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26.
빅 죠가 부상을 입었다.
그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미 스포츠 뉴스로 보도가 되었고, 그 외에도 버닝콩에서 해설자가 적절한 때에 언급을 하면서 넘어갔다.
바로 트리플H가 링 위에 서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 다음이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빅 죠의 무릎이 나갔으니 섬머 수플렉스에서 신의 상대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잖아?”
[그렇습니다.]
[지난주의 일이었죠.]
그리고 영상이 재생되었다.
지난 주 신이 보여준 수퍼 플렉스.
아니, 그건.
‘버티컬’ 수퍼 플렉스였다.
무려 빅 죠를 뽑아든 상태에서 버텨내다가 뒤로 넘어가는 그 그림은 지켜보던 팬들의 감탄을 다시 자아냈다.
[Uooooooooooooooooooohhhh!]
투콰앙-!
까가앙!!
붕괴하는 링.
미쳐 날뛰는 관객들.
그리고 고통스러워하는 빅 죠.
“다들 보셨지? 신의 행동이 고의가 아니라는 사실은 너희 모두가 잘 알 거야. 정말로 안타까운 사고였지.”
그리고 돌아선 트리플H는.
입을 꾹 다물고 서있는 그론 스트로먼의 가슴을 툭툭 치면서 설명했다.
“죠의 무릎은 이 친구와 붙을 때 이미 나가있던 거야. 그론 스트로먼. 아직 내게 영리함을 배워야 하지만, 그 힘만큼은 아주 진짜인 놈이지.”
[Waaaaaaaaaaaggghhh……!]
환호는 미묘했다.
하지만 헌터는 그런 반응을 캐치해내고 곧바로 다음 타자로 이어갔다.
그 역시도 한때 시대의 주인공에게 맞서는 역할로 링을 장악했던 사내.
“다들 믿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군. 확실히 여기 있는 놈들은 신에게 한 번씩 당한 경험이 있으니까.”
바로 그게 문제였다.
이미 패배한 선수들을 아무리 모아봤자 누가 도전을 하더라도 딱히 팬들의 기대를 받지는 못할 터였다.
더군다나 그들은 메인 쇼에서 그 존재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선수니까.
그러므로 각본은.
챔피언인 신 스스로가 나서서 네 명 모두와 붙겠다고 말하는 식으로 이어질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하나.
그 계기를 만드는 것뿐이었다.
거기에는 사모아 고가 협력해줬다.
우-어-! 우-어-! 우-어-!
[Yeeeeeeeeeeeeeeeeeaaahhhh!]
얼마 전 U.S. 챔피언을 잃은 그는 이제 2선 벨트에 미련을 놓고는 WWF 챔피언십 도전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MXT와 트리플H가 나타나서 신과 챔피언십 매치를 치르겠다 뭐다 헛소리를 해대니.
분명 심기가 불편할 터였다.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팬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 속에 등장한 그는 곧바로 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일부러 헌터와 어깨를 부딪치고 지나가면서 크게 도발까지 했다.
사모아 고.
그는 여전히 폭군과도 같은 남자였고 이 정글과도 같은 업계에서 서서히 자신의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이거 원, 어이가 없군.”
[Uoooooooooooooooohhhh!]
“현역 시절과 달라지지 않았는걸. 헌터. 당신은 여전히 하이에나처럼 남들이 방심한 틈을 찾고 다니는군.”
“사모아 고.”
사모아 고에게서 모욕을 들었음에도 트리플H는 일단 먼저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고는 그걸 무시했다.
헌터를 다시 지나친 고는 침묵을 지키며 서있던 네 명의 선수들을 보았다.
세스 롤링스.
케빈 오윈스.
빅 E 랙스턴.
그리고.
그론 스트로먼까지.
“여기 모인 녀석들이 당신의 군대인가? 제기랄, 허우대만 멀쩡했지 눈빛이 마음에 드는 놈이 하나 없군.”
“자네도 내 현역 시절에 그랬지.”
[Uoooooooooooooooohhh!]
“하지만 지금은 이 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사내가 되었고. 원래 신인이라는 게 다 그런 법 아니겠나?”
헌터는 씨익 웃었다.
“다들 그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다가 결국 큰코다쳐봐야만 정신을 차리지.”
“하, 여기 있는 놈들 중 링에서 내 코털이라고 건드릴 수 있는 놈이 있다면 백만 달러를 내도록 하지.”
고는 오만하게 이야기했다.
아니, 그것은.
자신에게 높은 프라이드가 있는 사모안 파괴 전차로서 하는 말이었다.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팬들의 챈트가 다시 이어졌다.
고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런 놈들을 신과 붙이겠다고?”
“그래, 뭐 문제라도?”
“아쉽지만 다음 순서는 나야.”
고는 헌터를 위협하듯 다가섰다.
“이 업계에서 그놈을 꺾을 기회만을 가장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건 누구도 아닌 바로 나야. 그러니 네 애새끼들 데리고 당장 여기에서 꺼져.”
“…….”
헌터는 침묵했다.
[Yeeeeeeeeeeeeeeeeeeaaahhh!]
반대로 관객들은 환호했다.
사모아 고가 보여준 카리스마는 확실히 MXT보다 강한 설득력을 가졌다.
그런 상황에서 잠시 곤란한 듯 머뭇거리던 헌터는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명령했다.
“Take Him.”
쿵-!
그론 스트로먼이 선두였다.
[Boooooooooooooooooooooo-!]
네 명의 MXT 선수들이 헌터의 명령에 따라 사모아 고를 집단 린치 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고는 순간 대응하지 못했고 곧바로 바닥에 쓰러져 네 명에게 발로 마구 짓밟히고 말았다.
쏟아지는 야유 속.
헌터는 넥타이를 여미고는 선수들이 고를 박살 내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여기에서 관객들은 생각보다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
각 선수들이 자신의 시그니처 무브나 그에 준하는 기술을 하나씩 썼다.
뚱뚱한 체격의 케빈 오윈스가 탑 턴버클 위로 올라가 프로그 스플래시를 사용하지를 않나.
사모아 고를 번쩍 뽑아든 빅 E 랙스턴이 가볍게 피니시 무브인 빅 엔딩을 사용하지를 않나.
트리플H가 육성한 군단으로 포장된 MXT 선수들은, 첫 출연임에도 불구하고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모아 고가 어떻게든 일어서기 위해 바닥에 손을 대고 엎드리자, 세스 롤링스의 피니시 무브가 나왔다.
더 스톰프.
달리면서 힘껏 뛰어올라, 일어서려는 상대의 목을 밟고 찍어버리는 잔혹하기 짝이 없는 피니시 무브.
투콰앙-!
그것으로 고는 완전히 침묵했다.
[Uooooooooooooooohhh……!]
관객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MXT 선수들은 너무나 잔혹하고 강렬한 방식으로 사모아 고를 박살 냈다.
[Boooooooooooooooooooooo-!]
“이제 우리에게 순서가 왔나, 고?”
야유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마이크워크를 이어가는 트리플H.
“신!”
이내 그는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경고를 날렸다.
“MXT에서 기다리고 있으마.”
* * *
신이 버닝콩에 모습을 드러낸 시점은 쇼의 절반 정도가 지난 이후였다.
백스테이지 세그먼트.
[Yeeeeeeeeeeeeeeeeeeeaaahhh!]
급하게 온 듯 차에서 내린 챔피언은 벨트 두 개를 잊고서 걷다가 놀라 차로 돌아가 벨트를 다시 챙겨왔다.
쇼의 오프닝에서 벌어진 사건은 전혀 알지 못하는 그였던 만큼, 링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하지만 백스테이지의 직원들은 아까 MXT의 일을 다 기억하는 만큼 자기들끼리 숙덕거렸고, 신도 그런 이상한 기류를 눈치채고 누군가를 붙잡았다.
바로 2012년도에 WWF에서 대표적인 코믹 캐릭터로 큰 인기를 끌었던.
산티노 마릴라였다.
[이봐, 산티노.]
[어~ 신~! 무슨 일이야?]
[다들 분위기가 왜 이래?]
[무, 무슨 분위기?]
[시치미 떼지 말고. 백스테이지 분위기가 무슨 초상집이잖아. 날 속이려고 하면 곤란하다고. 아미고.]
[으, 으음.]
곤란해하는 산티노.
그로서는 괜히 신의 분노를 돋울 수 있는 일을 자기 입으로 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타이밍 좋게 난입하는 인터뷰어.
[신 선수, 잠깐 괜찮을까요?]
[아, 그래. 마침 잘 됐군.]
[오늘 사모아 고와 메인이벤트에서 경기를 가지기로 하셨었는데…….]
[그래, 좋아. 나는 오늘도 고의 엉덩이를 걷어차줄 거고. 전 세계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열광하겠지.]
신은 적당히 답변을 했다.
그리고 물었다.
[지금 분위기가 왜 그래?]
[아니, 그. 사실 지금 사모아 고 선수가 경기를 뛸 수 없는 상황이라서.]
[뭐야? 타코를 너무 먹어서 배탈이라도 난 건가? 대체 무슨 일인데?]
그리고 신은 설명을 들었다.
오프닝에서 버닝콩에 난입했던 MXT 선수들과 트리플H가 사모아 고를 린치에 병원에 실려 갔다는 이야기.
팬들은 신의 분노를 기대하며 그의 표정이 굳어져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래?]
신은 덤덤했다.
[이거 원, 늦을까봐 과속하면서 왔더니 상황이 완전 개판이 됐구먼.]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뭘 어떻게 해?]
신은 뒤로 돌아섰다.
[내 음악 틀어.]
[Yeeeeeeeeeeeeeeeeeeaaahhh!!]
그리고 시작되는 음악.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그 박자에 맞춰 카메라맨이 이동하며 링으로 나서는 신의 모습을 찍었다.
백스테이지를 지나, 고릴라 포지션을 거쳐, 마침내 커튼을 걷고 나간 그는 자욱한 연기를 헤치며 나섰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 모두가 느꼈다.
딱히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신은 지금 확실히 MXT 선수들에게 화가 난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 말도 않고 당장 링에 나와 의사를 전하겠다는 거겠지.
그 과정은 다소 호흡이 빨랐지만 분명 자연스러웠다. 신은 링에 올라 마이크를 쥐고 입을 열었다.
“러셀 오메가를 조지려고 준비해놨더니 이번에는 또 이쪽이 말썽이군!”
[Waaaaaaaaaaaaaaaaaaaggghhh!]
“알아, 알아. 인기 많은 남자는 피곤한 법이지. 특히나 벨트를 두 개씩이나 들고 있는 나 같은 놈은 매번 쓸데없는 어그로를 끌기 마련이라고.”
그렇게 ACW에서 벌어지고 있는 러셀과의 대립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신은 이내 길게 심호흡을 했다.
그것은 무척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지금 신은 프로레슬링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하드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단체 간 챔피언이었다.
그리고 그가 부재한 틈을 타서 파고 들어온 MXT 선수들과 헌터는 확실히 지능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날 슈퍼 열 받게 만들었으니까.”
신은 눈썹을 찡그렸다.
“너희를 열 받게 만들었으니까.”
[Yeeeeeeeeeeeeeeeeeeaaahhh!]
“잘 들어. 친구들. 오늘 나와 사모아 고는 이 링에서 너희가 평생 기억에 안고 갈 장면을 보여줬을 거야.”
하지만 MXT가 그것을 빼앗아갔다.
“열 받지도 않아, 마이애미? 그 개자식들이 너희 인생에서 가장 멋진 장면을 빼앗아 갔다는 말이야!”
[Boooooooooooooooooooooo-!]
“빌어먹을, 정말로 열이 받는군! 한판 붙어보려고 했던 죠는 무릎이 나가지를 않나! ……말해두는데, 그 자식의 전략은 꽤나 인상적이었다고.”
그렇게 부상으로 인해 안타깝게 전열을 이탈한 죠에 대한 리스펙트도 잊지 않은 신은 링 위에서 마치 속사포처럼 MXT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스토리가 설명되었다.
신이 7월에 MXT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모두가 잘 알고 있기는 했지만 확실히 각인이 된 사실은 아니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다 괜찮은 개자식들이야. 나한테는 안 되지만 몇 년 정도 지나면 이 링에서 너희를 즐겁게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놈들은 훌륭한 재능을 가졌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자식들은 지금 잘못된 선택을 크게 네 가지를 했지.”
신은 손바닥을 펼쳐 들었다.
“트리플H의 간악함에 넘어갔고.”
검지를 접었다.
“나를 열 받게 만들었고.”
약지를 접었다.
“너희들을 열 받게 만들었고.”
엄지를 접었다.
“몰라, 그냥 엿이나 먹어라.”
마지막으로 소지를 접었다.
남은 손가락은 중지 하나.
신은 그것을 카메라 앞에 대고 까딱거리면서 자신이 확실하게 열이 받았음을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 알렸다.
안타깝게도 고릴라 포지션에 있던 티파니 맥센의 순발력으로 인해 신의 중지는 화면에 검열이 된 채 나갔다.
“항상 조심해라 MXT. 내가 너희들 침대 밑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렇게 대립이 시작되었다.
단 하루 만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신과 MXT 정예 군단은 지켜보던 팬들의 기대감을 한계치까지 뽑아냈다.
* * *
“후우.”
“신!”
“와우! 오늘도 정말 멋졌습니다!”
그렇게 메인이벤트에서 MXT에 대한 경고성 세그먼트를 한 신이 고릴라 포지션으로 돌아오자, 팀원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 챔피언을 환영했다.
개중에는 MXT 선수들도 함께였다.
신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갈채와도 같은 칭찬에 일단 감사를 표했다.
“아, 고마워.”
“이야! 정말 죽여줬어요!”
“다들 너무 과찬하지 말라고. 제기랄, 오히려 비아냥대는 거 같다니까?”
“아니, 하지만 매번 쇼마다 이렇게 역대급으로 반응을 뽑아주시는데 대체 저희가 그럼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후.”
말을 말자.
링 위에서 카리스마의 상징과도 같은 모습을 보였던 신이 그러자 모두들 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어버렸다.
링 위에서와는 달리 그 가면을 벗으면 한껏 겸손을 떨면서 다소 부끄러워하기까지 하는 신이었다.
모두들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단 한 명은 달랐다.
“신, 오늘 좋았어요.”
“티파니.”
WWF의 실질적인 회장.
티파니 맥센이 신의 앞으로 다가가 자연스럽게 그 손을 움켜쥐었다.
회장과 아이콘의 연애 전선은 이미 회사 내에도 소문이 퍼질 대로 다 퍼졌기에 다들 웃으며 그걸 지켜보았다.
하지만 직후.
“티, 티파니?”
“누가 손가락 쓰래요?”
“아, 아파! 아파!”
“덕분에 광고주한테 또 변명을 하게 생겼네. 이래서 당신을 사랑한다니까.”
“아, 아니! 마음대로 하라며!”
“그래서 사랑한다고 하잖아요.”
“사랑이 너무 아프잖아!”
티파니가 손가락을 좌우로 잡고 힘껏 꺾자, 챔피언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어떻게든 변명을 했다.
사실.
이게 WWF의 최대 비밀이었다.
시대를 이끄는 카리스마적인 이 챔피언은, 사실은 아내의 말이라면 껌뻑 죽는 공처가에 무척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