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8.
그렇게 경기가 끝났다.
힘들……지는 않았다. 전혀.
애초부터 경기가 운동 능력을 보여주기보다는 심리적인 치열함에 더 초점을 맞추고 진행이 됐기 때문이었다.
쉬는 시간도 많았고 경기 시간 자체도 그다지 길지 않아서 경기가 끝난 뒤로도 내 체력은 완전히 쌩쌩했다.
락콜드는 목 상태에 대한 검사를 받았고, 나는 그동안 짜증을 내는 링 프로듀서들의 앞에서 변명을 해야만 했다.
“죽었으면 어쩌려고 그러냐!”
“프로레슬링은 살인이 아니라고!”
“……죄송합니다. 앞으로 안 할게요.”
신은 그렇게 혼이 났다.
사실, 이게 당연했다.
프로레슬링은 어디까지나 협의가 중요했다. 하지만 신은 종종 이런 식으로 경기의 합을 깨는 짓을 저질렀다.
물론 그런 애드리브가 언제나 죽여줬고, 신이 선수로서 언터쳐블의 위상이었던지라 징계를 받지는 않았지만.
업계의 다른 선수들에게 나쁜 선례로 남지 않기 위해 일단 혼이 나긴 했다.
티파니도 일부러 끼어들지 않았고.
그렇게 이어지던 프로듀서들의 갈굼(?)은 락콜드의 상태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사인이 나오면서 일단락되었다.
락콜드 본인이 멀쩡하게 돌아와서 프로듀서들을 달래며 신을 구해주었다.
그렇게 대충 상황이 정리되었고.
“후우.”
“미안하다. 괜히 나 때문에.”
“아닙니다. 잘 되서 다행이죠.”
신은 락콜드의 등을 툭 쳤다.
그러자니 락커룸에서 상황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선수들이 밖으로 나왔다.
“신!”
“정말 죽여주는 경기였습니다!”
“이 새끼, 또 사고 쳤네!”
거한들이 달려들어 자신을 둘러싸자 신은 부담스러워 슬쩍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그걸 놔둘 선수들이 아니었다.
촤악-!
‘또’ 랜스 오튼이 나서서 얼음 버켓을 뿌렸고 신은 한기에 몸을 떨었다.
그걸 지켜보던 락콜드는 피식 웃으며 선수들 사이를 헤치고 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말을 걸었다.
“다 네 덕이다.”
“벽을 넘으셨다고요.”
“그리고 사실 놀랍게도, 너에게 이야기를 안 한 게 하나 더 있다만.”
“뭐죠?”
“잠깐 기다려봐라.”
그렇게 말한 뒤, 락커룸 안으로 들어선 락콜드가 무언가를 가지고 나왔다.
작은 아이스박스.
그 안에서 본 적이 없던 해골 모양이 인쇄된 캔 맥주가 두 개 나왔다.
“원래는 둘이서 조용히 마실까 했지만, 한 모금씩 나누면 되려나?”
“그게 뭡니까?”
“이번에 출시할 내 맥주다.”
“……?”
“스티비 스틴의 스컬 IPA.”
“거 참. 복귀 이유로 충분하네요.”
신은 어이가 없어져 웃고 말았다.
하지만 맥주 맛은 정말 죽여줬다.
* * *
그리고 다음 날 이어진 애프터 쇼.
각 선수들이 대립을 끝내고 새로 시작하는 가운데 찾아온 메인이벤트.
링에 오른 락콜드 스티비 스틴은 가장 먼저 이렇게 말을 꺼냈다.
“이 락콜드 스티비 스틴은 이 업계의 역사에서 절대 지워지지 않을 환상적인 시간과 기록을 만들었지. 다들 여기에 동의한다면 Gimme A Hell Yeah!”
[Hell Yeah!]
경기장에 모인 팬들 모두가 외쳤다.
비록 경기에서는 신에게 패배했지만 락콜드는 팬들의 리스펙트를 받아냈다.
[You Still Got It!]
[You Still Got It!]
[You Still Got It!]
락콜드에게는 아직 선수로 뛸 수 있는 능력이 남아 있다. 그것을 인정받은 락콜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런 순간을 다시 겪을 줄이야.”
노장은 그렇게 감상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들었다.
바로 그게 신호였다.
“그리고 신, 그 개자식이 어제 링에서 보여준 건 놀랍도록 인상적이더군.”
[What?]
“그 개자식은 이 락콜드 스티비 스틴을 링에서 당당히 쓰러뜨렸고.”
[What?]
“더블 타이틀 홀더이며.”
[What?]
“오늘도 나와 함께 맥주를 마시러 이 링에 나올 정도로 깔끔한 놈이지.”
[Yeeeeeeeeeeeeeeeeeeaaahhh!!]
거기에서는 환호가 나왔다.
락콜드가 마이크를 던지고 입장로 쪽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팬들도 챔피언의 등장을 기대하며 돌아보았다.
그리고 시작되는 입장 테마.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Waaaaaaaaaaaaaaaaaaaggghhhh!]
신이 어깨에 두 개의 월드 챔피언 벨트를 짊어진 채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링으로 올라간 그는 락콜드와 얼굴을 마주하고 섰다.
그리고 물었다.
“제가 드디어 그 유명한 RockCold의 Beer Party라는 것을 해보게 되는군요.”
“분명 즐거울 거다.”
싱긋 웃은 락콜드가 돌아섰다.
그리고 손을 번쩍 들자 링 아래에 서있던 직원이 준비된 캔 맥주를 던졌다.
그것을 솜씨 좋게 받는 락콜드.
한 캔 더.
그렇게 캔 맥주를 품에 든 락콜드가 뒤로 돌아서서 신에게 하나를 던졌다.
씨익 웃으며 그걸 받아든 신은 곧바로 뚜껑을 따고 락콜드와 건배를 했다.
파앙-!
호쾌한 파열음.
거품이 잔뜩 튀어 올랐고,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맥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Waaaaaaaaaaaaaaaaaaaggghhh!]
쏟아지는 환호.
쨍그랑-!
시작되는 락콜드의 음악.
파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락콜드는 직원이 계속 던지는 맥주를 받아 코너를 타고 로프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캔 맥주 두 개를 양손에 들고 힘껏 부딪힌 뒤 그대로 털어 넣었다.
링 위에 마구 흩날리는 맥주.
신도 질 수 없다는 듯 손을 들었다.
맥주 두 개를 받아든 그 역시도 락콜드처럼 코너 로프를 밟고 올라섰다.
그리고 캔을 부딪쳤다.
파앙-!
호쾌한 파열음.
‘거의 반 이상이 여기서 날아가는군.’
그렇게 생각한 신은 씨익 웃으며 그대로 맥주를 입 안에 모조리 쏟아냈다.
그래도 마냥 즐거웠다.
아래로 내려오자 락콜드가 굳이 상표 부분을 확대해서 카메라가 잘 찍을 수 있도록 보여주는 게 신경이 쓰였지만.
‘이게 목적 중 하나였군.’
그는 어처구니가 없어 웃었다.
그러자니 락콜드가 마이크를 들었다.
[맥주가 부족하잖아! 사람도 부족해! 다 튀어나오라고! 이제 시작이니까!]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맥주 트럭이 나타났다.
[Uoooooooooooooooooooohhhh!]
락커룸의 선수들이 가득 들어찬 트럭을 운전하고 있는 건 랜스 오튼이었다.
웨이드 개럿 같은 악역은 어쩔 수 없이 빠졌지만 업계에서 존중을 받는 선수들 대부분이 그렇게 링으로 나왔다.
그리고 파티는 계속되었다.
락콜드는 신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했다.
“가봐.”
“예? 제가요?”
“너에게는 자격이 있다.”
신은 맥주 트럭 위로 올라탔다.
과거 락콜드 스티비 스틴이 그랬듯이, 트럭 안에서 호스를 꺼내든 신은 경기장 전체에 힘껏 맥주를 뿌려댔다.
[Waaaaaaaaaaaaaaaaaaaaggghhh!]
환호 속에서 정신 나간 파티가 벌어졌다. 신은 각본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 낄낄 웃으며 술을 마구 뿌려댔다.
그 옛날.
락콜드 스티비 스틴은 자신을 엿 먹였던 바트 맥센, 케인 맥센, 더 팍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맥주 트럭 쇼를 펼친 적이 한 번 있었다.
이건 그에 대한 오마주인 동시에.
여름이 슬슬 찾아오는 경기장의 열기로 한계에 달해 있던 팬들의 더위를 그야말로 싹 날려주는 퍼포먼스였다.
신은 IPA 맥주가 뿜어져 나오는 호스를 손에 쥐고 마구잡이로 휘둘러댔다.
랜스 오튼이 바닥에 미끄러져 넘어지자 놈의 얼굴에 중점적으로 뿌려댔고.
“신!!”
몇몇 선수들이 스크럼을 짜면서 나섰고 신은 그들의 얼굴에 호스를 겨눴다.
[Uooooooooooooooooohhh……!]
버티는 듯하던 선수들이 넘어갔고 경기장의 팬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그렇게.
락콜드 스티비 스틴의 마지막 퍼포먼스는 또 다시 역사를 갱신하며.
이 업계의 한 페이지에 남았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스티비 스틴의 스컬 IPA’가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가고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다.
“…….”
이걸 좋다고 봐야 하나.
어쨌거나 덕분에 락콜드 영감은 딱히 노후 자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돈을 벌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뭐랄까.
순간적으로 우리 대결에 그런 목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어쩐지 좀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이내 웃음이 나왔다.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그래도 그날은 죽여줬다.
메인이벤트의 마지막에 팬들은 락콜드가 링을 떠나려 하자 ‘One More Match!’를 외쳐대며 붙잡았고.
락콜드는 이렇게 말했다.
‘Never Say Never.’
그 뜻을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절대’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좋은 날이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슬슬 다시 여름이 오고 있는 가운데.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정말로 빡센 스케줄이었다.
일주일에 8일 정도 일하는 기분이었다. 옛날의 하드코어했던 바트 맥센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싶어서 이런저런 대외 행사에 빠짐없이 더블 챔피언으로서 참가했던 나는 어느 날 알게 되었다.
“…….”
체중이, 늘었다.
뱃살이 잡혔다.
그러고 보면 나는 식사량이 많은 편이었고 그걸 운동으로 매번 커버했다.
그리고 선수에서 은퇴한 뒤에는 운동을 전혀 안 하다 보니 살이 엄청 쪘다.
그 공포가 순간 엄습해왔다.
‘이럴 수는 없어!’
최대한 빨리 타이틀을 내려놓고 평범한 선수 스케줄을 소화하고 싶어졌다.
전처럼 체력을 안배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면 다시 운동을 빡세게 해서 선명한 복근을 되찾을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더블 타이틀 홀더인 나는 현재 WWF와 ACW, 모두와 계약을 한 상태였다.
그러므로 PWA까지 포함해 총 세 개의 단체가 협의해 나를 ‘사용’했는데.
문제는 PWA는 그렇다 쳐도, WWF와 ACW에서 벨트를 쉽게 내려놓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기인했다.
그걸 폴 헤이건은 이렇게 설명했다.
‘넌 돈이 되니까.’
벨트를 내려놓게 해서 굳이 상대 단체로 보낼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겠지.
하지만 그 말대로라면.
나는 아무래도 앞으로 당분간은 챔피언 벨트를 내려놓지 못한다는 것이리라.
사람 마음이 참 간사했다.
그토록 원하던 월드 타이틀을, 그것도 두 개 모두를 동시에 손에 넣었는데 빨리 내려놓고 싶어지다니 말이다.
그래도 대충 할 마음은 없었다.
2012년 6월 중순.
락콜드와의 대립이 끝나고 일주일.
외부 스케줄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호텔로 돌아온 나는 WWF와 ACW의 의견이 종합된 메일을 하나 받았다.
일단 ACW 측에서는.
‘러셀?’
타이틀을 지키는 걸로 가자고.
나는 순간 눈썹을 찡그렸다.
아무리 그래도 러셀과의 두 번째 시합에서 내가 이기면 놈의 이미지를 너무 깎아먹는 게 아닐까 싶어졌다.
‘이건 좀 어떻게든 해야겠군.’
러셀은 다음 경기에서 나를 이겨야만 했다. 그래야 이 프로레슬링 업계에 흥미가 생기고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지.
안 그래도 작년 스타게이트에서 유지한 타이틀을 계속 지켜왔던 나인데.
슬슬 내려놓을 때기는 했다.
나는 러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 무슨 일이야.]
“야, 이걸 그냥 부킹하게 뒀냐?”
[역시 비숍의 생각대로 올라갔나?]
“그래, 내가 널 다시 이긴다고 하더군. 이렇게 되면 엄청난 손해야.”
[요새 비숍이 날 견제하는 거 같아서 말이야. 나도 전적이 있는 만큼 안 당하려고 해봤는데 결국 고집을 부렸네.]
“어쩔 거야?”
[내 생각은 이번에 널 쉬게 하고 우리끼리 토너먼트를 열어 여름에 도전할 사람을 결정할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
[신?]
“그, 그래줄 수 있냐?”
[왜 약한 소리야? 솔직히 나는 네가 이 의견을 받아들일까 걱정이었는데.]
“아, 아니 요새 살이 좀 쪄서.”
[푸하하하! 스케줄 빡세면 그럴 수도 있지. 우리 먹는 양으로는 평범하게 생활하면 금방 살이 찌잖아?]
“제발 이 타이틀 가져가라.”
[한 달만 기다리고. 그러면 우리 쪽에는 격주에 한 번씩 바람 잡는 역할로 나와줬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나야 너무 고맙지.”
러셀은 좋은 놈이었다.
그걸 해낼 수 있을까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믿고 맡겨두자고 생각한 나는 전화를 끊고 메일을 계속해서 확인했다.
PWA는 평소와 같이 내가 하는 대립을 PWA에서도 진행해서 시청률 상승에 도움을 받고 싶어 했고.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WWF.
그들이 내세운 대립 상대는.
“빅 죠?”
나는 황당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빅 죠.
그가 누구인가.
90년대 중반 데뷔해 이제는 그 커리어의 황혼기에 접어들고 있는 레전드.
사실.
내 챔피언 집권기의 두 번째 상대로 그는 사실 적절하지 못한 감이 있었다.
위상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나는 이제 슬슬 후배 선수들을 상대하며 그들을 띄워주는 입장이어도 될 테니까.
하지만 나는 빅 죠가 상대라는 것을 보자마자 티파니의 의도를 깨달았다.
그녀는 화가 났다.
바로 얼마 전의 일이었다.
빅 죠는 트리플H가 주관하는 WWF의 새 산하 단체인 MXT로 내려가 신인들과 경기를 하나 치르게 되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챈트를 하나 들었다.
‘Please Retire.’
제발 은퇴해라.
그리고 그게 WWF로 역수입이 되어서 현재는 빅 죠나 늙은 선수들이 나오기만 해도 Retire 챈트가 나왔다.
나는 그 방송을 실시간으로 보았고.
솔직히, 좀 열이 받았다.
‘나쁘지 않겠는데.’
말하자면 이번 대립은 빅 죠가 아니라 관객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