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539화 (539/634)

Dark Match 25.

그론 스트로먼.

세스 롤링스.

케빈 오윈스.

이렇게 셋은 데리고 가기로 했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지만 일단.

세스와 케빈은 지금 당장 메인 쇼에 올려 보내더라도 자기 역할을 해낼 수 있을 만한 실력의 소유자들이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전생에 지금과 비슷한 시기, 메인 쇼로 콜 업이 되었다.

물론, 섬머 수플렉스의 메인이벤트에서 나를 상대하는 건 웬만한 베테랑들도 감당하기 힘든 일이기는 했다.

실제로 자화자찬이 아니라.

내가 선수들을 좀 빌려달라고 요청하자 헌터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지금 애들이 고작 천 명 모이는 경기장에서도 긴장하면서 경기하는데, 너랑 섬머 수플렉스에서 맞붙으라고?”

“예, 다들 잘 하겠죠?”

“Bull Sh-t.”

헌터는 짤막하게 내 말을 부정했다.

“지금 메인 쇼에서도 너랑 섬머 수플렉스에서 챔피언 매치 가지라고 하면 못할 놈들이 태반일 거다.”

“…….”

“너도 300명 모이는 GCW에서 시작했고, 나도 테러라이징으로 50명 모이는 강당에서 레슬링을 시작했지.”

헌터는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그 말은 간단했다.

너무 부담주지 말라는 뜻이었다.

특히나.

“그론 스트로먼은 원래대로라면 아직 데뷔도 못했을 놈이야. 그런 놈을 너와 경기를 하게 시키겠다니…….”

“아니, 그러니까.”

“선수 망치는 길이다.”

“잘 들어보십쇼.”

나는 손가락을 들었다.

다섯 개.

5분이라는 뜻이었다.

“한 사람당 5분씩만 하면 됩니다.”

“5초도 못 버틸 거다.”

“아니.”

“진심이다. 링에 오른 순간 세스고 케빈이고 다 멘탈이 나가버릴걸.”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 고등학교 체육관에서만 경기를 뛰던 녀석들이 갑자기 15만 명 앞에서 업계 최고와 싸운다면 제정신을 유지하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엄청난 기회입니다.”

“…….”

“이걸 넘어서면 경기를 뛴 녀석들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담력을 갖추겠죠. 흥미롭지 않으십니까?”

“위험 부담이 너무 커.”

“그걸 넘어서야죠.”

나는 한 명대사를 다시 인용했다.

To Be The Man.

You Gotta Beat The Man.

닉 플레어의 말이었다.

또한, 나름의 근거가 있는 말이었다.

내가 함께 경기를 하고자 하는 친구들은 모두 미래에는 WWF에서 나름대로 한 자리씩 꿰차던 인물들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잘 리드해준다면 별 문제 없이 해낼 수 있지 않나 싶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이전보다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해주기만 한다면 그야말로 바랄 게 없는 결과겠지.

“…….”

고민하는 헌터.

그런 그에게, 나는 방금까지 고민하던 부분이 해소되었음을 느끼고는 마지막 선수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빅 E도 데려가죠.”

“그 녀석을?”

“예, 완성이 되니까요.”

원래는 스트로먼처럼 스토리가 강한 것도 아니고, 세스나 케빈만큼 경기력이 좋다고 볼 수도 없는 빅 E는 제외하고 진행하는 게 어떨까 싶었지만.

방금 생각이 변했다.

내가 모조리 업고 간다.

그렇게 해서 그림이 완성되었다.

네 명의 선수가 제각기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으므로 건틀릿 매치도 나름대로 구성을 쫄깃하게 할 수 있겠지.

세스 롤링스는 테크니션.

케빈 오윈스는 브롤러.

빅 E 랙스턴은 파워 하우스.

그론 스트로먼은 자이언트.

각자 스타일이 다른 네 선수들을 데리고 링 위에서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당신에게도 좋은 제안입니다.”

“왜, 냐?”

“당신이 리더니까요.”

나는 헌터의 흥미를 자극했다.

그 눈이 탐욕(?)으로 빛났다.

“내가 리더라고?”

“예, MXT 플레이어들은 아직 메인 쇼에서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잖습니까? 그러니 당신이 나서줘야죠.”

“호오…….”

입맛을 다시는 헌터.

‘아직 여전하군.’

어쩌다 선수 은퇴를 선언한 것인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 * *

네 명의 선수들이 모였다.

신은 곧바로 그들에게 계획을 설명했고, 넷 다 각자 다른 반응을 보였다.

“Jesus.”

세스는 성호를 그었고, 옆의 케빈은 아무 말 없이 주먹을 우득 꺾었으며.

“하하!”

빅 E는 호쾌하게 웃었고, 제일 뒤쪽에 있던 스트로먼은 선 채 기절했다.

다들 예상한 반응이었다.

신은 그들을 독려하는 대신 투지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일부러 도발했다.

“불가능하면 말고.”

“아니, 당연히 불가능하죠.”

세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섬머 수플렉스에서? 저희가 싸우라고요? 당신하고? ……아무리 다 짜고 치는 포커라지만 어떻게 그럽니까?”

“왜, 난 좋을 것 같은데.”

케빈이 그 말에 반박했다.

“어차피 스토리도 있으니까 이러는 걸 테고. 우리는 나가서 우리 역할만 제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빅 E가 손을 들었다.

“저기 신.”

“뭐냐.”

“돈은 많이 줍니까?”

“10만씩은 받을 걸.”

“어, 그러면 전 할래요.”

세스가 말을 바꿨다.

10만.

고작해야 1년에 2만 남짓 받는 여기 친구들이 느끼기에는 거의 천문학적인 금액처럼 느껴지겠지.

“넌 어떠냐.”

나는 스트로먼을 돌아보았다.

“할 거냐, 말 거냐.”

“제, 제가 어떻게.”

“못 하겠으면 빠지고.”

“…….”

“일단 하나 말해두마.”

나는 네 명을 돌아보았다.

“너희 실력은 엉망친장이다. 여기서 가장 잘하는 놈도 버닝콩의 메인이벤트를 휩쓸기에는 한참 부족하지.”

또한.

실력만으로 이룰 수 없는 세계였다.

외부에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여기 선수들은 무슨 짓을 하더라도 팬들에게 큰 호응을 얻을 수가 없으리라.

그런 상황에서 신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내가 있다.”

어째서일까.

세스 롤링스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자신의 심장이 세게 뛰는 걸 느꼈다.

허세가 아니었다.

신은 무덤덤하게 이야기했다.

결코, 자만 따위가 아니라.

그냥 자기 자신의 안에 있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생각해봤을 때 경기를 만들 수 있겠다는 판단이었다.

세스는 손을 뻗었다.

“저는 하겠습니다.”

“저도요.”

케빈이 손을 겹쳤다.

빅 E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트로먼은 망설이는 눈치였다.

“…….”

“스트로먼?”

“그, 저.”

“확실히 말해.”

“저는, 못하겠습니다.”

스트로먼은 뒤로 물러섰다.

“저는, 죠 선배를 대체할 자신이 없습니다. 솔직히 MXT에서의 경기도 실수투성이였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할 자신이 도저히…….”

“스트로먼!”

그렇게 외친 건 케빈이었다.

뭐라고 말할까 고민하던 신은 자신보다 먼저 호통을 치는 케빈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그가 이야기했다.

“나는 인디에서 5년 동안 굴렀다.”

“어, 어?”

“이 존나 나온 배 때문이지. 아무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았어. 지금도 살을 빼라는 소리를 수없이 듣는다.”

케빈이 신을 돌아보았다.

그에게도 들은 소리였다.

케빈 오윈스는 프로레슬러라고 하기에는 두터운 체구였고, 거기에서 어떤 카리스마를 갖춘 것 또한 아니었다.

그는 조금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펑퍼짐한 너드 같은 생김새였다.

하지만 여기까지 올라왔다.

그 외에 갖춘.

폭발적인 마이크워크나 온갖 기술들, 폭군과도 같은 경기 스타일로.

“그렇게 나를 만들어왔지. 그러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어. 잘 들어둬.”

케빈은 심호흡을 했다.

“기회는 모든 걸 갖췄을 때 오지 않아. 아니, 오히려 아무것도 갖추지 못했을 때 오는 게 보통이지.”

그러니 손을 잡아라.

세스, 케빈, 빅 E가 맞잡고 있는 손 위에 신이 천천히 자신의 손을 포갰다.

스트로먼은 고민에 빠졌다.

이 업계의 사람들은 모두 스트로먼을 볼 때마다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이거 돈 냄새가 나는데.’

그의 큰 키는 그렇게 표현되었다.

눈앞의 다른 선수들이 이번 생에는 절대로 가지지 못할 압도적인 재능.

하지만 그걸 가졌기에 느꼈다.

그런 재능을 제외한 자신은 프로레슬러로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죠와의 경기에서도 실수투성이였고. 그것을 통해 결국은 자신이 과분한 기회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방금 케빈의 말은 확실히 스트로먼의 가슴에 와닿는 게 있었다.

‘기회’.

누구든 바라지만 아무나 손에 넣을 수 없는 그것. 스트로먼은 자신이 과분한 고민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저, 저도 하겠습니다.”

“아주 그냥 복에 겨웠구먼.”

신은 씨익 웃었다.

“좋아. 애송이들.”

모두가 의기투합한 가운데, 트리플H와 티파니 맥센의 허락도 떨어졌겠다.

더 거리낄 것은 없었다.

“너희의 인생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멋진 밤을 한번 만들어 보자고.”

그렇게 다섯의 마음이 모였다.

남은 건.

이 각본의 전개뿐이었다.

* * *

남은 시간은 단 일주일뿐이었다.

8월 2주차.

버닝콩과 MXT, 랙다운.

세 개의 위클리 쇼에서 각본을 전개해 어떻게든 팬들을 납득시켜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MXT에 소속된 선수들의 위상이 낮다는 부분이었다.

그들은 메인 쇼에는 한 번도 출연해본 적이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팬들의 인정을 전혀 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해서 위상을 쌓을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그건 쌓겠다고 해서 쌓이는 게 아니었다.

천천히.

마치 바위에 물방울이 떨어지듯.

매주.

매 쇼.

매 경기.

선수가 경기와 대립을 통해서 차근차근 증명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신이 선택한 방법은 이례적이었다.

신 VS MXT.

그 중심에 트리플H라는 사내를 두고 선수들을 마치 트리플H의 수하처럼 포장해서 자동으로 위상을 올린다.

그렇게.

8월 2주차의 버닝콩이 시작되었다.

오프닝.

끼이익-!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리무진.

[Uooooooooooooooooohhh!]

경기장의 분위기는 무척 좋았다.

그리고 뒷좌석에서 정장 차림의 트리플H가 내리자 관객들이 환호했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Triple H-! On Burning-Kong!]

캐스터가 버럭 소리쳤다.

[그가 여기에는 무슨 일일까요?]

[들어온 소식은 없군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MXT의 총괄자인 그가 왜 버닝콩에 나타난 것일까요!]

[광고 후! 뵙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인트로 영상.

신을 중심으로 새로 제작된 오프닝 영상은 2012년, WWF에서 어떤 선수들이 중심이 되었는지가 느껴졌다.

신, 랜스 오튼, 사모아 고, 브로큰 와이엇, C.M. 펑크 같은 사내들이 나와서 자신의 멋진 모습을 뽐냈다.

그와 함께 이어지는 메탈 음악은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도달한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광고가 나간 뒤.

시작되는 본 쇼.

[Ladies And Gentlemen! Welcome To! Monday Night Burning-Kong!]

그리고 시작되는 음악.

채앵-!

[Time To Play The Game!]

챙, 챙-!!

[Time To Play The Game!]

Euhhhhhhhhh……!

녹색으로 변하는 경기장.

조명과 모털 헤드의 메탈 음악.

그 가운데에서 정장 차림의 트리플H가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나타났다.

손에 평소 들고 나오던 물병은 없었다. 이제 그는 선수가 아니라 MXT를 지휘하는 총괄자의 입장이었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팬들은 환호했다.

오랜만에 링으로 돌아온 레전드 선수는, 이전까지의 역할과는 상관없이 큰 환호를 받는 게 전통이었다.

트리플H는 링에 올랐다.

그리고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돌아오니 좋군!”

[Yeeeeeeeeeeeeeeeeeeeaaahhh!]

[Triple H! Triple H! Triple H!]

[Triple H! Triple H! Triple H!]

“다들 나를 이렇게 환영해주는 걸 알았으면 은퇴 따위 집어치우고 계속해서 활동하는 건데 그랬어!!”

[Waaaaaaaaaggghhh……!]

환호가 좀 미묘하게 줄어들었다.

모니터링TV로 화면을 보고 있던 신은 저게 절대로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링을 떠났지. 그리고 너희들이 상상도 못하는 곳에서, 뉴-클리어 웨폰을 조제해왔어.”

[Uooooooooooooooooooooohhh!]

“M, X, T.”

헌터는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말하고는 로프를 붙잡고 앞으로 나섰다.

바로 그때였다.

관객석 쪽에서 움직임이 일어났다.

[What The……!]

[저건 대체 뭐죠?!]

[Look At That Size Of Him!]

비명을 지르는 해설자들.

바리게이트를 넘어서서 링으로 올라오는 네 명의 선수는 모두 트리플H와 색깔만 다른 정장을 입은 상태였다.

콘셉트의 통일성을 위해.

그들이 마치 군단처럼 보이도록.

신이 직접 제안한 바였다.

그리고 외모도 깔끔하게 다듬었다.

세스 롤링스는 수염을 깎았고 머리를 묶어서 젠틀한 모습으로 무장했다.

그리고 케빈 오윈스와 빅 E 랙스턴, 그론 스트로먼까지. 선수들 모두가 깔끔하게 외모를 정돈한 상태였다.

지금까지의 WWF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질적인 모습을 한 선수들.

그들이 헌터의 뒤에 섰다.

“그리고 이들이, 내가 지금껏 만들어왔던 ‘Future Of The WWF’다.”

[Uoooooooooooooooooooohhh!]

다행히 먹혀들었다.

제각각 선수들의 개성이 달랐고 다들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는 형태로 모습을 갖춰 하나의 그림이 이루어졌다.

팬들은 호기심을 가졌다.

저들은 누구인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그리고 여기에서.

기존의 WWF였다면 사용하지 않았을 방법으로, 각본은 전개가 되었다.

“물론, 여기 있는 놈들은 전부 신에게 한 번씩은 패배를 경험해봤지.”

만약 지금이 바트 맥센의 시대였다면 산하 단체에서의 기록은 없는 척 각본을 이어나갔을 터였다.

하지만 팬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걸 없앤다는 건 말 그대로 ‘기억 세탁’을 하겠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프로레슬러를 완벽하게 각본상의 캐릭터로 여기는 전개 스타일이었다.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었다.

이것은 현실의 일이었다.

그런 가정 아래에 전개되는 각본.

팬들은 헌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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