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22.
스트로먼이 빅 죠를 들어올렸다.
그것만으로도 분위기가 달라졌다.
[Yeeeeeeeeeeeeeeeeeaaahhh!!]
거인을 든다.
그만큼 힘이 강하다는 사실을 과시하는 장면이었고 경기장의 팬들은 스트로먼의 괴력을 보고 환호했다.
이제 내치기만 하면 그만.
그게 바로 스트로먼의 피니시 무브.
러닝 파워 슬램.
하지만 순간 힘 조절을 잘못했던 그는 중심을 잃었고 비틀거리며 죠를 어깨에 짊어진 채 쓰러지려고 했다.
‘이런.’
락커룸에 앉아 모니터링TV로 두 사람의 경기를 지켜보던 신은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지점이 4주 간 스트로먼의 캐릭터가 발전해온 광경을 보여주는 지점이었다. 패배를 통한 성장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무너지면.
4주는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고.
스트로먼은 죠를 비롯해 업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게 될 터였다.
그렇기에 해내야만 했다.
“크워우어어어어!!”
비명과 함께 기술이 아닌 단순한 힘을 사용해 억지로 버텨내는 스트로먼.
그가 다시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 앞으로 자신의 몸을 던지며, 어깨 위의 빅 죠를 그대로 메쳤다.
투-콰앙-!!
러닝 파워 슬램.
[Waaaaaaaaaaaaaaaaaaggghhh!!]
쏟아지는 환호.
그 가운데에서 이어지는 핀 폴.
[1……!]
[2……!]
빅 죠가 어깨를 들었다.
[Uooooooooooooooooooohhh!!]
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제 더 이상 ‘Please Retire’ 같은 역겨운 챈트는 나오지 않게 되었다.
죠는 스트로먼과 멋진 드라마를 보여주며 자신이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레슬러임을 다시 한번 증명해냈다.
스트로먼은 무척 당황한 눈치였다.
자신의 피니시 무브가 깨졌다.
하지만 그가 빅 죠를 들어 올렸다는 사실은 팬들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이내 챈트마저 나오기 시작했다.
[Strow~Man~! Strow~Man~!]
스트로먼이 그런 반응에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려고 한 순간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죠가 다시 스트로먼을 집중시켰다.
경기가 계속 이어졌다.
스트로먼이 탑 로프 위로 올라갔다.
“허억, 허억…….”
거인은 거칠게 심호흡을 했다.
확실히 실전은 달랐다.
관객들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대는데다가 심장 소리가 시끄러웠고 땀 때문에 순간 머릿속이 핑핑 돌아댔다.
거기다.
[Uoooooooooooooooooooohhh!]
신참 거인 레슬러가 탑 턴버클 위로 올라가자 팬들의 환호성이 더 커졌다.
기대감에 찬 시선들이 느껴지는 가운데, 스트로먼은 문득 신이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절대, 전력을 다하지 마라.’
그 기억을 되새기며 스트로먼은 자리에서 일어선 빅 죠를 향해 뛰었다.
미사일 드롭 킥.
콰앙-!
죠의 거구가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두 사내는 폭음을 만들어냈다.
링이 뒤흔들렸고 정말로 그 위의 심판이 순간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해냈다.
죠는 순간 생각했다.
스트로먼의 미사일 드롭 킥은 상대가 안전하게 낙법을 칠 수 있도록 최대한 힘을 뺀 채로 찬 물건이었다.
그렇기에 순간 안전한 곳까지 튕겨져 날아가 낙법을 치는 게 가능했다.
‘잘 했다. 스트로먼.’
그런 생각과 달리 죠는 스트로먼의 부츠에 걷어차인 가슴을 움켜쥔 채 로프에 몸을 기대고 고통스러워했다.
상대의 기술을 빛나게 해주기 위한 셀링이었다. 그런 죠를 앞에 두고 스트로먼은 씩씩대며 천천히 일어섰다.
다시 이어지는 공격.
완전히 주도권이 넘어갔고 스트로먼은 링 위에서 몇 번이고 몸을 부딪히며 빅 죠를 계속해서 공격했다.
관객들이 거기에 시선을 빼앗겼다.
풀세일 너드들.
프로레슬링에 대한 조예가 깊고 경기에서 기술적인 측면을 중요하게 보는 그들로서는 인정하기 싫었지만.
별 다른 기술이 없었음에 단순히 거인 레슬러 두 명이 부딪히고 있는 것만으로도 볼 거리는 차고 넘쳤다.
쩌억-!
스트로먼의 빅 스플래시.
상대방에게 돌진해서 몸의 전면부를 부딪히는 단순한 기술이었지만 순간적으로 난 큰 소리에 모두가 놀랐다.
비틀거리며 나오는 빅 죠.
스트로먼의 펀치가 이어졌다.
퍼억!
거기에 얻어맞은 죠는 더 이상 당해줄 수 없다는 듯이 반격에 들어갔다.
쫘악-!!
깔끔한 찹.
“끄흑?!”
순간 공격이 돌아오자 놀란 스트로먼이 주춤했고 죠는 태세를 전환했다.
빠악!
[Waaaaaaaaaaaaaaaaaaaggghhh!]
이 경기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치열한 싸움 가운데에서 누구도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고 죠는 스트로먼의 안면을 향해 힘껏 펀치를 날렸다.
뻐억-!
K.O. 펀치.
[1……!]
[2……!]
일어서는 스트로먼.
이번 경기가 마지막 싸움이라고 스스로도 예감하는 걸까. 스트로먼은 결국 죠의 K.O. 펀치마저도 버텨냈다.
그리고 경기는 마지막 스팟으로.
“우워어어어어!!”
스트로먼이 다시 죠를 번쩍 들었다.
하지만 그건 오만이었다.
상대를 제압하고 말겠다는 급한 마음이 화를 불렀다. 죠는 솜씨 좋게 스트로먼을 밀어내고 뒤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터억-!
[Uooooooooooooooohhh!!]
목을 붙잡는 행위였다.
순간 숨이 막힌 스트로먼의 안색이 창백해졌고 죠는 그대로 힘을 주었다.
상대를 힘껏 들어올려.
그대로 바닥에 내던졌다.
초크 슬램.
투콰앙-!
빅 죠의 두 번째 피니시 무브.
거기에 맞아서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스트로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죠는 곧바로 핀 폴에 들어갔다.
[1……!]
[2……!]
[3……!]
땡땡땡-!
[Waaaaaaaaaaaaaaaggghhh!]
경기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경기장의 팬들 모두가 치열했던 두 거인의 경기를 보고 박수를 보냈다.
한 달 간의 드라마가 집대성된 경기는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게 바로 신이 말했던 ‘시간’.
죠는 더 이상 ‘Please Retire’ 챈트를 듣던 과거의 그 퇴물이 아니었다.
풀세일 너드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죠가 스트로먼을 일으켜 세우고 악수를 나눴을 때는 사실 고전적인 각본임에도 큰 환호가 나왔다.
[This Is Awesome!]
짝! 짝! 짝짝짝!
[This Is Awesome!]
짝! 짝! 짝짝짝!
[This Is Awesome!]
짝! 짝! 짝짝짝!
모두에게 득인 각본이었다.
MXT는 스트로먼이라고 하는 미래가 밝은 신인 선수를 얻게 되었고 빅 죠는 선수로서 자신감을 되찾았다.
커리어의 마지막 시기, 몸이 망가져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는 이번 MXT 활동을 통해서 부활했다.
스트로먼이 먼저 퇴장했고, 죠는 보조 기구를 착용한 왼쪽 무릎의 통증을 애써 무시하며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지난 한 달간의 드라마.
그 결말을 보여주었다.
“간발의 차이였어. 친구들.”
[Yeeeeeeeeeeeeeeeeeaaahhh!]
“나도 이제는 늙었군. 하지만 바로 이곳 MXT에서……. 생각도 못한 일을 겪게 되었어. 그래, 스트로먼은 훌륭한 재목이고 놈과의 싸움은 즐거웠지.”
팬들이 박수를 보냈다.
경기장에 갈채가 쏟아졌다.
개중에는 ‘Please Retire’를 처음으로 외친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지금 죠를 인정하고 있었다.
이 남자가 그간 프로레슬링 업계에 남긴 위용이 다시 증명된 순간이었다.
죠는 눈시울이 붉어졌고 그것이 흘러넘치기 전, 재빨리 말을 이어갔다.
“그 까다로운 풀세일 너드들의 인정을 받다니. 이보다 기쁜 일이 있을 수가 없군. 하지만 이건, 솔직히 말해서 나 혼자라면 절대 못했을 일이야.”
그는 입장로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나와라, 신.”
[Uoooooooooooooooooooohhh!]
“너에게 할 말이 있다. 내 커리어를 담아서, 이 늙은 거인이 깨달은 바를 지금 너에게도 알려주도록 하마.”
그리고 다음 순간.
‘최고’의 음악이 이어졌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빠밤-빠밤-빠밤-빠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빠밤-빠밤-빠밤-빠밤-!
모두가 숨을 죽였다.
MXT.
관객 천여 명의 작은 무대.
하지만 그 남자가 링으로 들어서는 순간, 이곳은 지구 상의 그 어떤 레슬링 쇼보다 더 핫한 공간이 되었다.
[Yeeeeeeeeeeeeeeeeeeaaahhh!!]
연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신.
죠는 맹렬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건…….’
음악부터가 그랬다.
테이커의 만종(晩鐘) 소리 같았다.
신이 주는 무게감은 이제 전성기의 테이커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연기를 뚫고 모습을 드러낸 그는 링으로 올라와 빅 죠와 마주 보았다.
Face To Face.
다소 특이한 그림이 나왔다.
두 사람의 키 차이는 약 20cm.
신이 고개를 들어야만 하는 차이.
현 시대의 레슬러 중에서는 꽤 큰 편에 속하는 신이 고개를 들어야 눈이 마주치는 건 꽤 특수한 상황이었다.
신이 마이크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물었다.
“나와 드렸는데.”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그래서 그 깨달음이 뭐지?”
“간단해.”
죠가 씨익 웃었다.
“내가 커리어를 이어오는 동안 너와는 한 번도 싸워보지 않았다는 거야.”
“그래서 뭐, 붙어보자고?”
“그래, 섬머 수플렉스에서.”
“……재미있겠는데?”
신도 마찬가지로 웃었다.
하지만 그것은 조롱이었다.
“당신 나이가 열 살만 젊었으면.”
[Uooooooooooooooohhh!]
“제기랄, 내가 양로원 봉사자도 아니고. 붙어야만 하는 놈들이 널렸는데 왜 당신과, 그것도 섬머 수플렉스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붙어야 하는 거지?”
“그렇게 말하면 나도 할 말이 없는데. 결정하는 건 챔피언인 너니까.”
“애초에,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신은 의문을 느끼고 물었다.
“죠, 당신 커리어는 완벽해. 여기에 모인 등신 같은 풀세일 너드들이 폄하했지만 그 찬란한 유산은 먼 훗날 비석에 새겨질 정도로 완벽하지.”
[Waaaaaaaaaaaaaaaaaaaggghhh!]
신이 자신들을 욕하는데도 관객들은 환호했다. 인즉슨, 풀세일 너드들과 자신을 철저히 분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죠에 대한 반응은 좋아졌다.
그 스스로가.
각본이.
모든 요소가 통합되어.
이 업계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거인을 마땅한 자리로 되돌려놓았다.
그리고 죠가 그들을 용서했다.
“실제로 내가 그동안 사람들의 성에 차지 않는 모습을 보였던 거겠지.”
“그래, 그래서 당신은 말로 떠드는 대신 이곳에 직접 와서 사람들의 앞에서 자신을 증명하는 길을 택했지.”
신은 눈썹을 찡그렸다.
잠깐의 침묵.
관객들은 순간 링 위에서 돌연 입을 다물어버린 신을 놀란 듯 바라보았다.
그가 무슨 이야기를 이어나갈까.
모두가 기대 속에 집중했고.
신은 한 마디를 꺼냈다.
“그 정도면 충분하잖아?”
“…….”
“당신은 충분히 잘해왔어. 죠. 이제 그 누구도 당신이 이룬 업적을 함부로 부정하거나 무시하지 않을 거야.”
그 정도면 됐다.
“괜히 무리할 필요는 없어.”
신은 상대를 설득했다.
자신에게 도전하지 말라고.
왜냐면 죠가 도전을 선택할 시에 만나게 되는 대상은, SIN이었으니까.
“당신은 분명 내가 어린 시절에 영감을 받았던 레슬러 중 하나야. 하지만 그건 무려 20년 전이고, 나는 덤벼오는 상대를 봐줄 마음은 없어.”
[Uooooooooooooooooohhhh……!]
“괜한 욕심을 부리려고 하지 마. 당신 무릎을 생각해서라도 말이야.”
“뭐, 이걸 말하는 거냐?”
죠가 왼쪽 무릎을 두드렸다.
“이게 뭐라고! 나는 방금까지도 이 링에서 내 이후로 가장 무겁고 거대한 레슬러를 상대로 싸웠는데!”
그게 바로 스트로먼이었다.
“신, 너 정도의 선수가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는 것은 큰 영광이야.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말해주고 싶군.”
“…….”
“나는 너와 싸우겠어. 원한다면 증명이라도 해주지. 내가 아직 Retire할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야.”
“이거 원, 마음에 불이 붙으셨군.”
“그야 당연하지!”
죠가 껄껄 웃었다.
평소와는 다른 대립의 분위기에 사람들은 빅 죠의 드라마에 몰입했다.
그는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도.
신을 너무나 증오해서도 아니었다.
단지.
“내 뒤를 따라올 선수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거든.”
그뿐이었다.
신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죠의 마음에 다시 불이 붙었다.
“좋아! 좋아. 하지만 마음만으로는 뭘 못하겠어? 죠, 어디 한 번 붙어보자고! 다음 주 버닝콩에서 말이야!”
그렇게 주사위는 던져졌다.
8월 1주차.
버닝콩에서의 경기는 ‘모종의 이유’로 인해 제대로 결판이 나지 못하고 섬머 수플렉스로 이어진다는 각본.
그 정도면 그간 두 사람이 이 MXT에서 이어온 각본까지 포함해 충분히 시간을 들인 대립이 될 터였다.
죠는 확실히 용기를 되찾았고.
신은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당신이 마지막에는 애를 먹었던 그 애송이보다 더한 놈들이 여기에는 즐비했지! 하지만 그 어떤 놈도 내 상대는 되지 못했어! 그게 바로 나다!”
신은 벨트를 머리 위로 들었다.
WWF 월드 챔피언 벨트.
팬들 모두가 그렇게 느꼈다.
20cm 정도의 키 차이가 났지만 확실히 팬들이 생각했을 때 신은 완벽한 자신의 전성기를 보이고 있는 선수.
반대로 죠는 당장 내일 은퇴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는 낡은 레슬러였다.
그렇기에.
다음 주 경기에서는 혹시나 죠를 의심하고 있을 사람들의 불안을 싹 날려버릴 퍼포먼스가 보일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