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24.
무려 10년 가까운 옛날의 일이었다.
나는 경기 직전 그 영상을 다시 한 번 보았다.
2003년 6월 12일, 랙다운.
당시 대립 중이던 빅 죠와 브룩 레스너는 치열한 경기를 통해 대립의 기대감을 계속 높여가고 있었다.
브룩 레스너.
우리 라인보다 2년 앞서 OVW를 통해 데뷔했던 그는 2년이 지난 후 곧바로 랙다운으로 콜업이 되었다.
그리고 데뷔한 지 5개월이 막 되었을 시점에서 영화계로 떠나기 직전이었던 더 팍을 쓰러뜨리고 WWF 월드 챔피언에 등극하며 역사를 만들었다.
역반응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우리 시대 이전의 ‘진짜 천재’가 바로 브룩 레스너였다.
그는 당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던 빅 죠와의 경기에서도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두 사람이 탑 턴버클 위로 올라섰고 레스너는 그대로 죠를 넘겨버렸다.
그리고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스팟을 만들며 그날 경기장을 찾은 팬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바로 오늘.
나는 그것을 재현하려고 했다.
내 방식대로.
핸드 스프링 리턴.
[Yeeeeeeeeeeeeeeeeeeeaaahhh!]
쓰러져 있던 내가 그렇게 벌떡 일어서자 팬들이 엄청난 환호성을 보냈다.
이미 탑 턴버클 위에 올라가서 앉아있던 빅 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곧바로 그를 향해 내달렸다.
코너 좌우로 뻗은 로프를 한 계단씩 밟으며 위로 올라가, 죠를 바라보았다.
각오로 굳어진 그 눈.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죠를 붙잡았다.
수플렉스 포지션.
“컥?!”
순간 목이 졸린 죠가 호흡을 하려는 듯이 그대로 탑 턴버클 위에 섰다.
[Uoooooooooooooooooohhh!!]
순간 놀라 일어서는 관객들.
10여 년 전의 재현.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나는 죠를 그대로 뽑아들었다.
그렇게 죠를 지면에서 거꾸로 뽑아 든 상태에서 내가 버틸 수 있었던 시간은 아주 잠깐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는 견뎌냈다.
허리가 마구 비명을 질러댔지만, 이것이 아니면 내가 브룩 레스너가 이미 했던 스팟의 재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건 사양이다.’
죠를 든 상태에서 온 힘을 다해 버텨낸 나는 뒤쪽으로 몸을 던졌다.
‘수퍼’ 플렉스.
죠와 나를 합친 300킬로그램의 무게가 탑 턴버클에서 그대로 떨어졌다.
그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중요한 나사 부품을 미리 몇 개 제거해둔 링이 바로 ‘붕괴’될 정도였다.
쿠당탕-!!
콰광!!
‘Collapses’.
그 표현이 적절했다.
[Uoooooooooooooooooooohhh!!]
비명을 지르는 팬들.
나는 정신이 아찔한 것을 느꼈다.
순간 크게 링이 흔들리더니 이내 힘을 잃고 아래로 푹 꺼졌다. 각 코너의 기둥이 갈 곳을 잃고 위로 솟았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흘러내린 로프가 링 위를 마구 나뒹굴었고 나는 순간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뻗어서 움직이지를 않았다.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환호하는 관객들.
그런 가운데, 잠시 기다리자 링 바깥에 있던 보안요원들과 링 아나운서가 들어와 우리의 상태를 확인했다.
링 위의 심판은 로프 앞에 서있다가 링이 붕괴함과 동시에 밑으로 굴러 떨어져서 우리처럼 충격을 받았다.
“신, 신!”
“괜찮나?!”
모두가 다가와 상황을 확인했다.
경기장의 열기는 죠와 내가 만들어낸 스팟으로 인해 최고조에 다다랐다.
나는 미소가 나오려는 걸 참았다.
숨을 몰아쉬며, 이내 고릴라 포지션에서 의료팀이 나오는 게 신호였다.
“이쪽으로!”
“됐, 어…….”
나는 그 손을 뿌리치고 일어섰다.
나는 챔피언이었다.
경기는 노 콘테스트로 승자 없이 막을 내렸지만, 마지막 순간에 서있는 것은 바로 챔피언인 나여야만 했다.
“후우.”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환호가 이어졌다.
나는 순간 중심을 잡지 못해 비틀거리고는 보안요원이 가져다주는 두 개의 챔피언 벨트를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무척 복잡한 표정으로 죠를 내려다본 뒤 퇴장하는 것이 각본.
하지만.
“……?”
나는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죠의 상태를 점검해보던 응급 요원이 머리 위로 팔을 들어 엑스자 표시를 그어보였다.
실제 상황이었다.
나는 죠의 상태를 확인했다.
“크윽……!”
“죠, 죠?”
“무릎이 나간 것 같아요.”
“신, 일단 퇴장하시죠.”
직원들이 상황을 통제했다.
잠깐 멍하니 있던 나는 고통스러워 하는 죠를 남겨둔 채 링에서 퇴장했다.
제발.
별일이 아니어야 할 텐데.
* * *
그리고 별일이고 말았다.
반월판 복합 파열.
죠가 수퍼 플렉스로 링 바닥으로 떨어지는 범프를 소화하면서 순간적으로 강한 충격을 받은 게 원인이란다.
안 그래도 노화가 진행된 데다, 근래 들어 무리해서 움직인 영향으로 인해 갑작스러운 충격을 못 이겨냈다.
그게 의사의 설명이었다.
수술이 불가피하고 적어도 6개월 이상 아웃이라는 최악의 판정이 나왔다.
이게 야구였다면 VTR을 요구했겠지.
하지만 일은 벌어졌다.
“빌어먹을.”
근처의 병원까지 죠와 함께 와서 의사의 설명을 들은 나는 욕지기를 내뱉으며 밖으로 나와 일단 전화를 걸었다.
티파니에게.
[아, 신.]
“방금 결과 나왔어.”
[뭐래요?]
“아웃.”
[제기랄.]
티파니가 욕지기를 내뱉었다.
그럴 만도 했다.
회사에서는 벌써 광고부터 시작해서 나와 죠의 경기가 열릴 것임을 알리기 위해 대대적으로 준비해둔 상태였다.
그게 모조리 허사로 돌아갔다.
하지만 오직 그것만이 지금 티파니가 욕을 한 이유는 분명 아니리라.
[상태는 좀 어때요?]
“눈도 안 마주치려고 하는데.”
[망했네요.]
“그러게 말이야.”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좀.
열이 받았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이런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위험 부담을 안고 한 행동이었다.
그래도 왜, 그렇지 않았나.
주사위를 던질 때 1의 눈까지는 각오하더라도, 갑자기 옆에 있던 하수구로 굴러 떨어지면 분명히 열이 받겠지.
지금이 딱 그런 결과였다.
“티파니.”
[예, 신.]
“제안 한 가지 해도 될까?”
[말씀하세요.]
“이렇게 된 이상 죠와의 경기는 글렀고, 다른 대립을 해야겠지 싶은데.”
[그래야겠죠.]
“아무리 그래도 7월 동안 만든 쓸 만한 카드는 하나밖에 없단 말이지.”
[MXT요?]
“죠와 대립하는 대신 그쪽으로 선회해서 진행해야 할 거 같은데.”
[그게 당신 판단이라면 믿을게요.]
대답은 시원시원했다.
티파니는 현장에서 뛰는 내 판단을 믿어주었다. 덕분에 마음이 편해졌다.
전화를 끊은 나는 다시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병실은 5층.
가는 길에 닥터와 만났다.
“신 선수.”
“아, 옙.”
“지금 죠가 수술을 안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그런데, 직접 설득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해야겠네요.”
동의서에 사인을 하는 건 내일 아침 비행기로 여기에 올 와이트 부인이겠지만, 설득은 바로 내가 해야만 했다.
나는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눈썹을 찡그렸다.
“죠.”
“아, 신.”
“일어나지 마요.”
죠는 바닥에 다리를 대고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내가 들어오자 순간 망설이고 있었다.
“……할 수 있어.”
“할 수 없어요.”
“제기랄.”
주먹을 불끈 쥐는 빅 죠.
거대한 그 등이 처연하게 느껴졌다.
“그럼 다시 말하지.”
그가 날 바라보았다.
“해야만 해.”
“안 그래도 돼요.”
나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당신이 당장 내일 죽는다면 몰라도 시간은 많이 있잖아요. 수술 잘 받고, 돌아오면 다시 대립하면 되죠.”
“내일 죽을지도 몰라.”
“…….”
“내 몸은 그렇게 만들어졌어. 선수로서도, 사람으로서도, 남들보다 큰 만큼 연비가 나쁘게 설계가 되었지.”
죠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내게 기회가 돌아올까.”
“솔직히, 말씀드리죠.”
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런 때는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능사겠지만, 그보다 죠에게 솔직하게 내 감정을 말하고 싶었다.
“열 받지 않습니까?”
“뭐가?”
“딱 우리 둘이 불이 붙어서 싸우기 직전에, 마치 누군가가 물을 끼얹은 듯한 상황이 말이죠.”
“그건, 내 실수다.”
“아니에요. 죠. 지금 이 상황은 저기 위에서 모든 걸 관장하고 있는 더러운 개자식이 부린 장난입니다.”
“신을 말하는 거냐?”
“신이건, 절대자건, 뭐건.”
중요한 건.
“그 개자식이 원하는 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거죠. 저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죠. 우리는 싸워야만 해요.”
“그게, 무슨…….”
“단, 지금 당장은 아닙니다.”
나는 죠의 무릎을 가리켰다.
“그걸 치료하고 나서예요. 절대로,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에 지지 말아요. 죠. 당신은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친절하고 멋진 사람이니까 말이죠.”
“…….”
죠는 침묵했다.
그리고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우리가 인생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적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역겨운 상황에 져서는 안 된다.
나를 가로막고.
나를 패배하게 하고.
나를 무너지게 만드는.
그 모든 것들과 맞서 싸워야만 했다. 그게 사실 슈퍼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
죠는 스스로 말하길, 거인으로서 가진 신체적인 약점을 극복하고 축복을 잘 살려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계속 그래야만 했다.
“저는 기다리겠습니다.”
“챔피언으로서 말이냐?”
“전 벨트가 없어도 챔피언입니다.”
“……신.”
“당신과 경기에서 시험해보고 싶은 아이디어가 정말 많아요. 당신은 The World’s Largest Athlete니까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운동선수.
빅 죠를 상징하는 별명이었다.
거기에 고개를 푹 떨군 빅 죠는 이내 지어지는 미소를 참지 못했다.
“못 말리겠군. 정말로.”
“받죠. 수술.”
“그래, 제기랄.”
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로부터 시작이군.”
“원래 간당간당했으니까 이번에 재건 수술 받고 회복 잘해서 와요. 그래야 스트로먼이 올라왔을 때 마지막으로 잡도 좀 해주고 가고 그러지.”
“알겠다, 알겠어. 그나저나 지금 당장은 어떻게 하면 좋냐? 나 때문에 대립 상대가 없어져서 너는…….”
“밑에서 공수해다가 써야죠.”
“누구를?”
“MXT요.”
“아니, 개중에서도 누구?”
의문을 가지는 빅 죠.
분명히 그럴 터였다.
아무리 그래도 다음에 내가 출전하는 페이퍼뷰는 ‘섬머 수플렉스’였다.
15만의 관객들을 수용하며 전 세계의 수천만 시청자들이 보게 되는 쇼.
그리고 그 상대가 나.
과연 MXT에 소속되어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한 이들이 거기에 출전해 제대로 된 경기를 치를 수 있을까?
정답은, 예스였다.
나의 스타성을 믿고 나갈 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단 하나 존재했다.
* * *
화요일 새벽.
MXT는 일정과는 상관없이 많은 선수가 좀 더 일찍 출근하기 시작했다.
신의 영향이었다.
그들 대부분이 위로 올라가고 싶은 욕망이 있는 선수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남들만큼 해서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훈련장에 모습을 드러낸 선수들은 하나같이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지난 주 분명 뒤풀이를 마치고 떠났던 신이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선배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일단, 다들 모이고 이야기하지.”
신의 표정은 심각했다.
그렇기에 다들 그 눈치를 보며 훈련을 시작했고 신은 몸을 움직이는 선수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관찰했다.
그가 내린 답은.
바로 ‘건틀릿 매치’였다.
한 명의 도전자와 싸우는 게 아니라 신은 MXT에서 선발된 선수 여럿을 순서대로 상대하는 경기를 생각했다.
그거라면 계속해서 선수가 바뀌니까 관객들의 기대감도 높아질 테고, 그들 모두를 상대하면서 분명 치열한 경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두 개.
‘누구를 선발하느냐.’
그리고.
‘몇 명을 선발하느냐.’
일단 한 명은 정해두었다.
바로 그론 스트로먼이었다.
놈은 빅 죠가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 스토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도록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선수였다.
그러므로 그는 무조건 넣는다.
그것도 마지막 선수로.
나머지는, 글쎄다.
‘어떻게 하면 좋지?’
일단 후보는 많았다.
4주 동안 싸워보았던 세스 롤링스나 빅 E 랙스턴, 케빈 오윈스를 포함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그림일 테지만.
여기서 빅 E는 섬머 수플렉스에서 자신과 붙을 정도로 기본적인 실력을 갖춘 선수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차라리 샘 제인처럼 케빈 오윈스와 인디 시절부터 레슬링을 많이 해본 선수를 선발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고민에 빠져 있던 신은 이내 결심을 굳히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섬머 수플렉스에서 붙을 상대.
일단 네 사람.
그론 스트로먼 외의 후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