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532화 (532/634)

Dark Match 18.

7월 2주차.

목요일 밤의 MXT.

이날, 원래는 한 장에 3배 값을 받았던 암표 값이 23배까지 치솟았다.

나의 MXT 출연이 미친 영향이었다.

더군다나 다음 주에도 계속 출연한다고 홍보를 때렸으므로 이 정도까지 오르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MXT로서는 큰 기회였다.

다들 잔뜩 신이 나서 쇼를 준비했고, 나는 선수들이 낸 아이디어 중에서 오늘 경기를 치를 선수를 선발했다.

바로.

‘케빈 오윈스.’

캐나다 퀘벡 지역 출신으로 화려한 언변과 기술력까지도 겸비한 선수였다.

그럼에도 치명적인 단점 하나로 인해서 관계자들의 인정을 받기까지 이곳 WWF에서 오랜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건 바로, 레슬러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푸근한 체형과 평범한 외모.

하지만 팬들은 그를 좋아했다.

[Fight Owins Fight!]

전용 챈트마저 있을 정도였다.

확실히 개성 넘치고 트래시 토크에 능한 악역 캐릭터는 마니아 팬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Fight Owins Fight!]

‘이거 괜찮군.’

나는 인디 시절부터 계속 되어온 케빈의 전용 챈트를 들으며 생각했다.

기회주의적이고, 잔혹하며, 지금 당장의 이득을 위해 상대방을 박살 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잔혹한 악당.

동시에.

젊은 나이였음에도 그는 두 자녀와 아내를 둔 남자였고, 그들을 위해 싸운다는 복잡한 캐릭터를 보여주었다.

그런 그가 지금 내 앞에 서있었다.

링 위.

[Fight Owins Fight!]

[SIN! SIN! SIN! SIN! SIN!]

빗발치는 챈트의 폭우 속에서.

케빈과 내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내가 먼저 링으로 나와, 뭐라고 몇 마디쯤 떠들자 케빈이 따라서 나왔다.

그리고 도전을 천명했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스토리였다.

하지만 이후.

선수가 한 명 더 링으로 나왔다.

[Uoooooooooooohhh!]

그 테마곡을 듣고 모두가 놀랐다.

AK 리.

여성 선수였다.

통통 튀는 테마곡.

AK 리도 거기에 맞추듯 폴짝거리며 링을 향해서 나왔다. 그 귀여운 모습을 본 풀세일 너드들이 환호했다.

탱크톱에 짧은 청바지.

자그마한 키.

그리고 긴 머리칼.

어디 하이틴 무비의 여주인공 같은 모습이었다.

푸에트리코 출신의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그녀는 건강미가 넘쳐 보이는 갈색 피부의 미인이었다.

링으로 올라온 그녀는 계속 링 위를 폴짝거리며 돌아다니다 내게 다가왔다.

헤실거리며 웃는 미소.

30센티 정도 키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나는 황당한 듯 리를 보았다.

그녀가 내 손에 쥐어져 있던 마이크를 뺏으려 들었다. 나는 그대로 팔을 높이 들며 그 행동을 원천봉쇄했다.

그러자니.

리가 돌연 내게 안겨왔다.

내 목을 팔로 감싸고, 허리에 다리를 휘감아 정면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

[Uooooooooooooohhh!!]

발칙한 행동이었다.

눈을 깜빡거리며 당돌하게 구는 리.

하지만 그건 모두 연기였다.

직후.

방심한 내 위에서 거꾸로 회전한 리가 자신의 피니시 무브를 사용했다.

블랙 위도우.

다리를 피폭자의 머리에 걸고, 상반신을 뒤로 빼서 팔을 꺾는 서브미션.

[WaaaaaaaaaaaaaaaaAKgghhh!]

당돌하게 기술을 거는 리를 보고 놀란 팬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블랙 위도우를 제대로 걸기 위해서는 힘 또한 무척 중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나는 지금 매우 멀쩡한 상태였다.

곧바로 힘으로 기술을 풀어냈고, 중심을 잃고 자신의 몸 위에서 미끄러지는 리를 안전하게 감싸주었다.

놀란 얼굴로 지면에 발을 딛는 리.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

리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는 아무리 케빈 오윈스 같은 남자라고 해도 뭐라고 섣불리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리가 손을 내밀었고.

그는 순순히 마이크를 주었다.

관객들 모두가 그녀의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상황이었다. 나를 올려다보던 리는 잠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 당신과 경기를 하는 선수는 누가 됐던 큰 기회를 잡는 셈이지?”

이건 또 뭘까.

나는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대답하지 않았다.

“여자라고 출발선에조차 서지 못하는 건 너무하지 않아? 한판 붙자!”

[Uoooooooooooooooohhh!]

패기로운 모습을 보이는 AK 리.

그런 상황에서.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너하고 내가? 패기가 넘치는 건 좋은데. 리. 아쉽지만 리그가 다르잖아.”

그게 현실이었다.

그것을 뒤엎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너와 어울릴 선수를 준비해왔지.”

[Uoooooooooooooooooohhh!!]

관객들이 기대감에 비명을 질렀다.

리와 케빈, 그리고 나까지.

세 사람이 입장로를 돌아보자 이윽고 전설적인 테마 하나가 재생되었다.

살사 음악 같은 느낌의 인트로.

그리고 이어지는 강렬한 메탈.

바로 리키타였다.

[Yeeeeeeeeeeeeeeeeeeeaaahhh!]

팬들이 환호했다.

그렇게 링으로 나온 리키타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AK 리와 마주섰다.

현재 은퇴를 앞둔 레전드와, 한창 떠오르고 있는 현 시대의 슈퍼 스타.

분명히 멋진 그림이었다.

팬들도 박수를 보냈다.

나는 그것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여기 있는 놈들이 좀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자 바로 날아오셨지. 하지만 리키타 또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수야. 모두가 동의하는 사실이지.”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그리고 나는 말할 것도 없고.”

독특한 연출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 링 위에서 두 경기가 성사되려고 했다. 그 까다롭던 풀세일 너드들까지도 숨을 죽이고 우리를 지켜보았다.

“케빈 오윈스.”

“…….”

“AK 리.”

나는 각각의 이름을 말했고.

두 선수가 나와 리키타에게 맞섰다.

“어디 증명해봐.”

경기는 그렇게 성사되었다.

* * *

죠와 리키타, 그리고 신까지.

두 명의 레전드, 한 명의 아이콘.

그들의 존재로 인해 MXT와 그곳에 소속된 선수들은 지금껏 경험해본 적이 없던 큰 관심을 받게 되었다.

전미의 프로레슬링 팬들이 신과 전설들의 활약을 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일부러 MXT에서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뉴튜브와 연계해 인터넷 스트리밍을 틀었고 곧바로 시청자들이 몰렸다.

백만 가까운 숫자.

그런 상황에 고무된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준비한 것들을 보여주었다.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

스트리밍 채널에 올라오는 각종 채팅들은 분명히 신과 관계된 선수들에게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세스 롤링스? 분명 지난번에 신한테 덤볐다가 깨졌던 놈 맞지?]

[와, 얘네들 꽤 하네.]

[헌터가 인디 애들 싹 긁어왔대.]

[또또, 그리고 자기가 먹으려고.]

[그래서 내가 이기나?]

“…….”

곁눈질로 스트리밍의 채팅을 간간히 확인하던 헌터는 눈썹을 찡그렸다.

‘그래서 내가 이기나.’

예전에 정치 싸움을 한창 하던 그가 각본을 가져온 작가에게 한 말이었다.

락커룸 안의 상황이 바깥으로 새어나가서 이제는 트리플H라는 선수를 상징하는 말 중 하나가 되었다.

[신은 언제 나옴?]

[리키타 누나한테 뺨 맞고 싶다.]

[신 오빠 가슴 만지고 싶다.]

“……저런 거 좀 쳐내.”

“아, 알겠습니다.”

채팅창 관리가 시작되었다.

아무튼.

나쁜 분위기는 아니었다.

파도처럼 몰아치는 채팅들 사이에서 그래도 간간히 대화가 이루어졌다.

[세스, 저 새끼 좀 물건임.]

[인디 시절부터 훌륭했다고.]

[너드 놈들 아는 척 쩌네.]

[스트로먼 괜찮던데.]

[누군데, 그게?]

[걔는 레슬링도 모르는 놈임.]

인터넷에 그런 식으로 글을 적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비평가’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친구들에게도 아예 최악이라는 평가는 잘 나오지 않았다.

물론.

그 모든 건 빅 죠의 공이었다.

그가 스트로먼의 약점을 커버해주면서 경기를 치렀기 때문에 가능했다.

실제로 죠와 대립이 끝나면 스트로먼을 계속해서 선수로 활용할 수 있을지가 직원들 사이에서 관심사였다.

오늘 경기도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스트로먼의 실력이 더 좋아졌다?’

헌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단순히 죠와 계속해서 연습해온 합을 주고받는 것뿐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인지 실수가 거의 없어졌다.

동시에 캐릭터를 잘 잡아나갔다.

레슬링에 대해 잘 모르는 거인.

그게 바로 스트로먼이었다.

그렇기에 죠가 큰 기술을 맞고 로프 브레이크로 빠져나가자 심판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덤벼들었다.

[스트로먼! 누가 저 멍청이에게 룰 좀 가르쳐줬으면 좋겠군요! 크하하!]

[……이쪽으로 다가오는데요?]

[아, 아니! 전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숨을 씩씩 몰아쉰 스트로먼이 링 아래로 내려가 자신이 이겼다며 링 벨을 직접 울렸다.

물론 심판이 그걸 받아들일 리는 없었다.

그사이 죠가 움직였다.

링 아래로 달려가 돌진.

투콰앙-!!

[Uooooooooooooooooooohhh?!]

경악하는 팬들.

두 사람이 한데 뒤엉켰다.

거인 간의 싸움.

결국 더블 카운트아웃으로 끝났다.

풀세일 너드들의 반응도 아예 최악은 아니었다. 딱히 좋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필요한 대립이었다.

“좋아! 좋아!”

스트로먼을 옆에 대동한 죠가 잔뜩 신이 나 고릴라 포지션으로 돌아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죠!”

“멋졌어요!”

“크하하! 고마워! 친구들! 이 자식, 정말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느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가, 감사합니다.”

죠는 싹싹한데다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하는 스트로먼을 꽤나 아꼈다.

동시에 그렇게 후배를 가르치며 자신도 ‘Please Retire’ 챈트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해나가고 있었다.

바로 그 점이 노린 바였다.

8월에 있을 대립을 위해서 죠는 최대한 무리하지 않고 스케줄을 소화하는 한편 정신적으로도 회복해나갔다.

여러모로 착착 일이 진행되었다.

리키타와 AK 리의 경기도 좋았다.

시청 등급의 변화로 인해 메이저 업계에서 여성 레슬링의 판도도 변했다.

리키타를 보면서 자란 AK 리는 실제로 어렸을 적에 그녀의 사인회에 가서 눈물을 펑펑 터뜨린 적도 있었다.

그 정도의 팬이, 훌륭하게 성장해서 그녀와 맞서 싸우는 그 그림을 MXT는 숨기지 않고 모조리 공개했다.

[역사의 순간에 서있군요.]

[아뇨, 역사의 순간이란 것은 리가 리키타를 꺾었을 때 달성되는 거죠.]

[하지만 보십시오! 놀랍습니다! 리키타를 보면서 자신의 꿈을 키워왔던 AK 리가 그녀와 링에 서있습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죠.]

해설은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겨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일회성 대립에서 신인이 리키타에게 승리하는 각본을 내어줄 수는 없었다.

그 순간이 온다면 레슬링의 역사에서 가장 의미가 깊은 장소에서 해야만 한다는 게 업계인들의 생각이었다.

경기는 AK 리가 악에 받쳐 리키타에게 덤벼들었지만 결국 넘어서지 못하고 패배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블랙 위도우를 쓰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리키타가 어퍼컷으로 응수했다.

빠악-!

쓰러지는 AK 리.

다음으로 이어질 기술은.

[Uoooooooooooooooooohhhh!!]

팬들의 마음을 들끓게 만들었다.

탑 턴버클 위로 올라가는 리키타.

이어지는 리키타-설트.

투콰앙-!

화려한 공중기.

그 내면은 처절했다.

“끄윽…….”

리키타는 이를 악물었다.

‘문설트’는 원래 무릎으로 떨어지는 기술이니만큼 사용할수록 그 부분을 잡아먹을 수밖에 없는 기술이었다.

그리고.

십 년이 넘은 커리어 동안 내내 그 기술을 사용해온 리키타의 무릎이 성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사용했다.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 리키타-설트를 계속 쓸 생각이었다.

그게 상대에 대한 예우.

팬들에 대한 서비스.

그리고.

자신에 대한 긍지.

[1……!]

[2……!]

[3……!]

땡땡땡-!!

[Yeeeeeeeeeeeeeeeeeeaaahhh!!]

환호 속에서 이어지는 음악.

리키타는 손가락을 번쩍 들었다.

패배한 AK 리는 바닥에 누워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고 리키타도 마찬가지로 힘겨워하다 겨우 일어섰다.

그리고 잠시.

패배자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그녀는 자신이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보였다.

매끈한 근육으로 덮인 상반신이 드러났고 리키타는 AK 리의 몸 위에 티셔츠를 던져주고는 그대로 돌아섰다.

갚으러 와라.

그런 표현이었다.

신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멋지구먼.’

여성으로서의 섹시함과 베테랑으로서의 위엄, 선수로서의 터프한 면모까지.

그 모든 게 조합된 모습이었다.

팬들의 시선을 빼앗은 채로 퇴장하는 리키타를 지켜보던 신은 곧 자신의 차례가 돌아온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후우.”

정신을 집중했다.

앞선 이들에게 절대로 밀리지 않는 멋진 경기를 만들어 보일 생각이었다.

그게 바로.

지금 시대를 이끌어나가는 선수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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