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21.
거인 레슬러는 축복이었다.
빅 죠는 그 사실을 인정했다.
이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덩치가 좋고 키가 크다는 말은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거기에 약간의 운과 노력이 더해진다면 분명히 슈퍼스타로 성장할 수 있는 게 자이언트 계열 레슬러였다.
커리어의 초창기에 한 번은 꼭 팬들의 눈에 띄는 푸시를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의외로 세어보면 업계의 긴 역사에서 이름을 남긴 자이언트 레슬러의 숫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푸시를 받은 거인들이 게을러서 그런 것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거인 레슬러는 항상 치명적인 신체적 문제점을 안고 커리어를 쌓았다.
그건 바로.
‘온몸이 시한폭탄.’
그 표현이 적절하리라.
거인 선수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몸에 붙인 채로 경기장에 들어서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안 그래도 남들과 똑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몸에 더 무리가 가는 거인인데, 거기다 격렬한 레슬링까지 한다면?
빠르고 더 강하게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죠는 엉덩이뼈와 왼쪽 무릎의 상태가 정말로 좋지 않았다.
왼쪽 무릎 같은 경우는 실제로 연골이 다 달아서 5년 전쯤 인공 관절을 삽입하는 수술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것도 해결책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죠는 지금 하루하루를 끝없는 고통 속에서 버텨나가고 있었다.
오늘 아침도 마찬가지였다.
“끄응…….”
겨우 일어섰다.
호텔의 킹 사이즈 침대도 짧아서 아래에 의자를 덧대서 자야만 하는 죠.
화장실로 향한 그는 벽에 기대고 서서 왼쪽 무릎에 감겨 있던 철로 된 보조 기구를 빼서 옆에 잠시 두었다.
“끄극…….”
그것만으로도 고생이었다.
아침부터 땀으로 범벅이 된 죠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몸을 씻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옷을 챙겨 입고 다시 무릎에 보조 기구를 착용했다.
그것으로 출근 준비는 끝.
“후우.”
몇 개월 전부터 줄곧 이랬다.
무릎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고 굽히는 동작을 수행할 때마다 땀이 뻘뻘 쏟아질 정도로 힘이 들었다.
문제는 뚜렷한 해답이 없다는 거다.
적어도 1년 이상 휴식을 취하며 꾸준히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는 피상적인 답을 의사에게서 받았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고민이 많았다.
휴식기를 가지면서 무릎을 치료해야만 하나. 그랬다가는 회사로부터 은퇴를 권유받지는 않을까 걱정이었다.
그리하여 계속해서 버티던 중, 풀세일 너드들에게 Please Retire 챈트를 받게 되었고.
자신감은 추락했다.
그렇게 좁아터진 차 속에서 어떻게 할지를 몰라서 엉엉 울며 고통스러워하던 죠를 바로 신이 도와주었다.
녀석에게는 감사만을 느꼈다.
가장 괴로움을 겪던 때에 챔피언이 손을 내밀어 늙은 베테랑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죠는 당연히 이번 각본도 신의 의지를 따라 진행할 예정이었다.
거인 레슬러의 장점.
그건 바로.
주인공은 될 수 없지만 주인공을 가장 빛내는 조연의 역할은 그 누구보다도 잘 해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당시 전성기가 끝났던 앙드레 더 기간트도 캡틴 로건이 미국의 영웅이 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움을 주었다.
자신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그래.’
그때까지는 이 무릎이 버티기를.
오늘 빅 죠는 스트로먼과 링에서 마지막으로 경기를 가질 예정이었다.
기대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기에 죠는 이 보호 기구와 함께 계속해서 레슬링을 할 마음을 먹었다.
‘받은 건 되갚아줘야만 하니까.’
이 거대한 몸으로, 신을 빛나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줄 마음이 있었다.
* * *
7월 3주차의 경기에서도 다시 패배.
무려 3연패.
그리고 남은 경기는 하나.
[스트로먼이 또 다시 재도전을 하게 되었군요! 죠는 오늘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MXT를 떠날 예정이라고요!]
[신도 그렇다고 합니다. MXT의 그 누구도. 죠와 신을 쓰러뜨리지는 못했지만 저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네요.]
졌지만 잘 싸웠다.
실제로, 신과 붙어본 MXT 선수들은 이전보다 더 캐릭터를 확장시켜 팬들로부터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다.
헌터는 최근 들어 폭발적으로 늘어난 MXT에 대한 팬들의 관심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지금 ‘파도를 탔다.’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이 MXT가 어떻게든 안정적인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도록.
이 마지막 쇼를 준비했다.
그렇게 시작된 쇼.
신에게 맞서서 자기가 3분 더 버텼다는 이유로 케빈 오윈스가 세스 롤링스에게 챔피언십 도전을 선포했고.
AK 리는 리키타에게 패배한 이후로 광증(狂症)이 더 심해져서 여성 선수들을 물어뜯고 난리도 아니었다.
관객들은 환호했다.
[MXT! MXT! MXT! MXT! MXT! MXT! MXT! MXT! MXT! MXT! MXT!]
회사 전체에 어떤 목적이 생겼다.
메인 쇼를 뛰어넘고 말겠다.
자신이 쪽도 못 쓰고 패배했던 레전드를 잡기 위해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발버둥 치며 각본을 이어갔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 출전.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Yeeeeeeeeeeeeeeeeeaaahhh!!]
풀세일 너드들은 완전히 신에게 푹 빠져들었고, 그가 자신들을 아무리 욕한다고 한들 앞으로 환호할 터였다.
신은 그 정도로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가 링에서 매주 드러낸 자신의 기량과 퍼포먼스는 MXT 선수들을 아득히 웃돌 정도로 멋졌다.
더블 타이틀 홀더가 아니라 트리플 타이틀 홀더라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모습이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그 상대로 링에 서있던 남자는.
바로 빅 E 랙스턴이었다.
스트롱맨, 아마추어 레슬링.
온갖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몸은 그가 어떤 남자인지를 지금 말해줬다.
하지만 그는, 지금 인생 최대의 도전에 앞서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다.
그 상대가 바로 신이었다.
이 업계의 지배자.
업계의 규칙, 그 자체.
회색빛의 연기를 헤치며 링으로 나온 그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다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그 앞에서 이제야 갓 데뷔한 신인인 빅 E 랙스턴은 상대도 되지 못했다.
하지만.
눈앞의 벽이 크고 높을수록 더 도전 욕구를 느끼는 것이 바로 빅 E였다.
땡땡땡-!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돌진한 빅 E는 신과 팔을 엮고 락 업에 들어갔다.
첫 충돌에서 여러 발자국을 뒤로 밀려난 신. 그 모습을 본 풀세일 너드들은 빅 E에게도 박수를 보내주었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하지만 직후.
“너무 흥분하지는 말자고.”
신은 어깨를 비틀며 일직선으로 밀어붙이던 빅 E의 락 업을 피해냈다.
쿵-!
순간 중심을 잃고 나뒹구는 빅 E.
놀란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이미 신은 빅 E의 허리를 꽉 붙들고 들어 올릴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리프팅 저먼 수플렉스.
투콰앙-!
위험한 각도로 등부터 떨어진 빅 E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신은 멀쩡했고.
공격은 계속 이어졌다.
물론 빅 E라고 해서 가만히 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몇 번이고 반격을 시도했고 유효한 성과도 냈다.
빅 E의 스타일은 ‘파워 하우스’.
“끄응-차-!!”
그는 100kg이 넘어가는 신을 지면에서 번쩍 들어 보이며 힘을 과시했다.
“큭?!”
신도 당황해 팔다리를 휘적거리면서 빅 E가 강하게 빛날 수 있도록 했다.
거기에서 빅 E는 감동했다.
이 시대의 주인공.
그 상품성 하나가 MXT 전체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한 사내가, 자신에게 기회를 한 번 양보해주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투콰앙-!
감사와 존중을 담아 빅 E는 몇 번이고 수플렉스를 날렸고 신은 계속해서 중심을 잃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이어서 빅 E는.
쓰러진 신을 앞에 두고 신나게 허리를 돌리면서 팬들의 반응을 끌어냈다.
[Waaaaaaaaaaaaaaaggghhh!]
팬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빅 E가 새롭게 잡은 자신의 캐릭터는 가볍고 유머러스한 남자였다.
사람들을 즐겁게, 웃기게 하는 상황을 언제나 꿈꿔왔던 빅 E는 지금 자신의 퍼포먼스가 먹히자 감탄했다.
그리고 다시 신을 자신의 한쪽 어깨 위에 들쳐 메고는 피니시 무브인 빅 엔딩으로 이으려 한 순간이었다.
[Uooooooooooooooooohhh?!]
뒤쪽으로 날렵하게 빠져나간 신이 곧바로 빅 E에게 슈퍼 킥을 날렸다.
쫘악-!
그 후로 이어지는 동작은.
더할 나위가 없었다.
쩌억-!
스팅거까지.
핀 폴.
그리고 신의 승리.
[아, 이거……! 안타깝군요! 너무 흥에 겨웠던 걸까요? 빅 E! 그래도 월드 챔피언에게 맞서서 잘 싸웠습니다!]
[저, 허리를 돌리는 동작은 대체 뭐죠?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군요.]
[그래도 다들 웃고 있네요!]
[아! 신도 허리를 돌리려고……!]
[다시 슈퍼 킥!!]
해설자마저 흥분해 소리쳤다.
경기에서 패배한 빅 E가 그래도 좋은 경기였다며 신에게 자신과 함께 춤을 출 것을 제안했지만.
아쉽게도 신은 춤을 추지 않았다.
대신 슈퍼 킥을 날리지.
그렇게 호평 속에 끝난 경기.
신은 그래도 빅 E가 허리를 돌리느라(?) 시간을 끌어 패배했다는 드라마를 만들어주며 상대를 존중했다.
그리고 락커룸으로 돌아와.
“고생하셨습니다!”
“선배님! 멋졌습니다!”
“신!”
다 같이 인사를 해오는 가운데.
“별말씀을.”
땀으로 젖은 얼굴을 닦아내며 웃은 신은 자신의 뒤를 따라 들어온 빅 E를 돌아보면서 칭찬을 해주었다.
“잘 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인마. 잘 생각해봐.”
신은 방금 경기를 하면서 떠올랐던 생각을 가볍게 이야기했다.
그때.
빅 E는 이쪽을 던져버린 뒤 그대로 자리에 서서 힘차게 허리를 돌렸다.
마치 막 물에서 나온 거대한 연어가 꿈틀거리는 걸 밑에서 본 기분이었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재미있기도 하고 흥겹기도 하고.
빅 E도 즐거워 보였고 사람들도 즐거워하면서 거기에 호응을 해주었다.
문제는.
“너무 가볍지는 않았을까?”
“확실히, 제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그랬다면 분위기가 좀 이상해졌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니, 반대로.”
그렇게 허리를 돌리며 호응을 끌어내는 선수를 회사에서 중히 여길까?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빅 E.
하지만 신은 쓰게 웃었다.
“숀 시나도 그랬지.”
“……예?”
“그 자식이 유치찬란한 색깔 티셔츠 입고 나왔을 때, 누구도 레슬 임페리움의 가장 거대한 무대에서 싸울 인재라고 인정하지 않았다는 말이야.”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숀 시나는 시대의 아이콘으로서 인정을 받았고, 지금은 잠깐 주춤하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의 열렬한 지지자들과 함께했다.
“위대한 선배들의 룰을 따르는 것도 좋지. 나도 그렇게 성장을 했으니까.”
하지만.
진정 팬들에게 사랑을 받는 놈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길을 가는 놈이었다.
“그러니까 잘 생각해보라고.”
“……명심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빅 E.
그는 미래를 이끌 재목으로 선택받았지만 회사에서 정해준 진지한 캐릭터가 반응을 얻지 못하며 도태되었다.
그렇게 방출 위기에 놓인 순간.
‘더 뉴 위크’라고 하는 흥겨운 콘셉트의 스테이블에 소속되어서 활동하며 반등했고, 이후 다시 솔로로 독립해서도 그 흥겨움을 유지하며 성공했다.
그게 빅 E의 매력이었다.
물론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만큼 좋아하는 팬들 역시도 많았다.
그렇기에 신은 빅 E에게 한 번 자기 기믹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보라는 식으로 힌트를 준 것이었다.
빅 E는 고민에 잠겼고.
신의 존재가 이제 막 업계에 데뷔한 선수에게 영감으로 작용했다.
이어진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빅 죠 VS 그론 스트로먼.
벌써 4차전.
일주일에 한 번씩, 벌써 4주차.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반응은 점점 올라왔다. 둘 사이에 있는 스토리가 워낙 매력적이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힘을 가졌지만 그 힘을 제대로 통제할 줄 모르던 괴물은, 자신과 같은 괴물에게 배워 크게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에게 맞서서 확실히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트로먼은 크고 빨랐다.
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실제로 빅 죠는 커리어 초창기에는 미사일 드롭킥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정도로 날렵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어어!!”
스트로먼은 죠를 밀어붙였다.
아예 경기의 리드 자체를 본인이 해나갔다. 그것은 커다란 변화로, 어설프지만 확실히 박력 있는 모습이었다.
신과 죠가 내내 머리를 맞대고 스트로먼에게 모든 스팟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훈련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앞이라는 중압감 덕에 자잘한 실수가 나왔지만 그 부분은 죠가 커버를 쳐주었다.
경기의 중반부.
죠에게 헤드락을 걸려던 스트로먼은 땀으로 인해 손이 순간 미끄려졌다.
순간 다시 잡았지만 스트로먼이 실수하는 모습은 이미 모두가 보았다.
거기에서 순간 패닉.
“죄, 죄송합니다.”
“……실수는 잊어. 경기 중이다.”
맞붙은 채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반쯤 넋을 놓았던 스트로먼을 죠가 진정시키면서 경기는 계속 이어졌다.
죠는 스트로먼을 밀어냈다.
반대편으로 밀려난 스트로먼은 안전하게 로프에 반동을 하고 돌아왔다.
그 순간 이어지는 클로스라인.
콰앙-!!
거구의 스트로먼이 바닥에 쓰러지며 거의 폭음에 가까운 소리가 이어졌다.
“우워어어어어!!”
주먹을 들어 올리는 빅 죠.
K.O. 펀치의 사인.
거인의 펀치는 그것만으로도 훌륭하게 피니시 무브로서 설득력을 가졌다.
스트로먼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리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기다리고 있던 죠가 K.O. 펀치를 날렸다.
하지만 스트로먼은 그걸 예상했다.
지금껏 몇 번을 맞았던 펀치였다.
[Uoooooooooooooooooohhh?!]
깜짝 놀라는 팬들.
허리를 숙이며 주먹을 피한 스트로먼이 죠를 힘껏 지면에서 뽑아들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림이 나왔다.
빅 죠.
200kg이 넘는 그를 힘으로 들어본 이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리고 스트로먼이 그걸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