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38.
[우리 집에 놀러오겠다고?]
“아, 예. 혹시 괜찮으시면.”
[내가 왜 너 같은 놈하고?]
“어…….”
[넌 내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갔어. 이 빌어먹을 자식. 내가 지금껏 이루어둔 모든 업적을 부정하고 업계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지!]
이를 어쩌나.
바트 맥센은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간 내가 연락을 안 했다는 이유로.
‘아니.’
애초부터 일 관련 아니면 단 한 번도 같이 놀아본 일이 없는데. 노인네가 은퇴 후에 많이 적적하신가.
토끼는 외로우면 죽는다던데.
왠지 바트도 그와 비슷한 걸까.
Bart ‘The Bunny’ Mcsen.
[널 저주한다! 죽어라! 신!]
“애꿎은 딸이 과부가 될 텐데요.”
[티파니는 너보다 훨씬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어! 돈이 많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군.
“어쨌든,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으니까. 아마 저녁쯤에 도착할 겁니다.”
[에이이! 오지 말라니까!]
“이미 비행기 떴어요.”
[ACW 본사에 갖다 박던가!!]
“이미 티파니가 거기 날리려고 미사일 하나 제조하고 있는 중이거든요.”
[거기 올라타라!]
“…….”
말이 계속 돌겠군.
“도착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짤막하게 이야기한 나는 바트가 대답하기 전에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로스앤젤러스까지는 대충 비행기로 약 한 시간 거리.
그게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했다.
‘가서 뭐하지.’
딱히 할 것도 없을 듯한데.
너무 섣불리 말을 꺼냈나.
옆자리에 앉은 티파니도 많이 긴장한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게 나 없이 우리 집에 처음으로 가는 거니까.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내가 전화로 티파니의 방문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엄마는 곧바로 통화 너머의 아버지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돼지 잡아와!]
즉, 티파니는 우리 집안에서 완전히 딸처럼 환영을 받는 존재였지만…….
반대로 나는 그쪽 집안에서 뭐랄까.
‘총이나 안 맞으면 다행이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바트와 나는 원수지간으로 치열하게 싸웠으니.
물론 그렇다고 지금 바트를 찾아가는 상황이 싫다는 말은 아니었다.
어쨌든 티파니와는 결혼할 거고.
그렇게 되면 바트도 내 가족이 되는 건데, 확실히 잘 지내봐야겠지.
‘그래, 맞아.’
오히려 우리는 한창 다퉜을 때를 제외하면 죽이 맞는 구석도 많은 편이었다. 프로레슬링의 광팬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은.
캘리포니아 말리부 해변에 자리 잡은 맥센 저택에 도착하고, 부서졌다.
공항에서 티파니와 헤어져 저택 앞에 도착하자 입주 가정부가 마중을 나와 저택 안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자.
“기어코 왔냐.”
바트가 날 반겨주었다.
껄끄러운 표정.
어색한 기류가 감돌았다.
“아, 예.”
“짐 풀고 응접실로 와라.”
벌써 돌아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었던 나는 바트의 말에 따라 2층의 손님용 방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티파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보다 먼저 도착했을 그녀.
뚜르르르.
[아, 신? 무슨 일이에요?]
“잘 도착했나 싶어서.”
[잘, 도착했죠. 꺄악?!]
“무슨 일이야?”
[아니! 푸하하하! 잘 도착했는데 큰 라쿤이 한 마리 있어요! 얘가 내 위로 자꾸 올라오려고 하는데요?!]
“라쿤……?”
금시초문이었다.
그런 걸 기르기도 하나?
우리 집에서?
아버지는 동물은 먹는다 쪽인데.
[사진 찍어서 보내줄게요!]
신이 난 듯 보이는 티파니.
그리고 사진이 도착했다.
“……티파니?”
[예?]
“라쿤 꼬리가 저런가?”
저건, 보다 곰에 가깝지 않나.
[모르겠어요. 아버님께서 라쿤이라고 하시던데. 뭐 맞지 않을까요?]
“………….”
분명 라쿤이 아닐 것 같았다.
당황하고 있자니, 수화기 너머에서 엄마가 티파니를 큰 소리로 불렀다.
[아, 어머니가 부르세요.]
“대화는 잘 통해?”
[예, 실력이 엄청 느셨던데.]
티파니를 생각해 엄마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영어를 배우셨다.
‘좋은 일이겠지.’
나는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왔다.
“하아.”
한숨을 내쉬며 응접실로 내려가자 바트 맥센이 뭔가를 앞에 펼쳐둔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셀로였다.
“……? 바트?”
“앉아라.”
“옙.”
나는 앉았다.
오셀로.
검은색과 흰색의 말을 가지고 두면서 서로의 말을 뒤집는 간단한 게임.
“색부터 골라라.”
“아니, 갑자기요?”
“빨리.”
이를 가는 바트.
거기에서 나는 바트 맥센의 성격을 잠깐 떠올리고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바트 맥센은…….
‘승부에 미친 놈’이었다.
프로레슬링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이 노인은 때때로 직원들과 가벼운 승부를 즐기는 성격으로 유명했는데.
문제는 그 ‘가벼운 승부’가 항상 절대 가볍게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자동차 경주를 하다가 상대 차를 가드레일로 충돌시키기 위해 핸들을 꺾지를 않나. 게임에서 지면 불같이 화를 내며 분위기를 망치지를 않나.
그리고, 어…….
그냥 승부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든 몇 가지 규칙을 가지고 언제나 자신과 싸우면서 지냈는데.
굵고 억센 자신의 수염이 싫어 밀면서 기르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건 지는 거라고 이야기하지를 않나.
재채기를 싫어해서 남이 해도, 자신이 해도 화를 마구 내는 성격이었다.
즉.
WWF 회장이 아니었다면 엽기적인 연쇄살인마나 기욘세의 백댄서가 되었을, 일반인과 전혀 다른 남자였다.
‘미쳤군.’
그렇기에 져주는 게 맞을 터였다.
하지만 나도, 분명 프로레슬러가 아니었다면 미라클 잭슨의 백댄서로 살았을 정도로 일반인과는 달랐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
흑색 말을 쥔 내가 백색 말을 뒤집을 때마다 굳어져 가는 바트의 표정.
그렇게 몇 번의 오셀로에서 내가 모두 승리를 차지하자, 바트 맥센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잠깐 화장실 좀.”
그래도 놔두고 일어서자.
한숨을 내쉰 바트는 입주 가정부를 불러 오셀로와 그 판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다 태워버려.”
아무래도 약이 오른 모양이었다.
‘재밌는데?’
나는 어느덧 원래 목적은 좀 망각한 채 바트와의 대결을 즐기게 되었다.
그렇게 화장실을 다녀오자 바트 맥센이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일어섰다.
“당구는 좀 치나?”
“잘 치는 편은 아닌데.”
일부러 좀 애매하게 대답한 나는 이어지는 당구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끄으윽……!”
바트가 발을 동동 구르며 분해했다.
이대로 뒀다가는 계속 승부를 펼치게 될 것 같았던 나는 당구큐대를 내려놓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기, 바트.”
“뭐냐.”
“설마 계속 이러실 겁니까?”
“아직 할 게임은 많아.”
“외로우셨던 모양이군요.”
“그럴 리가 있냐!”
바트가 소리쳤다.
“흥, 너 같은 놈 없이도 잘 지냈어.”
“…….”
정말 외로우셨던 모양이군.
“요새 레슬링은 보십니까?”
“안 본다.”
“왜요?”
“마음에 안 드니까.”
바트는 단호하게 말했다.
“네 시대는 너무 물렁해. 그리고 너무, Soft하지. 이제는 내가 알던 프로레슬링이 아니게 되었어.”
“……선과 악이 희미해져서?”
“완전히 사라졌지.”
바트는 뒤로 돌아섰다.
하고 싶었던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큐대를 내려놓은 바트는 서재로 향했고, 나도 그 뒤를 따라서 움직였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갈 수 없는 늙은이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지만, 내게 ‘보지 않을’ 권리 정도는 있겠지.”
“맞아요. 그건 당신 자유죠. 바트.”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내가 만들어낸 시대가 이렇게 비평의 도마에 올랐기 때문……은 절대로 아니었다. 조금 어이가 없어졌다.
티파니의 말에 의하면 바트 맥센이 지나가듯이 매번 ‘신을 계속 챔피언으로 두어라.’라고 이야기한다는데.
그녀가 내게 거짓말을 할 리는 없었으므로 답은 간단했다.
바트의 심사가 배배 꼬인 거다.
그냥 좀 까고 싶은 거지.
“애초에, 시청자들은 가벼운 자극을 원해서 프로레슬링을 보는 거지. 네가 만들어가는 시대는 그게 부족해.”
“인정합니다.”
하지만 동의하지는 않았다.
바트 맥센이 말하는 자극적인 각본은 결국에는 패스트푸드에 불과했다.
한계가 있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저는 증명하고 있죠.”
“흥.”
바트는 보드카를 꺼냈다.
“낮부터 술입니까?”
“너와는 꼭 다시 이야기하고 싶었으니 말이다. 술이 빠질 수는 없겠지.”
나도 거부할 마음은 없었다.
* * *
킴 패밀리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너무 좋아서 탈이었다.
낮에 도착해 어머님과 함께 사우나도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눈 티파니는 오랜만에 갖는 마음의 평화에 산림욕을 하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코리아타운 근방의 주택가는 한국계 이민자들로 구성된 소탈한 곳이었다.
정원에서 차를 마시다 옆집 주민을 불러서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하는 장면이 티파니에게는 무척 신선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 무리에 자연스럽게 섞이는 상황이 사실 훨씬 더 신기했다.
인종 간 결혼.
걱정을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우였다.
그리고 이어진 저녁.
바비큐 파티.
“자자, 어서 더 먹으렴.”
“가, 감사합니다.”
“많이 먹어야 일도 열심히 하지.”
‘어머님’은 티파니에 대해 무척 궁금해 했고, 하는 일을 듣고 큰일을 하려면 많이 먹어야 한다고 해주었다.
마치 딸처럼 대해주셔서, 물론 완전히 딸은 아니었지만 티파니는 편안하게 바비큐 파티를 즐겼다.
아버님도 무뚝뚝했지만 고기의 가장 큼지막한 부위를 계속 챙겨주셔서.
그녀는 주변에서 모인 다른 가족들과 함께 신나게 바비큐 파티를 즐겼다.
그리고 밤.
캠프파이어 앞에서 맥주 몇 잔으로도 좀 취한 티파니는 가만히 타들어가는 불꽃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둘은 괜찮으려나?’
신과 바트 맥센.
과연 아치 에너미였던 그 둘이 저택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인가.
이전에는 거의 원수지간이었지만 그래도 이제 곧 가족이 될 사이인 만큼 잘 풀렸으면 하는 그녀였다.
그게 또 자기 욕심인가 싶으면서도.
바로 그때 걸려오는 전화.
말리부 저택에서였다.
“응? 여보세요?”
[아, 아가씨.]
“예, 아주머니. 무슨 일이세요?”
[아무래도 큰 사고가 나기 전에 미리 말씀을 드려야할 것 같아서요.]
입주 가정부의 목소리가 떨렸다.
“……말씀해보세요.”
이런 때일수록 침착해져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티파니는 온갖 불길한 예감을 느끼면서도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러자니 들려온 대답은.
황당했다.
[두 분이 레슬링 이야기를 하시다가 술에 거나하게 취하셔서, 지금 지하의 링에서 레슬링을 시작하셨거든요.]
“그렇, 군요.”
이건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였다.
두 사람이 저러다가 신이 부상을 당하거나 크게 다치기라도 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결과였다.
“바로 갈게요.”
티파니가 있는 코리아타운에서 말리부 저택까지는 차로 약 30분가량.
충분히 가서 말리고 돌아올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티파니는 일어섰다.
그러자니.
“무슨 일 있냐.”
‘아버님’이 다가왔다.
“아, 미스터 킴.”
혹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한 티파니는 감추지 않고 지금 상황을 모조리 설명했다.
그러자 신의 아버지는, 잠시 침묵을 하더니 곧 차고에서 트럭을 가져왔다.
두 사람은 곧바로 출발했다.
“가, 감사합니다.”
“아니다. 네 말이면 들어줘야지.”
믿음직스럽게 말씀하시는 아버님.
그게 좀 좋다가도, 티파니는 자신이 뭔가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쳤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이거.
바트 맥센과 신의 아버지가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였다.
“…….”
이렇게 될 줄은.
걱정하면서도, 티파니는 점점 차량이 가속하자 옆의 손잡이를 잡았다.
끼기기기기긱-!!
4륜 구동 트럭이 길게 스키드 마크를 그리며 밤의 도로를 내달렸다.
“아, 아버님?”
“뭐냐.”
“좀 빠른 게 아닐까요?”
“괜찮다.”
철컥, 철컥.
신의 아버지는 멋진 솜씨로 스틱과 핸들을 조작하며 속도를 높여나갔다.
그럼에도 차체는 거의 흔들리지 않았고 단지 주변을 흐리듯 지나가는 풍경만이 공포를 더해줄 뿐이라서.
“이거, 꽤 빠르네요.”
“개조했으니까.”
“불법으로?”
“…….”
거기서 대답을 안 하니 공포가 훨씬 강해지는 기분이었다.
트럭은 원래대로라면 30분이 걸려야 할 거리를 20분 만에 돌파했다.
그리고 도착한 말리부 저택.
안으로 들어선 두 사람이 지하로 내려가자 기묘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척 제리?’
로큰롤의 아버지이자 정말로 오래된 시대의 인물이었다. 그 음악을 들은 티파니는 더 큰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탭! 탭!! 태애애애애앱!!”
보드카 병이 굴러다니는 가운데, 러닝셔츠 차림의 두 사람이 링에서 뒤엉켜 싸우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신의 초크에 바트가 탭을 쳤다.
그리고 일어선 신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자신의 승리를 크게 선언했다.
“우후우우우우우우우-!!”
“한 번 더 해!!”
“하, 영감. 얼마든지 덤비라고!”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일까.
레슬링을 하는 건, 그렇다 치자.
왜 척 제리일까.
왜 신이 승리 선언을 하면서 엉덩이를 좌우로 마구 흔들어대는 것일까.
티파니는 생각하기를 그만뒀다.
그러자니 앞으로 나선 건 신의 아버지였다.
아들의 꼴사나운(?) 모습을 보고 뚜벅뚜벅 걸어간 그는 계속해서 춤추는 신의 정수리에 주먹을 꽂았다.
수직으로.
투콰앙-!!
신은 사망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어라?”
고개를 든 바트 맥센과 눈이 마주친 그는 슬쩍 눈썹을 치켜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