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4.
“그만!”
짝!
그렉 하트가 손바닥을 쳤다.
‘하리테’로 시작한 공방은 점점 고조되었고 신과 락콜드는 결국 경기의 마지막 부분을 훌륭하게 연출해냈다.
서로 천천히 일어서며 계속 주먹질을 하다가, 신이 로프 반동을 하면서 락콜드가 쉴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건 일종의 시위였다.
‘이렇게 할 테니 상관마쇼.’라고 말하는 듯한 모의 경기.
그걸 끝까지 본 그렉 하트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락콜드가 벌러덩 자리에 드러누웠다.
“허억, 허억…….”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서 괴로워하는 락콜드의 모습을 본 그렉은 뒤쪽의 다른 선수들에게 슬쩍 신호를 보냈다.
아무리 그래도 락콜드의 이런 모습을 후배 선수들이 보지 않았으면 했다.
다행히 눈치 빠른 쟈니 에이스가 나서서 선수들이 락커룸으로 들어갔고 이내 훈련장에는 묘한 적막이 흘렀다.
락콜드가 숨을 몰아쉬었고.
반대편으로 물러선 신은 쌩쌩했다.
그 대비가 어쩐지 좀 서글프다고 생각하며 그렉 하트는 링으로 올라갔다.
“락콜드. 괜찮나?”
“이 정도야, 껌이죠.”
“입에 침이나 바르게.”
“흐흐, 다 저놈 덕분이죠.”
“그래, 신.”
그렉은 반대편 코너로 물러나있던 신의 얼굴을 보며 추궁하듯이 물었다.
“끼어들지 않는다면서?”
“그러려고 했는데요.”
신은 너스레를 떨었다.
“그렉 당신이 은퇴한 지가 좀 돼서 그런가. 하나 착각하는 게 있는 것 같아서요.”
“그게 뭐지?”
“프로레슬링이 격투기는 아니죠.”
“흐음.”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신의 생각은 이러했다.
회사에서 걱정하는 것은 혹시라도 체력이 떨어진 와중 위험한 범프를 접수하다가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였다.
“하지만 그런 건 경기의 드라마만 적당히 잘 짜면 극복 가능하리라 봅니다.”
“어떤 식으로?”
“방금 보셨듯이.”
호흡을 일부러 길게 가져가는 거다.
“그리고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페이퍼뷰는 ACW가 먼저 열린다.
그러므로 코디 로스와 격렬한 경기를 치른 신이 백 퍼센트가 아닌 몸 상태로 락콜드와의 경기에 나온다면?
“배를 다쳐서 수플렉스도 못 쓰고 근성으로 주먹질밖에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다면…… 좋은 그림이 나오겠죠.”
“확실히 그렇군.”
그렉이 납득했다.
“물론 락콜드가 그런 부킹을 해도 괜찮다는 전제 하에 말씀드리는 거지만.”
“난 괜찮다.”
락콜드는 단박에 대답했다.
“오히려, 아니.”
“응?”
“……난 괜찮다.”
락콜드가 손을 내밀었고 그렉 하트가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을 도와주었다.
“난 지금 내 주제를 잘 알아. 제대로 된 경기를 치르기에는 너무 위험하지.”
그럼에도 지금이 아니면 정말로 기회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 복귀를 선택했다.
그리고 참 다행히도 그 상대가 되어줄 선수는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상대였다.
SIN.
이 시대 최고의 선수.
“염치없다는 걸 잘 알지만…….”
“제기랄, 그게 무슨 소리에요?”
“뭐?”
“정신 차려요. 락콜드. 그 어떤 멍청이가 ‘락콜드 스티비 스틴’이 싸워주겠다는데 민폐라고 생각을 하겠어요?”
“그건 맞는 말이지.”
눈치 빠른 그렉이 거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땀으로 범벅이 된 락콜드는 순간적으로 눈을 글썽거리며 감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시대 최고에게 받은 인정.
그것은 오랜 시간, 자신이 ‘락콜드’였음을 잊고 살아온 남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 * *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요?”
[그래, 항상 하던 표현이 있지.]
그렉 하트는 잠시 뜸을 들였다.
WWF 본사 사무실.
안경을 쓴 채로 전화를 받고 있던 티파니는 저도 모르게 눈썹을 찡그렸다.
그렉 하트에게 일을 위임해둔 주제에 의심을 하고 있는 자신의 태도가 딱히 좋지는 못하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거대한 회사의 수장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서 확실히 의견을 제기해야만 하는 처지였다.
어쩔 수가 없었다.
프로레슬링만 생각하면 되는 그들과는 달리 그녀는 회장이 된 이후로 업계 전체를 생각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으니까.
그렇기에.
전 회장이었던 남자가 그로 인해 성격이 좀 더 괴팍해진 것이 아닐까 하는 묘한 가설을 하나 세우게 되었다.
선수들은 매번 기록에 남을 법한 위험한 범프를 수행하고 싶어 했지만, 방송사는 절대 그걸 허락해주지 않았고.
반대로 시청률은 어느 정도 화제성이 있는 범프가 있어야 올라갔지만, 또 너무 선을 넘으면 경고가 들어왔다.
그 사이에서의 줄타기.
아니, 그런 문제뿐만 아니라.
최종 결정권자의 입장이 되어보니 선수들을 마냥 믿을 수만도 없었다.
그것을 어렵사리 버텨가고 있는 자신에 대한 약간의 환멸감으로 인해 티파니 맥센은 요즘 고민이 많아졌다.
하지만 이어진 그렉의 말을 듣자니.
‘그래, 그렇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렉은 이렇게 말했다.
[신을 믿자고. 신을.]
“…….”
[지금까지 그 친구가 보여준 기적 같은 모습을 생각하면, 이번에도 분명 뭔가 제대로 보여줄 것 같단 말이지.]
“그렇, 겠죠?”
[아, 그리고 신이 전하라던데.]
“뭘요?”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말이야.]
“…….”
티파니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그것은 지금 그녀가 하는 고민을 한순간에 날려주는 통쾌한 발언이었다.
“고마워요. 그렉.”
[별말씀을.]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그래.’
이것이 자신의 역할이었다.
조율자.
* * *
6월 초에 개최될 예정인 ‘오버 더 라이트’는 사실 그렇게까지 거대한 비중을 가진 페이퍼뷰는 절대 아니었다.
애초에 ‘대형’이라고 누구나 인정할 만한 대립은 4대 페이퍼뷰까지 이어지고 결말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4월의 레슬 임페리움.
8월의 섬머 수플렉스.
11월의 링 서바이벌.
1월의 킹스 럼블.
하지만 락콜드는 그런 모두의 예상을 깨고 단 한 경기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오버 더 라이트에는 예전과 달리 엄청난 관심이 집중되었다.
순간적으로 암표 가격이 크게 치솟아서 회사로서도 그 처리에 애를 먹었다.
ACW의 데릭 비숍은 ‘락콜드 같은 카드를 그냥 오버 더 라이트에 소진하다니 바보 같은 선택’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딱히 수익을 생각한 대진은 아니었기에 WWF는 그대로 밀고 나갔다.
신과 락콜드는 WWF 월드 챔피언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을 이어나갔으며.
끝끝내.
5월 28일, 월요일 밤의 버닝콩.
두 사람의 경기 계약식이 열렸다.
먼저 링에 나선 것은 락콜드였다.
쨍그랑-!
[Waaaaaaaaaaaaaaaaaaggghhh!!]
팬들의 어마어마한 환호성.
그게 순간 아드레날린을 치솟게 했고 락콜드는 그대로 커튼을 걷고 나섰다.
모두 잊지 않았다.
그 순간을 잊지 않았다.
자신이 이루었던 업적이, 지금 이 시대에서도 여전히 통용되고 있음을 알게 된 락콜드는 로프를 밟고 올라갔다.
머리 위로 두 주먹을 번쩍 들자.
[Yeeeeeeeeeeeeeeeeeeeaaaahhh!]
예전처럼 필름 카메라를 쓰는 시대가 아니라 플래시 라이트가 터지지는 않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락콜드의 뒤를 이어.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현 시대의 아이콘이 링으로 나왔다.
가죽 재킷에 선글라스.
WWF와 ACW, 두 개의 월드 챔피언 벨트를 어깨에 짊어진 신은 입을 꾹 다문 채 천천히 링으로 올라갔다.
두 아이콘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과거와 현재가 한 장소에 섰다.
[Uooooooooooooooooooohhhh!!]
금방이라도 서로 주먹을 날릴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잔뜩 흥분한 신은 처음부터 자신이 마이크를 쥐었다.
덕분에 할 말이 없어진 링 아나운서가 당황하는 모습이 순간 지나갔다.
“드디어, 코앞까지 다가왔군. 과거와 현재가 오버 더 라이트에서 한판 붙는 거야. 멋진 경기가 되겠지.”
처음에는 락콜드를 과거의 유물이라면서 무시했던 신은 대립을 통해 점점 그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락콜드 스티비 스틴이라는 남자의 위상을 잘 이해하지 못하던 현 시대의 팬들도 그것을 점차 받아들였다.
단순히 과거의 아이콘이라는 이유만으로 인정받는 게 아닌, 현실의 상황에서 교묘하게 따온 각본이었다.
락콜드는 링 위에서 자신의 카리스마를 직접 보여주면서 팬들을 설득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곳에 섰다.
락콜드가 입을 열었다.
“너도 이걸 느끼는 모양이군.”
[What?]
“이 팬들의 열기를.”
[What?]
“모두가 이 경기를 바라고 있지.”
[What?]
“그리고 말해두자면 나는 네놈의 엉덩이를 흠씬 걷어차 줄 생각이다.”
[What?]
[Waaaaaaaaaaaaaaaaggghhhh!]
마지막 한마디가 환호와 뒤엉켰다.
락콜드는 일부러 숨을 몰아쉬며 신을 노려보았다. 그런 상황에서 신은 피식 웃으며 상황을 다시 끌고 왔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Uoooooooooooooooooohhh!!]
“당신이 내 엉덩이를 걷어차 준다는 말에 동의하는 게 아니야. 락콜드. 팬들이 이 경기를 정말 원하고 있다는 사실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고. 지금은.”
과거와는 달리 말이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는 좀, 그랬어. 존나 대단한 남자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이제는 10년이 넘게 지났다고.”
이제는 그 시대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신은 경기를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락콜드는 증명했다.
자신이 아직도 싸울 가치가 있는 상대임을 그 여전한 카리스마를 통해 신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니 결국.
“해보자고. 락콜드. 나는 이 벨트를 두를 가치가 있는 남자임을 오버 더 라이트에서 다시 한 번 증명하겠어.”
[Yeeeeeeeeeeeeeeeeeeaaaahhh!!]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쏟아지는 챈트.
그런 가운데 팬들을 돌아본 락콜드는 타오르는 듯한 열기를 느끼고 웃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넌 정말 대단한 놈이야. 신.”
[Uoooooooooooooooooooohhh!!]
“지금 업계에서 그 누구도 올라와보지 못한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 누구도 너라는 놈을 의심하고 있지 않지.”
단체 간 더블 타이틀 홀더.
평범한 선수였다면 분명 역반응을 받았을 터였다. 하지만 팬들은 신을 믿었고 역반응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것도 숀 시나를 상대했는데.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바로 반발을 하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그걸 인정하게 만들었다.
간단한 의미였다.
신이 그 정도의 선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락콜드 스티비 스틴을 상대로 하면서도 너는 ACW의 코디 로스인지 뭔지 하는 애송이도 상대하지.”
락콜드는 신의 왼쪽 어깨에 걸려 있는 ACW 월드 챔피언 벨트를 가리켰다.
“저것도 지키고.”
반대로 WWF 월드 챔피언 벨트까지.
“네 각오를 들어보고 싶군. 신. 네가 이 락콜드 스티비 스틴에게 맞서서 그 벨트를 지키기 위한 각오를 말이야.”
[Uoooooooooooooooooohhhh!!]
팬들도 호기심을 느낄 이야기였다.
한 달에 두 번의 챔피언십 매치를 치른다는 건 이전까지의 선수들은 겪어본 적이 없는 하드코어한 스케줄이었다.
신은 미소를 지었다.
“왜냐니. 그야 당연히…….”
신은 어깨의 벨트를 들었다.
그리고.
락콜드의 어깨에 올려놓았다.
“이게 원래 당신 거였으니까.”
[Uooooooooooooooooooohhhh!!]
“1998년 레슬 임페리움. 거기에서 당신은 존 마이클스를 상대로 승리해 처음으로 WWF 챔피언에 등극했지.”
그리고 시간은 흘렀다.
온갖 선수들을 거쳐서 계속 이어져온 벨트는 선수들의 꿈과 눈물 그 자체.
락콜드가 다시 타이틀을 넘겨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었군.”
“그래, 맞아. 이제 챔피언은 나지. 이후로도 다른 어떤 개자식이 운 좋게 내 손에서 타이틀을 빼앗아갈 테고.”
그런 타이틀이었다.
지금까지 이 프로레슬링이라는 업계에서 종사해온 수많은 선수들이 가치를 남기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벨트였다.
그러므로.
과거에게 부정당할 수는 없었다.
“바로 당신이 그 과거지.”
“…….”
“난 항상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가, 그리고 나 자신이 최고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싸우고 있어.”
그러므로 과거의 선수에게 패배할 수는 없었다. 타이틀은 언제나, 이 업계는 언제나 계속해서 전진해야만 했다.
그 말이 맞았다.
락콜드는 납득했다.
확실히 이놈 이외는 없었다.
자신을 존중하면서도 확실히 선을 긋는 게 챔피언으로서 품격이 느껴졌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챈트가 쏟아지는 가운데.
락콜드는 미소를 지었다.
“네가 그런 남자라서 돌아온 거다.”
[Uoooooooooooooooooooohhh!]
“그리고 내가 이런 남자라서 돌아온 거지. 이게 참, 어쩔 수 없는 문제야.”
락콜드가 먼저 사인을 했다.
그리고 말했다.
“……누군가가 말했지.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느냐.’ 그런 목으로 더 싸울 필요는 없다. 지긋지긋하게 들었어.”
또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One More Match. 락콜드, 당신이 다시 돌아오면 정말 업계에 태풍이 들이닥칠 거다. 상반되는 의견이지.”
그리고.
락콜드는 원체 그렇듯이.
“둘 다 마음에 들지 않아.”
씨익 웃었다.
“나는 One More Match를 위해서도, 링 위에서 죽기 위해 돌아온 것도 아니야. 나는 그저. 돌아온 것뿐이다.”
신과 싸우고 싶어서.
“전에 너에게 다른 이유가 있다는 듯이 말했었지. 하지만 아니야. 다들 뭔가 기막힌 걸 기대하는데, 아니야. 이 락콜드 스티비 스틴은 그래…….”
락콜드 스티비 스틴이라서.
그렇기에 돌아왔다.
락콜드는 팬들을 돌아보았다.
“신이 락콜드 스티비 스틴을 꺾을 거라고 생각하면, Gimme A Hell Yeah!”
[Hell Yeah!!]
“락콜드 스티비 스틴이 신을 꺾을 거라고 생각하면, Gimme A Hell Yeah!”
[Hell Yeah!!]
이유 따위 붙이지 않는다.
한 방 먹은 신은 어이가 없다는 웃으며 락콜드가 건네는 펜으로 사인을 했다.
그렇게.
경기가 성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