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40.
2012년 9월.
MXT는 호황기를 맞이했다.
마치 그 옛날, 신과 러셀을 중심으로 전설을 써내려갔던 WWF의 산하 단체, GCW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세스 롤링스! 뜁니다!!]
[What A Stomp!!]
바닥에서 반쯤 일어난 케빈 오윈스의 어깨를 밟고 힘껏 뛰어오른 세스는 자신의 무게를 이용해 찍어버렸다.
콰앙-!
‘더 스톰프’.
머리부터 지면에 처박힌 케빈은 완전히 녹아웃이 되었고 세스는 비틀거리며 그 이로 쓰러져 핀 폴했다.
[1……!]
[2……!]
[3……!]
땡땡땡-!
[Waaaaaaaaaaaaaaaaaaaggghhh!]
환호하는 팬들.
더 이상 기존의 선역은 아니었지만, 세스 롤링스는 자신의 캐릭터를 더 발전시켜 팬들의 존중을 받게 되었다.
전부 신이 MXT에 한 번 다녀간 뒤로 일어난 변화였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의 MXT 챔피언 벨트를 손에 들고, 끝 부분을 쥔 뒤 머리 위에서 마구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특유의 퍼포먼스를 본 팬들이 더 큰 환호를 보내주었고 그렇게 좋은 분위기 속에 위클리 쇼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백스테이지.
“고생 많았다! 케브!”
“너도.”
세스와 케빈은 서로를 존중했다.
분위기는 더 좋아졌다.
결속력이라고 해야 할까.
업계 내에서 자신들이 뭘 해야 할지 목표를 확실하게 잡은 두 사람은 그대로 락커룸에 가 몸을 씻으려 했다.
그렇게 평소와 같은 하루가 지나갔다. 세스 롤링스가 안도감을 느끼면서 마음을 다잡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봐, 세스!”
누군가 불러 돌아선 세스 롤링스는 양복 차림의 헌터가 웬일로 나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갔다.
“헌터!”
원래대로라면 고릴라 포지션에서 관객 퇴장까지 지휘했을 그가 갑자기 불러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오늘 경기 좋았다.”
“감사합니다!”
“잘 들어.”
헌터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까지 하는 그 모습에 세스는 왠지 심장이 쿵쿵거리며 뛰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너에게 큰 기회가 왔다.”
“예?”
“회의실로 가봐. 손님이 와있다.”
그 말만 하고 돌아서는 헌터.
잠깐 멍하니 서있던 세스는 무릎이 달달 떨리는 것을 느끼며 움직였다.
설마 메인 콜 업인가?
얼마 전 섬머 수플렉스에서 신과 경기를 윗선에서 설마 좋게 봐주셨나?
이런저런 고민으로 가득한 채 회의실로 향한 세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뜻밖의 인물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콜 업보다 더 반가운 인물.
“신!”
“세스, 잘 지냈냐?”
“물론이죠! 어쩐 일이에요?”
세스는 환하게 웃으며 신에게 다가가 악수를 나눴다.
“오늘 경기는 보셨어요?”
“그래, 케브하고 한 거. 좋더군.”
“감사합니다! 그 말이 제게 주는 의미가 오늘 무엇보다도 값지군요.”
“이 녀석인가?”
바로 그때였다.
옆에서 뚱뚱하고 키가 작은 대머리 사내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세스는 완전히 기겁을 했다.
“폴 헤이건?!”
“……기운도 좋군.”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MXT 챔피언 세스 롤링스라고 합니다!”
“그래, 알아. 신. 이 친구가 그 친구지? 그때 PWA 난입했다가 자네한테 깁스로 얻어맞고 그랬던 친구.”
“네. 뭐, 다 옛날이야기죠.”
순간 얼굴이 빨개져 당황하는 세스의 얼굴을 보고 신은 변호해주었다.
헤이건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실력 자체는 괜찮아 보이더군.”
“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나머지가 형편없어. 벌크는 부족하고 외모는 지저분한데다가 마이크워크는 또 그게 뭐야?”
“…….”
“차라리 다큐멘터리 나레이션이 더 감정이 잘 전달되겠군. 아직 여러모로 부족한 게 많아 보인단 말이야.”
“그래서.”
순간 이어진 디스를 듣고 안색이 창백해진 세스를 앞에 둔 신이 약간 재촉하듯 헤이건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젠장, 마음에 드는군.”
헤이건이 손을 뻗었다.
엉겁결에 그 손을 마주 잡는 세스.
“너, 큰일을 할 마음은 있냐.”
“무, 물론입니다!”
세스가 힘껏 소리쳤다.
“저는 레슬 임페리움의 메인이벤트에서 챔피언이 되는 게 꿈입니다!”
“좋아, 지리멸렬하지만 좋은 꿈이군. 또, 원래 이런 조용한 놈이 ‘팀’에는 한 명쯤 있어주면 좋은 법이야.”
“……저기, 신?”
“뭐냐, 세스.”
“팀이라니, 그게 무슨.”
“너 콜 업이 정해졌거든.”
“예?”
세스의 안색이 다시 창백해졌다.
“본인의 의사가 중요하겠지만.”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바로 대답하는 세스.
당연한 반응이었다.
콜 업을 받게 되면 연봉 자릿수 자체가 달라졌고 지금보다 미디어 노출 역시도 몇 배는 커졌다.
그러므로 이 기회를 거절하는 것은,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없을 터였다.
하지만 세스 롤링스는.
그런 바보가 세상에 둘이나 있다는 사실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PWA.
나는 각 선수들의 프로필을 뽑아놓고 마지막으로 체크를 진행했다.
이제 곧 녀석들이 이곳에 올 테고.
본격적으로 스테이블과 각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야만 했다.
WWF와 ACW에서는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곧 ‘링 서바이벌’ 시즌이었고, 단체 간에 한 번 더 대립을 진행하면 어떨까. 다들 고민하고 있는 것이었다.
각 단체에서 제작하는 페이퍼뷰도 판매량이 세게 나오기는 했지만, 협업할 때는 그와 비교할 수가 없었다.
‘콜라보 같은 느낌이지.’
이때만큼은 진짜 미국 전역에서 프로레슬링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는 느낌으로 팬과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때 지금 이 프로필 상의 문제아들을 데뷔시키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딘 앰브루스.
본명 조나단 구먼.
인디 시절부터 하드코어한 스타일로 광기를 보여주었던 이 남자가 PWA에 들어온 것은 올해 초의 일이었다.
……사실 나도 기억 못했는데, 그때 사샤 징크스가 멋진 패기를 보여주었을 때 함께 있었더란다.
그리고 ACW 산하의 GCW에는.
바트 맥센의 욕망에 마지막으로 불꽃을 지폈던 로만 레긴스가 있었다.
사모아인으로 더 팍과는 친척이었지만, 대체 어찌된 일인지 WWF가 아닌 ACW의 산하 단체에 입사했다.
‘그건 이따 물어보는 걸로 하고.’
거기에 MXT의 세스 롤링스까지.
전생에는 WWF 단일 단체에서 함께 MXT를 거쳐 팀을 구성했던 이들이었지만, 이제는 각자 나뉘게 되었다.
그런 이들을 다시 뭉치게 해서 띄우는 것도 아마 회귀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 스쿼드.
처음 나왔을 때의 이 팀은 ‘왜 셋인데 스쿼드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스쿼드 자체가 군대의 분대를 말하는 거고, 그 분대는 보통 4인조로 구성되니 그런 말이 나오는 거였다.
그리고 그 배후에 그들을 고용한 폴 헤이건이라는 존재가 끼어들면서 이야기는 흥미로운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스쿼드의 멤버들은 선역으로 전환한 이후에 제4의 멤버는 팬들이라는 식으로 말하며 인기를 끌었다.
마지막으로 해체한 이후에는 제각각 선역과 악역으로 회사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들이 되어 크게 성공했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먼저 세스 롤링스부터였다.
“실례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녀석은 나를 향해 다가와서 깎듯이 악수를 청해왔다.
“신! 잘 지내셨죠?!”
“일주일 전에 봤잖냐.”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가서 앉아라.”
모여서 연습할 거라는 말에 잔뜩 흥분해 캐리어 두 개와 백 팩을 가져온 녀석이 반대편에 가서 앉았다.
헤이건이 쓰게 웃었다.
일단 회의는 내가 진행하기로 되었지만, 헤이건이 옆에서 지켜보면서 선수들에 대해 분석할 예정이었다.
일단 이후로 놈들을 가르치는 것은 내가 아닌 헤이건이 될 테니 말이다.
그리고 로만 레긴스가 도착했다.
긴 머리를 어깨까지 기르고.
키도 193센티미터로 컸고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른 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잘생긴 얼굴과 큰 덩치.
‘바트가 안 반한 게 이상하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자.
말없이 내 앞으로 다가온 녀석은 그대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더니 뒤로 돌아 세스의 옆으로 향해 앉았다.
세스가 놈을 살피듯이 힐끔거리면서 보았지만, 정작 로만 레긴스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좀 어이가 없어 웃었다.
‘저런 성격이지.’
기본적으로 약간.
소심했다.
그래.
로만 레긴스는 말수가 적으며 낯을 좀 심하게 가리는 편이었다.
그랬기에 내가 GCW에 바트와 함께 찾아가 말을 걸었을 때도 더듬거리면서 순간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그 근엄하고 잘생긴 왕족 같은 외모로 인해 주변에서는 다들 그가 카리스마 넘친다고 느낀다는 부분이었다.
실제로 로만 레긴스는 이후 세스나 딘과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두 사람에 대한 애정을 자주 드러냈었다.
‘그나저나.’
왜 딘 이놈은 안 와?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3시 30분.
원래 3시 미팅인데.
다들 제 시각에 왔는데 정작 PWA 선수인 딘 앰브루스가 늦게 오다니.
나는 황당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고~ 이거 늦었슴다.”
녀석이 헐레벌떡 안으로 들어왔다.
……헤이건의 증언에 따르자면 이게 그나마 나를 존경해서 일부러 사과하는 거란다. 원래는 사과도 안 하고 능구렁이처럼 남 속을 박박 긁는다고.
어쨌거나.
녀석은 독특한 캐릭터였다.
링 밖의 딘은 약간 제멋대로였다.
지독히도 개인주의적이었고 자신이 정을 주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에 가까운 행동을 보였다.
반대로 자기가 관심이 있다 싶으면 의외의 모습을 또 보이기도 했는데.
그게 나였다.
“신! My Man. 사랑해요.”
나를 끌어안는 딘.
나는 그 찐득찐득한 땀에 얼마 전 티파니가 선물해준 셔츠가 젖어서 사망하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늦었군.”
“오는 길에 지하철이 막혀서요.”
“버스다. 버스.”
“아, 죄송합니다.”
넉살 좋게 웃고는 그대로 자리에 앉는 딘. ……하지만 그 위치가 묘했다.
“딘.”
“옙.”
“저쪽으로 가라.”
녀석은 내 옆에 앉았다.
“저는 신 옆이 좋은데.”
“네 팀은 저 둘이다.”
“예? 이 둘이요?”
딘이 두 사람을 살폈다.
세스의 눈이 크게 뜨였다.
“목시?”
“……? 아, 너 누구더라.”
“세스, 아니. 타일러 글랙이다! 등신아! 우리가 몇 번을 붙었는데!!”
“아, 그랬지. 미안. 타일러.”
“신! 설마 저놈이……!”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만 레긴스와 달리, 딘 앰브루스와 세스 롤링스는 인디 단체에서 활동했고 그때 몇 번인가 맞붙었다.
그리고 세스는, 딘의 스타일을 혐오하면서도 그를 언제나 자신의 라이벌이라고 이야기한 미친놈이었다.
‘나와 러셀 같군.’
미래에도 그런 느낌이 되었다.
“선생님.”
딘이 날 불렀다.
“저놈하고 팀이라고요?”
“제기랄! 이럴 수가! 하필이면 내가 존 목시하고 팀이 되다니! 어쩜 이렇게 커리어 초반부터 빌어먹을!!”
“야, 오히려 내가 더 싫거든? 선수란 놈이 몸만 가벼워서 헛짓거릴 해대는데 대체 누가 널 좋아하겠냐?”
“정상적인 사람은 날 좋아하지.”
“애초에 프로레슬링 자체가 정상적인 게 아니니까 아무도 없겠구먼.”
“…….”
신나게 싸우는 딘과 세스.
그 사이에서 침묵하는 로만.
팔짱을 낀 채, 근엄한 표정 밑에 있는 그 심리를 읽어낸 나는 무슨 로드 무비의 한 장면 같다고 생각했다.
로만 레긴스는 겁을 먹고 있었다.
“이 새끼, 하여간 사사건건 내 스타일부터 시작해서 죄다 트집이고!!”
“그 옆머리만 노랗게 염색한 거 좀 어떻게 안 되냐? 나초에다 구두약 잔뜩 발라놓은 것 같은 머린데.”
“넌 브롤러란 새끼가 브롤링도 제대로 못하면서 말이 많아!!”
“애초에 너무 힘 빼서 하면 레슬링이란 게 재미가 없단 말이야. 적당히 해야지, 적당히.”
“흐음.”
헤이건의 눈이 빛났다.
슬쩍 돌아본 나는 그가 이 세 사람에게 흥미를 가진 것을 알아차렸다.
사실, 그럴 만했다.
PWA, 딘 앰브루스.
WWF, 세스 롤링스.
ACW, 로만 레긴스.
단점투성이인 그룹이었다.
프로레슬러의 능력치를 육각형으로 따졌을 때, 삐죽삐죽한 놈들이었다.
하지만 그 삐죽한 능력이, 다른 그 어떤 선수보다 큰 부분도 존재했다.
그래서 매력적이었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
그게 바로 팀이니까.
그리고.
나는 미래를 맡을 선수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나갈 의무가 있는, 이 시대의 주인공이었다.
파앙-!!
나는 테이블을 세게 내리쳤다.
세스 롤링스와 딘 앰브루스가 순간 깜짝 놀라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모르는 게, 로만 레긴스는 의자에서 순간 엉덩이가 크게 들릴 정도로 깜짝 놀랐다.
나는 쓰게 웃었다.
확실히 젊은 시절의 시나와 나, 그리고 러셀 오메가를 보는 것 같았다.
물론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점점 커지면서 그들은 제각기 우리와는 멀어져 개성을 가진 선수가 될 테지만.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슬쩍 진지하게 이야기하자.
“네입.”
딘이 로만의 왼편에.
“넵!”
세스가 로만의 오른편에.
“…….”
로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 묘한 조합이었다.
하지만 흥미로웠다.
분명 대박을 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