…….]
그렉 하트는 고민하는 눈치였다.
당연했다.
티파니의 부탁은 ‘훈련’을 가장해 락콜드가 경기를 뛸 수 있는 상태인지 한번 확인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의견에 따라 락콜드가 경기를 뛸 수 있을지 없을지가 정해지는 것이었으므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한 경기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인데. 링 위에서 사고가 터진 뒤에는 늦어요.”
[……틀린 말은 아니군.]
그렉은 쉽게 동의했다.
전화기 반대편.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PWA에서 티파니의 전화를 받고 있던 그는 확실히 누군가가 나서야 할 때임을 느꼈다.
그리고.
“좋아.”
자신이 그래야겠다고 결심했다.
어차피 누군가가 총대를 메야만 한다면 티파니로부터 가장 먼저 제안을 받은 자신이 하는 게 마땅한 도리겠지.
“단, 하나만. 괜찮겠나?”
[뭐죠?]
“내가 직접 테스트하기는 좀 그렇고. 다른 놈들은 상대가 락콜드라 대충 대충할 여지가 있으니, 신에게 이유를 설명하고 협조를 받고 싶은데 말이야.”
[예, 그 부분은 맡길게요.]
“일이 끝나면 다시 연락하지.”
그렉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곧장 훈련장으로 향했다.
PWA는 전국 투어를 뛰지 않는, 메이저와 인디의 중간쯤에 있는 단체였다.
그렇기에 매주 훈련장을 새로이 설치해야만 하는 다른 메이저 단체와는 달리 꽤나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티파니가 그렉 하트와 PWA에게 일을 맡긴 것은 그런 이유도 한몫하리라.
그리고 때마침.
락콜드는 PWA에 출연하기 위해 오는 중이었니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다.
딱히 물리적인 충돌 없이 격주로 쇼에 출연하면서 신과 대립하는 락콜드.
그러는 동안 신은 ACW에서 직접 찾아온 코디 로스와도 대립을 시작했다.
더블 타이틀 홀더의 숙명이었다.
하지만 신은 그런 하드코어한 스케줄을 무리 없이 소화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 젊은 나이니까.’
덕분에 WWF와 ACW, PWA까지.
모두가 신을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렸다. 그는 회사에서 어떤 것을 요구해도 괜찮은 퍼펙트 플레이어였다.
업계의 중심은 그런 선수들이 되어야만 했다. 때문에 프로레슬링 업계는 언제나 새로운 얼굴을 필요로 했다.
저런 신조차도 언젠가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은퇴를 해야만 할 테니까.
그리고 그것은.
10년 전의 락콜드에게도 적용되었다.
거기다 그는 상태가 더 심각했었다.
락콜드는 자신의 완벽했던 커리어 내내 목 부상으로 거의 반쯤 장애를 안은 채 스케줄을 소화했었다.
진통제는 필수품이었고 그렇기에 은퇴한 뒤로도 약물 중독에서 벗어나려고 많은 고생을 했었다고 들었다.
‘확실히 티파니의 말이 맞군.’
그렉은 훈련장에 들어서며 생각했다.
쿠웅!
“좀 더 빨리!!”
“옙!”
베이다가 신을 상대하고 있었다.
일단 보기에는 베이다가 조언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실상은 반대였다.
베이다는 숨을 헐떡거렸고 반면 신은 에너지로 넘쳤다. 상대보다 배는 더 움직이고 있음에도 힘이 느껴졌다.
게다가 신은 저번 주에 무려 네 번이나 되는 경기를 소화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저 정도.
스스로 실력도 빼어나니 적어도 5년 동안은 시대의 주인공으로서 제 역할을 충분히 해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그 상대였다.
코디 로스는 신의 주도 아래에 좋은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젊은 선수였지만, 반대로 락콜드는 어떨까.
그렉은 훈련이 끝나고 링 아래로 내려와 쉬기 시작한 신을 잠시 불렀다.
“신!”
“그렉, 무슨 일이에요?”
“이야기 좀 하자.”
“뭐 또 무리한 주문을 하려고.”
“눈치 하나는 빠르구나.”
미소를 지은 그렉은 남들이 듣지 못하도록 신을 락커룸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티파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하자, 신은 뜻밖에도 불편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본인이 하고 싶다는데.”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시킬 수는 없지. 이게 애들 동네 학예회도 아니고.”
“맞는 말씀이시군요.”
“락콜드의 몸은, 말하자면 폭탄이 장치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렉은 그렇게 표현했다.
경기 중에 그 폭탄이 터져서 락콜드가 정말 사망이라도 하는 날에는 WWF는 물론이고 이 프로레슬링 업계 전체가 괴멸적인 타격을 입을 터였다.
안 그래도 반대자들에게서 폭력성에 대한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는 마당에.
“너도 링 위에서 상대 선수를 죽이고 싶지는 않겠지.”
“그야 물론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신은 티파니의 그런 계획을 백 퍼센트 좋다고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락콜드가 등신은 아니잖습니까.”
“그렇, 지?”
“돈 때문에 돌아온 것도 아닐 테고요. 듣자 하니 레전드 계약으로 받는 돈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하던데.”
그렇다고 막 저기 로건처럼 정치병이나 자신에 대한 에고가 너무 강해서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닐 테고.
그렇다면 이유가 무엇일까.
“쪽팔리지 않을까요?”
“뭐?”
“락콜드 말입니다.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그 성격대로라면 솔직히 자기도 돌아오면서 엄청 쪽팔렸을 텐데.”
“그러, 려나?”
“그래도 돌아왔죠.”
“음…….”
“이유가 있을 겁니다.”
“말인즉슨.”
그렉은 한숨을 내쉬었다.
“락콜드를 위해서 싸우겠단 건가.”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솔직히, 제가 마더 테레사도 아니고 락콜드를 위해 희생할 필요는 없죠.”
“…….”
“하지만 파더 맥스웰 정도는 되어줄 수 있겠군요.”
“그게 누군가?”
“어렸을 때 알던 신부님이요.”
신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저는 이 계획은 빠지겠습니다. 경기장까지 오는 건 락콜드의 문제니까.”
“그런데 만약.”
“……?”
“온다면?”
“최고의 경기를 만들어 줄 겁니다.”
그건 오만함이 아니었다.
“나에게 맞선 것에 경의를 표해야죠. 이것도 어디 만화에서 본 대사인데.”
이 시대의 최고이기에 가질 수 있는, 사자로서의 프라이드와도 같았다.
신이 락커룸 밖으로 다시 나갔다.
그렉은 씁쓸하게 웃었다.
‘파더 맥스웰이라고.’
그렇다면 자신은 분명 락콜드라고 하는 어린 양을 시험하는 고난이 될 터.
그 생각에 변함은 없었다.
PWA에는 신과 같은 레벨은 아니었지만 분명 훌륭한 선수들이 많았으니.
* * *
‘뭔가 좀 이상하다 싶더라니.’
PWA에 도착한 락콜드 스티비 스틴은 입구부터 줄곧 느껴졌던 묘한 감각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그렉 하트의 안내를 받아서 훈련장에 도착한 락콜드는 그곳에 가득 모여 있는 젊은 선수들을 보며 쓰게 웃었다.
자신은 아직 의심을 받았고.
시험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여기 이놈들이 너에게 한 수 배워보고 싶다고 해서들 말이야. 괜찮겠지?”
“그야 물론이죠. 그렉.”
락콜드는 당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옷 좀 갈아입고요.”
“그래, 기다리지.”
그렉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락콜드는 긴장을 애써 감추며 락커룸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먼저 샤워를 했다.
‘할 수 있다.’
그렇게 자기 세뇌를 했다.
그동안은 괜찮았다.
트레이너와의 훈련은 잘 되었고, 현역으로 복귀해도 좋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러므로 버틸 수 있으리라.
아니, 아니지.
가능하다.
할 수 있다.
그렇게 몇 번이고 되뇌며 몸을 씻고 나온 락콜드는 머리를 탈탈 털어내다 이내 스포츠백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싶어서 가져온 진통제.
“…….”
벌써 몇 년 동안 진통제와는 담을 쌓고 살아왔던 락콜드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강렬한 유혹을 느꼈다.
하지만 거기에 손이 가기 전.
신이 슬쩍 나타났다.
“락콜드.”
“어? 어어. 신.”
“다들 기다리고 있다고요.”
“……고맙다.”
하마터면 유혹에 빠질 뻔했다.
통증으로 인해 지레 겁을 먹을 뻔했던 것을 신이 도와주었다. 락콜드는 솔직하게 인사하고 락커룸을 나섰다.
그리고 기다리는 건.
“왔군.”
그렉 하트와 선수들.
다들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무척이나 흥분해있는 상태였다.
그들에게는 팝의 황제인 미라클 잭슨과 춤을 추는 후배 뮤지션이 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그 공기를 알아차린 락콜드는 피식 웃으며 그렉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너무 무겁게 가지 말죠.”
“……미안하네.”
“아뇨, 당연한 거죠.”
락콜드와 그렉 하트의 관계는 특별했다.
현역 시절, 락콜드가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게 바로 당시의 아이콘이었던 그렉 하트와의 대립.
하지만 그렇기에.
그렉 하트는 이 남자가 과연 제대로 경기를 뛸 수 있는 상태인지를 철저하게 확인해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시작된 훈련.
선수들이 밑으로 내려왔고 링에는 그렉 하트와 함께 운 좋게 첫 번째 선수가 된 쟈니 에이스가 서있었다.
그렉 하트가 입을 열었다.
“모의 경기라고 생각해봐라!”
“……어차피 다 짜고 치는 건데 여기에 무슨 모의 경기가 있습니까?”
“신.”
“예, 그렉.”
“들어가 있어라.”
“아, 알겠습니다. 조용히 할게요.”
신은 그렉의 옆에 섰다.
그걸 또 미워할 수만도 없어 피식 웃은 그렉 하트는 이어지는 쟈니와 락콜드의 모의 경기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프로레슬링에서 모의 경기는, 선수의 순발력과 몰입, 연기력을 확인하기 위한 요소로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렉 하트가 개발한 방법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경기 중반! 관객 반응이 죽었다!”
그런 식으로 상황을 제시하면 두 선수가 경기를 시작하는 형식이었다.
경기 중반.
체력이 절반 정도라고 보고.
곧바로 쟈니가 무릎을 꿇자 락콜드가 상황을 알아차리고 가까이 다가왔다.
바로 그 순간 이어지는 반격.
퍼억!
복부에 주먹이 꽂히자 락콜드는 고통스러운 표정과 함께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반격.
거기에서 나오는 ‘반응’.
[Boooooooooooooooo-!]
그렉 하트가 스마트폰으로 녹음된 팬들의 반응을 보여주면 거기에 선수들이 대응하는 형식이었다.
쟈니는 야유를 받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아이콘 선수인 락콜드를 상대로 우위를 잡으니 당연히 나올 반응이었다.
‘그렇다면.’
쟈니는 군말 않고 주도권을 락콜드에게 넘기기 위한 행동에 들어갔다.
로프 반동.
이후 달려든 락콜드가 힘껏 뛰어올라 쟈니를 덮치며 루 테스 프레스를 썼다.
말은 거창했지만.
상대를 향해 뛰어 올라 덮치며 넘어 뜨려 그대로 주먹질을 해대는 기술.
락콜드 스티비 스틴이 가진 ‘브롤러’로서의 면모가 발휘되는 부분이었다.
그 호쾌한 무브에 선수들은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을 꾸욱 참아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씩.
“다음!”
그렉 하트의 지시에 따라 위로 올라간 이들이 락콜드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락콜드는 선수들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눈에 띄게 지쳐 갔다. 하지만 그렉은 계속해서 선수들을 위로 보냈다.
그런 상황에서.
“다음……!”
“갑니다!”
“뭐?”
신이 로프 위로 올라갔다.
“엉덩이 치워. 드류. 내 차례니까.”
“아, 옙!”
신의 장난스러운 말에 그 손을 잡고 일어난 드류가 링 아래로 내려갔고 신은 락콜드와 마주 보고 섰다.
“허억, 커헉…….”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하면서도 땀으로 범벅이 되고 눈이 퀭한 락콜드는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약 10분째.
이래서야 체력 소모가 훨씬 큰 경기에서 제대로 된 시합을 할 수가 없는 상태라고…… 모두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오직 그렉 하트만큼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녀석이 무언가를 하리라.
기분이 나빠야 할 상황이었다.
“…….”
그럼에도 그렉 하트는 이내 못 말리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말했다.
“경기 후반! 관객 반응이 최고다! 너희 두 사람의 경기는 역사에 남아!!”
그렇게 외치자.
신은 돌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응?”
“어?”
“……?”
선수들이 순간 의아해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그렉 하트와 락콜드는 지금 신이 제시한 상황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일본 스타일이었다.
‘아버지는 싫어하시겠지만.’
자신은 일본 레슬러들도 꽤 존경하는 편이었으므로 경기에 이런 스타일을 한 번쯤은 적용해보고 싶었다.
‘하리테’.
락콜드가 마주보고 앉았다.
두 명의 선수는 경기의 종반부.
체력적으로 한계에 달한 상태에서 이제 악과 깡 외에는 전혀 남지 않았다.
신이 락콜드의 뺨을 후려쳤다.
쫘악-!!
락콜드가 거기에 반격했다.
쫘악-!!
“덤벼!”
버럭 소리치는 신.
“우오오!!”
거기에 반격하는 락콜드.
체력적으로 앉아서 시간을 벌면서도 경기의 열기를 놓치지 않는 좋은 스팟.
“……못 말리겠군.”
그걸 지켜보던 그렉은 쓰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