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28.
단 일주일.
빅 죠가 링에서 부상을 입은 뒤, 딱 일주일 만에 전개된 각본은 놀라웠다.
트리플H를 내세운 MXT 군단의 버닝콩 습격과 바로 이어진 신의 반격.
마지막으로 금요일 밤의 랙다운에서 신과 트리플H, 네 명의 MXT 선수들이 경기 계약서에 사인을 하게 되면서.
‘건틀릿 매치’로 섬머 수플렉스에서 경기를 치르는 게 최종 확정되었다.
업계인 모두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신이 없을 때의 무게감을 새삼 느끼고 있던 PWA의 간부들은 잠깐 쉬는 시간에 그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빅 죠가 저번 주에 부상을 입었는데 벌써 이 정도 대립을 해내다니.”
“그 자식은 괴물이라니까.”
“젊었을 때의 날 보는 듯하지.”
“뭐, 어느 정도는…….”
“정확히 나 같다니까.”
그렉 하트가 껄껄 웃었다.
헤이건을 비롯한 다른 간부들은 그 말을 듣고 그저 쓰게 웃을 뿐이었다.
그나마도 그렉 하트였기 때문에 저런 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번에 ACW 벨트를 내려놓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우리 쪽 각본에도 어느 정도 써먹을 수 있겠지.”
“사실, 그것이 문제거든.”
“뭐가 말인가?”
“온갖 푸시를 다 소화하고 여러 단체에서 모두 원하고 있다 보니, 고향인 우리 쪽에서는 못 쓰고 있지.”
그 말이 맞았다.
이제는 아주 오랜 옛날처럼 단체 간 협력과 교류가 점차 이루어졌지만 신은 개중에서도 특별한 존재였다.
그러므로 각 단체에서 갖은 방법을 다 써서라도 계속 데리고 가길 원했다.
데릭 비숍이 수장으로 있는 ACW는 말할 것도 없었고, WWF 역시도 은근히 최대한 이득을 챙기고자 했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건, 신에게 단체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거지.”
동시에 다른 단체의 선수들도 가만히 있는 건 아니라서, 업계는 이후로도 꽤나 흥미롭게 발전해나갈 듯했다.
러셀 오메가.
숀 시나.
그 외에도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새로운 얼굴들이 이 업계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신을 꺾기 위해서.
여기에서 참으로 아이러니한 점이, 일부러 그런 상황을 만들기 위해 신 본인이 나서서 다른 선수들과 교류를 가진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신은 스케줄이 끝난 이후로 곧장 MXT로 가, 섬머 수플렉스에 앞서 철저하게 경기를 짜고 있었다.
한 시대의 아이콘이 그렇게까지 하니 당연히 MXT 선수들은 연습을 구경하고 싶어서 모두 회사로 출근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경기 내용 유출 방지를 위해 훈련장에는 링 프로듀서와 헌터 이외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단단히 잠겨 있는 훈련장.
그럼에도 다들 호기심 때문인지 계속해서 기다렸고, 2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누군가 밖으로 비틀거리며 나왔다.
바로 세스 롤링스였다.
“세스!”
“야, 이 자식 부럽다!”
“…….”
하지만 세스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안색은 창백했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어서 어딘가 아픈 사람처럼 보였다.
“왜, 왜 그래?”
케일리가 의아해 물은 순간이었다.
[야!! 정신 안 차려?!]
버럭 들려오는 목소리.
콰앙-!
그리고 폭음.
세스가 입을 벙긋거렸다.
Run.
당장 여기에서 도망치라는 말에 훈련장 안의 상황에 대한 다른 선수들의 의문은 깊어만 갔다.
하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힘들거나 빡센 훈련은 절대로 아니었다.
신은 그런 환경에서 자랐지만, 비교적 다른 선수들을 동등하게 대하는 편에 가까웠다.
단지 방금은 빅 E가 너무 생각 없이 너무 위험하게 낙법을 쳐서 큰 소리로 주의를 줄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너 진짜 불구 되고 싶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절대로! Never! Ever! 네 몸이 안전하게 땅에 닿기 전까지 긴장을 풀지 마! 알겠어?!”
“옙!”
“좋아! 다시!!”
훈련이 이어졌다.
빅 E는 심장이 뛰는 걸 느꼈다.
그전까지 계속해서 격려를 아끼지 않던 신이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처럼 소리를 지르며 자신에게 화를 냈다.
그건 그만큼 큰 실수라는 뜻이리라.
그러므로 그는 신의 수플렉스에 다시 낙법을 칠 때 끝까지 정신을 차리고 최대한 섬세하게 낙법에 임했다.
그러자 돌아오는 대가.
쿠웅-!
“잘했어! 그렇게 하란 말이야!”
신은 곧바로 포상(?)을 주었다.
덕분에 의욕이 솟았다.
그런 식으로 이어지는 훈련.
빅 E의 피니시 무브인 빅 엔딩을 뒤쪽으로 빠져나온 신이 슈퍼 킥을 쓰는 스팟이 한 차례 이루어졌다.
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기, 헌터!”
“뭐냐?”
“방금 저 어땠어요?”
“좀 덜 흐느적거리는 편이 좋겠군.”
“그렇죠?”
“두 번째 경기라서 체력은 쌩쌩한 상태일 테니 말이야. 굳이 치열한 면을 부각시키지 않아도 되겠지.”
헌터는 날카롭게 지적했다.
신도 같은 생각이었다.
“한 번 더 해보자.”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슈퍼 킥.
쫘악-!
“호오.”
“와…….”
모두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절묘했다.
빅 E의 가슴과 목 사이를 정확하게 겨냥하고 걷어찬 슈퍼 킥은 상대를 안전하게 공격하면서도 타격감을 최대한 살린, 그야말로 ‘명품’ 그 자체였다.
“이렇게요?”
“좋아.”
고개를 끄덕이는 헌터.
그렇게 슈퍼 킥을 맞은 빅 E가 쓰러지자 신은 곧바로 샤프 슈터를 걸어서 탭 아웃을 받아내려고 했다.
헌터가 가까이 다가와 외쳤다.
“버텨, 버텨!”
“끄그으으윽……!”
하지만 다음 순간.
신은 돌연 샤프 슈터를 풀었다.
“아니, 이건 아닌 거 같은데요.”
“왜?”
“지금 한 사람당 지정된 시간이 7분에서 10분 정도잖습니까. 빅 E가 탭을 치는 그림은 뭔가 좀 이미지를 너무 깎아 먹게 하지 않나 싶어서요.”
“음…….”
“역시 그냥 킥으로?”
“아니, 차라리.”
헌터는 턴버클 위를 가리켰다.
“피닉스 스플래시가 낫겠군.”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요.”
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케빈 오윈스는 자잘한 디테일 하나하나를 신경 써주는 신의 모습을 보고는 약간의 감동마저 느끼고 있었다.
‘저런 사람이.’
인디 시절에는 자기를 돋보이게 만들고 싶어서 락커룸에서 행패를 부리고 하는 놈들로 가득했었다.
물론, 그건 WWF의 눈에 들어서 어떻게든 ‘메인 스트림’으로 가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존재했다.
인디 레슬링은 그래서 전쟁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메이저는 메이저다웠다.
큰 그림을 볼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신도 선수들을 최대한 배려했다.
“다음!”
여기에서 뛴다는 사실에, 또한 최고와 싸울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끼며 케빈은 링에 올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경기.
“자, 이렇게 해머링으로.”
“제가 밀릴까요?”
“처음에는 살짝 그렇게 해줘.”
신은 로프까지 케빈을 밀어냈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후, 옆으로 돌아와 로프에 기대어서며 케빈이 직접 그 모습을 보고 따라할 수 있도록 시범을 보여줬다.
“로프에 몸을 살짝 튕겨.”
신이 브롤링의 대가이자 ‘황제 전사’라고까지 불렸던 남자인 베이다로부터 꽤 오래전 흡수했던 스킬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두 사람은 포지션을 바꿨다.
케빈이 신의 자리에 섰고.
신은 케빈이 되어 어떤 식으로 반격을 가해야 극적으로 보이는가를 하나하나 일일이 가르쳐주었다.
“이렇게 펀치를 날리는 거지. 로프를 마치 발판으로 삼듯이 말이야. 그러면 내가 휘청거리며 물러날 거야.”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응? 왜.”
“아니, 저는 애초에 선배님하고 경기 뛸 때 초장부터 도망 다녔는데요.”
“그건 내가 쌩쌩했을 때고.”
건틀릿 매치의 3경기째.
세 번째 타자로 나온 케빈은.
“아하.”
곧바로 자기 입장을 이해했다.
역시 감이 좋다.
신은 미소를 지었다.
“제가 입장할 때 일부러 벨트는 이제 내 거라고 소리치면서 들어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요.”
“야유 겁나 받을 거다.”
“괜찮습니다.”
“아닐걸.”
“……?”
“그래도 해봐.”
신은 미소를 지었다.
훈련이 다시 이어졌다.
케빈이 프로그 스플래시를 사용하는 스팟에서는 신이 직접 맞지 않고 바닥에 매트를 대서 타격을 피했다.
투콰앙-!
그럼에도 엄청난 소리가 났다.
체중이 무려 120킬로그램을 넘어가는 케빈 오윈스의 점프는 그야말로 플라잉 포크찹이라는 별명을 사용하더라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듯했다.
‘정말 더럽게 아프겠군.’
하지만 신은 그걸 이겨내고 결국에는 반격을 가해 이길 예정이었다.
슈퍼 킥 앤 스팅거 콤보.
쫘악-!
쩌억-!
원, 투, 쓰리.
“이렇게 끝나고.”
마지막으로 나오는 건.
“올라와라. 스트로먼.”
“옙!”
그론 스트로먼이 올라왔다.
그는 기묘한 경험을 했다.
분명 자신보다 20센티미터는 더 작을 사내가, 왠지 모르게 거대한 산이나 장벽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너는 네가 리드를 해야 한다.”
“제, 제가요?”
“그래. 4경기에 너처럼 거대한 몬스터가 나왔어. 그리고 너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게 ‘감정’을 느끼고 있지.”
‘삐이이이이일리이이잉(Feelling)’.
신은 일부러 ‘감정’이라는 단어를 더 힘주어 말하면서 그것이 경기에서 갖는 무게감을 강조했다.
“안 그러냐?”
“으음.”
“네 감정대로 대답해.”
“예, 만약에 저였다면 같은 거인으로서 죠의 무릎이 부서졌다는 걸 안타깝게 여길 거로 생각합니다.”
“좋아, 좋아.”
신은 씨익 웃었다.
“타격기부터 가자고.”
그리고 이어지는 펀치.
스트로먼은 최대한 소리가 날 정도로만 힘을 줄인 상태에서 신에게 해머링을 날리며 공격을 해나갔다.
그걸 보며 헌터는 생각했다.
‘이거 정말, 할 게 없군.’
신이 뒤통수에 눈이 달리지는 않았으니, 간간히 어땠느냐고 물어볼 때마다 답변을 좀 해주는 게 전부였다.
피닉스 스플래시도 이쪽을 배려해서 말할 수 있도록 기다려준 거겠지.
‘오히려 그게 기분 나쁘군.’
이전까지 이 업계에 없던 녀석이었다. 신이 보여주는 상냥함과 배려심은 평소에도 분위기가 좋던 MXT조차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따뜻했다.
쩌억-!
스트로먼은 신의 리드에 따라 차근차근해나갔고 그렇기에 다들 지쳐가는 상황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까 세스는 ‘네가 처음에 체인으로 분위기를 잡아줘야 한다.’는 말에 마구 휘둘려 많이 지쳐 보이긴 했지만.
숨을 돌리고 나자 좀 괜찮아졌는지 신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후.
“스트로먼!”
신이 버럭 소리쳤다.
“예, 옙!”
“프로레슬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뭐라고 생각하냐?”
“각본입니다!”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 건 칭찬해주지. 하지만 아니야. 누구 내 질문에 대답해볼 놈 있냐?”
헌터는 다시 어이가 없어 웃었다.
‘타고난 선생님이군.’
그 말에 각자 대답이 이어졌다.
“카리스마입니다!”
“두루뭉술해!”
“기술입니다!”
“땡이다!”
“어, 전우애?”
“……정답이다.”
신의 인정을 받은 빅 E가 환호했다.
“정확히는 팀워크다. 그리고 이건, 일반적인 방식과 다르면서도 섬세하지. 남자라면 다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신은 스트로먼을 돌아보았다.
“네가 나를 믿고, 나를 존중한다면, 기술을 쓸 때 상대를 위하는 마음으로 쓰는 게 아니다. 알겠냐?”
“예, 알겠습니다!”
“그래야지 좋다고. 상대를 괜히 배려한답시고 살살 놓거나 그러면 더 다쳐. 보기에도 좋지 않고 말이지.”
바로 그 순간.
심드렁하던 헌터를 제외하고 훈련장에서 신의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했다.
지금 이 순간, 신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을 절대 잊어버리지 않겠다고.
* * *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준비했고, 다행히 나와 경기를 할 녀석들은 뒤를 무척 잘 따라와주었다.
특히나 놀란 건 케빈이었다.
이 녀석은 뭐든지 쏙쏙 흡수했다.
오히려 내가 말해주지 않았는데 이쪽의 테크닉을 가져갔다. 정말이지 어메이징하고 터프한 녀석이었다.
하긴.
그러니 뚱뚱한 체구로도 이 업계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거겠지.
다른 녀석들도 나쁘지는 않았고, 가장 걱정했던 스트로먼도 잘 따라왔다.
그렇게 나는 모든 준비를 끝마친 상태에서 섬머 수플렉스를 맞이했다.
원래대로였다면 죠와 경기를 했어야만 했으나, 안타까운 사정으로 인해서 그럴 수는 없게 되었다.
하지만 대신.
이놈이 함께였다.
그론 스트로먼.
“야.”
“예, 선배님!”
“쫄았냐?”
녀석은 경기장의 규모와 거기에 들어차는 관객들의 숫자를 보고는 안색이 엄청나게 창백해진 상태였다.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빅 E는 계속 뭘 먹었고, 케빈은 화장실을 계속 들락날락거렸으며 세스는 쓸데없이 힘을 빼고 있었다.
“다들 모여봐라.”
나는 그놈들을 모두 모았다.
그리고 아까 문자로 미리 이야기를 해두었던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로 빅 죠였다.
“죠!”
[헤이~! 다들 좀 어때?]
“이 자식들 얼굴 좀 봐요.”
[푸하하하! 아주 가관이군! 내 이건 꼭 기록으로 남겨둬야겠어!]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병상의 그는 겁먹은 선수들을 보며 크게 웃어댔다.
그러더니 이내.
[기회를 붙잡아라.]
단호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그 말이 맞았다.
이 경기는 지금 여기 모인 네 명의 선수들에게 있어 가장 큰 기회였다.
“후우…….”
스트로먼이 크게 심호흡을 했고.
다른 선수들도, 제각각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설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두 시간 뒤면 올 기회와 마주서서, 멋진 펀치를 날릴 준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