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29.
케빈 오윈스, 그리고 세스 롤링스.
두 사람은 신처럼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캠핑 버스에 몸을 싣고서 전국을 돌아다닌 인디 출신이었다.
프로레슬링을 사랑했던 둘은 언제나 레슬 임페리움이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싸우는 것을 꿈꾸며 계속 싸웠다.
열망을 가졌고 재능마저 있던 두 사람은 트리플H가 MXT라는 단체를 만들 때 가장 먼저 계약을 추진했다.
그래서 MXT가 출범한 이후로 금방 두각을 드러냈고 실력을 인정받아 자연스럽게 위클리 쇼에서도 활약했다.
트리플H는 언제나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WWF의 미래다.]
그러니 이곳에서 ‘텔레비전 프로레슬링 쇼’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 트레이너들의 말을 듣고 수련한다면.
[언젠가 너희의 시대가 온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프로레슬링 무대에 케빈 오윈스와 세스 롤링스가 올라가 싸우는 날이 분명히 온다.’
왠지 그 말이 떠올랐다.
그게 오늘일 줄은 몰랐지만.
“……후우.”
케빈은 심호흡을 했다.
빅 죠에게 격려를 받은 이후로 마음이 좀 편해지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긴장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제야 좀 느껴졌다.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프로레슬링은 완전 아마추어 짓이나 다름없었다.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오십여 명 남짓한 관객들 앞에서 펼친 경기는 이곳과 비하자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Waaaaaaaaaaaaaaaaaggghhh!!]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팬들의 환호.
벽이 실제로 울렁거린다 싶을 정도였다. 케빈은 거기에서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고는 벽에 기대어 앉았다.
다들 그런 식이었다.
아무리 긴장을 풀려고 해도 그걸 의식할수록 오히려 더 심장이 뛰었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라서 그렇게 다들 딱히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침묵만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원 페어.”
반대편에서는 신을 중심으로 베테랑 선수들 간의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바로 ‘포커’ 경기였다.
“와, 이 새끼!”
분노를 참지 못하는 랜스 오튼.
“원 페어로 이걸 따라와?!”
“속는 네가 등신이지.”
신은 낄낄거리며 웃고는 카드더미를 정리했다. 나머지 선수들도 오튼이 좋은 패를 들고도 다이를 했다는 사실을 놀려대며 좋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긴장을 안 한 게 아니었다.
선수들은 긴장을 풀기 위해서 나름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 중심에는 신이 있었다.
오튼이 카드를 들고 오면서 자연스럽게 소리를 듣고 모인 선수들로 인해 포커 판이 벌어졌다.
“야 너! 기다려라! 내가 경기 끝나고 오면 다시 해! 감히 원 페어로 겨우 나온 내 스트레이트를 가져가?”
세미 메인이벤트에 출전하기로 된 오튼이 카드를 놓고 나갔고, 신은 그에게 행운을 빌어주며 계속 놀렸다.
“Break A Leg.”
“진짜로 다리가 부러지란 뜻이지.”
사모아 고가 농담을 건넸다.
케빈은 신기해 그걸 바라보았다.
저렇게 장난을 치며 놀던 오튼이 방을 나서기 직전 표정이 굳어졌다.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었다.
현재, 보다 악역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오튼은 그 광기 어린 카리스마로 인해 많은 팬들을 거느렸다.
케빈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단하군.’
저것이 바로 WWF에서 10년 가까이 근속해온 베테랑의 모습인 것일까.
커튼을 걷고 나가면 15만의 관객들이 있는 경기장에서 싸워야만 하는데.
오튼은 심호흡을 몇 번하고는 복도를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할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도 그랬다.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테마곡.
[Waaaaaaaaaaaggghhh!]
[Booooooooooooooo-!]
환호와 야유.
어느 쪽도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가운데, 링에 오른 랜스 오튼은 도전자로 나오는 바비 애슐리를 맞이했다.
투둥-퉁투퉁-!
‘The Titan’.
[Booooooooooooooooooooooo-!]
그에게 쏟아지는 야유는 강렬했다.
멋진 카리스마를 보여준 바비는 링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신에게 찾아와 살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케빈은 왠지 모르게 지금 WWF 선수들 전체가 신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는 치열한 싸움 끝에 바비 애슐리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러자 케빈은 입술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다.
“좋아.”
그리고 신이 일어섰다.
“갈까!”
두 개의 챔피언 벨트.
다른 선수들에 비해 적어도 두 배 이상의 중압감을 느끼는 챔피언의 자리, 그걸 두 개씩이나 유지하고서도.
신은 당당했다.
“후우.”
입장은 챔피언부터.
케빈 오윈스.
세스 롤링스.
빅 E 랙스턴.
그리고 그론 스트로먼.
네 명의 선수들은 고릴라 포지션에서 방송을 지켜보며 자신의 차례에 출전해 신과 경기를 가질 예정이었다.
그리고 이 네 사람의 부족한 위상을 끌어올리기 위해, 트리플H가 링 사이드에서 매니저로 참관하기로 되었다.
헌터가 신의 등을 툭 때렸다.
“좋아, 챔피언.”
“헌터.”
두 사람의 주먹이 부딪혔다.
광고가 나가는 동안, 입장로 위에는 신의 입장을 위한 ‘설치’가 이뤄졌다.
바로 턴 테이블이었다.
그리고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소개가 아나운서에 의해 이루어졌다.
[Ladies And Gentlemen, Please Welcome. The ‘Skullex’.]
[Waaaaaaaaaaaaaaaaggghhh!!]
그리고 턴 테이블 앞에 검은 선글라스를 쓴 긴 머리칼의 백인이 나섰다.
바로 스컬렉스.
신의 첫 번째 테마곡을 만들어준 장본인이자 음악적으로 멋진 활동을 보이기 시작한 뮤지션이 나타났다.
‘나중에 유명해져서 만나겠다.’
그렇게 생각한 신이 그를 초청해서 극적으로 스케줄 조정이 이루어진 끝에 드디어 그 꿈이 성사가 되었다.
스컬렉스는 특별히 준비된 음악을 통해서 신의 입장을 도울 예정이었다.
모두가 침묵하며 보는 가운데.
방송이 다시, Back To Live.
그리고 시작되는 음악.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Waaaaaaaaaaaaaaaaaaaggghhh!]
쏟아지는 환호와 함께 시작되는 신의 음악. 팬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스컬렉스는 오케스트라 메탈에 가까웠던 음악을 자신의 스타일로 편곡해내면서 팬들을 즐겁게 했다.
‘미국 EDM씬의 Night King’.
그런 별명을 가진 스컬렉스는 자신의 첫 작업인 신의 첫 테마곡을 사용하는 대신, 그를 상징하는 두 번째 테마를 EDM 버전으로 편곡했다.
사람의 귀를 자극하고, 심장 속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EDM의 짜임새.
팬들은 열광했다.
그리고 챔피언이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와 다른 스페셜 엔트런스.
연기는 없었고 자신의 어깨에 얹혀진 두 개의 벨트를 들고 나타난 신은 입장로 위를 마음껏 누볐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음악을 즐기며.
이 순간을 즐기며.
자신의 카리스마를 즐기며.
한 차례 크게 포효한 신은 턴 테이블을 조작하고 있던 스컬렉스의 앞으로 다가가 천천히 주먹을 내밀었다.
스컬렉스가 피식 웃으며 피스트 범프에 응했고, 그렇게 무려 GCW 시절부터 신이 멋대로 혼자 해왔던 약속이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케빈은 할 말을 잊었다.
저게 바로 아이콘이었다.
앞선 그 누구도 신을 따라가지는 못했다. 그에게 쏟아지는 팬들의 환호는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거대했다.
저런 남자와 싸워야만 한다.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분명히 겁에 질렸을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곳이 프로레슬링의 무대였기에 달랐다.
네 사람은 똑같이 링에 나서기 전에 신이 마지막으로 한 말을 떠올렸다.
‘너희가 실수 좀 해도 내가 다 커버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나와라.’
마음이 든든해졌다.
세스 롤링스가 앞으로 나섰다.
“세스.”
“예, 헌터. 괜찮습니다.”
“그래, 너 할 일만 생각해라.”
헌터는 약간 솟아오른 세스의 어깨를 주무르면서 진정을 시켜주었다.
신이 링에 올라갔다.
미들 로프를 밟고 올라간 그는 자신의 두 챔피언 벨트를 과시하듯이 들어 올렸고 팬들은 계속 챈트를 보냈다.
“후우.”
“세스 롤링스!”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심호흡을 했던 세스는 뒤를 돌아보았고 음향 팀장이 사인을 보내며 링으로 나갈 타이밍을 잡아주었다.
[Booooooooooooooooooooooo-!]
세스 롤링스의 테마.
트리플H를 뒤에 대동한 채 나타난 젊은 선수를 보고 팬들이 야유했다.
약간 긴장이 되는 상황에서 트리플H는 거만하게 박수를 치며 세스 롤링스에게 환호를 보내라고 유도했다.
물론 통할 리는 없었지만.
[Boooooooooooooooooooooo-!]
야유 속에서 트리플H는 세스의 얼굴을 잡고 이마를 맞대며 그에게 신을 상대하는 법에 대해서 가르쳐주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옙!”
“가서 네 할 일을 해라! 오늘 네 티셔츠 매상이 두 배로 오르도록 해!”
“으아아아아!!”
세스는 흥분해 크게 외치고는 그대로 링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The Architect.
경기의 설계자.
입장로를 걸어가 링에 오른 그는 눈앞이 새하얗게 물드는 것을 느꼈다.
15만이라는 압도적인 관객들.
그들을 앞에 두고 경기를 할 수 있을까 순간적으로 공포감마저 느낄 정도였고 세스는 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신의 한마디.
“여기까지 올라왔구나.”
“…….”
신기할 정도로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이 모든 이들의 존중을 받고 있는 신이 경기를 갖자고 해주었다.
그렇다면 생각할 건 오직 하나.
눈앞의 상대뿐.
땡땡땡-!
경기의 규칙이 설명되었고 챔피언과 자신의 소개가 이어지는 동안 세스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땡땡땡-!
경기에 나섰다.
* * *
세스가 내게 달려들었다.
‘짜식이.’
이제는 괜찮아보였다.
링에 오를 때만 하더라도 관객들로 인해 잔뜩 긴장을 했던 세스였지만 이제는 그래도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경기는 락 업으로 시작되었다.
쿠웅-!
서로 팔을 붙잡고 맞붙은 상태에서 힘을 겨루며, 세스와 나는 미리 준비해둔 대로 체인 레슬링에 들어갔다.
짧게 힘을 겨뤄본 세스는 안 된다고 판단했는지 그대로 팔을 떨쳐낸 뒤 내 뒤로 돌아들어와 허리를 붙잡았다.
나는 무릎을 꿇어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뒤쪽으로 팔을 뻗어 세스의 머리를 붙잡고 그대로 넘어오게 했다.
쿵-!
바닥에 등부터 떨어지는 세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체인.
내가 쓰러진 놈의 팔을 붙잡으며 꺾었고 세스는 핸드 스프링으로 벌떡 일어선 뒤 백스핀 엘보를 날렸다.
나는 상체를 낮춰 그걸 피했다.
세스가 팔을 튕기며 물러났다.
그리고 잠깐 탐색전.
[Uoooooooooooooohhhh……!]
팬들은 순간 참았던 숨을 내쉬며 나와 세스의 움직임을 계속 지켜보았다.
체인 레슬링.
경기 초반의 탐색전 양상으로서 진행되는 이 싸움은 사실, 얼마든지 흥미롭게 만들 수 있는 부분이었다.
동시에 레슬러의 실력이 정말 중요했다. 특히나 유연성이 필요해 잘하는 선수들은 거의 체조 선수 같았다.
나도 체중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벌크를 딱 운동 능력을 유지할 수 있는 선까지만 키워둔 만큼 자신 있었다.
하지만.
‘꽤 하는데?’
세스는 연습에서 몇 번이고 실수를 하던 것과는 달리 동작을 잘 수행했다.
더욱이, 그냥 체인 레슬링이 아니라 중간 중간에 타격기를 섞어서 우리는 최대한 현실적인 모습을 더했다.
쩌억-!
헤드벗.
[Waaaaaaaaaaaaaaaggghhh!!]
휘청거리는 세스.
나는 그대로 놈을 넘겼고 스톰핑을 날리며 그 기세를 꺾으려고 들었다.
하지만 직후.
옆으로 돌아누워 공격을 피한 세스가 마치 뱀처럼 다리를 들어 그대로 내 다리를 걸었다.
“큭……?!”
비틀거리며 내가 무릎을 꿇은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세스가 옆으로 달려가 그대로 미들 로프를 밟았다.
그리고 뛰어올랐다.
[Uoooooooooooooooooohhh?!]
아사이 문설트.
로프를 밟고 뛰어올라 반 바퀴 회전하며 상대방을 몸으로 덮치는 기술.
순간 반응해 일어섰던 나는 날아드는 세스의 기술을 그대로 받아주었다.
콰앙-!
순간 링이 요동쳤다.
팬들은 깜짝 놀랐다.
신인.
지금껏 얼굴도 본 적이 없던 MXT의 애송이가 경기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 큰 기술을 사용했으니까.
그것도 나를 상대로.
‘그렇겠지.’
다행히 반응은 생각한 대로였다.
“좋아! 세스!”
헌터가 박수를 보냈다.
아사이 문설트 이후, 곧바로 자신이 주도권을 잡았다고 생각한 세스는 일어선 내게 다시 기술을 사용했다.
정면에서 달려와 힘껏 뛰어오른 세스가 순간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슬링 블레이드.
그걸 느낀 순간.
목을 붙잡혀 지면에 떨어졌다.
투콰앙-!
팬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세스 롤링스.
MXT 출신의 이 가소로운 신인이 나를 상대로 우위에 섰다. 경기 시작 전에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역반응’이 우려되는 순간이었다.
프로레슬링은 드라마였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관객들이 납득을 해야만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이 되었다.
하지만 사실 메인 쇼에 데뷔하지도 않은 신인인 세스가 더블 타이틀 홀더인 나와의 경기에서 우위를 점하면 솔직히 말해 누구도 납득하지 않겠지.
쓰러진 나.
일어선 세스.
팔을 번쩍 치켜들며 세스가 반응을 이끌어내자 엄청난 야유가 나왔다.
[Booooooooooooooooooooo-!!]
바로 그때였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캐스켓-테이커의 싯 업.
[Uooooooooooooooooooooohhh!]
그 말이 맞았다.
오늘 경기는, 내가 네 명의 신인들을 상대로 Lesson을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