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14.
‘신이 MXT에 출연할 예정이다.’
WWF 공식 홈페이지부터 시작해 대대적으로 홍보한 덕분인지 MXT는 시작부터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직원들 모두가 잔뜩 흥분했다.
리허설 때부터 모두가 시청률 대박을 예감했고 방영시간만을 기다렸다.
그런 상황 속에서 MXT의 리더인 트리플H는, 약간의 당혹감을 느꼈다.
제작자로서 처음 겪는 현상이었다.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헌터는 느꼈다. 팀원들 모두가 툭 건드리면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다들 빨리 보여주고 싶어 했다.
관객들에게.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에게.
오늘의 MXT 위클리 쇼를.
그리고 그 이유는.
물론 이 시대의 아이콘 덕이었다.
‘이 정도일 줄이야.’
헌터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자신과 싸우던 때와는 달랐다.
두 개의 벨트.
대기록을 달성한 신은 이제 현역 중에서는 비교할 만한 선수가 없었다.
그것이 바로 시대의 아이콘.
그 존재만으로도 단체를 몇 단계 더 높은 위치까지 끌어올리는 플레이어.
신은 어느새 그런 선수가 되었다.
‘정말 대단한 놈이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오후 세 시가 되자 관객들의 입장이 시작되었다.
쇼의 시작은 오후 다섯 시.
MXT가 촬영되는 풀세일 유니버시티 아레나는 천이백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자그마한 경기장이었다.
그곳에 관객들이 한가득 찼다.
그들이 바로 ‘풀세일 너드’들이었다.
프로레슬링을 광적으로 좋아해 심지어는 인디 시절의 선수를 쫓아서 이사까지 해온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올랜도에 위치한 풀세일 대학 아레나에서 촬영되는 MXT는 태생 상 너드들이 모이기 쉬울 수밖에 없었다.
PWA처럼 거대한 도시인 라스베이거스에 있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메인 쇼처럼 매주 장소를 옮겨가며 쇼를 개최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들은 과거 ECW 팬들처럼 프로레슬링이라는 콘텐츠에 자신들의 깐깐한 너드 감성을 들이밀었고 그로 인해 관계자들에게는 골칫덩이가 되었다.
너드, 다시 말해 마니아 감성.
……뭔가 거창하게 포장되었지만 단순한 힙스터 감성과 다를 게 없었다.
자신이 아는 것을 최고라고 생각하면서 메이저를 까대거나 선수들이 메이저로 올라가는 것을 혐오하거나.
빅 죠에 대한 챈트. ‘Please Retire’도 그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다.
자신들만이 정의고.
프로레슬링의 모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프로레슬링 팬들.
그 골칫덩이들을.
‘신이 엿을 먹이겠다고.’
과연 어떻게 할까.
호기심 속에, 헌터는 일을 진행했다.
오늘 쇼에 나가는 모든 개자식들의 궁둥짝을 빛나게 닦아서 선보기이 위한 마지막 작업이었다.
“방송 시작 1분 전!”
“최종 체크 들어가!”
“영상! 체크!”
“음향! 체크!”
[시설도 모두 오케이요!]
각 팀장들이 소리쳤다.
전광판의 숫자가 20을 가리킨 순간부터 경기장의 초대형 스크린에서 함께 카운트가 시작되었다.
[20!]
함께 챈트하는 팬들.
그들이 자리에 앉았고.
숫자가 0을 가리키며.
쇼가 시작되었다.
콰쾅-!!
폭음과 함께 시작되는 메탈 음악.
그와 함께 미리 촬영한 오프닝 영상이 나갔다. 각자의 위상에 맞춰 선수들이 기술을 쓰거나 관객들 앞에서 포효하는 모습이 멋지게 연출되었다.
[MXT! MXT! MXT! MXT! MXT! MXT! MXT! MXT! MXT! MXT! MXT!]
챈트를 보내는 풀세일 너드들.
그 자부심이 단체의 레벨을 끌어올리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었지만 이제는 문제가 되고 있었다.
빅 죠의 등장 자체는 시청률의 큰 견인차가 되어주었다. 오늘 신은 그보다 훨씬 더 큰 효과를 발휘하겠지.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 모인 풀세일 너드들이 과연 신을 얌전히 받아들이느냐, 인데.’
어떻게 되려나.
고민과 함께 전환된 화면.
[목요일 밤의 MXT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오늘 쇼의 중계를 맡은 캐스터, 조나단 라이먼!]
[해설의 캐리 스탁턴입니다!]
[아, 캐리! 솔직히 말하자면 전 어제 진심으로 한숨도 못 잤습니다!]
[왜죠. 조나단?]
[그야 물론 오늘 MXT에 WWF 월드 챔피언이자 ACW 월드 챔피언이기도 한 남자! 신이 출연하기 때문이죠!]
[글쎄요. 저는 좀 걱정이군요.]
[어라, 어째서죠?]
[신이 무슨 의도로 MXT에 오는지를 모르잖아요. 과연 어떻게 될까요?]
[에헤이! 너무 걱정이 많군요!]
오늘도 죽이 잘 맞는 콤비였다.
저 두 사람도 각본의 캐릭터였다.
밝고 활기찬 조나단과 약간 시니컬한 해설 캐리. 둘이 함께하는 오디오는 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오늘, 그들에게는 평소보다 더 많은 역할이 주어질 예정이었다.
[저는 신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사실, 그런 남자를 도대체 누가……!]
[이해하냐고?]
바깥에서 이어지는 목소리.
캐리와 조나단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고 카메라가 옆으로 돌아가며 순간 한 남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Uoooooooooooooooooooohhh?!]
관객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바로 신이었다.
허리에 ACW 월드 챔피언 벨트를 두르고, 왼쪽 어깨에 WWF 월드 챔피언 벨트를 걸친 그는, 압도적이었다.
순간 해설진도 말을 잇지 못했다.
원래 이렇게 대대적인 광고가 이루어진 챔피언의 등장은 화려한 폭죽과 조명을 동반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신은 그런 팬들의 기대를 좋은 의미로 박살 냈고 순간적으로 MXT의 관객들도 환호를 보내고 말았다.
[Yeeeeeeeeeeeeeeeeeeaaahhh!!]
[여기가 바로 MXT로군.]
“허어.”
헌터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은 빠른 등장.
사실 그건, 신이 제안한 바였다.
그래서 각본진은 일단 허가를 하면서도 과연 잘 먹힐까 의심을 했는데.
‘바로 저런 이유였군.’
신은 MXT 관객들을 잘 알았다.
그들은 메이저에 반감을 위한 반감을 가졌고 때문에 신이 나오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야유를 보냈을 터였다.
그게 더 ‘쿨’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어쩌나 싶었는데.
테마 음악도 없는 신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MXT 관객들을 놀래게 만들었고 순간 본능적인 반응을 하게 했다.
정말 멋진 한 방이었다.
[내가 왜 여기에 왔을까. 간단한 이유지. 나는 이 업계의 지배자고, 자라나는 싹을 밟아둘 필요가 있거든.]
[어…….]
[Yeeeeeeeeeeeeeeeeeeaaahhh!]
순간 쏟아지는 환호.
신은 MXT에 큰 자부심을 가진 관객들의 앞에서 그들을 칭찬하는 행동을 통해 환호를 계속 받았다.
정말로 영리한 행동이었다.
프로레슬링은 관객들과의 소통이 중요했다. 경기력이나 다른 힘이 부족하더라도 그 소통 능력 하나만으로 탑에 오른 선수들은 얼마든지 존재했다.
하지만 역시.
‘신의 가장 큰 장점은 저게 아닐까.’
관객과의 소통 능력.
[쇼를 계속 진행하자고.]
선글라스를 벗은 신은 넉살 좋게 웃으며 해설자와 캐스터 사이에 앉았다.
[아, 아니. 잠시만요. 신.]
[해설이라도 하실 생각인가요?]
[오, 그래. 그거 좋군. 일일 해설.]
[……이해를 할 수가 없군요.]
[원래 슈퍼스타라는 게 그렇지.]
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MXT는 순식간에 신의 주도 아래에 놓였다. 그걸 지켜보던 직원들 모두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단순한 행위였다.
디테일의 변경.
단지 클래식 클리셰를 뒤집었을 뿐.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신은 순식간에 까다롭던 MXT 팬들을 휘어잡았고 쇼의 해설을 맡았다.
“좋아! 신!”
“아주 멋진데!”
팀원들도 모두 좋아했다.
안 그래도 고삐 풀린 망아지와 같은 MXT 팬들을 어떤 식으로 다뤄야 할지 큰 스트레스를 받던 이들이었다.
환호를 보내야 할 때 야유하고.
야유해야 할 때 환호하는 이들.
물론, 반응은 각자 원하는 대로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서 문제였다.
카메라가 관객들을 비췄다.
메이저 중의 메이저인 신에게 야유를 보내려고 단단히 준비하던 그들은 무척 자존심이 상한 눈치였다.
하지만 누구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부러 야유를 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 신이라는 선수가 가진 존재감은 이 업계에서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스코어는 1대0.
첫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다.
WWF의 산하 단체인 MXT는 출범한지 오래되지 않은 만큼, 확실히 아직까지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그럼에도 헌터가 인디 출신의 스타들을 다수 영입하면서 현재는 어느 정도 쇼의 구색을 갖춰놓은 상태였다.
그 시청자들은 대부분 올랜도의 골수 레슬링 팬들이나 그보다 더한 미국 내의 골수 레슬링 너드들이었다.
단체의 성장을 지켜보고 싶은 팬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시청률 지표가 심상치 않았다.
단숨에 네 배가 뛰었고, 사실 그것은 모두가 예상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오늘이 기회다.
그렇기에 트리플H는 움직였다.
첫 경기부터 스타성이 뛰어나고 실력까지 출중한 빅 E 랙스턴이 나서서 순식간에 분위기를 띄우려고 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생겼다.
[Boooooooooooooooooooooo-!]
관객들의 야유였다.
빅 E는 헌터의 오더대로 그걸 무시하고 계속해서 밝게 행동했지만 그럴수록 팬들의 야유는 더 커졌다.
빅 E 랙스턴.
MXT에서 막 데뷔한 그 캐릭터는 밝은 성격의 호남이었다. 그러므로 마니아 팬들에게는 강력한 반발을 샀다.
그럼에도 MXT에서는 좋은 재능을 보여주는 빅 E를 밀어주고자 각본도 신경을 썼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점점 굳어져가는 빅 E의 얼굴.
멘탈이 갈려나가는 게 척 보기에도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헌터는 팔짱을 낀 채 한숨을 내쉬었다.
캐릭터를 바꾸기도 쉽지 않은 게 분명 줏대 없다는 평가를 들을 터였다.
그리고 저렇게 팬들의 목소리가 세다고 다 들어주면 밑도 끝도 없이 단체가 끌려갈 위험성이 존재했다.
그렇게 빅 E의 경기는 오프닝으로서 훌륭한 퀄리티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채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콰앙-!
[빅 엔딩! 빅 엔딩!]
[커버!]
[1!]
[2!]
[3!]
땡땡땡-!
[아아~! 빅 E가 승리합니다!]
[Booooooooooooooooooooooo-!]
쏟아지는 야유.
무릎을 털고 일어선 빅 E가 머리 위로 손을 번쩍 치켜들었지만 그럴수록 팬들은 더 큰 야유를 보냈다.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오늘 처음 MXT 위클리 쇼를 접하게 된 팬들은 분명 어리둥절해할 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선역으로 소개된 선수가 야유를 받고 있으니까 말이다.
숀 시나 같은 경우도 있지만, 그는 야유만큼이나 강력한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MXT 팬들은 등신들이었다.
신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어지는 해설을 들었다.
[빅 E! 정말 멋진 경기였습니다!]
[미래가 기대되는 선수군요. 뭐, 너무 착해서 어디 나쁜 놈들한테 속지는 않을까 싶지만 말이에요.]
캐스터와 해설이 한마디씩.
팬들의 트롤링에 가까운 반응에 대한 MXT의 대응책은 무척 간단했다.
‘무시한다.’
그냥 관객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고 각본대로 경기를 하고 일을 처리한다.
사실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프로레슬링은 관객과의 호흡을 통해서 스포츠 드라마로 성립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관객을 배재하는 MXT는 솔직히 말해 좋지 못한 상태였다.
쇼는 그런 식으로 이어졌다.
시청자들은 혼란을 느꼈다.
명백히 야유를 받아야만 하는 악당의 행동이 환호를 받고, 선역이라고 해도 그들의 심기에 거슬리는 행동을 한다면 가차 없이 큰 야유를 받았다.
물론, MXT는 그들이 싫어하는 메이저가 아닌 만큼 그래도 팬들이 호의적으로 선수들을 대해주기는 했다.
그럼에 정상적인 쇼는 아니었다.
팬들은 열광적이었지만 일반적인 팬들은 어리둥절해하며 방송을 보았다.
그렇게 쇼가 이어지던 중 MXT 챔피언인 세스 롤링스가 링에 올랐다.
그 역시도 현재는 다소 무색무취의 선역 챔피언 역할을 수행 중이었다.
[Booooooooooooooooooo-!]
[오늘 여기 MXT에 업계의 탑이라고 할 수 있는 남자가 왔군. 솔직히, MXT의 탑으로서 꽤 신경이 쓰이는데.]
반응은 좋지 못했다.
신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존나 마음에 안 드네.]
[예, 예?]
[이 새끼들 지금 지들 돈 내고 와서 이딴 트롤링이나 하고 있는 거야?]
그 말이 방송을 탔다.
‘이거 망했군.’
헌터는 방송국에서 날아올 경고장을 생각하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존나’라는 워딩을 사용하다니.
하지만 그만큼 신이 화났다는 게 느껴졌다. 지금 풀세일 너드들의 트롤링은 정말로 심각한 사안이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려던 세스 롤링스가 순간 놀란 얼굴로 링을 향해서 다가오는 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이었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속지 않겠다는 듯이 MXT 팬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Booooooooooooooooooooo-!]
대체 뭐가 하고 싶은 걸까.
자신이 생각한 대로의 반응임을 알게 되었음에도 신은 불쾌감을 느꼈다.
이들은 레슬링을 즐기는 게 아니었다. 단순히 자신이 똑똑하다는 사실을 과시하고 싶은 멍청이들이었지.
팬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세스를 지나친 신은 곧바로 마이크를 손에 쥐고 다음과 같이 소리쳤다.
[야, 이 새끼들아! 직업이나 구해!]
[Booooooooooooooooooooooo-!]
[이 몸이! 이 신이! 지금 프로레슬링을 세상에서 가장 핫한 콘텐츠로 만들고 있지! 하지만 너희들은 존나 게을러서 직업소개소도 안 가잖아!]
순간 야유가 잦아들었다.
이런 팬들의 역겨운 점 중 하나가.
또 자신들이 까이면 귀신 같이 그런 대상과 자신을 분리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일반 대중과 달리 우월하다.
하지만 자신을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놈들과 달리 진짜로 우월한 존재다.
그렇기에 환호가 나왔다.
[Yeeeeeeeeeeeeeeeeeeaaahhh!!]
그들은 그렇게 해서 지금 자신이 관계자들이나 일반 대중들로부터 경멸을 받는 ‘풀세일 너드’에서 벗어났다.
교묘한 장난질이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더 열이 받은 신은 아예 그들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너희는 그냥 현실로부터 눈을 돌리고 있는 것에 불과해! 이 빌어먹을 새끼들아!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그리고 신은 뒤를 돌아보았다.
[여기 이 새끼가 마음에 안 들면 진짜 올라와서 좀 덤벼보란 말이야!]
세스 롤링스.
그는 링 위에서 엄청난 카리스마를 선보이는 신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