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31.
경기는 계속 이어졌다.
신은 롤링 크레이들 이후로 계속해서 기술의 화려함을 더해가면서 빅 E와 자신의 클래스 차이를 보여줬다.
동시에.
조금씩 빅 E가 ‘힘’을 써서 자신에게 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원래의 계획과 절묘하게 템포를 맞췄다.
이 건틀릿 매치에서 MXT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목적은 실로 간단했다.
네 명의 신인이 링으로 나와서, 신에게 맞서 조금이라도 자신의 강점을 보이는 게 그것이었다.
세스 롤링스는 그렇기에 테크니컬한 모습을 최대한 보여주었고 팬들의 기억 속에 남을 수가 있었다.
빅 E도 마찬가지였다.
“크하압!!”
신의 경기력에 조금씩 밀리는 상황에서도 그는 거대한 수플렉스를 연달아 터뜨리며 그 힘을 보여주었다.
벨리 투 벨리 수플렉스가 어찌나 강력했는지 신은 코너 앞에서 반대편 코너까지 힘차게 날아가 떨어졌다.
투콰앙-!!
거기에 시선을 빼앗기는 관객들.
빅 E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제기랄.’
전혀 즐겁지가 않았다.
MXT에서 레슬링을 할 때는 그냥 서로 적당히 웃으면서 비슷하게 못난 놈들끼리 실력을 키워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아니.’
신은 달랐다.
그는 이 신인 네 명이 각자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으며 빅 E는 그걸 느꼈다.
‘이토록 기분이 좋을 수가.’
그렇기에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경외감을 느꼈다.
상대에 대한 경외감.
신은 그런 선수였다.
신인에게 벨리 투 벨리 수플렉스 한 방을 맞더라도 최대한 상대를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셀링을 구사했다.
빅 E가 내던지자 링 반대편으로 날아가더니, 바닥에 등이 닿자마자 튕겨져 올라와 몇 바퀴를 더 굴렀다.
마치 할리우드 영화 같았다.
그럼에도 그는 벌떡 일어섰다.
팬들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이걸 소화한다고?’
믿기지가 않았다.
호흡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지금 팬들이 신이라는 선수를 얼마나 깊이 신뢰하고 있는지가 느껴졌다.
많은 걸 배웠다.
‘이렇게 되고 싶다.’
그걸 생각한 빅 E는 자신을 향해서 다가오는 신을 한쪽 어깨에 들쳐 멨다.
이대로 지면에 누우면서 상대의 전면부를 바닥에 충돌하도록 만드는 기술이, 피니시 무브인 빅 엔딩이었다.
하지만 미리 정해두었던 대로.
[Uooooooooooooooohhh?!]
빅 E의 어깨를 잡고 몸을 밀어 뒤쪽으로 빠져나온 신은 상대가 돌아서는 순간, 안면에 슈퍼 킥을 날렸다.
쩌억-!
빅 E의 거구가 넘어갔다.
트리플H와 미리 이야기를 했던 대로 정확하게 기술을 넣은 신은 뒤로 돌아 탑 턴버클 위로 훌쩍 올라섰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환호를 보내는 관객들.
그리고 한 마리의 불사조가 날았다.
피닉스 스플래시.
크게 회전한 신의 몸이 그대로 지면에 누워 있던 빅 E의 몸에 떨어졌다.
투콰앙-!!
폭음과 함께 이어지는 핀 폴.
[1……!]
[2……!]
[3……!]
그렇게 두 번째 경기가 끝났다.
[Yeeeeeeeeeeeeeeeeeeeeaaahh!]
[빅 E 랙스턴이 제거되었습니다.]
신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자신은 쌩쌩하다.
그것을 보여주듯 그는 로프를 붙잡고 흔들며 관객들의 호응을 끌어냈다.
그리고 세 번째 선수가 등장했다.
케빈 오윈스.
마치 평범한 옆집 아저씨와 같은 외모의 이 남자는, 그렇기에 오히려 나왔을 때 팬들의 이목을 더 끌었다.
레슬링 기어도 그냥 반바지에 롱 부츠, 소매가 없는 티셔츠라는 헬스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림이었다.
K.O.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
자신의 주먹에 느슨하게 감겨 있던 테이핑을 확실히 당겨서 다시 감은 그는 힘껏 포효하며 링으로 향했다.
[Waaaaaaaaaaaaggghhh!]
경기의 분위기는 환상적이었다.
그렇기에 알아서 환호가 나왔다.
앞선 두 사람과 멋진 경기를 만들었기에 팬들은 자연스럽게 케빈 오윈스의 실력도 믿고 환호를 보냈다.
사실, 이건 예상 밖이었다.
신조차도 팬들의 반응이 이렇게 좋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케빈 오윈스는 ‘벨트는 내 거다.’라고 말하지 못한 채 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팬들의 기대에 부응해, 곧바로 신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다.
빠악!
신도 지지 않았다.
서로, 상대방의 머리가 빠지지 않도록 반대편 손으로 단단히 붙잡은 상태에서 삽시간에 난타전으로 들어갔다.
그로서 팬들은 간단히 케빈 오윈스가 어떤 남자인지에 대해서 알았다.
화끈하게 치고받던 케빈은 이내 신의 기세에 밀려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로프에 등을 기대는 케빈.
여기서 정해둔 스팟이 나올 때였다.
‘정말 더럽게도 연습했지.’
케빈은 로프에 그대로 반동을 했다.
탑 로프 부근이 체중에 의해 밀려났고, 이내 탄력을 받아 케빈을 밀었다.
“크하아악!!”
그리고 이어지는 해머링.
퍼억!
하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Uoooooooooooooooooohhhh!]
원래 스팟과는 달랐지만 케빈은 일부러 신이 한 번 버텨냈음을 알아차리고 클로스라인으로 연결했다.
콰앙-!
그제야 쓰러지는 신.
케빈은 숨을 몰아쉬었다.
‘벌써 힘들군.’
공기의 중압감에 짓눌렸다.
경기장 안의 공기가 자신의 어깨를 잡고 그대로 누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케빈은 신을 믿는 것으로 부담감을 극복하고 공격을 이어갔다.
케빈 오윈스.
얼핏, 아니, 그냥 대놓고 봐도 평범하게 보이는 이 남자가 이곳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
그중 하나는 상대를 완전히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듯한 트래시 토크였고.
다른 하나는 경기에서 선보이는 하드코어한 느낌이 강조된 브롤링이었다.
그는 실제로 헌신하는 사내였고, 링에서 어떤 스팟을 만나도 빼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레슬링을 했다.
말 그대로 몸을 던져가면서.
하지만 그런 레슬링의 문제는.
‘상대하는 쪽이 죽어나간다는 거지.’
신은 케빈의 손에 붙들려 자리에서 일어나며 생각했다.
물론 버틸 수 없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딱히 상대를 다치게 하지도 않아서 케빈은 훌륭한 레슬러였다.
하지만 120킬로그램을 넘기는 체중으로 깔아뭉개는 그의 몇몇 기술은 정말 아프다 못해 욕이 나올 정도였다.
연이어 이어지는 펀치.
이건 괜찮았다.
케빈은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며 신을 코너 쪽으로 던져 넣었고 바로 쫓아와서 스톰핑으로 자근자근 밟았다.
[Fight Owins Fight!]
[Fight Owins Fight!]
[Fight Owins Fight!]
경기장에 있는 몇몇 너드 팬들이 그런 케빈에게 정확히 어울리는 챈트를 외치며 관객들의 반응을 잡았다.
[Waaaaaaaaaaaaaaaaggghhh!]
계속 되는 스톰핑에 결국 신은 코너에 기댄 채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다리를 벌리고 숨을 몰아쉬는 신.
케빈은 땀을 닦으며 돌아서 맞은편에 있는 코너로 전력을 다해 뛰었다.
쿵!
그리고 일부러 거기에 등을 세게 부딪치고는 다시 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어지는 기술은.
‘캐논볼’.
자신의 몸을 마치 대포알의 탄환처럼 날리는 기술. 케빈의 거체가 지면에서 날아 회전하며 신과 충돌했다.
콰앙-!!
[Uoooooooooooooooooooohhh!]
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케빈은 평범한 아저씨 같은 자신의 배 나온 체구를 누구보다 잘 이용했다.
말 그대로 ‘플라잉 포크찹’.
동시에 브롤링.
딱히 레슬링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자재로 조합해 사용하는 현대적인 레슬러의 표본과도 같은 남자.
그 기본은 주먹과 킥, 딱히 기술 없이 상대를 제압하는 브롤링 스타일.
하지만 필요할 때면 언제 어느 때라도 화려한 기술을 사용하는 부분이 바로 케빈이 살아남은 비결이었다.
“우오오오오!!”
공격은 계속 이어졌다.
역시 세 번째 경기이기 때문일까.
신은 쉽게 회복하지 못했고 힘과 기술, 투지가 적절히 조합된 케빈의 공격에 몇 번이고 위기를 맞이했다.
아까 맞은 그 해머링이 컸다.
“큭…….”
링에 털퍼덕 엎어진 그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케빈에게 다시 붙잡혔다.
케빈은 집요하게 ‘목’을 노렸다.
연달아 넥 브레이커 계열 기술을 꽂아 넣으며 신을 몰아붙인 케빈은 돌연 친 락을 걸며 진을 빼놓고자 했다.
그는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췄다.
자신의 페이스가 되자 지긋지긋하고 확실히 열이 받는 방법으로 신을 압박하면서 팬들의 분노를 끌어냈다.
그건 케빈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일부러 원래 의도대로 경기가 이어지게 하려고 했다.
‘어차피 망해도 신이 커버해주겠지.’
그런 생각 아래에 이루어지는 케빈의 레슬링. 그것은 솔직히 말해 빅 E의 허리놀림보다 몇 배는 훌륭했다.
[Boooooooooooooooo-!]
점차 야유가 나오기 시작했다.
팬들은 경기가 지루해지는 친 락을 증오했다. 하지만 케빈은 일부러 그렇게 해서 팬들의 분노를 유도했다.
이렇게 관객이 많은 경기에서 자신이 가진 능력이 과연 어디까지 통용되는가가 정말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생각한 대로 되자 케빈은 미소를 지으며 바통을 신에게 넘겼다.
그가 케빈의 친 락을 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자 팬들의 환호는 이전보다 훨씬 더 커진 상황이었다.
‘이 자식이?’
신은 웃음을 참았다.
신인의 도움을 받아서 만들어낸 환호라니. 역시 케빈 오윈스는 당장 콜 업을 시켜도 제 몫을 할 선수였다.
물론 아저씨 같은 체형과 외모라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지만……. 뭐, 동양인도 월드 챔피언이 되는 마당에.
실력과 매력만 있다면, 그리고 거기에 적절한 각본만 더해진다면 분명 케빈은 이후로 스타가 될 터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신은 반격했다.
케빈의 친 락을 풀고, 로프 반동을 한 그는 전력을 다해 돌진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워워워!”
케빈이 심판의 뒤로 숨었다.
[Boooooooooooooooooooo-!]
야유가 더 커졌다.
순간 신이 자신의 젊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쓰게 웃은 순간, 케빈은 킥을 날리며 반격에 들어갔다.
그리고 외쳤다.
자기가 준비했던 말을.
“이제 저 벨트는 내 거야!!”
[Boooooooooooooooooooo-!]
순간 관객들의 반응이 멈춘 시점에서 한 말이라 그 내용은 고스란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듣게 되었다.
케빈은 관객들의 말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그대로 탑 턴버클로 올라가 자신의 시그니처 무브를 준비했다.
그리고 신은 숨을 삼켰다.
바닥에 누운 그는 거대한 폭찹이 그대로 하늘을 날아오는 걸 발견했다.
[Uooooooooooooooooohhh?!]
프로그 스플래시.
투-콰앙-!!
남들보다 배는 더한 충격이 복부를 덮쳤고 신은 얼굴이 빨개져 고통스러워하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실제로 진짜 아팠다.
어디 다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케빈 오윈스라는 거대한 놈을 받아내는데 충격이 없을 리가 없었다.
“끄응……!”
이어지는 케빈의 핀 폴.
[1……!]
[2……!]
어깨를 들어 벗어나는 신.
[Yeeeeeeeeeeeeeeeeeaaaahhh!]
팬들이 안도했고 케빈은 순간 프로그 스플래시가 깨지자 분노를 터뜨리며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콰앙-!
그리고.
사고는 거기에서 발생했다.
“으헉?!”
순간 주먹을 들어 올리는 케빈.
바닥에 쓰러져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신은 너무나도 ‘현실적인’ 목소리에 순간 그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케빈?!”
케빈에게 다가가는 심판.
‘뭐야?’
신은 눈썹을 찡그렸다.
케빈은 바닥에 내리쳤던 주먹을 움켜쥔 채 괴로워했고 심판이 그 상태를 살피면서 뭐라 말을 걸고 있었다.
‘아니.’
설마.
순간 아주 바보 같은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자니 심판이 곁으로 다가왔다.
“신.”
“뭡니까?”
“케빈이 좀 다쳤어?”
“뭐, 금이라도 갔어요?”
“그건 아니고 근육이 좀 놀란 것 같은데. 아무래도 더 이상 경기를 리드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어.”
“그럼 제가 해야죠.”
귀여운 실수였다.
사실 방금까지는 케빈이 자신의 예상과 달리 너무 잘해서 좀 놀랐는데.
‘역시 내가 나서야겠군.’
신은 곧바로 움직였다.
옆으로 굴러서 내려간 신은 그대로 링 아래로 내려가 바닥에 떨어졌다.
케빈에게는 말을 전해뒀다.
‘따라오라.’고.
“윽…….”
케빈은 순간 바보 같은 실수로 경기에 흠이 남게 되자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지금 자신은 신의 리드대로 뒤를 따라가야만 했다.
케빈은 링 아래로 내려갔다.
추격전.
신은 곧바로 어깨를 감싸 쥔 채 일어나 반대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케빈은 영문도 모른 채 그 뒤를 따랐다.
관객들도 당황했다.
아무리 그래도 신이 케빈과의 싸움을 피하고 도망치는 건 역시나 그들이 원하던 그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은 그렇게 했다.
링 바깥을 빙빙 돌며 도망치던 그는 케빈이 뒤를 계속 쫓아오자 결국 다시 링 위로 올라가고야 말았다.
그리고 팬들은 깨달았다.
이 모든 게 신의 큰 그림이었다.
케빈이 흥분해 신을 따라 올라온 순간, 눈앞에 보이는 건 심판뿐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서 검은 그림자가 순간 휙 튀어나오더니 잠깐 굳어져 있던 케빈은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았다.
뻐억-!
그 몸이 기울었다.
[Uooooooooooooooooohhh!!]
상황을 모조리 지켜보고 있던 팬들은 신의 행동을 보고 박수를 보냈다.
그는 상대가 어떤 식으로 덤벼오던 간에 분명히 같은 방식으로 돌려줄 실력이 있는 남자였다.
그렇기에 도망치는 척하다 링 위로 올라가서는 심판의 등에 숨어 그대로 케빈에게 스탠딩 엔지기리를 날렸다.
그래.
사실 심판을 이용하는 레슬링은 신이 초저녁부터 이미 사용하던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