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12.
MXT의 방영일은 목요일이었다.
ACW의 썬더와 겹쳤지만 지역 방송이었고 방영 시간도 달랐기 때문에 당연히 경쟁관계는 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난 복잡한 스케줄을 소화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았다.
‘일단 7월 1주차 스케줄이.’
월요일 밤의 버닝콩에 참가.
이건 어제 했다.
그리고 화요일인 오늘은 예정대로라면 쉬는 날이었지만 자승자박으로 MXT 선수들의 훈련을 돕기로 했다.
이어서 수요일 새벽 비행기로 라스베이거스로 돌아가 PWA를 촬영.
목요일에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올랜도로 돌아와서 MXT 촬영.
금요일에는 오전에 일간지 인터뷰를 하고 오후에는 근처의 소아암 병원을 찾아가 아이들을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토요일은 다시 MXT로 돌아와 선수들의 훈련을 돕고, 일요일에는 나이트로 촬영을 위해서 이동하고.
대충 그런 식이었다.
‘죽음을 각오해야겠군.’
중간에 MXT 스케줄이 포함된 것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내가 소화해야만 하는 일이 배는 늘어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챔피언이니까.’
동시에 시대의 아이콘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요새 들어 남발되는 감이 있지만.
‘선한 영향력’이라고 한다지?
남들이 나를 이 위치까지 올라오는데 도움을 주었으니 이제는 내가 반대로 그걸 돌려줄 차례란 말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가장 먼저 MXT 선수들의 각성을 독려했고, 화요일 아침이 되자 가장 먼저 회사에 출근했다.
그리고 먼저 몸을 풀기 시작했다.
링 위에 매트를 펼치고 먼저 스트레칭을 하면서 다른 선수들을 기다렸다.
‘누가 가장 먼저 올까.’
그걸 고민하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하품을 하며 훈련장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세스 롤링스였다.
“후아아……. 어?”
어깨까지 기른 머리는 오른쪽의 일부만 금발로 염색한 특이한 형태였다.
그리고 수염을 적당히 길러 앳된 티가 나는 외모를 최대한 숨기려 했다.
“어, 아,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이군.”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로프 앞으로 다가가 링 아래로 다가오는 녀석을 맞이했다.
“……그, 그게.”
“과거는 과거로 묻어두자고.”
역시 이 녀석일 줄 알았다.
세스 롤링스.
전생에는 트리플H 라인으로 회사의 간판스타로 푸시를 받았던 선수였다.
키는 185센티미터 정도.
슬림한 스타일.
“저기, 그. 죄송했습니다.”
“아니지. 그럴 수도 있어.”
나는 살짝 쫀 것 같은 세스를 향해 다가가며 그렇게 말을 꺼냈다.
“문제는 그 일로 인해 네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정도? 솔직히, 날 공격하고 ACW에 데뷔했다면 그야말로 화제의 중심이었을 텐데 말이야.”
“하지만 안 그랬죠.”
“계약서는 잘 읽고 사인하라고.”
나는 그렇게 웃으며 넘겼다.
그리고 물었다.
“일찍 왔군.”
일정표를 철저하게 준수해 제대로 된 선수 육성 시스템을 갖추려고 하는 MXT에서 상당히 특이한 짓이었다.
“좀 더 잘하고 싶어서요.”
“빨리 온다고 그게 되냐?”
“그건 알 수 없죠.”
세스가 슬쩍 옆을 돌아보았다.
슬슬 해가 뜨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훈련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어제 못했던 걸 하다보면, 확실히 더 잘되는 날이 있더군요.”
“그렇군.”
세스의 그런 태도가 이쪽과 비슷하다고 여긴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자니 세스가 말을 이었다.
“신, 하나 말씀드려도 됩니까?”
“아니.”
“…….”
나는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눈에 띄게 당황하는 세스.
나는 발을 쿵쿵 구르며 말했다.
“올라와라.”
놈의 이야기야, 한바탕 몸을 움직인 뒤에 하더라도 늦지 않을 테니까.
“예, 옙!”
활기차게 대답한 세스가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던지고 링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훈련이 시작되었다.
일단은 낙법부터였다.
“넘겨!”
“넵!”
세스와 나는 공격을 주고받았다.
쿠웅!
쾅!
매트 위로 안전하게 낙법을 치면서 상태를 점검하고, 이후 체인 레슬링을 보고 마지막으로 모의전을 벌였다.
단 둘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훈련.
‘괜찮은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으니.
“세스.”
“옙!”
“상대를 배려하면서 해라.”
“아, 알겠습니다!”
세스는 다 좋았지만 상대 선수를 지나칠 정도로 거칠게 대했다.
그로 인해 전생에도 상대 선수를 부상 입히는 일이 꽤 많았더랬지.
그 점을 일단 지적해주자니.
이후로도 다른 선수들이 왔다.
두 번째로 온 건 케일리.
“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너도 올라와!”
“감사합니다!”
케일리가 씨익 웃으며 올라왔다.
몸을 푸는 걸 도와주고, 가볍게 낙법을 치게 시키고 훈련에 들어갔다.
이 녀석도 꽤 괜찮았다.
특히나.
“어렸을 적에 운동 좀 했나?”
“넵! 배구나 농구를 하다가 레슬링으로 전향했습니다! 흐하하! 리키타의 엄청난 팬이라, 크윽?! 고요!”
“……굳이 낙법을 치는 그 순간까지 떠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흐하하! 감사합니다! 와! 제가 신하고 레슬링을 다 해보다니! 이거 엄마한테 끝나고 바로 전화해야겠네요!”
“어머니가 내 팬이시냐?”
“예! 섹시하대요!”
“…….”
지나치게 흥이 많기는 했지만.
나이도 젊고 여러 모로 재능이 엿보였다. 분명히 좋은 부킹이 있으면 전생과 같이 좋은 선수로 성장하리라.
그 외에도 일정표의 훈련 시간이 가까워져올수록 많은 선수들이 도착했다.
세스와 케일리를 상대하느라 좀 지쳤던 나는 링 아래로 내려와 선수들이 훈련을 먼저 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야야, 빅 E!”
“예! 선배님!”
“거기서 머리부터 떨어지게 하면 어떻게 해! 끝까지 붙잡고 있어야지!”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더!”
좋은 공기가 감돌았다.
훈련장의 선수들이 흘리는 땀에서는 치열함이 묻어나왔고 나는 그들을 내 스타일대로 교육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레이시!”
“오케이!”
어느 샌가 다들 내가 없이도 알아서 훈련을 하고 있는 사태가 발생했다.
나는 씨익 웃었다.
‘멍청한 자식들.’
하지만 그럴 때지.
성공과 인정에 대한 욕망으로 의욕이 가득해 뒤도 안 돌아보고 신이 나서 레슬링을 하는 저 모습들이.
왠지 모르게 ‘우리’ 같았다.
과거의 우리.
나.
숀 시나.
러셀 하트.
……랜스 오튼 그 개자식은 아버지 백으로 따로 들어왔으니 안 쳐주고.
나는 싱긋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신.”
그리고 옆에서 다가오는 세스.
놈이 물병을 하나 건넸다.
“앞으로 네가 내 물 당번이다.”
“영광입니다!”
“……농담이야, 인마.”
나는 녀석의 등을 툭 쳤다.
“그래서, 아까 하려던 말이 뭐냐.”
“어, 그게 말입니다.”
옆에 앉는 세스.
“그냥 먼저 MXT에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사실 지금 이 업계 탑을 달리고 있는 선수가 산하 단체에 와 시간을 쓴다는 게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바쿠가 소리를 지를 정도였지.’
내가 뭘 해도 믿어주는 양반이 그럴 정도라면 바보 같은 짓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유가 있었다.
“풀세일 너드들에게 감사하라고. 그 자식들이 날 여기 오게 만들었으니.”
자신들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놈들에게 존중이라는 말을 가르칠 때였다.
뭐, 그것과는 별개로.
“너희는 그래도 좀 근성이 있군.”
나는 훈련의 열기로 왁자지껄한 훈련장을 돌아보며 MXT를 인정했다.
거기에 멋쩍은 듯 웃는 세스.
“다들 자극을 받은 거겠죠.”
“그것과는 별개로, 다들 ‘프라이드’를 좀 기를 필요성은 있어 보이지만.”
“예……?”
“슬슬 올 때가 됐는데.”
나는 훈련장 입구를 돌아보았다.
세스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직후, 닫혀 있던 문을 열며 누군가 나타났다.
“이거 원.”
바로 트리플H였다.
평소와 달리 선수들이 집합도 하지 않고 각자 훈련에 매진인 모습을 보고 그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바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고.
“다들 기운도 좋구나. 아침부터 이렇게 자율적으로 레슬링을 해대다니.”
대충 상황을 파악한 헌터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고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선수들이 링 앞으로 모였다.
다들 숨을 몰아쉬었다.
땀으로 범벅이었다.
그리고 아침 훈련은 이제 막 시작이었다. ……맨 먼저 퍼포먼스 센터 앞을 열 바퀴 도는 것으로 시작이지.
참고로 나는 아까부터 물을 마시면서 쉬어뒀기에 다시 체력이 돌아왔다.
“어, 그러니까.”
헌터는 거의 뻗기 직전인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는 일단 물이라도 좀 주면서 쉬게 하고 싶은 듯했지만.
내가 먼저 나섰다.
“헌터.”
“……그래, 신.”
“러닝부터죠?”
다들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걸 본 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드를 서겠나?”
“물론이죠.”
기겁하는 선수들.
하지만 나는 무시하고 곧장 모여 있는 그들의 선두로 가 뛰기 시작했다.
방금 나는 세스에게 말했다.
‘프라이드’가 부족하다고.
그러니까 관객들의 말에 휘둘리더라도 반항 한 번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트리플H가 만들어낸 MXT는 분명히 훌륭한 단체였지만, 인디 시절을 거쳐서 올라온 선수는 극히 소수였고.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은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걸 올리기 위해서는.
일단 죽기 직전까지 훈련으로 굴러서 자부심을 가지는 게 첫 번째였다.
물론 몸에 무리가 안 가는 선에서.
나는 천천히 속력을 높였다.
* * *
그론 스트로먼.
힘과 기술을 겨루는 스포츠인 스트롱맨 출신으로, 올해 나이 29세의 그는 이전까지 프로레슬링과 연관된 일은 해본 적이 없는 남자였다.
그렇기에 죠는 그를 잠시 데리고 다녀보라는 신의 말을 듣고,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스트로먼이 단순히 자신과 같은 ‘자이언트’ 스타일의 선수기 때문일까.
‘후우.’
빅 죠는 고민에 빠졌다.
그사이, 훈련이 시작되었다.
[야야! 벌써부터 쳐지는 놈들은 뭐야! 끝까지 안 따라오면 다 죽는다!!]
바깥이 소란스러워 살펴본 죠는 선수들을 이끌고 곧바로 러닝을 시작한 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쓰게 웃었다.
다들 벌써부터 땀범벅인 점과 아까부터 들려온 매트 소리를 종합해서 생각해보자면, ‘이쪽 스타일’대로 선수들을 조련해보자는 심산 같은데.
‘저놈이 벌써 저렇게 됐군.’
아니, 사실 이럴 때는 아니지만.
업계의 탑 가이가 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신은 자신을 위해서 당연하다는 듯 MXT 스케줄을 늘렸다.
“…….”
그걸 떠올린 죠는 자신이 신을 하마터면 오해할 뻔했음을 느꼈다.
그래.
녀석은 자신을 위해 이곳에 왔다.
그렇다면 그론 스트로먼과 함께해보라는 것 또한 얕은 이유는 아닐 터.
“좋아.”
죠는 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론 스트로먼.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르고, 그보다 더 덥수룩하게 뻗친 머리카락의 사내.
그가 고개를 들었다.
“일단 뭐라도 좀 먹고 하지.”
“예, 옙.”
“너무 긴장하지 마.”
죠는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대답하며 스트로먼의 곁으로 다가갔다.
사실 방금까지 신의 처우에 꽁해 있던 상황에서도 죠는 스트로먼의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를 들었다.
같은 자이언트니 만큼 그는 스트로먼이 겪을 공복에 대해서 이해했다.
물론 트리플H나 신에게는 철저하게 훈련을 시키겠다고 해둔 만큼 사내 식당이나 매점을 이용할 수는 없었다.
2미터를 훌쩍 넘기는 두 거구의 사내는 몰래 주차장으로 빠져나갔고.
죠는 이런저런 말을 건네며 스트로먼에 대해서 파악하는 시간을 가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꽤나 흥미로웠다.
“우승을 해본 적도 있다고?”
“작은 대회였지만 말입니다.”
“나쁘지 않군. 이 업계에는 힘이 중요하지. 앞으로 큰 자산이 될 거야.”
“열심히 하겠습니다.”
“좋아, 버거는 좋아하나?”
“사족을 못 쓰죠.”
스트로먼도 긴장이 좀 풀린 듯 웃었고 두 사람은 이내 죠의 트럭에 탑승하려고 했으나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어, 선배님.”
스트로먼이 너무 큰 탓에 조수석에 들어가지 못했고 그것을 본 죠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크하하! 재미있군!”
아무래도 앞으로 편하게 다니기 위해서는 조수석도 큰 사이즈로 개조해둬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