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19.
내가 기억하는 한, 보다 현대에 이를수록 실력 있는 선수들이 늘어났다.
여기서 말하는 ‘실력’이란 레슬러로서 경기를 만들어가는 능력을 뜻했다.
프로레슬링이 그래도 점차적으로 어떤 체계를 갖춰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과거에는 한 번쯤 인생의 실패를 경험한 한량들이 업계로 흘러들어왔지만, 지금은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프로레슬러가 되고 싶어 했던 이들이 선수가 되었고, 그로 인해 한량 특유의 마초적인 이미지는 줄었지만 스포츠 선수로서의 매력은 늘어났다.
그건 그래도 이 업계가 나름대로 형태를 갖춘 채로 성장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트리플H가 만들어낸 MXT라는 단체가 존재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경기가 시작한 뒤.
땡땡땡-!
[Uoooooooooooooooooooohhh!!]
케빈 오윈스는 초장부터 육중한 자신의 몸을 이끌고 내게 덤벼들었다.
쿠웅-!
세스 롤링스와는 정반대였다.
락 업부터 시작해 엎치락뒤치락.
그런 식으로 싸움을 걸어오다가 좀처럼 안 되겠다 싶으면 뒤로 빠져서 링 아래로 내려가 시간을 끌었다.
[Booooooooooooooooooooo!!]
팬들이 야유했다.
하지만 그건 케빈이 싫어서 보내는 야유라기보다도 그 캐릭터를 향해서 날리는 좋은 반응에 가까웠다.
“다 닥쳐! 이 새끼들아!”
실제로 케빈이 화를 내며 소통을 하려고 하자 팬들은 무척 즐거워했다.
저게 바로 그의 최대 장점.
동시에.
기회가 생기면 금방이라도 멧돼지처럼 상대방을 물고 늘어지는 스타일.
내가 링 아래로 내려가자 도망을 치던 케빈이 순간 코너를 돌고는 계단 뒤로 몸을 웅크리며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그가 간과하는 게 존재했다.
나는 그보다 훨씬 앞서서 그런 마인드 게임의 승자로 업계에 군림해왔다.
나는 계단을 밟고 뛰었다.
[Uooooooooooooooooohhh?!]
이어지는 프론트 드롭킥.
퍼억!
거기에 맞은 케빈이 튕겨져 나갔다.
나는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갔다.
이건 케빈의 아이디어였다.
‘링 아래에서 한번 싸워보죠.’
‘왜?’
‘제가 쳐맞으면서 허둥지둥 도망칠 때 관객들이 보면서 웃을 거 아닙니까. 그걸 방송에 담아보고 싶어서요.’
멋진 아이디어였다.
그래서 케빈의 생각대로 우리는 링을 크게 쓰면서 멋진 경기를 펼쳤다.
[8!!]
물론 아웃 카운트는 이어졌다.
그럴 때면 케빈은 재빨리 링 위로 미끄러져 들어가 그쪽으로 도망치면서 계속해서 경기가 이어지게 했다.
나는 그 뒤를 쫓아갔다.
그리고 이내 녀석을 붙잡았다.
서로 주먹질이 이어졌다.
퍼억!
케빈이 내 뺨을 후려쳤고.
나는 바로 반격을 가했다.
“에라이!”
빠악!
헤드벗.
“크헉!”
케빈이 비틀거리며 바리게이트에 기대어 섰고 그 뒤의 팬들이 열광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깔끔한 찹으로 화답했다.
쫘악-!
“크아아아악!!”
[Uoooooooooooooooohhh!!]
순간 울려 퍼지는 큰 소리에 케빈의 아픔을 공감한 팬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공격.
나는 바리게이트 앞에서 케빈을 계속 두들겨 팼다. 화끈한 속도전에 팬들의 환호성은 점점 커졌다.
지켜보던 심판이 아래로 내려왔고.
“신! 링으로 올라와!”
“후우, 그렇게 할까?”
나는 순간 거기에 정신이 팔렸다.
바로 그 순간.
“우어어어!”
케빈이 돌진해왔다.
“끄흑?!”
나는 거기에 받혀 링과 충돌했다.
턴이 넘어갔다.
순간 정신이 아찔해져 있자니 케빈이 나를 그대로 어깨 위로 들었다.
링 에이프런 파워 밤.
링의 바깥쪽은 사각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 철골 구조물을 설치해두었다.
콰앙-!!
거기에 등부터 떨어지는 파워 밤의 충격은 순간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
거기에 에이프런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충격까지 더해져. 나는 고통으로 신음하면서 데굴데굴 굴렀다.
케빈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악당’스럽게.
치열하고 끈질긴 방식으로 나를 압박했고 등을 공격하면서 손에 쥔 주도권을 놓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렇게 이어지는 경기.
케빈을 오늘 처음 본 팬들은 어쩜 저렇게 더러운 놈이 있냐고 할 터였다. 그 정도로 놈의 운영 능력은 좋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를 이기기에는 갈 길이 멀었다.
순간적으로 터지는 반격 슈퍼 킥.
쫘악-!
케빈의 몸이 무너졌고.
[Waaaaaaaaaaaaaaaaaaaggghhh!]
관객들이 환호했다.
중심을 잡은 나는 무릎을 꿇고 있는 녀석을 잠시 숨을 몰아쉬며 보았다.
그 찰나의 순간.
그게 지금 이 경기 최대의 스팟.
나는 곧바로 내달렸다.
무릎을 들었다.
쩌억-!
스팅거가 터지며 케빈의 몸이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나는 풀세일 너드들의 환호 속에서 놈을 커버했다.
[1……!]
[2……!]
[3……!]
땡땡땡-!
깔끔한 승리.
하지만 그때까지 케빈의 공격이 거셌다는 표현을 위해 나는 제대로 서지 못하고 바닥에 잠시 엎드렸다.
그러자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님.”
“……뭐, 인마.”
“정말 감사합니다.”
“야, 진짜 등 아퍼.”
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 * *
일반적으로 프로레슬러의 훈련 기간을 물으면, 선수나 업계에서 오래 일해온 사람들 간에도 의견이 갈렸다.
누구는 낙법까지.
누구는 로프 반동까지.
누구는 또 타격기까지.
누구는 또 잡기 기술까지.
관계자마다 ‘이 정도는 해야지 그래도 경기에 나설 수 있는 레벨이다.’라고 이야기하는 수준이 다 달랐다.
사실 이것은 어느 스포츠나 그렇겠지만 프로레슬링은 사람의 생명이 달려 있기에 다소 위험한 생각이었다.
누군가는 괜찮다고 해서 경기에 나선 선수가 낙법 실수로 크게 다친다든지 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나왔으니까.
그나마 WWF 같이 텔레비전 방송을 내보내는 회사들은 그런 경우를 피하고자 훈련을 정말 철저하게 했지만.
그런 회사에서도 스트로먼처럼 이제 갓 낙법과 로프 반동을 뗀 선수가 경기에 출장하기도 했으니 어떻게 보자면 정말 기준이 모호한 셈이었다.
MXT에서도 사실 우려했다.
하지만 신이 처음에 죠가 알아서 잘할 거라며 부킹을 강력하게 건의했고.
못 이기는 척 경기를 뛰었던 죠 역시도 금방 신의 의도를 이해하고 스트로먼과의 경기를 열심히 준비했다.
‘크기’라는 압도적인 재능을 보유한 선수가 업계의 다른 어떤 선배도 가르쳐주지 못할 교육을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각본에 활용되었다.
7월 3주차의 MXT.
오프닝이 끝난 뒤, 위클리 쇼는 백스테이지를 어슬렁대고 있는 그론 스트로먼의 모습과 함께 시작되었다.
[Booooooooooooo……!]
당연하다는 듯 나오는 야유.
아직 스트로먼은 풀세일 너드들에게 존중받을 만한 모습을 못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그런 그가 이처럼 오프닝부터 나오자, 그것을 노골적인 푸시라고 생각한 팬들이 야유를 보냈다.
하지만 MXT 측은 개의치 않았다.
팬들의 반응이 어떤들, 훌륭하게 짜놓은 각본을 밀고 나갈 생각이었다.
스트로먼은 락커룸으로 들어섰다.
입을 꾹 다문 채로 흉악한 생김새를 한 스트로먼의 모습을 보고 몇몇 선수들이 알아서 자리를 피해주었다.
그러자 남은 선수는 단 한 명.
바로 빅 죠였다.
스트로먼이 그에게 다가갔다.
[이봐.]
[……? 이게 누구야.]
죠가 일어섰다.
카메라가 두 거인의 모습을 가까이서 촬영했다. 화면에 가득 찬 근육과 살의 거구는 압도적이었다.
[오늘도 나와 경기가 있지?]
[그래.]
[무슨 일이지?]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스트로먼은 무덤덤하게 이야기했다.
[당신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Uooooooooooooooooooohhh!]
좋은 반응이었다.
모두가 순간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건 통했다.
[그걸 나한테 물어?]
죠가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자 스트로먼이 대답했다.
[내가 붙어본 최고의 선수니까.]
[…….]
[당신을 쓰러뜨리고 싶다.]
관객들이 몰입하기 시작했다.
경기장의 공기 전체가 변했다.
자신을 이긴 상대에게 가서 직접 자신의 약점을 물어보고 극복하려 한다.
지금껏 업계에 없던 캐릭터였다.
팬들이 스트로먼에게 야유를 보냈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회사에서 만들어낸 또 다른 ‘공산품’처럼 느껴서였다.
왜 있지 않은가.
바트 맥센이 만들어낸 괴물.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이 자버 선수들을 학살하다 결국 회사에서 미는 주인공에게 패배하는 괴물 캐릭터.
하지만 신은 스트로먼에게 회사에서 만들어낸 괴물이 되지 말라고 했다.
‘네가 그런 남자는 아니잖아.’
실제 스트로먼은 그냥 어디에나 있는, 오히려 조금 순박한 남자였다.
그렇기에 그 점을 약간 비틀어서.
죠에게 배우려는 면모를 저런 식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팬들은 스트로먼의 이야기에 흥미를 가졌다.
동시에.
‘죠도 떠오르고 있군.’
트리플H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최근 들어서는 자주 무시를 받았지만 죠는 분명 전설적인 레슬러였다.
카인이나 테이커와 같은 자이언트.
하지만 죠는 그들과는 달리 보다 더 친근한 매력으로 팬들에게 어필했다.
그런 그였던 만큼 오히려 스트로먼을 도와주는 각본이 꽤 잘 어울렸다.
죠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재미있군! 좋아! 꼬마야!]
팬들도 즐거워했다.
아이러니한 순간이었다.
스트로먼 같은 거대한 덩치의 사내가 다른 이에게 ‘꼬마’라고 불리다니.
오직 죠만이 가능한 이야기였다.
[일단, 네 몸을 과신하지 마라.]
카메라가 물러섰다.
신인과 레전드.
두 사람을 남겨둔 채 락커룸의 문이 닫혔고 그렇게 세그먼트가 끝났다.
[종잡을 수 없는 남자로군요.]
[그러게 말이에요. 그걸 또 좋다고 알려주는 죠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저는 이해가 좀 갑니다.]
[그런가요?]
[예! 스트로먼, 좋은 선수가 되겠군요. 저 모습을 보고 감이 왔습니다.]
팬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단순한 괴물이 아니었다.
보다 현대적인 레슬링에 걸맞은 독특한 캐릭터였다. 거기에서 팬들은 스트로먼에 대한 의심을 일단 거뒀다.
그게 바로 각본의 힘.
‘이런 식이군.’
물론 이후로도 스트로먼은 계속 훈련을 통해 선수로서 기량을 갖춰야 하겠지만, 여기에서 기회를 잡았다.
분명 죠가 떠난 뒤에도 이 캐릭터를 확장시키며 까다로운 풀세일 너드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좋아.’
헌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사람의 선수가 쇼를.
아니, 동시에 기류 그 자체를.
이렇게까지 변화시키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 * *
신이 MXT에서 지난 몇 주간 활동한 것만으로도 출범 후 1년간의 성장 수치와 맞먹는 효과가 발생했다.
그게 모든 이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역시.
‘슬슬 제동을 걸어야지.’
티파니는 냉정하게 생각했다.
사실 신이 그렇게 하는 건 WWF 입장에서는 ‘별로 나쁠 거 없는 행동’이었지만 잃는 것은 보다 더 많았다.
일단.
ACW와 PWA 측에서 지금 이 상황 자체가 오래 가는 걸 바라지 않을 터.
사실 데릭 비숍은 애초부터 빡이 친 상황이었다. 자기 회사의 챔피언이 경기는 안 가지고 다른 데만 있으니까.
그걸 러셀 오메가가 자신이 욕심을 부리는 척하며 비숍을 누르고 신을 도와주어서 여유가 생긴 거였지.
아니었으면 신은 WWF 메인 쇼 활동, PWA 활동, MXT에 ACW까지도.
일주일에 경기를 열 번도 넘게 소화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을 터였다.
신의 더블 타이틀 홀더 집권기는 그 누구도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인간으로서 태생적인 한계점이 존재했다.
인간의 몸은 두 개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모두 신을 원하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손해를 감내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건, 벨트를 가진 단체의 최고 선수가 자리를 비운다는 뜻.
시청률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티파니 맥센은 슬슬 ‘지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아래에서 재능 있는 새 선수들을 키우고 레전드의 재활을 도우며 행복-레슬링을 하고 있는 저 너드에게.
슬슬 팬들 앞에서 그동안 보여준 성과를 공개할 때임을 알리자.
동시에.
ACW 측에도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죠?’라고 손을 내밀어야만 했다.
그 모든 걸 위해 티파니 맥센은 회사의 스케줄을 조금 조정했다.
“섬머 수플렉스를 2주 당기죠.”
그녀가 그렇게 말한 것은 7월 3주차의 쇼가 끝난 이후였다. 그 말을 들은 각 팀장들이 의문을 표했다.
“굳이 그럴 이유가 있습니까?”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만.”
아직 섬머 수플렉스 광고는 나가지 않았으니까. 경기장 측하고 협상만 잘 이루어진다면 어려울 건 없을 터였다.
하지만 혼란이 빚어질 수 있었다.
“대립도 짧아질 테고요.”
“7월 페이퍼뷰를 뭔가 좀 아쉽게 끝내면 되죠. 그리고 2주 뒤에 8월 페이퍼뷰에서 결말을 짓는다고 해요.”
“음…….”
“굳이 그럴 이유가 있을까요.”
“어차피 월드 챔피언이 안 나오는데다가 시나도 안 나오는 7월 페이퍼뷰잖아요. 딱히 돈 벌이는 안 되겠지.”
그러므로.
“팬들의 기대감을 해소해주지 말고 8월 페이퍼뷰로 이어버리자고요. 거기에 신과 시나가 각각 나와서 싸운다면 분명히 팬들은 돈을 더 쓸 테죠.”
그렇게 말한 그녀는 의견을 구하기 위해 자리에 앉은 팀장들을 보았다.
거기에 사업팀의 재무지표 팀장이 나쁜 생각은 아니라는 듯 동의했다.
“애초에 신이 나온다는 홍보가 없어서 페이퍼뷰 판매량도 좀 그러니까.”
“그럼 이건 어떨까요.”
티파니가 한마디를 더 얹었다.
“팬들이 열 받아할 걸 생각해서 7월 페이퍼뷰 구매자에 한해 섬머 수플렉스 티켓을 추첨으로 증정하는 거죠.”
“호오.”
“그건 좋은 거 같습니다.”
“몇 장으로 할까요?”
“4인 가족으로 하죠.”
“……?”
“허…….”
“그리고 그들이 티켓을 받고 섬머 수플렉스를 보러 오는 과정을 다큐멘터리 식으로 방영하는 거죠.”
그걸 통해 대리만족을 주고.
회사로서는 혹시 모를 위기를 넘기고. 나쁘지 않은 판단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 회사에서 일을 해온 간부들은 어딘가 깊은 데자뷔를 느꼈다.
분명 훌륭한 아이디어였지만.
지금 티파니 맥센의 모습은 이전까지 여기에 앉아서 호통을 치던, 이곳을 떠난 한 노인을 떠올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