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548화 (548/634)

Dark Match 34.

늦은 밤.

일을 마치고 퇴근한 티파니 맥센은 샤워 후 와인을 하나 땄다.

신은 내일 일찍 나가야 된다며 일찌감치 잠들었고, 그녀는 혼자 업계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타닥, 타닥.

거실의 벽난로에서 장작이 타들어가는 백색 소음이 집중을 도와주었다.

일단.

‘일은 잘 끝났어.’

역시 훌륭한 챔피언의 존재 하나가 흥행을 보장했다. 신이 타이틀을 가져간 이후로 WWF는 순항 중이었다.

‘빅 죠가 부상을 입었을 때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사모아 고와 붙을 수도 있지만.

그는 언제 어느 때라도 월드 챔피언십을 가져갈 수 있는 카리스마와 위상을 가진 선수로 존재해줘야만 했다.

하지만 이번에 빅 죠의 땜빵을 했으면 대립을 길게 빌드 업 할 수도 없어서 신에게 무력하게 패배했을 테고.

그것은 정말로 아까운 카드를 의미 없이 소모하는 일이 됐을 터였다.

그렇기에 MXT 선수들이 참가한 건틀릿 매치는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일단 신인들에게 기회를 주었고.

트리플H가 거기에 껴서 부킹의 위상도 유지했다. 팬들은 색다른 방식의 챔피언십 매치였다면서 호평했다.

그 모두가 신이 만들어낸 거였다.

그런 챔피언의 존재는 단체의, 아니, 이 업계에 있어서 축복과도 같았다.

‘문제는…….’

신이 그 정도로 대단한 선수인 만큼 다른 선수들과의 괴리감이 빚어졌다.

그래서 아끼고 아껴, 계속해서 타이틀을 지키게 할수록 그는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더 높은 존재가 될 터였다.

그렇게 되면 타이틀을 내려놓게 하고 싶어도 딱히 그럴 만한 선수가 없는 순간이 오게 될지도 몰랐다.

ACW가 선례였다.

작년 레슬 임페리움에서 벨트를 탈환한 뒤, 신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해서 챔피언 자리를 지켜왔다.

그리고 마침내 숀 시나와의 대결에서 역사상 최초로 단체 간 더블 타이틀 홀더에 등극하며 단체 간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꿈의 시대를 만들었다.

문제는 바로 그거였다.

‘꿈의 시대.’

그가 정의한 그 순간에 팬들은 깊이 빠져들었고, 신은 점점 언터처블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이 업계는 신 혼자만 존재하는 곳이 아니었다. 끝없이 새로운 스타를 발굴하고 선보여야만 했다.

또한.

‘몸이 하나밖에 없으니까.’

내색하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신 역시도 피로해하는 게 점차 느껴졌다.

그러므로 현 상태에 안주하지 않고 최대한 신 이외에도 그와 맞서서 싸울 선수를 만들어내는 게 섭리였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러셀 오메가가 있기 때문에 그나마 ACW는 다행이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는 ACW에서 ‘무관의 제왕’으로 크게 활약했다.

숱하게 많은 명경기를 뽑아냈고, 그로써 그전까지 지루한 노인네들 쇼라고 평가되던 ACW는 기사회생했다.

그리고 그는 이제 다시 챔피언의 앞에 서서 자신을 증명하려고 했다.

‘좋은 드라마야.’

티파니 맥센은 생각했다.

신과 러셀 오메가.

의외로 그렇게 많이 붙지도 않았고, 막상 붙을 때면 최고의 라이벌리를 보여주는 두 사람은, 이상적인 관계였다.

‘문제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지금 이 업계의 최정상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는 신을, 과연 러셀 오메가가 쓰러뜨릴 수 있는가.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WWF도 힌트를 얻는 셈이었다.

신과 맞서 싸울 선수를 어떤 식으로 만들어낼 것이냐에 대한 힌트 말이다.

그녀는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푸후.”

숙성된 포도의 향이 얼굴에 확 끼얹어진 듯한 좋은 감각이 느껴졌다.

어쨌든.

꿈의 시대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게 정말 참을 수 없이 기뻤다.

* * *

MXT 선수들과의 대립을 마친 뒤.

다음 날, 신은 곧바로 ACW로 날아가 월요일 밤의 나이트로에 참가했다.

큰 대립을 하나 끝냈지만 쉴 시간은 딱히 없었고, 그는 곧바로 러셀 오메가와의 대립을 이어나가야만 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오프닝부터 오랜만에 그 모습을 드러낸 신을 본 팬들은 강한 챈트로 격렬한 환영의 의사를 표했다.

신은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두 개의 챔피언 벨트.

선글라스와 가죽 재킷.

그는 무려 3분 동안이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팬들의 반응을 듣고 있었다.

그 누구도 하지 못할 짓이었다.

오직.

이 시대의 아이콘.

신만이 할 수 있는 세그먼트였다.

상하좌우.

사면으로 된 링.

좌측은 입장로와 연결되었고 나머지 세 구역 너머로 관객들이 앉았다.

신은 그중 링 위쪽의 관객석에 마이크를 내밀었다. 그러자 그쪽에 앉은 관객들만 챈트를 보내기 시작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이번에는 오른쪽.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아래.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그리고 마이크를 머리 위로 들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경기장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소리. 이곳의 팬들 모두가 목이 터져라 신의 이름을 외쳐댔다.

그리고 아예 다른 챈트도 나왔다.

[Welcome! Back!]

[Welcome! Back!]

[Welcome! Back!]

신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층 더 커지는 챈트. 그걸 가만히 듣고만 있던 신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하루종일이라도 하겠군.”

[Yeeeeeeeeeeeeeeeeeeaaahhh!!]

“멋진 관객들이 왔어.”

[We Are Awesome!]

짝! 짝! 짝짝짝!

[We Are Awesome!]

짝! 짝! 짝짝짝!

[We Are Awesome!]

짝! 짝! 짝짝짝!

“워워,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괜찮잖아, 노스캐롤라이나! 너희들이 쿨하다는 건 지금 쇼를 보고 있는 전 세계의 사람들 모두가 느끼고 있다고!”

[Waaaaaaaaaaaaaaaaaaaggghhh!]

“이제는 챔피언의 이야기를 들을 차례야. 솔직히, 너무 오랜만에 돌아와서 너희들에게는 좀 미안하거든.”

삽시간에 조용해지는 경기장.

팬들 모두가 신의 말에 집중햇다.

“하지만 나는 언제 어디서나, 여기서만 아니라 WWF나 PWA, 모든 단체에서 이 벨트를 대표하고서 싸웠지.”

신은 자신의 왼쪽 어깨에 걸치고 있던 ACW 월드 챔피언십을 들었다.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하지만 이제, 이 벨트를 걸고, 또 다시 내게 덤벼오는 그 자식을 상대해야만 하는 순간이 돌아왔지.”

신은 씨익 웃었다.

팬들이 그 남자의 이름을 외쳤다.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그리고 이어지는 테마.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찢어지는 듯한 기타 리프 사운드와 함께 러셀 오메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그 등 뒤로 터져 오르는 폭죽.

ACW의 무관의 제왕.

지금껏 수많은 상대를 쓰러뜨려왔던 그가 다시 신의 앞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도전자로서.

Face To Face.

링에 오른 러셀 오메가는 말없이 신을 노려보았고, 신도 마찬가지로 입을 다물고 서서 신경전을 벌였다.

[Uoooooooooooooooohhhh……!]

마치 과거, 수많은 아이콘과 그 라이벌들이 링에서 마주했을 때처럼.

그렇게 서로를 노려보던 중, 러셀이 신의 손에 들려 있던 마이크를 빼앗아가며 그대로 말을 시작했다.

“너에게는 많은 빚이 있지. 신.”

덤덤한 목소리였다.

“너는 네가 가장 높아질 수 있는 시기에, WWF를 엿 먹이고 이곳에 와서 나와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했으니까.”

스크류잡을 말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때 거하게 엿을 먹고 넘어왔던 러셀은, 신이 아니었더라면 그대로 자신이 묻혔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이 함께 넘어오면서 얻게 된 화제성을 바탕으로 ACW는 훌륭히 위기를 극복하고 영광을 되찾았다.

“그건 정말 고마운 일이야. 이후로 우리는 역사에 남을 경기를 펼쳤지.”

그리고.

“내 타이틀을 가져간 너는 숀 시나와의 대결에서도 이겨 역사상 최초로 단체 간 더블 타이틀 홀더가 되었고.”

[Waaaaaaaaaaaaaaaaaaaggghhh!]

상대를 띄워주는 마이크워크.

실제로 신은, 업계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후로 지금까지 꿈과도 같은 시간을 계속 만들어오고 있었다.

그 경기와 대립은 하나하나 큰 호평을 받았으며 상대 선수들도 자신의 기량, 혹은 그 이상을 마음껏 뽐냈다.

하지만.

이건 러셀 오메가의 이야기였다.

“나는 어땠을까.”

“…….”

“신이 그런 시간을 만드는 사이 그 반대편에 있어야 할 러셀 오메가는 과연 무엇을 해왔을까. 어떻게 생각해?”

답은 간단했다.

“나는 다시 이곳까지 올라왔다.”

[Yeeeeeeeeeeeeeeeeeeaaahhh!]

“그래, 신. 너도 동의하겠지만 여기까지 와서 우리 사이에 무슨 원한 관계나 그런 게 있지는 않잖아? 나는 오히려 너에게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커리어 초창기부터 함께해온 두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사사건건 부딪히기도 하고 서로 협력하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러셀 오메가는.

“너를 쓰러뜨릴 거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열화와 같은 환호가 쏟아졌다.

그것을 조금 먼 관객석에서 지켜보던 네 명의 남자는 심장이 터질 듯이 뛰는 것을 느꼈다.

세스 롤링스.

빅 E 랙스턴.

케빈 오윈스.

그론 스트로먼까지.

신의 배려와 트리플H의 허락으로 ‘최고’들의 대립을 지켜볼 수 있게 된 신인들은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소름이 돋았다.

저건 연기가 아니었다.

러셀 오메가 그 자체였다.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도 그것을 느꼈다.

그야말로 프로레슬링에서 보여줄 수 있는 드라마의 끝판왕과도 같았다.

현실에 존재하는 레슬러들.

그렇기에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

신이 손을 내밀었고, 러셀이 마이크를 돌려주면서 대립은 꽤 이질적인 분위기에서 진행이 되었다.

“좋아, 러셀.”

[Uoooooooooohhh……!]

“이래서 네가 마음에 든다니까. 도련님. 넌 바닥에 엎어져 흙을 먹으면서도 언제나 내 뒤를 따라왔지.”

하지만.

“그때도, 그 이후로도, 언제나 나를 넘어서지는 못했지. 내가 너무나도 훌륭한 레슬러인 탓에 말이야.”

[Uooooooooooooooooohhh!!]

“이번은 다를까?”

그렇게 물은 신은 대답을 바라듯 러셀의 얼굴 앞에 마이크를 가져다댔다.

러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해도 좋을 거다.”

신이 마이크를 휙 던졌다.

쿵-!

그로써 다시 긴박감 어린 분위기가 형성이 되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위협하듯 마주 보았다.

신이 선글라스를 벗고 그 안에서 투지로 불타오르고 있는 눈을 보여줬다.

그 또한 디테일이었다.

첫 번째 Face To Face와는 다르게 두 사람은 방금 마이크워크를 통해서 달아오른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고.

그것은 마찬가지로 관객석에서 지켜보고 있던 MXT 신인들이 감탄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사소한 디테일 하나하나가 완벽해서, 대체 저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 * *

이후 나이트로에서 두 사람의 경기를 기대하게 만든 방식도 훌륭했다.

바로 태그 팀 경기였다.

그들은 대립 상대가 딱히 없었던 크리스 젠코&잭 스웨어 팀과 메인이벤트에서 태그 팀 경기를 가졌다.

이전에 두 사람이 어떤 식으로 팀을 맺고 싸웠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어떻게 보자면, 오직 신과 러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대립 방식이었다.

땡땡땡-!

시작되는 경기.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분위기는 처음부터 신과 러셀이 가져갔고 거기에 맞춰 젠코와 스웨어가 맞춰주는 형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기세를 타고 오르는 두 사람.

하지만 젠코와 스웨어가 반칙을 써서 순간 경기의 주도권을 가져갔다.

러셀이 신나게 얻어맞았다.

[Booooooooooooooooooooo-!]

그 반칙으로 인해 팬들이 분노를 느끼며 분위기는 점점 더 달아올랐다.

신을 원하고 있다.

그게 느껴졌다.

‘다소 평범한 흐름이군.’

케빈 오윈스는 냉정하게 판단했다.

두 사람이 합을 맞추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인 경기니 어쩔 수 없지만.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선역 레슬러가 얻어맞다 순간 반격이 이루어진 후 찾아오는 핫 태그.

“음……?”

거기에서 러셀이 일반적인 핫 태그와 다르게 움직이며 갭이 발생했다.

[Uoooooooooooooooooohhh!]

놀라는 관객들.

러셀은 태그를 하지 않았다.

그 대신, 태그를 하고 나오는 잭 스웨어에게 달려들어 드롭킥을 날리면서 스스로 경기를 주도해나갔다.

신은 어이가 없다는 듯 서있었다.

‘와.’

저 부분도 정말 멋졌다.

만약에 신이 핫 태그를 하고서 링을 정리했다면 당장은 좋았을 테지만 분명 러셀에게는 안 좋은 부킹이었다.

러셀이 약해 보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러셀이 직접 나서서 자신을 공격한 젠코&스웨어를 공격한다면 확실히 강한 인상을 줄 수가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을 신나게 두들겨 팬 러셀은 이내 신의 앞으로 스웨어를 끌고 와서 뭐라고 말을 걸었다.

‘대체 뭘까.’

모두가 의아해 바라보자니.

안으로 들어온 신이 무릎을 꿇고 있는 스웨어의 안면에 스팅거를 날렸다.

쩌억-!!

팬들은 기억을 떠올렸다.

두 사람의 태그 팀 피니시 무브.

스팅거 앤 크레센트.

탑 턴버클 위로 올라선 러셀의 몸이 그대로 초승달처럼 크게 회전했다.

투콰앙-!!

[Waaaaaaaaaaaaaaaaaaggghhh!]

경기를 지켜보던 네 명의 MXT 선수들은 어느새 팬들과 동화되어 링 위로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Dark Match 35.

세크라멘토.

지리적으로 서부에 위치한 이곳은 신의 고향인 캘리포니아의 주도였다.

하지만 로스앤젤러스와 같은 대도시에 이름값이 밀려 대중적으로 그렇게 이름이 알려진 도시까지는 아니었다.

그나마 농구팀인 세크라멘토 킹스가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는 정도?

그럼에도 케빈 오윈스를 필두로 한 네 명의 MXT 선수들은, 공항에 내려서자마자 강렬한 스포츠의 열기를 느꼈다.

포스터가 벽면을 가득 채웠다.

대시 앳 더 비치 2012.

신과 러셀이 두 개로 나뉜 ACW 월드 챔피언 벨트를 각각 손에 들고 있는 포스터는, 솔직히 정말 멋졌다.

‘제이웨더 VS 차퀴아오 같군.’

희대의 수익을 올렸던, 그야말로 시대가 원하는 복싱 챔피언 결정전처럼.

물론, 신과 러셀의 대결이 그것만큼 희소성이 강하지는 않았다. 앞으로 두 사람은 계속해서 싸울 테니까.

하지만 길 가는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티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자면 저도 모르게 들뜨고 마는 것이었다.

게다가 문제가 하나 더 생겼다.

“스트로먼!”

“오! 우와!”

어린애들에게 잡힌 스트로먼.

“어, 어…….”

“사인해줘요!”

“나도! 나도!”

“신이랑 싸우면서 어땠어요?”

쥐를 무서워하는 코끼리 같았다.

사람들이 알아본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란 MXT 선수들은 옆에 있던 관광객 상점에서 선글라스와 모자를 샀다.

그럼에도 스트로먼은 덩치가 일반인의 레벨이 아니라 넘어가지 못하고 죄 붙잡혀서 사인을 해주고 말았지만.

아니, 사실.

놀라운 일이었다.

그전까지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고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을 스트로먼이, 이제는 사인을 요구받고 있었다.

‘이거 정말 놀랍군.’

케빈은 어이가 없어 웃었다.

그가 아는 프로레슬링과는 달랐다.

고등학교 체육관에 모인 50명 남짓한 관객들 앞에서, 가난 아니면 고통과 싸우던 프로레슬링과는 달랐다.

이게 메이저 프로레슬링.

그리고 그 시대의 정점.

‘놀랍군.’

그러고 보면.

그가 커리어를 시작한 2000년대 중반까지, 프로레슬링은 절대로 지금처럼 핫한 콘텐츠가 아니었다.

하지만 PWA와 ACW가 생겨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프로레슬링이라는 콘텐츠에 빠져들면서.

고등학교 체육관을 가득 채우는 일도 생겼다. 사실 그때도 그가 활동했던 ROH 선수들은 신을 폄하했지만.

“그랬었지.”

“응? 무슨 소리야.”

“다들 신을 미워했잖아.”

케빈은 세스를 돌아보았다.

똑같이 ‘인디’ 시절을 거친 레슬러였기 때문에 공유할 수 있는 감정.

그들은 메이저.

그중에서도 숀 시나를 싫어했지만.

“신이라고 다를 건 없었지.”

“맞는 말이야.”

세스가 쓰게 웃었다.

“출세하려고 회장 딸과 붙어먹었다면서 다들 집요하게 까댔지. 지금 생각해보면 열등감이었단 말이야.”

“맞아.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그 당시 신을 별로 좋게 보지는 않았어.”

“지금은 어떤데?”

“……은인 같지.”

“나도 그래.”

세스는 씁쓸하게 웃었다.

두 사람 모두 동의하는 사실이었다.

마이너 감성으로 신을 폄하했었지만, 좋던 싫던 지금 업계에 있는 선수들은 모두가 그의 덕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선수들뿐만이 아니었다.

작게는 업계.

이 도시.

크게는 미국 전체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세크라멘토는 대시 앳 더 비치 특수로 인한 효과를 많이 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관광을 왔고, 대시 앳 더 비치 주간을 전후로 해서 많은 프로레슬링 쇼가 펼쳐질 예정이었다.

그로 인해 한 도시가 천문학적인 금액을 벌어들이고, 전 세계에서 프로레슬링의 방영권을 따가려고 했다.

신과 그를 중심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선수와 직원들. 프로레슬링 업계의 사람들이 만든 결과였다.

케빈 오윈스는 감사했다.

딱히 대상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업계가 이렇게 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신부터 시작해, 프로레슬링을 ‘쿨하게’ 보이도록 만든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느꼈다.

또한 자신이 그런 업계에서 기회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또한 감사했다.

네 사람은 어째서 트리플H가 통 크게 일주일을 써서 대시 앳 더 비치를 보고 오라고 했는지를 이해했다.

지금 세크라멘토 전체가 거의 한 달 내내 프로레슬링의 열기로 들끓었다.

그것을 보고 느낀 네 사람이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고 싶다는 욕망과 의지를 지니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이어지는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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