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9.
그로부터 며칠 뒤.
러셀에게서 좋은 소식이 도착했다.
바로, 데릭 비숍과 자신 간의 문제가 깔끔하게 처리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일정은 곧 정리해서 보낼 거야.]
“고맙다. 러셀.”
[8월에는 잘 부탁해.]
“그래, 걱정 마라.”
덕분에 7월 말까지는 빅 죠와의 대립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확보되었다.
그렇게 일이 정해진 뒤, 나는 곧바로 플로리다 주를 지나고 있는 버닝콩 팀과 합류해 각본 회의에 들어갔다.
아니, 정확히는.
……그러려고 했는데.
“빅 죠가 도망갔다고?”
“그렇게, 결론이 났네요.”
티파니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뭐라고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어, 이거.
정말로 황당한 이야기였다.
티파니가 해준 말을 종합해보자면.
나와 대립을 할 거라는 말을 들은 빅 죠가 알겠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더니 그대로 연락이 두절되어버렸다고.
“일단 회의는 내일이니까 그때까지만 회사를 오면 되긴 하는데. 지금 집에서 출발도 안 하고 있다고 해서요.”
“누구한테 들은 거야?”
“죠의 아내한테요. 하도 전화 받을 생각을 않아서 집에 전화해보니 딸들하고 치어리딩 연습을 지금 하고 있다고.”
“……이런 제기랄.”
“일단 집이 이 근처기는 해요.”
“탬파라고 했나?”
플로리다 주 탬파.
죠는 두 번째 아내와 두 딸을 낳고는 Ex-Wife의 딸까지 포함, 다섯 명이 산다고…… 얼핏 전해들은 기억이 났다.
“일단 내가 전화해보지.”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들었다.
빅 죠.
번호는 있다.
그는 훌륭한 사내였다.
2미터 20에 달하는 거대한 키와 200 킬로그램에 달하는 덩치를 가진 남자로, 솔직히 겉보기에는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그는 젠틀한 성격으로 유명했다.
동시에.
아주~ 약간~ 많이~ 감성적이었다.
‘치어리딩이라고.’
그 거대한 남자가 커튼을 뜯어서 치마처럼 두르는 모습이 순간 떠올랐다.
뚝.
전화를 받았다.
[신?]
“빅 죠! 오랜만이에요!”
나는 일부러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전화를 받는 빅 죠에게 살갑게 굴었다.
“당신 같은 거물하고 같이 일을 하게 되다니 신나는데요? 내일 회의에서 만나기 전에 먼저 전화를 드려…….”
[아, 신.]
“네?”
[나 새로운 꿈이 생겼어.]
“……?”
[치어리더 코치가 될 거야.]
전화가 뚝 끊어졌다.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뭔 코치?’
치어리더?
빅 죠가 시범을 보인다고?
다같이 힘을 합쳐서 점프 묘기를 할 때 그 아래에 있는 애들이 모조리 깔려죽고 난 다음에야 정신을 차리겠군.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그러자니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신.”
“으헉?!”
숀 시나가 서있었다.
어울리지도 않는 양복 차림의 녀석을 발견한 나는 일단 악수부터 나눴다.
“그, 그래. 시나.”
“죠하고 전화한 거야?”
“어, 근데 이게 마지막 전화 같아.”
아무래도 다시는 레슬러로 복귀할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좀 받았거든.
그러자니 시나가 쓰게 웃었다.
“아무래도 너랑 대립하기 싫다고 지금 시위를 하고 있는 거 같은데.”
“나하고? 왜? 나 문제없어!”
“문제는 죠에게 있지.”
시나가 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나는 녀석에게서 그동안 락커룸에서 있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꽤 상처를 받은 모양이더라고.”
“…….”
“솔직히 그럴 만하지. Retire 챈트는 안 그래도 그걸 생각하고 있는 입장에서 정말로 듣기 싫었을 거야.”
그런 상황인 만큼 빅 죠는 나와의 대립에 분명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팬들이 젊은 선수들의 앞을 가로막는 선배로 취급해 다시 ‘Please Retire’ 챈트를 보낼지도 모르니 말이다.
바로 그건 시나가 테이커를 뒤를 이어서 WWF 전체의 락커룸 리더가 되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문제가 이렇게 될 줄이야.’
나는 고민에 빠졌다.
나는 팬들의 ‘Please Retire’ 챈트를 부정하기 위해 죠와의 대립을 택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저러면.
“…….”
아니, 제기랄.
답은 결국 하나밖에 없나.
* * *
그 방법이란 간단했다.
내가 직접 죠의 집으로 찾아가 하룻밤 자면서 차분하게 설득하는 거였다.
물론.
딱히 그래야 할 이유는 없었다.
더욱이, 나는 WWF 소속도 아니었으므로 그런 식으로 죠를 돕지 않아도 누가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내가 그러고 싶었다.
여기까지 온 건 내가 완벽해서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었다.
그 옛날, 랙다운의 링 서바이벌.
바티스타가 실수를 한 뒤 빅 죠는 그대로 나에게 맞춰서 ‘들려’주었었다.
머나먼 과거였지만 나는 그때의 은혜를 갚아야 할 때임을 느끼고, 곧장 차를 타고 빅 죠의 집으로 향했다.
자동차로 두 시간.
가기 전에 일부러 빅 죠의 아내 분께 전화를 걸어서 좀 가도 되냐고 물었더니 정말 쿨하게 허락을 해주셨다.
플로리다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에 걸맞은 넓은 정원이 딸린 2층 저택. 바로 그곳에서 죠와 가족이 살고 있었다.
아니, 실제로는 ‘와이트’였다.
사실 오래도록 업계에서 일을 해왔지만 입에 익는 발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발음은 ‘와이엇’에 가까웠지.
하지만 그게 죠의 본명이었다.
폴 와이트.
그 부인이셨으므로 미세스 와이트.
푸근한 인상의 부인은 정원에 도착한 나를 보고 곧바로 마중을 나와 주셨다.
“신 선수.”
“안녕하세요. 와이트 부인.”
“반가워요. 어서 들어오세요.”
그 말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강아지 두 마리가 날 덮쳐 그대로 얼굴을 마구 핥아대기 시작했다.
“호호, 낯을 가리는 애들인데.”
“개들이, 어, 엄청 크네요.”
개라기보다 곰에 가깝지 않나.
입 냄새도 정말 죽여주는군.
“폴이랑 애들은 치어리딩 스쿨에 갔어요. 지금쯤 돌아올 때가 됐는데?”
“……죠도 배우는 건 아니겠죠.”
“푸하하! 설마요! 애들 아빠는 데려다주고 근처 펍에서 맥주 한 잔 하면서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겠죠.”
“그리고 운전해서 돌아오고요.”
“그 이가 덩치가 있다 보니 맥주 정도는 그냥 입가심에 불과하단 말이죠.”
“그, 그렇군요.”
생각해보면 항상 그랬다.
테이커나 카인, 죠 같은 거한들은 웬만한 술은 그냥 물처럼 마시고는 했다.
음주운전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응접실에서 기다려요. 아, 짐은 챙겨오셨나? 2층에 남는 방이 있는데. 오늘 거기에서 자도 괜찮죠?”
“차고도 괜찮습니다.”
“호호, 그럼 차고로.”
“……농담입니다.”
씨알도 안 먹혔다.
“아무튼 오늘 자고, 그 양반 데리고 내일 가면 되겠네. 아유, 안 그래도 내내 징징거려서 듣는 게 힘들었는데.”
“그, 저 혹시.”
“응?”
“죠가 제가 온다는 사실은 압니까?”
“말 안 했죠.”
“괜찮으시다면 제가 대형 동물용 마취 총을 사와도 될까요.”
“그걸로 안 돼.”
“예?”
“내가 해봤거든.”
“…….”
대체 언제 그걸 써보신 걸까.
아무튼.
역시 프로레슬러의 부인다웠다.
어.
이건 사실 일종의 스테레오 타입 같은 말이라 좀 생각조차 조심스러웠는데.
프로레슬러는 대부분 첫 번째 결혼에서 실패하고 두 번째 결혼에서 안정적인 가정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첫 번째 결혼은 보통 나처럼 불타는 사랑을 하다가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깨지는 게 많았는데.
두 번째 결혼은 그러다 대부분 생활력 강하고 기다려줄 수 있는 인내심을 가진 사람에게 잡혀 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었다.
난, 둘 다 포함됐지만.
나는 얌전히 응접실에 앉아 곰(같은 개)들에게 얼굴을 맡기고 기다렸다.
이 자식들.
내 얼굴에 꿀이라도 발린 걸까.
계속 핥아대는데, 죽을 맛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와이트 부인이 차를 내왔다.
“자스민이에요.”
“잘 마시겠습니다.”
일단 한 모금.
몸이 따뜻해지는 맛이었다.
그리고 나는 와이트 부인에게 갑작스러운 방문에 대한 인사를 먼저 드렸다.
“이거 제가 갑자기 와서 괜히 불편하게 해드린 거 아닐까 모르겠네요.”
“아뇨, 회사와 계약이 있는데 무작정 안 하겠다고 버티는 남편 잘못이죠.”
“……아, 뭐.”
그건 그런데.
“오히려 제가 감사해야죠.”
와이트 부인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 양반, 속은 완전히 어린애거든요. 겁도 많고, 누군가가 인정해줘야 겨우 움직이죠.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솔직히 신 선수가 와줘서 너무 고맙죠.”
“제가요?”
“예, 죠가 매번 당신 이야기를 하거든요. 정말 대단하다고. 다시 말해, 당신이 인정해줬으면 한다는 거죠.”
“…….”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내가 인정한다라.
‘Please Retire’가 아니라고.
“남편의 어리광이죠. 그걸 바로 들어주러 와서 정말로 고마워요. 신.”
“저는, 글쎄요.”
나는 쓰게 웃었다.
“죠에게는 빚진 것도 있고. 거기다.”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빅 죠라는 사나이의 커리어를 통째로 무시하는 듯한 MXT 팬들의 헛소리를, 솔직히 말해 혐오했다.
그걸 부정해주고 싶었다.
“남편 분은 훌륭한 레슬러입니다.”
“그래요?”
“예, 어떤 면에서 보자면 같은 빅 맨 분류로 묶이는 테이커나 카인보다도 훨씬 더 위대한 선수라고 할 수 있죠.”
“푸하하! 그건 아니죠!”
“…….”
“아, 저도 팬이라.”
“그 두 사람이 죠처럼 푸근한 캐릭터나 망가지는 캐릭터를 맡을 수는 없잖습니까? 죠는 그런 걸 할 수 있죠.”
그 덕분에 여러 번 선역과 악역을 오가면서 ‘통수를 잘 친다’는 이미지가 박히게 되기는 했지만, 뭐 그래도…….
확실히 말해서.
빅 죠는 시대를 거쳐 오며 팬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었던 레슬러였다.
그런 남자의 마지막이 그렇게 굴욕적이라는 걸 나는 인정할 수가 없었다.
“죠가 우습게 보이니까 그러는 거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시할 만한 선수는 절대로 아닌데 말이죠.”
“MXT 너드들이 그렇죠, 뭐.”
“……?”
“말했듯, 저도 팬이라.”
어.
너무 자세히 아시는데.
나는 황당한 기분을 느꼈다.
자세히 보니 차를 저을 때 썼던 티스푼이 캐스켓-테이커의 머천다이즈였다.
끄트머리가 삽처럼 된 티스푼.
‘팬이셨군.’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바깥에서 배기음이 들려왔다.
“아, 왔나 보네.”
부인이 일어섰고 나도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라가서 죠를 맞이하려고 했다.
하지만.
남자의 명예를 위해서 그러면 안 됐다는 사실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았다.
“자자, 공주님들! 빨리 들어가서 이빨부터 닦자고! 빅-커벨하고 같이!”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두 딸의 손을 잡고 있는 빅 죠의 모습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그 등에는 마트에서 5달러쯤에 판매할 것 같은 나비의 날개가 달렸고 머리에는 공주용 왕관을 쓴 채였다.
“…….”
“여보, 기다려봐. 내가 오늘 치어리더 스쿨에서 애들 멋지게 연습하는 거, 다 비디오카메라로 찍어왔으니까.”
차라리 음주 운전이 낫겠는데요.
황망해 바라보자니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든 죠와 눈이 마주쳤다.
“…….”
“…….”
“오, 신이다.”
그 뒤에 있던 첫째 딸(로 보이는) 10대 중반의 소녀가 눈을 반짝거렸다.
하지만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사람이 부모가 되면 많은 것을 희생해야만 한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다는 사실을 이제야 좀 안 느낌이었다.
* * *
“그래, 신.”
죠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태도가 명백히 체면을 차리려는 속셈임을 알아차렸다.
왜냐면.
“빅커벨! 빅커벨!”
“같이 치카포카하자!”
그 어깨 위로 올라타 고양이처럼 재주넘기를 하고 있는 두 딸 때문이었다.
“하고 칙칙폭폭도 해줘!”
“그런 다음에 푸치푸치도 해줘!”
대체 뭘 말하는 걸까.
2차 세계대전에서 빌어먹을 나치스 놈들의 비밀 암호를 엿들은 연합군 병사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무, 무슨 일이지?”
“치카포카!”
애들이 다시 외치자 죠는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뒤로 돌아서 속삭였다.
“저기, 얘들아? 아빠가 지금 일 이야기 하고 있으니까 치카포카 주카미카는 엄마랑 같이 하면 안 될까?”
“…….”
“에이, 재미없어!”
애들이 잠시 사라졌다.
그리고 뒤를 이어.
“무슨 일이지?”
죠가 다시 물었다.
“……당신 데리러 왔죠.”
“안 그래도 갈 생각이었어. 가족하고 오랜만에 같이 있는데 재촉하지 말라고. 자네도 선수라면 아는 문제 아닌가.”
“연락을 안 받으시니 그렇죠.”
“죠~!”
다시 방해가 들어왔다.
“어, 그래! 여보! 왜?!”
“여보는 무슨~! 평소처럼 불러요!”
“…….”
대체 무슨 암호가 또 있는 걸까.
나는 입을 다물었다.
죠도 곤란해하는 눈치로.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 200킬로그램에 달하는 거한이 이내 이렇게 외쳤다.
“허, 허니!”
“…….”
“날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아니, 음. 죄송합니다.”
나는 잠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죠가 순간 황당해했지만, 나는 푸근한 미국식 가정집의 향취를 맡고는 싱긋 웃으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멋진 가족이군요.”
정말 그렇게 느껴졌다.
그게 바로 빅 죠가 업계에서 남들과 다른 존재로 남을 수 있던 비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