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537화 (537/634)

Dark Match 23.

쇼가 끝나고 백스테이지로 돌아오자 트리플H가 우리에게 한마디 건넸다.

“끝나고 잠깐 남아라.”

듣자 하니, 우리가 이곳에서 일하는 마지막 날이랍시고 트리플H가 사비로 맥주 파티를 준비한 모양이었다.

죠와 나는 관객들의 퇴장을 지시하고 있는 헌터의 옆모습을 보며 동시에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다.

“참 좋은 녀석이야.”

“……레슬링만 아니면 말이죠.”

현역 시절의 트리플H는 물론, 업계의 역사에 기록될 남자였지만 특유의 정치질로 그 평가를 다 깎아먹었다.

하지만 ‘비즈니스 맨’으로서의 트리플H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내였다.

수완도 좋고, 배려심도 깊고, 육성에도 능하고, 전혀 깔 구석이 없달까.

‘어쩜 사람이 저렇게 다른지.’

나는 쓰게 웃었다.

그리고 백스테이지로 돌아가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후배들과 리키타가 금방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신!”

“고생 많으셨습니다!”

“최고였어요!”

“이제 대립하시는 겁니까?”

“뭐, 그렇게 됐어.”

앞으로 몰려드는 선수들 앞에서, 나는 가장 먼저 스트로먼의 상태를 확인하러 간 죠의 뒷모습을 확인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포옹을 하고.

죠가 힘겹게 자리에 앉았다.

‘저거 괜찮나.’

닥터에게 계속 확인을 받고 있으니까 내가 체크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역시.

이후 경기에서는 최대한 무릎에 부담을 주지 않는 셀링을 요구해야겠다.

어쨌든 우리의 대립은 MXT에서 가진 시간으로 인해 꽤 쿨해졌으니까.

이어지는 맥주 파티.

“좋아, 다들 고생 많았다.”

위클리 쇼 일을 완전히 마치고 돌아온 정장 차림의 트리플H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먼저 건배사를 올렸다.

“멋진 한 달이었어. 우리가 이 단체를 만들고 나서 최고의 한 달이었다.”

모두 거기에 동의했다.

선수들의 눈이 빛났다.

링에서 빛나기 위해서.

지금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좀 오그라드네.

“사실, 난 이 녀석이 싫었다.”

트리플H는 날 그렇게 표현했다.

순간 의아해 돌아보자니 수염이 주변에 덥수룩하게 붙은 입술을 말아 올리면서 웃은 그가 말을 이어나갔다.

무시하기냐.

“신인이 자기가 다 안다는 듯이 굴어서 영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었지.”

“…….”

그랬던가?

“하지만 이제는 이 녀석이 이 업계의 기준이다. 그러니까 이놈이 너희에게 한 말을 부정할 수는 없겠군.”

헌터는 쓰게 웃었다.

결국 그 말은 간단했다.

“오늘이 마지막 밤이다. 모두 즐기고 마시며, 이 개자식에게서 뭔가 하나라도 더 뜯어내려고 노력해라.”

[Yeeeeeeeeeeeaaaahhh!!]

건배.

그리고 이어지는 음주 가무의 시간.

나와 붙었던 놈들이 다가와 건배를 청하고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았다.

“선배님! 감사했습니다!”

“오, 세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인마. 트위티 좀 그만하고.”

“……? 예?”

“그만하라면 그만해.”

나는 미소와 함께 엄중히 경고했다.

전생의 일이었다.

메인 이벤터의 자리에 오른 세스 롤링스는 SNS인 트위티에서 신나게 입을 털어대다가 크게 이미지가 실추되고는 이후로 엄청나게 고생했다.

선역이었으나 그 일로 워낙 이미지가 안 좋아져서 악역으로 전환하고 이후로도 한동안 올라오지 못했었지.

이래서 공인은 SNS 같은 곳에다 함부로 글을 쓰지 말아야 하는 거다.

“빅 E는 허리 돌리는 거 잘 생각하고. 어? 오윈스는 다이어트 좀 고려해봐. 아무리 그래도 너무 푸근하잖아.”

그렇게 한마디씩 하던 순간이었다.

“오!”

누가 돌연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뭔가 싶어서 돌아보자 벌써부터 술이 얼큰하게 취한 리키타가 나와 선수들 사이에 끼어들어 낄낄거렸다.

“뭐야, 신. 꼰대질이야?”

“조언입니다.”

“그럼 이 누나도 하나 하지.”

리키타가 선수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잘 들어. 애송이들.”

“예, 옙.”

“여기 이 친구처럼 헌신적인 녀석은 업계에 아무도 없어. 모두가 틈만 보이면 너희들을 잡아먹으려고 들지.”

“……그건 옛날 이야기잖아요.”

“요즘도 그렇지?”

“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업계가 내가 데뷔했을 때와는 달리, 분위기가 좋아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선수가 그런 따뜻함을 받을 가치가 있는 인간임을 증명했을 때에야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실력이 없는 놈을 따뜻함으로 감싸줄 여유는 없었다. 바로 그게 이 업계를 비롯해 사회의 원칙이었다.

하지만.

“너희는 문제 없을 거다.”

나는 그렇게 선수들을 칭찬했다.

모두가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나를 존경의 시선을 담아서 바라보았다.

‘여전히 익숙하지 않군.’

이렇게 존경받는 선배라는 포지션이 말이다. 전생의 내가 비슷한 나이에 선수 은퇴를 했던 점을 생각해보자면.

오히려.

눈물이 날 것 같은 사람은 나였다.

이 녀석들이.

그리고 이 녀석들보다 훨씬 더 재능이 넘치고 완벽한 녀석들이, 꿈을 가지고 프로레슬링 업계에 올 수 있도록.

나는 어깨에 걸린 벨트와 업계 전체의 가치를 높여가자는 생각을 했다.

그럴 수 있을 터였다.

아무렴.

그 상대가 상대니까 말이다.

* * *

그리하여 찾아온 8월 6일. 월요일.

본격적으로 다시 일이 시작되었다.

두 개의 타이틀을 동시에 쥔 월드 챔피언으로서, 신은 ACW와 WWF를 동시에 출연해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각본은 심플했다.

먼저, 8월 중순의 섬머 수플렉스에서 빅 죠와 싸워 타이틀을 지켜내고.

8월 말의 ACW 대시 앳 더 비치에서 러셀 오메가에게 타이틀을 잃는다.

‘나쁘지 않군.’

신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슬슬 1년 반 가까이 지켜온 ACW 월드 챔피언십을 내려놓을 때였고, 그 상대가 러셀이라서 정말 영광이었다.

동시에 죠와의 싸움은 그를 다시 한 명의 선수로서 자신감을 되찾아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으므로 좋았다.

오프닝부터 버닝콩에서는 MXT에서 죠와 신이 나눈 링 세그먼트를 재생해주며 경기를 대대적으로 알렸다.

[오늘 신과 죠의 싱글 매치가 열릴 예정인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좀 놀랍군요! 죠가 신에게 도전을 하다니. 모두의 예상을 깨버린 대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 아직 확실한 건 아닙니다! 오늘 경기에서 죠가 분명한 활약을 보여야만 신이 도전을 받아들이겠죠!]

확실히 그 말이 맞았다.

팬들은 지금 이 대립을 다소 뜬금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락콜드 다음으로 바로 빅 죠가 나왔으니까.

그동안 계속 타이틀 전선에서 떨어져 있던 죠가 신과 월드 챔피언 벨트를 두고 겨룰 만한 깜냥이 되는가?

그런 의문을, 신은 오늘 밤 경기를 통해 날려버릴 각오로 준비를 해왔다.

그렇게 찾아온 메인이벤트.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Waaaaaaaaaaaaaaaaaaggghhh!!]

신이 링에 올랐다.

그보다 앞서 입장했던 빅 죠는 가볍게 몸을 풀며 커튼을 걷고 나오는 신의 모습을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

그 압도적인 카리스마.

링에 오른 신은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자신의 두 벨트를 과시해 보였다.

그런 남자와의 싸움.

테이커와도 싸워봤다.

숀 시나와도 싸워봤다.

하지만 이런 남자는 처음이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하지만 죠는 도리어 침착해졌다.

어쨌든 자신이 할 일은 간단했다.

땡땡땡-!

경기가 시작되었고 신과 미리 짜두었던 대로 공방을 주고받으며 빅 죠는 자신의 장점을 머리에 되새겼다.

키 2미터 13센티미터.

체중 204킬로그램.

물론 설정상 체중이었고, 실제로 빅 죠의 체중은 190킬로그램을 오갔다.

하지만 큰 키에서 오는 압도적인 박력은 빅 죠가 250킬로그램이라고 하더라도 믿을 정도였다.

그런 ‘장점’을 살려 빅 죠는 지금까지 선수로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나 수행해왔다.

그건 바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인간 짐짝이었다.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것만으로 상대의 위상을 더 높여줄 수 있는, 현재 이 업계에서 유일무이한 레슬러.

캡틴 로건은 레슬 임페리움 1987에서 앙드레 더 기간트를 들어올리며 팬들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숀 시나도 빅 죠를 들어 올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팬들에게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성공했다.

프로레슬링을 통해 표현되는 가치 중에서 가장 고전적이라고 할 수 있는.

바로 ‘힘’.

그리고 신 역시도 캐릭터가 브롤러다보니 표현은 되지 않았지만 타고 난 힘은 정말 대단한 레슬러였다.

그리고 그 힘의 기원은 체력이었다.

체력 자체가 워낙에 좋다 보니 같은 동작을 수행해도 더 힘을 잘 사용했다.

프로레슬러에게 있어서 힘이 좋다는 말은 체력이 좋다는 말과 똑같았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빅 죠와 같은 거대한 사내를 드는 데 필요한 능력은 바로 힘이 아니라 체력이었다.

신은 초장부터 날아다녔다.

거인을 상대하기 위해서 선수들 대부분은 가장 먼저 다리를 공략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신도 마찬가지였다.

쩌억-!

파고 드는 로우 킥.

철로 된 보조 기구를 차고 있는 왼쪽 무릎이 아닌 반대편 다리를 걷어찬 신은 곧바로 죠에게 목이 잡혔다.

[Uoooooooooooooooooooohhh?!]

초장부터 나오려고 하는 초크 슬램.

하지만 신은 죠가 자신의 몸을 들어 올린 순간 그 팔을 쳐내며 빠져나갔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로우 킥.

쩌억!

“크하악?!”

죠는 비명과 함께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

진득한 통증을 느끼고 무너졌다.

의아해 하며 다가오는 신.

“죠, 괜찮아요?”

“그, 그래. 괜찮다.”

말과는 달리.

죠는 무릎에 순간적으로 힘이 빠진 것을 느끼며 자신의 몸을 분석했다.

괜찮다.

어디 다친 건 아니었다.

“할 수 있어.”

죠는 신의 손에 이끌려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경기.

관객들은 크게 두 가지에 주목했다.

과연 신이 죠를 들 수 있을까.

그리고.

죠가 얼마나 잘 싸울까.

스토리에 몰입하는 라이트 팬들은 이야기 자체에 주목했고, 마니아 팬들은 그 설득력을 중점적으로 보았다.

‘할 수 있다.’

죠는 이를 악물며 신에게 맞섰다.

그 카리스마는 물론 대단했고 스피드는 따라잡기 힘들었지만 빅 죠는 노련함으로 자신의 약점을 극복했다.

계속되는 무릎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던 죠는 이내 전략을 바꾸기고 결심했다.

그는 코너에 기대어 섰다.

순간 멈춰 서는 신.

“아, 이거.”

“놀랍군요. 확실히 빅 죠도 신에게 맞설 만한 방법을 생각해왔네요.”

“치열합니다! 치열해요!”

이전까지는 상대가 누구라도 꿋꿋하게 일어서서 맞서 싸우던 빅 죠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상대가 상대인 만큼, 상대할 전략을 생각해온 것이었다.

신은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다.

숨을 몰아쉬며 가드를 올리는 죠.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환호가 이어지는 가운데.

신은 이내 시험해볼 방법을 하나 떠올리고 죠를 향해서 힘껏 돌진했다.

이어지는 러닝 드롭킥.

투웅-!

죠는 팔을 들어 그걸 튕겨냈다.

신은 동물처럼 백 덤블링을 하면서 빠져나와 다시금 공격을 준비했다.

상대는 거대하고, 육중했다.

정면에서 덤벼들어서는 저 코너 바깥으로 끌어내는 게 어려울 터였다.

그렇다면 방법은.

정면이 아닌 뒤를 노린다.

신은 곧바로 옆으로 움직여, 링 바깥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리고 죠가 서 있는 코너 뒤쪽으로 움직였다.

분명 꽤나 특수한 씬이었다.

빅 죠였기에 가능한 레슬링.

빅 죠가 상대라 가능한 레슬링.

코너 아래로 돌아 들어간 신은 죠의 다리를 잡아당겨 넘어뜨리려고 했다.

그리고.

죠는 반대편 코너로 움직였다.

“칫……!”

눈썹을 찡그린 신은 죠를 계속 따라 움직이며 자세를 무너뜨리려고 했다.

죠는 그럴 때마다 계속 코너와 코너를 옮겨 다니며 신의 공격을 피했다.

모두가 순간 의아해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상대에게 인정을 받기 위한 레슬링은 아니지 않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신은 방법을 바꿨다.

죠를 향해 돌진하는 척 달려 들어가 아슬아슬한 순간 옆으로 빠지며 다리를 당겨 넘어뜨리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건.

이미 죠도 눈치를 챈 상황이었다.

“……?!”

죠의 코앞까지 달려든 신이 그대로 옆으로 틀어 빠져나가려고 한 순간.

죠가 돌진해왔다.

콰앙-!

이어지는 클로스라인.

[Uooooooooooooooooooohhh?!]

길고 긴 심리전의 승자는 죠였다.

그렇게 순간 주도권을 틀어쥔 죠는 신을 손에 붙잡은 채 놔주질 않았다.

코너 쪽으로 밀어붙여, 그대로 가슴을 펴고 서게 한 뒤 팬들의 환호가 잦아들도록 입술에 손가락을 올렸다.

쉬잇.

그리고 순간 경기장이 조용해졌고.

심벌즈처럼 거대하고 두툼한 빅 죠의 손바닥이 신의 가슴을 내리쳤다.

쭤어억-!

[Uooooooooooooooooooohhh?!]

빅 죠의 거대한 손바닥으로 후려치는 찹에 얻어맞은 신의 가슴이 순식간에 피멍으로 새빨갛게 물들었다.

고통 속에서 리드를 내준 신은 죠의 자이언트 레슬링에 한동안 시달렸다.

거대한 몸을 앞세워 전력으로 부딪혀오는 죠. 신은 몇 번이고 반격을 시도했지만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죠는 무릎을 계속 방어하면서 노련함에서 오는 지능적인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이내.

“우오오오오!”

신을 들어 올려 바닥에 메쳤다.

투콰앙-!!

깔끔한 보디 슬램.

[Waaaaaaaaaaaaaaaaaggghhh!]

반응은 환상적이었다.

이 모든 게 ‘신’ 덕분이었다.

죠는 솔직하게 그것을 인정했다.

그 상대가 ‘아이콘’이었기에 지금의 이 늙은 몸으로도 팬들에게서 이 정도의 반응을 얻는 일이 가능했다.

그러므로.

그의 커리어에서 평생 남을 만한 장면을 만들어줄 수 있어 영광이었다.

빅 죠는 탑 턴버클로 올라갔다.

‘후우.’

거의 3년 만에 올라오는 곳.

팬들도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고.

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못 말리겠군.’

경기가 시작하고 10분 가까이 지났는데, 핸드스프링으로 일어난다고?

괴물 같은 체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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