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555화 (555/634)

Dark Match 41.

더 스쿼드.

‘분대’라는 뜻이었다.

PMC(Private Military Company)에서 콘셉트를 따와 용병 부대라는 느낌을 최대한 물씬 낸 것이 특징이었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일단 세 개.

죽여주는 디자인.

죽여주는 테마곡.

죽여주는 데뷔전.

나는 기억 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그대로 설명하며 각각의 전문가들이 작품을 완성시킬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놀랍게도 사람의 무의식이라는 게 참 신기했다.

내가 몇 마디 운을 띄우자 각 단체의 팀장들이 알아서 추가적인 브레인 스토밍을 진행하며 완성시켜갔다.

일단 디자인.

화상 회의에서 PWA, WWF, ACW의 각 디자인 팀장들은, 모두 협조적으로 굴면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재미있는 현상이었다.

아무래도 마초적일 수밖에 없는 업계에서 디자인이라는 공통점으로 서로 연결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켈베로스 같은 느낌은 어떨까요.]

[켈베로스? 멋지네요.]

[아하, 헤이건과 거리를 두는 느낌도 있겠군요. 일단 스쿼드라고 하지만 세 사람이 주축인 팀이니까요.]

“괜찮을 것 같습니다. 선역으로 턴 페이스한다면 Hounds Of Justice 같은 별명을 쓸 수도 있겠고. 좋겠네요.”

[하하, 선역 스테이블이라.]

[그것도 신선하겠네요.]

다들 약간 부정적인 반응이었지만.

나는 알았다.

스쿼드는 악역으로 2년 정도 활동하다가 팬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선역으로 턴 페이스했다.

워낙 선수들의 비주얼이 뛰어나고.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형재애를 강조한 게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뭔가 좀 신기했다.

나는 단지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아이디어를 툭 던졌을 뿐이었다. 그러자 마치 연쇄 반응이 일어나듯 알아서 내가 기억하던 대로 의견이 나왔다.

테마곡.

“포네틱 코드로 테마 시작 지점에서 포인트로 주는 건 어떨까요? 스쿼드의 각 스펠링을 사용해서 말이에요.”

[어디 보자. 그렇게 한다면 시에라, 퀘벡, 유니폼, 알파, 델타인가?]

[Squad니까 그게 맞겠네요.]

[그럼 테마곡은…….]

[약간 절도 있게 끊죠.]

“그러면 이 멜로디는 어때요?”

뜨든, 뜨든.

그렇게 약간 물꼬를 틀어주자 각 회사의 음향팀장들이 또 금방 자기들끼리 신나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캐릭터.

이 파트는 앞선 두 가지와 달리 디자인과 설정으로 분류해 진행되었다.

일단 디자인.

군인, 용병이라는 콘셉트에 맞춰 밀리터리 팬츠와 방탄조끼, 군화 차림이라는 점까지는 금방 진행되었다.

문제는 컬러링을 어떻게 가느냐.

진짜 군인처럼 진녹색으로 가느냐.

아니면 데저트 계통으로 가느냐.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프로레슬러라는 느낌이 퇴색될 수 있다는 의견에 따라 검정색이 채택되었다.

거기에 캐릭터 설정은.

폴 헤이건이 전담해 스쿼드의 멤버 세 사람과 이야기하며 그들이 데뷔하기 전까지 잡아가기로 결정되었다.

어쨌든 팀 콘셉트도 꽉 잡혀있고 초반에는 그걸 보여주기만 하더라도 팬들의 인기를 끌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일부러 함께 일할 헤이건이 옆에서 차근차근 호흡을 맞춰나갔으면 해서 맡겨둔 것이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아보였다.

아무래도 개성이 넘치다 못해 뚫고 자라나는 듯한 세 명이었으니 말이다.

일을 맡겨두고 그날 저녁, 헤이건으로부터 곧바로 하소연이 들려왔다.

[그 자식들은 미친놈들이야.]

“……그렇군요.”

[다들 정신이 나갔어! 빌어먹을! 오늘 하루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해하겠나? 신? 난 죽을 뻔했다고!!]

“정확히, 무슨 일이 있으셨죠?”

[빌어먹을 자식들! 세스와 딘! 딘과 세스! 그 자식들이 갑자기 합은 안 맞추고 싸우기 시작한 거야!!]

“…….”

[로만이 가만히 서있고 내가 그 사이에 끼어들어서 통제하려고 했지! 그랬더니 제기랄! 갑자기 나를 들어 올려서 땅바닥에 그대로 꽂아버리더군!]

“오우, 태그 팀 어택.”

[오우는 무슨 오우야! 그 자식들은 재능이 있어! 외모! 언변! 마지막으로 카리스마! 링에 올라가면 분명히 돈이 될 만한 재능의 소유자들인데!!]

이쯤에서 뚱뚱했던 헤이건은 한순간 크게 심호흡을 한 뒤 크게 소리쳤다.

[그 재능을 시궁창에 처박고 있어!]

“그렇군요.”

[난 못해. 신. 나는 내일 사표를 내고, 그토록 원했던 정원사의 삶을 살아갈 거야. 부잣집 마나님에게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말이지.]

“…….”

애완 돼지에 취미가 있다면야.

아, 아니. 실례되는 생각이었군.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헤이건의 행동은, 단순했다.

결국 ‘나 좀 위로해줘! 지금 이 문제를 좀 해결해줘!’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별거 아니라는 듯이 헤이건에게 말을 걸었다.

공감도 좀 해주면서.

“헤이건, 많이 힘들었겠어요.”

[……죽을 맛이라네.]

헤이건의 목소리가 좀 편안해졌다.

“일단 제가 이야기해보죠. 제 이름을 걸고, 그놈들이 내일부터 당신에게 함부로 할 수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좀 부탁하네.]

전화가 툭 끊어졌다.

나는 바로 세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신.]

“오늘 사고쳤다면서.”

[……면목 없습니다.]

“이야기 좀 하지. 괜찮나?”

[예, 잠깐만요.]

세스가 조용한 곳으로 이동하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녀석은 좀 점잖고 예의바른 성격이었으나, 다혈질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러므로.

[말씀하시죠.]

“위대해지고 싶나?”

[예?]

“위대한 레슬러가 되고 싶냐고.”

[무, 물론입니다. 신. 저는 말했듯이 레슬 임페리움의 메인이벤트…….]

“그렇다면 오늘 네가 훈련에서 보여주었던 태도는 좋지 않다고 보는데.”

[죄송, 합니다.]

“미안할 필요 없어. 세스.”

나는 연기하고 있었다.

세스 롤링스가 생각하는 신.

그가 생각하는 롤 모델로서 세스에게 냉정하고 준엄하게 이 업계의 생리에 대해서 말해주는 게 가장 좋겠지.

동시에.

‘책임감’을 말해주는 거다.

“여기는 트레이닝 센터가 아니야. 산하단체도 아니지. 너는 당장 이 일이 시작되면 업계의 최전선에 나가 싸우게 될 거야. 그렇지 않아?”

[그렇습니다.]

“그런데 감정 조절도 제대로 못 하는 놈을 쓸 수는 없지. 딘하고 일하다가 문제라도 발생하면 어떻게 해?”

[……신.]

세스의 목소리가 순간 진지해졌다.

[그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절대.]

“그래, 믿으마.”

[예, 감사합니다.]

“난 네게 레슬링을 가르치는 게 아니야. 인생에 대해 가르쳐주는 거지.”

그리고 인생은.

“협력이야. 협력.”

끈끈한 형재애.

이 업계.

혹은 더 나아가 이 세상.

“내일은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빌지.”

[예, 신.]

나는 전화를 끊었다.

“…….”

그리고 순간 자기혐오를 느꼈다.

아니, 방금 그거.

레슬링이 아닌 인생에 대해 가르쳐주는 거라고 한 그 대사.

“바트가 한 말이잖아.”

나, 나도 모르게 바트가 되는 건가.

이거 얼른 자살해야.

…….

아니.

농담은 이쯤 해두고.

나는 다음 놈에게 전화했다.

딘 앰브루스였다.

[이야! 신! 무슨 일이죠?!]

시끄러운 소리.

클럽인가.

“지금 어디야?”

[동네 뒷산인데요!]

“이 소리는 뭐야?”

[아, 음악을 좀 틀어놔서.]

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풀벌레 소리.

[운동 중이었죠.]

딘 앰브루스는…… 뭐가 어쨌든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좀 다른 편이었다.

운동도 일반인처럼 ‘쇠질’하지 않고.

사막이나 이런 곳에 혼자 가서 맨 몸으로 운동하는 걸 즐긴다고 했다.

‘그 비슷한 건가.’

[어쨌든, 무슨 일이에요?]

“오늘 헤이건을 던졌다면서.”

[아, 그거. 보셨어야 했는데. 세스가 열이 잔뜩 받아서 잡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옆에서 들었더니 던지더라고요.]

“웃겼겠네.”

[그쵸? 물론 좀 미안하긴 한데. 진짜 그 상황 자체가 좀 웃겨가지고. 로만도 얼굴 돌리고 웃더라고요.]

“…….”

역시 이 녀석, 안 그런 척하면서 은근히 주변 상황을 다 파악하고 있다.

세스가 외곬수라서 혼자 앞으로 나아가는 타입이라면, 반대로 딘은 함께 일한다는 의미를 잘 아는 남자였다.

성격 탓에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상황을 만드는 타입이랄까.

그래서 나도 그냥 편하게 말했다.

“다음에는 로만도 껴줘.”

[그래야죠.]

“세스도 적당히 놀려먹고.”

[적당히 하려고 하죠.]

“그러다 또 너무 가버리잖아?”

[……귀신같으시네.]

그야 물론 오래 봐왔으니까.

전생부터의 일이었지만 말이다.

[뭐, 당신쯤 되는 레슬러는 대충 얼굴만 봐도 누가 어떤 성격인지 알고 그런 겁니까? 무슨 집시도 아니고.]

“그럴 리가 있냐. 그냥 네가 정말로 계산해서 하는 행동이라면 그렇게 즐거운 표정을 지을 리가 없잖아.”

[그건 그렇죠.]

딘은 순순히 인정했다.

이놈도 아직까지는 배워야 할 게 많았다. 그렇기에 나는 적당히 말했다.

“세스와 협조하는 법을 배워.”

[조심하죠.]

“좀 인정해줘라. 그렇게 하면 세스도 섬세한 성격이라 너한테 함부로 대하지 않을 거야. 절대로.”

그게 중요한 부분이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 감정을 잘 이용한다면 생판 타인과도 좋은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다는 게 바로 나의 오랜 지론이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게 가능할까 싶은데.]

“말은 그렇게 해도 너희 둘이 경기하면 항상 좋은 결과가 나왔잖냐.”

이쯤에서 인정도 해주었다.

“인정해. 멋진 경기였어. 그런 경기를 만들 수 있는 놈들이 정말 서로를 싫어할 리가 없을 것 같은데.”

[……부끄럽게 왜 이래요?]

“너 잘하라고 하는 소리야.”

내 말에 딘은 뭐라 몇 마디 구시렁대더니 이내 곧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알아들었겠지.’

레슬링 경력이 짧은 로만이나 깐깐한 세스를 대신해 딘은 이후 스쿼드의 리더가 되었다.

‘마이크워크 능력도 출중해서 쇼에 나올 때도 가장 말을 많이 했었지.’

현실에서도 그래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나는 일부러 딘에게 세스를 먼저 이해하란 식으로 이야기했다.

마지막은 로만이었다.

‘이 녀석은…….’

일단 당분간은 그냥 놔둘까.

성격 자체가 소심할 뿐, 딱히 모나지는 않았으니 지금 시점에서 딱히 내가 케어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 * *

다음 날 아침.

허리의 통증을 애써 참아내며 출근한 폴 헤이건은 스쿼드가 될 세 사람을 앞에 두고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너희는 앞으로 함께 행동한다.”

“……?”

“예?”

“음.”

“말 그대로다. 너희는 앞으로 아침부터 퇴근할 때까지…… 아니, 퇴근한 이후 저녁식사까지도 함께 먹는다.”

“아니, 헤이건.”

“갑자기 왜 그래요?”

“올드 스쿨이란 거다.”

헤이건은 단호하게 말했다.

“너희는 협조성을 길러야 해. 옛날에는 동료끼리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끈끈한 전우애를 다졌지만, 지금은 그러질 못하니 이래야만 하겠지.”

다들 표정이 좋지 못했다.

퇴근 후에 각자 할 일이 있는 상황에서 이런 명령이 하달되면 좋아할 사람은 분명 아무도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딘이 나섰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목스……?”

“저 ‘세스 롤링스’ 놈이 저를 ‘딘 앰브루스’라고 부를 때까지는 적어도 좀 가까이 있을 필요가 있겠죠.”

순간 세스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는 지금까지 딘을 인디 시절의 닉네임이었던 ‘목스’라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목스’는 곧바로 새 닉네임에 적응해 그를 세스라고 불렀다.

솔직히 좀 놀라웠다.

좀 어안이 벙벙해져 있자니 딘이 계속해서 제 할 말을 이어나갔다.

“저기 로만도 그렇고요. 헤이, 로만. 괜찮지? 여기는 내 구역이니까 괜찮은 식당을 많이 소개해줄게.”

“그거라면.”

고개를 끄덕이는 로만.

거기에 뭔가 이전과 다른 변화를 느낀 헤이건은 신이 분명 뭔가를 했으리라고 생각하며 세스를 돌아보았다.

그는 당황하고 있었다.

매사에 진중하지 못한 딘 앰브루스가 갑자기 저렇게 나오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상대방이 한발 먼저 부드러운 제스처를 취해온 이상 세스 롤링스도 딱히 적개심을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둘 사이의 싸움은 대부분 딘이 세스를 놀리며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 딘은, 신이 어젯밤 해준 조언이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일부러 자중하고 있었다.

헤이건도 그것을 느꼈다.

‘신, 그 미친 자식.’

도대체 어제 무슨 말을 했길래?

놀랍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아직 두고 봐야겠지만, 어제와 비교해서 정말 분위기가 믿기 힘들 정도로 좋아졌다.

그때 딘이 앞으로 나섰다.

“아, 그래. 헤이건.”

“응?”

“지금 점심, 그리고 저녁까지도 회사에서 먹으라고 말씀하셨었죠?”

“……그랬지.”

“그렇다면 솔직히 양심적으로 오늘 점심하고 저녁은 그쪽이 쏴야죠.”

“뭐, 라고?”

“아니, 그래야지 않습니까?”

딘이 씨익 웃었다.

헤이건은 이내 지금 스스로가 체크메이트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쿼드의 세 사람이 다가왔다.

딘 앰브루스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로만 레긴스.

왼쪽에는 세스 롤링스.

“시내에 제가 잘 아는 펍이 있는데. 어떻습니까? 여기 두 사람 환영회로.”

“……제기랄.”

그날 밤.

점심 값을 포함해, 폴 헤이건이 펍에서 지불한 금액은 천 달러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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