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10.
그래도 뭐.
다 까발려(?)졌기 때문인지 죠는 이후로 더 내숭을 떨거나 하진 않았다.
그리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링을 내려온 빅 죠는 세 아이의 좋은 아빠인 동시에 든든한 남편이었다.
단지.
외양과 갭이 좀 심했을 뿐.
그날 저녁.
평범한 미국 가정답게 기도로 시작된 식사는 와이트 부인이 한껏 솜씨를 부린 미국식 가정 요리로 구성되었다.
일단 돼지고기 폭찹부터 시작해 매쉬드 포테이토, 옥수수와 라자냐, 마지막으로 랍스터 요리에 이르기까지.
‘운동해야 하는데.’
나는 순간 죄책감을 느꼈지만 요리의 유혹을 이겨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많이 들어요.”
부드럽게 웃는 와이트 부인.
나는 그렇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눈앞의 음식을 흡입해대기 시작했다.
최근 일이 빡세서 이런 식으로 챙겨먹는 일도 없었는데, 죠를 데리러 와서 괜히 힐링 받고 가는 기분이었다.
크으, 폭찹.
크으, 매쉬드 포테이토.
크으, 랍스터.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음식을 신나게 먹어치운 나는 후식으로 나온 케이크마저 먹은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망했군.’
그래도 정말 좋은 요리였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서 한 일주일 정도 푹 쉬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일은 해야만 하는 법.
나는 저녁을 먹은 뒤에도 지치지도 않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는 빅-커벨…… 아니, 빅 죠에게 다가갔다.
“죠.”
“응?”
“잠깐 이야기 좀 하죠.”
“지금은 좀 그렇고……. 이제 곧 애들 잘 시간인데 그게 끝나면 하지.”
“그럴까요.”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8시.
죠의 말처럼 두 딸은 슬슬 졸려 했고, 나는 더 이상 가족의 단란한 시간을 방해하지 않고 앉아서 기다렸다.
그리고 9시 반.
거실의 조명이 꺼졌다.
“신.”
“애들은 재웠어요?”
“그래, 잠깐 나가지.”
나와 죠는 그렇게 집을 나섰다.
운전은 죠가 맡았는데, 그가 운전하는 트럭의 조수석에 올라타자마자 운전석이 개조되었음을 알아차렸다.
시선을 느낀 죠가 설명했다.
“다른 건 사이즈가 안 맞아서.”
“스케줄 소화하기 힘드셨겠어요.”
“그래서 이 차를 20년째 타고 있지. 이제 다른 걸로 바꾸려고 해도 못 바꾸겠어. 내가 길들인 물건이라서.”
씁쓸하게 웃는 죠.
차는 곧바로 출발했고 우리는 이내 밤 도시의 네온사인 속을 내달렸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목적지는 몰랐지만.
틀어둔 라디오 방송에서는 사미로콰이의 ‘Virtual Insanity’가 흘러나왔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시작되었다.
죠가 먼저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 괜히.”
“아닙니다. 마음고생 심하셨을 텐데 못 챙겨드려서 오히려 죄송하죠.”
“……넌 역시 신기한 놈이야.”
죠가 운전대를 살짝 틀었다.
“이 업계의 정상에 있던 그 어떤 놈과도 다르다고 해야 하나. 아니, 그러면 역시 다른 놈들에게 미안하지만.”
“어떤 점에서요?”
“사람이 참 착해.”
“…….”
“사실 이 업계가 그렇지. 남의 일에 오지랖을 부리는 일은 거의 없잖아?”
“그렇죠.”
나는 쓰게 웃었다.
바보 같은 부분이었다.
“하지만 너는 그렉 하트와 존 마이클스 때도 그랬고. 어려운 시간을 겪는 선수들에게 손을 내밀어주었지.”
“누구한테나 그러는 건 아닙니다.”
“그래?”
“예, 솔직히 말하자면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그러죠.”
“…….”
죠가 입을 다물었다.
그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나는 다시 말했다.
“죠, 당신은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선수입니다. 당신이 프로레슬링 업계에 남긴 기록은 불멸로 남겠죠.”
“정말 그렇다고 보나?”
“그야 물론이죠.”
“하지만 지금은, 모르겠군.”
죠가 울기 시작했다.
나는 일부러 그를 보지 않았다.
“제기랄, 아직도 매일 그 소리를 들으면서 잠에서 깨어나. ‘Please Retire’ 챈트가 항상 내 귀에서 맴돌지.”
나는 그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줬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군. 나는……. 글쎄다. 솔직히 말하자면 링을 떠난 뒤의 삶을 상상할 수가 없어.”
“아니, 죠. 그렇게 멋진 가정을 꾸리고 있으면서 뭐가 걱정이에요?”
“진심이야. 신.”
죠가 씁쓸하게 웃었다.
“나 같은 괴물이 사람으로 있을 수 있는 곳은 링 말고는 없을 테니까.”
죠는 가족들 앞에서는 절대 털어놓지 못할 이야기를 서서히 시작했다.
“내가 첫 키스를 하다가 경찰한테 체포된 적이 있다고, 말을 했던가?”
“……아뇨.”
“그때 내가 키가 188cm였거든. 초등학생이었고 상대는 중학생이었지. 아동성추행범으로 오해를 산거야.”
죠는 그렇게 설명했다.
자신은 언제나 그렇게 살아왔다.
“너 같은 남자도 옷으로 꽁꽁 싸매면 어딘가에 숨을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 이렇게 큰 덩치와 몸으로는 어디에도 숨을 수 없어.”
죠는 그렇게 말했다.
그는 거인병을 앓았다.
“1991년에 수술로 종양을 제거하면서 성장이 멈췄지만, 그래도 나는 앞으로 아마 오래 살 수 없을 거야.”
그것은 ‘병’이었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지만.
죠가 길을 갈 때마다 사람들은 신기한 것을 보는 양 쳐다보았다. 죠는 언제나 그런 시선을 견뎌야만 했다.
영화관에도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20년 이상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지 못했고, 집 서랍장에는 기껏 사놓고 사용하지 못한 티켓이 한가득 있었다.
한 번은 용기를 내 들어가려고 했지만 자신을 무섭게 보는 사람들 때문에 결국 가지 못하고 뒷골목에서 울었다.
그런 그를 구원한 게 레슬링이었다.
“업계에는 나 같은 놈들이 많으니.”
사람들도 죠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철장 안의 괴물이 되었다.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었고 골리앗처럼 다윗의 상대가 되어 헌신했다.
“그게, 그나마 다행이었지.”
“……죠.”
“그래서 나는 링을 떠나는 걸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군.”
아까와는 다른 사람 같았다.
하지만 분명.
운전석에서 코를 훌쩍이며 있는 거한은 치어리더 캡틴을 하고 싶어 하면서도 끝내 두려워서 하지 못하리라.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인정할 건 해야만 했다.
빅 죠는 은퇴를 앞둔 상태였다.
이미 나이는 40대에 접어들었고, 몸에 무리가 올 수밖에 없는 빅맨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진작 은퇴를 했어도 이상할 게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팬들의 ‘Please Retire’ 챈트도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거고 말이다.
그럼에도 죠는 앞선 이유로 인해 계속해서 커리어를 이어가려고 했지만.
최근에는 링에서도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스스로 자신감도 떨어졌다.
여러모로 악재가 겹쳤다고 해야 할까.
“미안해. 신. 이런 일을 사실 누구에게 털어놓기도 좀 그래서 말이야.”
“……아닙니다.”
나는 슬쩍 눈썹을 찡그렸다.
그렇게 이야기를 듣자, 티파니 맥센이 순간적으로 나를 왜 여기 투입시켰는지 그 진의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일단 빅 죠를 위로하는 말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고마워. 신. 네 덕에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군. 나중에 브리또라도 하나 살 테니 언제든지 말해.”
“일, 할 수 있겠어요?”
“그래, 어떻게든 해야지.”
죠가 심호흡을 했다.
“그래, 그렇게 해야지.”
꽤나 긴장을 한 것 같았다.
평소의 하이퍼 베테랑인 빅 죠가 아니라 단순한 신인 선수처럼 느껴졌다.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겠다.
일단 그전에.
티파니와 이야기가 먼저겠지만.
그녀는 이 모든 일의 총괄자로서 지금 나와 빅 죠가 어떤 결말을 내기 위해 대립하는 것을 원하고 있을까.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 * *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난 죠와 나는 곧바로 각자의 차를 타고 올랜도로 돌아갔다.
떠나기 전.
죠의 두 딸이 아빠에게 가지 말라면서 매달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빅-커벨은 돌아온다며 애들을 위로하는 빅 죠. 하지만 나는 그 등이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것을 느꼈다.
슬픈 일이었다.
빅 죠는 자신을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딸들에게 혹시나 그런 병이 이어지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더 슬픈 건.
세상의 대부분이 이 문제에 대한 자각이 없었다. 나도 그렇고 말이다.
인종이나 장애처럼 상식선으로 자리 잡은 ‘문제’와는 달리, 빅 죠의 거인증은 신기하고 무서운 무언가였다.
그런 남자와의 대립.
그 끝이 커리어의 황혼일까.
아니면 지속일까.
이런저런 고민 속에 차를 몰고 달려서 도착한 올랜도.
죠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경기장으로 향한 나는 티파니와 만났다.
“신, 어서 와요.”
“할 말이 있어.”
“뭐죠?”
“왜 죠와 대립을 주문한 거야?”
“……어려운 질문이네요.”
티파니는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나 봐요.”
“죠와 이야기를 좀 나눴지.”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죠가 지금 무척 위험한 상태라는 거였다.
“티파니, 내가 이번 경기에서 그 양반을 은퇴시키기를 원하는 거야?”
“당신 생각은 어때요?”
티파니는 그렇게 물었다.
“그걸 듣고 싶은데요.”
“……그렇게 나올 줄 알았어.”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티파니가 빅 죠가 겪는 문제를 모르고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는 없었다.
‘Please Retire’ 문제.
그리고 멘탈적인 문제.
마지막으로 몸과 나이의 문제.
이런저런 것들을 다 알고 있으면서 그녀가 굳이 거기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대립을 요구한 이유는, 간단했다.
내 판단을 듣고 싶은 거겠지.
“하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의도가 불순한 건 아니라서 다행이었지만 도리어 좀 부담스러워졌다.
내 말 한마디로 인해 티파니는 빅 죠의 처우를 결정하게 될 테니까.
하지만 확실히 말해야 할 때였다.
“이대로는 힘들어.”
“그런가요.”
“죠는 내릴 역을 지나친 걸지도 몰라. 그리고 그걸 인정 못하고 있지.”
“제 생각도 비슷해요.”
티파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죠는 무릎 상태가 많이 안 좋아요. 경기마다 진통제를 맞고서 뛰는 걸로 알고 있는데, 사실 본인이 수술을 강력히 거부하고 있어서…….”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로 인해 죠는 수술을 거부한 채 계속 링에 올랐고, 팬들은 기량이 떨어진 죠를 놀리듯 ‘은퇴’를 외쳐대고.
악순환이었다.
“어렵군.”
“어렵죠.”
정말 그랬다.
하지만 답은 이미 나온 상태였다.
원래 일이 어려울수록 눈앞의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내 스타일이었다.
그러므로.
“티파니.”
“예, 신.”
“나한테 맡겨줄 수 있겠어?”
“그야 물론이죠.”
씨익 웃는 티파니.
“어떻게 할 건데요?”
“일단 MXT부터 갈 거야.”
“……예?”
“거기 건방진 돼지 새끼들한테 지금까지 이 업계를 만들어온 게 누군지를 확실하게 보여줘야지.”
나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 * *
MXT.
트리플H가 총괄 프로듀서로 재직해 선수 육성과 지역 방송에 나가는 쇼를 제작하고 있는 프로레슬링 단체.
내가 있던 GCW 이후, OVW마저 해체되고 완전히 새롭게 선수 육성을 맡은 WWF의 새로운 산하 단체였다.
그 힘은 대단했다.
이후 WWF에서 슈퍼스타로 활동하는 선수들의 90퍼센트 이상이 이 MXT 출신이었고 향후에는 산하 단체임에도 메인 쇼와 맞붙어서 독자적인 노선을 구축하는 모습도 보였다.
거기다 은퇴한 선수들이 이곳에 트레이너나 프로듀서로 다수 고용되기도 해서, 프로레슬링 업계의 질적인 향상에 꽤나 큰 기여를 하기도 했다.
물론.
내가 회귀하고 프로레슬링의 역사가 바뀌면서 기억하는 모든 선수들이 바로 이곳 MXT에 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죠를 위해 원하던 선수 한 명은 정확히 이곳에 온 상태였다.
그것도.
원래 역사보다 좀 더 빠르게.
버닝콩 촬영을 끝마친 뒤, 나는 죠를 데리고 같은 도시인 올랜도에 위치한 WWF 퍼포먼스 센터로 향했다.
죠가 팬들 앞에서 다시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일단 각본 말고도 다른 부분에서 자신감을 찾아야 했다.
그렇기에 우리 둘의 대립은 미뤄졌고, 죠는 그것이 좀 불안한 눈치였다.
더군다나 내가 자신을 MXT로 데려가니 전전긍긍해하는 게 눈에 보였다.
“저기, 신.”
“예, 죠.”
“우리 대립은, 취소된 건가?”
묘한 반응이었다.
처음에는 대립이 불편한 듯한 눈치더니, 회사에서 아예 취소할 듯이 나오자 자신의 위치를 불안해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대립을 진행해봤자 좋게 끌고 갈 수는 없을 테지.
‘ACW 측에서 한 달 정도 시간을 준 게 참 신의 한 수로 작용하는군.’
나는 쓰게 웃었다.
7월 말 페이퍼뷰에서 죠와 나는 일단 8월 말 섬머 수플렉스에서 사용할 만한 드라마를 하나 뽑아내고.
그러는 동시에 각본 외적으로 죠의 자존감을 좀 회복시킬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 속에 퍼포먼스 센터 안으로 들어서자 트리플H와 그 옆의 여인 한 명이 우리 두 사람을 반겨주었다.
“신, 오랜만이군.”
“잘 지내셨습니까. 헌터. 그리고.”
“반가워요.”
그 옆의 여인이 내게 인사를 했다.
자이나였다.
헌터의 아내이자, 태도 불량 시대에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레슬러.
전생에는 헌터와 헤어지고 방황하다 결국 비참하게 사망했는데.
그런 그녀가, 지금 이곳에서는 밝게 웃으며 헌터와 서로를 안고 있었다.
거기다 지금은 MXT의 여성 레슬러들에게 퍼포먼스를 가르치는 링 프로듀서 역할까지 맡고 있다고 들었다.
묘한 기분이로군.
“죠도 오랜만에 보는군. 잘 왔어.”
“그, 그래. 헌터.”
“이 녀석이 무슨 생각으로 너랑 같이 여기에 왔는지 정말로 모르겠군.”
헌터가 황당한 듯 날 보았다.
다들 그런 눈치였다.
확실히 현재 더블 타이틀 홀더인 내가 이 산하 단체에서 뭔가를 한다고 했을 때 지지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있었다.
“저하고 죠가 여기 출연하는 개자식들하고 좀 붙어보려고 왔습니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
“…….”
“…….”
다들 할 말을 잃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