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11.
헌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내게 독설을 했다.
“정신 좀 차려라. 신.”
“예?”
“지금 네가 그럴 때냐?”
“폴.”
옆에 있던 자이나가 만류했지만 헌터는 개의치 않고 날 계속 다그쳤다.
“지금 이 업계의 끝판왕인 네가 여기 애송이들하고 붙겠다고? 제정신이냐? 네 몸값을 떨어뜨리는 짓이다.”
말투는 거칠었지만, 헌터는 지금 내가 가진 가치를 인정해주고 있었다.
“네가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 존재인지 자각을 가져라. 넌 빌어먹을 SIN이야. 이 업계의 아이콘이라고.”
계속 험하게(?) 날 칭찬하는 헌터.
하지만 내 의견에 변함은 없었다.
헌터는 챔피언이 ‘벨트의 가치를 유지하고 그 위치에서 올라오는 선수들을 상대하는 자’라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벨트를 가지고 끝없이 투쟁하면서 업계와 선수들을 끌어올리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MXT는 이제 막 출범한 단체였다.
때문에 내 존재가 도움이 되리라.
동시에 나도 원하던 대로 빅 죠와의 대립을 천천히 빌드 업 하는 것이지.
“헌터, 말씀은 정말 고맙습니다만.”
“……제기랄, 듣는 시늉도 않았군.”
“제가 항상 하는 말 있잖습니까. 서로 이기기 위해서 협력하자는 거죠.”
“네가 이곳의 애송이들과 일을 해서 뭔가를 얻어갈 수 있다는 말이냐?”
“어유, 물론이죠.”
나는 씨익 웃었다.
불안한 듯 날 바라보는 헌터.
“정확히 말하자면 여기서 저희가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갈 생각입니다.”
“그게 뭐지?”
“‘존중’이죠.”
나는 그렇게 말했다.
“……못 말리겠군.”
한숨을 내쉰 헌터가 돌아섰다.
“따라와라. 애송이들이 너 보겠다고 지금 각 잡고 기다리고 있으니까.”
“옙옙.”
허가가 떨어졌다.
나는 씨익 웃으며 죠와 함께 헌터와 자이나의 뒤를 따라 복도를 걸었다.
좋은 시설에 눈이 갔다.
MXT.
물론 좋은 단체였다.
설립 후 이제 고작 1년째인데 벌써부터 지역 방송국에서 순위권 경쟁을 치르고 있을 정도로 잘 나갔다.
재능 있는 인디 출신 선수들을 흡수하고, 트리플H가 가진 지도자로서의 역량이 십분 발휘되고 있는 멋진 단체였다.
‘그 인기를 발판으로 전생에도 이후 WWF의 한 축으로서 단순한 산하 단체 수준을 넘어설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로 인해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문제가 좀 발생하기도 했다.
일단 이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로레슬링을 사랑하는 ‘라이트 팬’과 ‘마니아 팬’의 차이를 알아야 하는데.
간단히 설명해서.
가족 단위 팬들로 구성되며, 프로레슬링을 드라마처럼 즐기는 이들을 주로 ‘라이트 팬’이라고 불렀고.
반대로 프로레슬링을 하나의 문화로 깊이 이해하고 분석해 즐기는 이들을 ‘마니아 팬’이라고 불렀다.
둘의 지향점은 무척 달랐고 그 간극을 해소하는 게 언제나 큰 문제였다.
그 간극이 극단에 치달아 문제가 되었던 게 바로 ‘숀 시나’였고 말이다.
그리고 이 MXT 팬은 대부분이 인디 시절부터 선수들의 성장을 지켜본 ‘마니아 팬’들로 구성된 게 특징이었다.
일명, ‘풀세일 너드’.
MXT의 촬영이 같은 올랜도에 있는 풀세일 대학교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착안해 붙은 별명이었다.
이들은 숀 시나가 중심이었던 WWF 메인 쇼를 쓰레기라고 여겼으며 MXT에 대한 과한 자부심으로 유명했다.
물론, 지금은 아직 그 정도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역감정과 MXT에 대한 과한 자부심은 지금부터 드러났다. 정작 선수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도.
문제는 그로 인해 빅 죠가 ‘Please Retire’라는 챈트를 들었다는 것이고.
난 이걸 넘어갈 마음이 없었다.
“여기다.”
그렇게 안내를 받아 도착한 훈련장.
안으로 들어서자 링 위와 아래에 모여 있던 선수들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 반짝거리는 시선이 다소 부담스러운 것을 느끼자니 헌터가 내 어깨에 손을 두르고 소개를 시작했다.
“내 최고의 친구지.”
“……?”
“내가 만든 최고의 작품이고.”
그랬던가요?
“너희 모두가 그 이름을 절대 모를 수가 없는, WWF 월드 챔피언, ACW 월드 챔피언, 동시에 PWA의 캡틴.”
신이다.
그런 식으로 헌터가 나를 소개하자 뒤를 이어 큰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여기 빅 죠도 왔지.”
선수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제기랄, 난 그게 전부야?”
“전에 소개했잖아.”
살갑게 투닥거리는 두 사람.
예상했던 대로였다.
풀세일 너드들과는 반대로 업계 사람이면 죠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다정한 사람이니까.
그렇기에 헌터가 나를 먼저 소개해도 이렇게 장난으로 넘기는 거겠지.
……만약 헌터였다면 절대 농담으로 넘기지 않고 그날 저녁 전화로 자신의 서운한 점을 이야기했을 터였다.
뭐, 어쨌거나.
나는 선수들을 돌아보았다.
다들 꿈과 패기만으로 이곳에 모인 이들답게 눈빛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나는 이들에게 딱히 좋은 소리만 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슬쩍 눈길을 보내자 죠와 장난을 치던 헌터가 분위기를 잡아줬다.
“자자, 다들 주목!”
선수들이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앞으로 나섰다.
“소개가 좀 거창했군. 신이라고 한다. 10년 전에는 나도 너희들과 비슷하게 이런 작은 링에서 데뷔했지.”
물론 그 이전에도 인디 단체를 거치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쌓아왔지만.
이들처럼 메이저 단체에 속하고 나서야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같았다.
실제로 그 시점으로 회귀했고.
“혹시 이중에서 내가 GCW에서 활약하던 경기를 본 사람, 손 들어봐.”
절반 정도가 손을 들었다.
GCW가 조지아 주의 지역 방송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솔직히 말해 내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봤다.
“거기 너.”
나는 그중 하나를 가리켰다.
아는 얼굴이었다.
빅 E 랙스턴.
멋진 근육을 자랑하는 흑인 선수.
미래에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스테이블을 꾸려 WWF의 상품 판매 1위를 달성해본 적도 있는 엄청난 인재였다.
“어떤 경기가 가장 인상 깊었지?”
“러셀과의 마지막 경기였습니다.”
“좋아, 이렇게 제거해보자고.”
나는 다음 선수를 가리켰다.
머리를 질끈 묶은 백인 여성 선수.
알고 있지만 일단 물어보았다.
“이름이 뭐지?”
“케, 케일리입니다!”
“그래, 케일리. 내가 GCW에서 했던 경기 중에 뭐가 제일 인상적이었지?”
“러셀과 팀을 맺어 스트리트 타임즈를 상대했던 태그 팀 경기였습니다!”
“이유는?”
“제가 부모님한테 혼나고 우울했던 날 밤에 본 경기라서 즐거웠습니다!”
“그거 영광이군!”
케일리.
이후 WWF 위민스 챔피언에 등극하고 위민스 레슬링을 한층 더 높은 위치로 끌어올리는 인재 중 하나였다.
난 다음 타깃을 가리켰다.
세스 롤링스.
눈이 마주치자 놈이 당황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호오.”
“…….”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친구로군.”
“저 녀석을 아나?”
헌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예전에 ACW와 할리우드 로건이 방해 공작을 펼칠 때 PWA에 난입해 사고를 쳤던 바로 그 애송이였다.
그때 일이 해결된 뒤 인디를 전전하다 결국 MXT까지 올라온 모양이었다.
“인디 시절에 눈여겨봤었죠.”
“그래, 괜찮은 녀석이지.”
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나는 이 일을 딱히 더 끌고 갈 마음은 없었다.
“그래, 세스?”
“예, 옙.”
“내 무슨 경기를 가장 인상 깊게 보았는지, 괜찮다면 말해줄 수 있나?”
“할리 레이시와의 경기였습니다!”
“할리? 왜?”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장처럼 느껴져서 무척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답변이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스의 얼굴이 밝아졌다.
나는 이후로 계속해서 선수들이 어떤 경기를 인상 깊게 봤는지 물었다.
제각기 다양한 답이 나왔고.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내가 왜 그렇게 좋은 경기를 만들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들 하냐?”
이유는 간단했다.
“나보다 먼저 이 업계에 들어온 선배들…… 그래, 심지어는 수십 년도 전에 활동했던 할리 레이시까지.”
모두가 길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내 재능과 실력을 인정하고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그렇게 스타가 되었다.
“너희도 나 같은 스타가 되고 싶겠지? 트리플H의 슬레지 해머를 물려받은 그런 선수가 되고 싶을 테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기 MXT의 애송이들은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다.
“관객들의 반응을 쥐고 흔들어야지. 그놈들이 하고 싶은 대로 그냥 가만히 놔두면 대체 어쩌자는 거야!!”
나는 참지 않고 일갈했다.
순간 놀라는 선수들.
죠도 내 어깨를 붙잡았다.
“시, 신?”
“만약 지금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 놈이 있다면 여기서 나가도 좋아.”
나는 그걸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슬쩍 돌아보자 트리플H는 내가 말하려는 게 무엇인지를 알아차리고는 오히려 죠를 말려주었다.
“전례가 없던 일이다. 너희를 도와주려는 선수가 그딴 챈트를 듣고 있는데 풀세일 너드 놈들한테 주먹질을 하지는 못할망정 가만히 듣고 있다니.”
나라면 경기고 뭐고 마이크를 든 다음에 역겨운 개새끼들이라면서 풀세일 너드들을 몰아붙였을 터였다.
“아니, 경기가 끝나고 난 뒤에도 한판 붙자며 올라오라고 말했겠지. 그딴 새끼들은 관객이 아니야. 트롤이지.”
그런 놈들은 자신들이 하는 짓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를 깨달아야만 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나와 죠는 8월까지 MXT에 출연하면서 한번 길게 놀아볼 생각이다.”
거기에 모두가 놀랐다.
순간 당황하는 선수들.
그도 그랬다.
나 때로 따지면 그렉 하트가 GCW에 와서 갑자기 한 달 이상을 출연한다는 말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분명 너희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들 평소에는 안 찾던 지역 방송을 연결해서 MXT를 시청하려고 하겠지.”
그런 상황에서 똑같이 풀세일 너드들이 죠에게 역겨운 챈트를 하는데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텐가?
“여기 있는 놈들의 아이디어를 들어보고 싶군. 니들 중에 용기가 있는 놈이 있으면 내게 말하러 와.”
거기까지였다.
나는 그렇게 선수들의 각성을 요구했고 트리플H가 상황을 수습했다.
그는 내가 제시한 상황이 꽤나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 * *
물론 나에게도 생각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전에 일단 여기 있는 놈들이 먼저 내게 뭔가를 보여줬으면 했다.
하지만 사실, 내 갑작스러운 행동이 죠를 꽤 부담스럽게 만든 것 같았다.
“굳이 이럴 필요는 없을 텐데.”
“…….”
트리플H까지 모여서 셋.
이들 중 가장 막내 급인 내가 어쩐지 상황을 주도한 꼴이 되고 말았다.
“신, 그냥, 어. 후우.”
“포기해. 죠.”
헌터가 쓰게 웃었다.
“여기 이 빌어먹을 SIN이란 놈은 네놈이 보여줄 수 있는 선수로서 최고의 모습을 요구하고 있는 거라고.”
“하,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죠.”
나는 죠의 말을 잘라냈다.
“죠. 저는 굳이 당신에게 충격요법을 쓰려고 여기 데려온 건 아닙니다.”
“그, 그렇다면?”
“이 업계의 레전드로서 뭔가를 해주셔야겠습니다. 각본하고는 별개로.”
“……저기, 신.”
“뭐죠.”
나는 헌터를 돌아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일은 여기 프로듀서인 나하고 상담을 한 뒤에 진행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을 하는, 데.”
“분명 제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시면 헌터 당신도 하라고 말씀하실 걸요.”
“그, 그게 뭐냐?”
“그론 스트로먼.”
나는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순간 헌터의 눈이 크게 뜨였다.
“허허.”
그리고 곧바로 내 말을 이해한 그가 손을 내밀었고 우리는 악수를 나눴다.
“저, 저기 대체 무슨 말이냐?”
죠가 불안한 듯 물었다.
나는 곧바로 설명했다.
“그론 스트로먼이라고 있습니다.”
“그게 누군데?”
“여기 신입이요.”
“아, 죠.”
헌터가 설명했다.
“당신이 지난번에 오고 이번에 영입한 녀석입니다. 그런데, 신 너는 어떻게 그놈을 알고 있는 거냐?”
전생에 만났습니다.
미래의 월드 챔피언이죠.
……라고 설명할 수는 없었다.
“뭐, 월드 챔피언으로서 지금 업계에 어떤 놈이 들어오고 나가는지는 당연히 확인하고 있어야 하는 거죠.”
“와, 넌 정말.”
“놀라운 놈이군.”
“재능도, 실력도 있는데 거기다 분석까지 게을리 하지 않다니. 제길, 넌 대체 부족한 게 뭐냐?”
“…….”
미안해요. 사실 거짓말이에요.
두 사람이 예상 이상으로 칭찬을 하자 나는 얼굴이 빨개지는 걸 느꼈다.
어, 어쨌거나.
“어떻습니까? 죠.”
“뭐가 말이냐?”
“당신이 당분간 좀 데리고 다니면서 업계 구경도 시켜주고. 기술도 좀 이것저것 가르쳐준다면 좋겠는데요.”
“……내가, 왜?”
“당신밖에 못하거든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론 스트로먼.
내가 지금 추천한 이 남자의 신장은 무려 2미터 10센티미터에 달했다.
그러므로 빅 죠나 스트로먼이나.
‘둘 다 많은 도움이 되겠지.’
그래서 추천한 멘토링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