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553화 (553/634)

Dark Match 39.

상황은 기묘했다.

두 집안 가장들의 첫 만남이었지만, 신의 아버지와 바트 맥센은 제대로 된 인사를 나누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술에 취한 신은 죽었고(?) 바트 맥센은 그걸 보고는 꼴 좋다는 듯이 낄낄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어?”

그러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디서 많이…….”

픽 쓰러졌다.

‘신하고 착각한 건가.’

이 정도로 인사불성이 된 아버지를 보는 건 오랜만이었던 티파니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링 위로 올라갔다.

코를 골며 잠든 신과 바트.

“죄송해요. 아버님.”

“네가 사과할 필요가 뭐 있냐.”

신의 아버지는 그대로 뻗은 두 사람을 각각 한 손에 들고 방에 던졌다.

그렇게 사건이 일단락되었고, 이후 티파니는 입주 가정부로부터 대략적인 사건의 경위를 전해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분위기가 좀 심각한 채 업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점점 취하며 쿵짝이 맞았다고 한다.

“갑자기 옛날에 두 분이서 했던 경기를 시청하지를 않나. 그러면서 저녁도 대충 비스킷으로 넘기더라고요.”

“……그래서요?”

“그러다 또 신 선수가 레슬링 기술을 수영장에서 쓰는 게 제 맛이라면서 데리고 나가서 한창을 노시더라고요.”

“경찰이 안 온 게 다행이네.”

티파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바트가 저택 지하에 있는 링으로 신을 데려가 구경시켜주면서 또 한참을 놀았더란다.

“그때까지도 계속 술을 물처럼 마시다 두 분이 또 옛날이야기를 한참 동안 나누시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

“아가씨?”

슬그머니 웃는 티파니의 모습에 입주 가정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슬쩍 얼버무리는 티파니.

사실 걱정했는데, 두 사람이 생각보다 훨씬 죽이 잘 맞아서 다행이었다.

‘너무 잘 맞아서 문제였지만.’

그래도 역시 프로레슬링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은 두 사람이었으니 술의 힘을 빌리면 본심이 나오는 거겠지.

싱긋 미소를 지은 티파니는 잠이 든 두 사람을 두고 저택을 몰래 나왔다.

* * *

눈을 떴을 때.

“으그윽…….”

나는 지옥 같은 통증을 느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어제.’

뭘 했더라?

분명히 바트와 죽어라 부어라 마셔라 했던 기억까지는 나는데, 어느 순간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기도 했고.

그리고 눈을 뜨자 여기.

맹렬하게 목이 말랐다.

나는 멍하니 옆으로 손을 뻗었다.

마침 물병이 잡혀서 물을 따라서 한 모금 마시자 수분이 보충되면서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푸후우.”

나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자 두통은 훨씬 더 심해졌고, 강렬한 공복이 찾아왔다.

“끄응.”

거기다 좋은 냄새까지.

억지로 자리를 털고 일어난 나는 그대로 비틀거리며 방 밖으로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자.

“아, 일어나셨어요?”

입주 가정부 아주머니께서 한창 바쁘게 요리를 하시고, 그 앞에 머리를 감싸고 있는 바트의 모습이 보였다.

“…….”

똑같은 상태로군.

한숨을 내쉰 나는 그 앞에 앉았다.

바트가 말을 걸어왔다.

“널, 죽일 거다.”

“무슨 수로요…….”

“아침에 일어나서 인터넷으로 살인 청부업자 전화를 찾아냈다. 널 최대한 끔찍하게 죽여줄 수 있는 놈으로.”

“그거, 잘 됐네요.”

“넌 이제 끝이야. 신.”

“헛소리는 그쯤하고.”

바로 그때.

가정부 아주머니께서 나섰다.

“식사부터 하시죠.”

치킨 누들 수프였다.

‘좋은 냄새의 정체가 이거였군.’

떨리는 손으로 숟가락을 들어 몇 입 삼키자 점차 몸에 감각이 돌아왔다.

바트도 허겁지겁 숟가락을 들었다.

가정부 아주머니가 웃으셨다.

“맛있죠?”

“예, 이제 좀 살 거 같네요.”

“술은 몸에 좋을 게 하등 없죠. 우리 남편도 그걸로 확 가버렸는데.”

“…….”

“매일 치킨을 튀겨달라고 하더니 묻을 때 몸에 맞는 관이 없었죠. 그래도 갈 때 무척 행복한 얼굴로 갔어요.”

“그런 이야기는 밥 먹는데 좀.”

“그래도 회장님은 건강하셔서 다행이죠. 어제 링 위에서 안티? 어쩌고를 다섯 번인가 맞고도 무사하시던데.”

“……어쩐지 목이 아프더라니.”

장인어른께서 이쪽을 죽일 듯이 노려봐, 나는 조심스레 시선을 피했다.

기억이 떠올랐다.

안티 크라이스트를 맞고도 진짜 몇 번이고 킥 아웃을 할 수 있는가였지.

바트는 매번 킥 아웃을 못했고, 씩씩거리며 내게 계속 부탁을 했다.

‘내 허리가 아픈 이유가.’

그래서였군.

가정부 아주머니가 더 폭로(?)를 이어가기 전, 재빨리 식사를 끝마친 나는 그대로 거실로 나와 좀 쉬었다.

‘이제 어쩐다.’

바로 돌아가기도 뭣한 분위기였다.

머리도 아파서 딱히 운전하고 싶지도 않았고, 티파니에게 좀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을 해볼까 싶었다.

바로 그때였다.

바트 맥센이 내 앞에 앉았다.

“팔자 좋구나.”

“저희 집이니까요.”

“뭐?”

“어차피 물려받을 거 아닙니까.”

“……사회에 모조리 환원할 거다.”

“역시 회장님.”

“끄응.”

한숨을 내쉬는 바트.

그 표정이 심각했다.

“괜찮아요?”

“아니, 전혀. 숙취가…….”

“나이를 먹어서 그렇, 끙…….”

나도 순간 머리를 짓이기는 듯한 통증을 느끼고는 이마를 감싸 쥐었다.

그러자 바트가 폭소했다.

“크흐흐, 너, 너도 별수 없구나!”

“아우, 진짜 죽겠네.”

“푸하하하! 그흐윽?!”

“……걸렸군. 영감.”

“나, 날 웃겨서 두통을……!”

“마음 좀 곱게 쓰십쇼.”

“악마는 너잖아! 이 개자식!”

“내가 뭘요?”

“기억이 났다! 너 어제 분명히 내가 아끼고 아끼던 정종을 원샷 했었지!”

“어, 그랬죠.”

문득 기억이 떠올랐다.

술에 잔뜩 취해 있었던 나는 바트의 찬장에 있던 정종을 보고는 무슨 일본 놈 술이냐면서 바로 원샷을 때렸다.

사실, 일본과 감정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버지고 나는 오히려 일본 레슬러들을 존경하는 편에 가깝지만.

‘약간 DNA에 각인된 건가?’

어제는 그렇게 핫=사케를 원샷 때리고 나서 코리아의 Soju를 주겠다고 바트 맥센에게 웃으며 말했었지.

광기의 밤이었다.

“이 개자식이! 큭……!”

바트도 괴로워했다.

문득 웃음이 나왔다.

“뭐가 우습나?”

“아니, 시간이 흐르긴 했구나 싶어서요. 우리 둘이 같이 술도 마시고.”

“전에도 마신 적은 있지.”

“만취할 때까지는 아니었죠.”

나는 바트를 바라보았다.

“참 질긴 인연이군요.”

“그러게 말이다.”

바트도 쓰게 웃었다.

“10년 전에 네놈을 처음 봤을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게 무슨 말이죠?”

“네놈이 내 유산을 빼앗고 변방 늙은이로 쫓아내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 개자식아.”

“삶이 원래 그런 거죠.”

나이를 먹고.

시대가 바뀌면.

결국은 새롭게 떠오른 존재로 인해 일선에서 물러나야만 하는 날이 온다.

바트도 그랬을 뿐.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만들어온 이 업계가 사라지는 건 아니잖습니까.”

“네가 박살을 내고 있지.”

“과연 그럴까요.”

“음?”

“사실, 재능 넘치는 친구들이 업계로 많이 들어와서. 슬슬 다음 세대의 친구들을 올려볼까 하거든요.”

“누구를 말이냐?”

“일단 팀을 하나 꾸려볼까 합니다.”

“팀?”

“예, 신인 선수들로만 이루어진 팀.”

“괜찮겠냐? 신인들로만 이루어진 팀이면 보통은 아무 반응도 얻지 못하고 잊히는 경우가 많을 텐데.”

“그래서 각본이 있는 거 아닙니까.”

그것을 위해 회사가 존재했고.

새롭게 데뷔시킬 신인들의 궁둥짝을 빛나게 잘 닦는 게 바로 각본이었다.

그리고 나는.

확실히 전생의 지금 시점에서 데뷔한 신인 스테이블을 기억하고 있었다.

* * *

그렇게 짧은 휴가가 끝난 뒤.

티파니는 우리 집에서 보낸 하루가 마음에 들었는지 다음에 또 이렇게 하자는 무서운 말과 함께 돌아갔다.

나도 회사로 복귀했다.

바로 PWA였다.

“신!”

“이 자식! 크하하! 죽은 줄 알았다!”

“오랜만이에요!”

회사에 있던 직원들이 다 마중을 나와서 환영해주었고, 나는 바쿠의 헤드록을 받으며 원래 회사로 복귀했다.

레슬 임페리움 2012 이후로, 더블 타이틀 홀더가 되어 지금까지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힘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끝이었다.

러셀 오메가가 ACW 월드 챔피언을 탈환해갔고, 그로써 우리는 이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끝나지 않는.

프로레슬링이라는 드라마를.

……뭐, 그건 각본이고.

실제로는 어깨에서 짐 하나를 내려놓은 기분이라 좀 마음이 후련해졌다.

그로 인해 앞으로 당분간 ACW에는 출연 계획이 없게 되었고 나는 PWA와 WWF를 오가며 월드 챔피언으로서 계속 각본을 진행해나갈 예정이었다.

오랜만에 복귀한 PWA.

상황은 언제나 그렇듯 좋았다.

테크니션 위주로 신인 선수들을 키워내면서 다른 회사로 가 스토리를 진행하기도 하고 잘 나가고 있었다.

말 그대로 ‘해적’처럼.

우리는 WWF와 ACW 사이에서 제대로 줄타기를 하면서 업계에 계속해서 신선함과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결국 프로레슬링이란, 대진의 신선함과 기대감을 계속해서 주어야만 하는 드라마였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PWA 선수들은 다른 단체에서 싸우러 온 선수라는 측면에서 큰 신선함을 주었고, 기대감도 뒤지지 않았다.

크기는 캐나다의 TMA보다도 작았지만, 브랜드 파워 자체는 무척 강했다.

그게 우리 PWA.

‘WWF나 ACW와는 다르게.’

우리 쪽에는 주로 성공에 대한 열망보다는 이 업계 자체를 사랑하는 너드 레슬러들이 많이 오는 편이었다.

대니얼 라이언이나.

AK 스타일스 같은.

그게 아니면 메이저 단체에서 한 번씩 실패를 경험해본 재능 있는 선수들.

쟈니 에이스.

드류 맥킨마이어.

그들에게 우리는 선수로서 흥할 수 있는 방법과 매력을 가르쳐주었고,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공했다.

‘사실.’

죄다 내가 가진 전생의 기억으로 인해 선수의 포텐셜을 알기 때문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업계는 이제 많이 변했다.

전생과는 달리 WWF의 독주 체제가 아니게 되었으며, ACW와 PWA가 선수들을 고루 가져가게 되었다.

쇼의 갯수도 더 늘어나 전생과는 달리 빛을 보는 선수가 더 많아졌다.

물론 그로 인해 변한 것도 많았다.

단체가 찢어진 만큼, 내가 전생에 기억하고 있는 팀이나 선수들의 조합이 이제는 나오지 않게 되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서로 단체가 다른데, 굳이 그런 이들을 팀으로 묶어 활동시킬 필요가 있나? 애초에 발상도 힘들뿐더러…….

“여러 문제가 있을 테지.”

폴 헤이건이 먼저 지적했다.

회의실 안.

이제 슬슬 4/4 분기에 쓸 새 각본을 이야기하고 있는 가운데, 다른 팀장들이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돈 문제, 스케줄 문제, 계약 문제. 모든 면에서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군. 굳이 할 이유가 없어.”

“아뇨, 이유라면 충분하죠.”

“뭐지?”

“분명 죽여줄 테니까요.”

“신, 우리가 자네를 무한히 신뢰하기는 하지만. 그건 근거가 아니야.”

그렉의 지적.

나는 쓰게 웃었다.

확실히 각 단체에 나뉘어 있는 신인들로 팀을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좀 도박수가 될 가능성이 큰 편이었다.

왜냐면.

“셋이 뭉쳐서 다닌다면 분명 각본에서 밀어줘야만 하는데, 신인들이 과연 그럴 만한 실력이 될까 싶어서.”

“최소한 미드 카더 레벨까지는 올려줘야 한다는 거군. 음, 확실히 그 부분도 문제의 여지가 있을 것 같아.”

“여러분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설득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그런 식으로 신인들을 띄워보겠습니까?”

확실히.

현재 PWA와 WWF, ACW의 사이는 업계의 역사를 통틀어 최고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았다.

모두가 이 프로레슬링이라는 콘텐츠를 이끌어나가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다. 그걸 위해서 서로 협력했다.

그러므로.

“계약 문제는 괜찮을 겁니다. 어차피 신인들 스테이블이면 딱히 투자되는 비용도 적을 테니 말이죠.”

“흠.”

“그건 확실히 그렇군.”

“각본 문제도 신인들의 캐릭터를 보신다면 그럴 듯하다고 느끼실 겁니다. 그걸 염두에 두고 준비했으니까요.”

문제는 바로 그거였다.

신인 세 사람으로 이루어진 스테이블을 밀어준다면, 과연 기존의 선수들과 어떻게 퓨드를 맺을 것인가.

“이번 스테이블의 콘셉트 자체가 브라더후드, 형재애입니다. 불편한 상황에서는 수적 우위로 붙는 거죠.”

“그렇다면 악역이란 말이군.”

“애초에 스테이블이 다 악역이지.”

그 말이 맞았다.

프로레슬링은 결국 자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카우보이들의 승부였다.

그런 상황에서 스테이블이란 개인의 이득을 위해 뭉친 이들이었고, 각본에서도 대부분 악역으로 출연했다.

“그래서 신.”

할리 레이시가 입을 열었다.

“일단 그 팀 이름이 뭔가?”

“‘더 스쿼드’입니다.”

“스쿼드……? 하지만 3인이잖아.”

“PWA, ACW, WWF에서 한 명씩 데려와서 팀을 맺게 한다는 게 자네 아이디어 아니었나?”

“그게 바로 흥미로운 점이죠.”

나는 폴 헤이건을 돌아보았다.

더 스쿼드.

경찰 진압대 같은 느낌으로 방탄복과 군용 팬츠를 입고 다니는 용병 콘셉트로, 2010년 이후 WWF의 중심에 섰던 엄청난 인기의 스테이블.

“용병 콘셉트라고?”

“그렇다면 고용주가 있겠죠.”

“……뭐, 왜 날 그렇게 봐?”

“바로 당신이 그 고용주입니다.”

“뭐?”

“헤이건 당신이라고요.”

“이미 정해진 사항인가?”

“예, 또 입 좀 털어주시죠.”

“……일단 그 친구들 누군가.”

나는 현재, 각 단체로 흩어져 있는 세 명의 이름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내.

헤이건의 표정은 ‘업계의 혁명가’이자 ‘악마의 주둥아리’로 불렸던 남자의 것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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