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556화 (556/634)

Dark Match 42.

추수감사절을 노려 11월에 개최될 WWF, ACW, PWA의 합동 페이퍼뷰.

보안을 철저하게 하고 진행되는 초대형 각본의 시작은, 일단 평범했다.

8월 시즌 이후로 ACW는 러셀 오메가라는 새로운 챔피언을 맞이해서 새롭게 각본을 전개해가기 시작했다.

러셀 오메가가 링에 올라 내게서 가져간 챔피언 벨트를 번쩍 들어올렸다.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팬들이 그 이름을 외쳐댔다.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You Deserve It!]

짝! 짝! 짝짝짝!

[You Deserve It!]

짝! 짝! 짝짝짝!

[You Deserve It!]

짝! 짝! 짝짝짝!

그가 챔피언이 될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주는 건 역시 팬들의 챈트였다.

그런 가운데, 마이크를 손에 쥔 러셀은 감격에 찬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게 정말 의미가 깊은 밤이야.]

[Waaaaaaaaaaaaaaaaagggghhh!]

[신을 상대로, 대시 앳 더 비치에서 깔끔하게 승리를 거뒀지. 이곳의 누구도 쉽게 거두지 못한 성과라고.]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이제는 내가, 이 벨트의 가치를 계속해서 높여가야겠지. 그걸 위해…….]

러셀이 벨트를 높이 들어올렸다.

[오픈 챌린지를 하겠어.]

[Yeeeeeeeeeeeeeeeeeaaahhhh!]

[누구든 이 벨트에 도전해봐. 매주. 나는 누구의 도전이든 받아주겠어.]

‘훌륭하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저게 지금 ACW에는 필요했다.

설령 챔피언이 되지 못하더라도, 메인타이틀에 도전해봤다는 기록은 선수 개인에게 분명한 득이 되었다.

그렇기에 단체 선수들의 위상을 전반적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오픈 챌린지가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나는 스케줄 때문에 하지 못했지만.

러셀은 ACW의 차세대 리더답게 기꺼이 오픈 챌린지 각본을 수행했다.

반면.

WWF로 돌아온 나는 그동안 계속해서 도전을 기다리고 있던 선수 한 명과의 대립을 전개해나가기 시작했다.

바로.

사모아 고였다.

내가 먼저 링에 올랐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8월에는 많은 일이 있었지.”

마이크를 손에 움켜쥔 나는 잠깐 쇼를 놓쳤던 팬들을 위해 잠깐 스토리를 설명했다.

“완벽한 승리는 없었어. MXT 친구들에게는 격차가 뭔지 가르쳐주었지만. 러셀 오메가에게는 타이틀을 잃었지.”

하지만.

“내 커리어가 끝난 건 아니야. 되려, 나는 그 개자식이 내게서 타이틀을 쟁취해갔다는 사실이 무척 기쁘군.”

나는 씨익 웃었다.

진심이었다.

러셀 오메가는 훌륭한 선수였다.

그렇기에.

나는 아직도.

올라갈 곳이 많이 남았다.

“다들 따라오라고. 내가 너희들에게 본 적이 없는 경지를 보여줄 테니까.”

[Waaaaaaaaaaaaaaaaaaggghhh!]

이어지는 환호.

나는 러셀이 그랬듯이 머리 위로 챔피언 벨트를 번쩍 치켜들며 웃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어-! 우-어-! 우-어-! 우-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부족의.

가장 위험한 전사.

사모아 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그 위협적인 테마곡에 따라 울려 퍼지는 챈트.

팬들의 환호 속에 나를 노려보며 등장한 고가 경기복 차림으로 링에 올라와 그대로 내게 다가왔다.

테마는 계속되었고.

시선이 잠깐 마주쳤다.

Face To Face.

나는 미소를 지었고 고는 반대로 얼굴을 불쑥 내민 상태에서 금방이라도 내 얼굴을 물어뜯을 것 같았다.

자신을 꾸미지도 않았다.

헐렁한 바지 경기복에 어깨에는 흰색 타올을 걸친 그 모습은 정말로 싸움만을 바라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모아 고.

나와 같은 육각형 레슬러.

그 투박한 몸조차 개성이고 카리스마였다. 그는 마이크를 손에 쥐고 나를 노려보며 그대로 입을 열었다.

“꿈은 꿈으로 남아야지.”

[Uoooooooooooooooooooohhh!]

“난 여기에서 리얼리티에 대해 말할 거다. 신. 네가 그 같잖은 퍼포먼스를 펼치는 동안 내가 걸어온 길을.”

“이봐, 고.”

“날 친근하게 부르지 마!”

고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PWA! 그리고 WWF와 ACW! 너는 항상 이게 뭔가 ‘스포츠’라고 강조하고 있지! 이 프로레슬링이 스포츠라고! 하지만 아니야! 현실은 아니라고!!”

압도적인 마이크워크였다.

나는 입을 다물고 고를 바라보았다.

팬들도 그 목소리에 빠져들었다.

“나에게 있어 이건, 투쟁이다.”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너는 너와 달리 이 인간들의 평판을 신경 쓰지 않아! 그건 일시적인 거니까. 이 세상에 내가 남길 수 있는 건 오직 단 하나! 기록뿐이라고!”

[Boooooooooooo……!]

아주 약간의 야유가 나왔다.

하지만 그조차 의도적이었다.

사모아 고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리고 난, 네놈의 목을 꺾어버리고 어깨 위의 타이틀을 가져갈 거다.”

“…….”

“보여주지. 네가 만들어온 프로레슬링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말이야.”

“놀랍게도, 고. 네가 그리 책에 관심이 많은 남자일 줄은 몰랐군.”

“농담으로 넘기려고 하지 마라.”

고가 다시 내 앞으로 다가왔다.

긴장감이 전류처럼 흘렀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나도 그저 웃고만 있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나는 표정을 굳혔다.

“물론,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이 영원하지는 않겠지. 언젠가 내 뒤를 이을 새로운 스타가 탄생할 테고.”

스포트라이트는 이동할 거다.

모두가 그를 기억하고.

나는 한낱 퇴물이 될 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게 우리 모두가 해온 일이야.”

[Uoooooooooooooooooooohhh!]

“타이틀이나 기록 따위는 부질 없어. 고. 혹시 믹 졸리라는 사나이에 대해서 기억을 하고 있나 모르겠군.”

“그를 모르는 멍청이가 있겠나.”

고가 내 말을 받아주었다.

언젠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기록만을 본 후세의 사람들에 의해서 자주 폄하되는 남자였지만, 믹 졸리는 분명히 업계의 레전드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순간이야.”

“…….”

“나는 매번 그 순간을 만드는 거야. 그리고 너와의 경기에서도, 팬들의 기억에 영원히 남을 순간이 있을 거다.”

나는 마이크를 툭 내던졌다.

고의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이 챈트의 비(雨)만이 우리의 방금 그 마이크워크가 어땠는지를 설명해주었다.

* * *

“진짜 개멋있네.”

딘은 혀를 내둘렀다.

저게 지금 이 시대의 정점에 서있는 선수들 간의 마이크워크였다.

아니 물론, 그렇다고 보기에는 사모아 고는 아직 좀 부족하기는 했다. 하지만 신이 그를 끌어올려주었다.

챔피언으로서.

그 말을 들어주고.

설득력을 더해 돌려주며.

그렇게 말이 오가는 동안 팬들은 어느새 두 사람의 경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자신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저걸 할 수 있을까?”

세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녁식사 시간.

로만의 아파트에 모인 세 사람은 근처에서 사온 중국 음식을 실컷 먹으면서 WWF 버닝콩을 시청 중이었다.

딘은 낄낄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당연하지.”

“그렇게 가볍게 말할 만한 게 아니잖아. 딘. 제기랄, 방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르겠군. 하지만 어느 샌가 거기에 빠져들었어.”

그 정도로 완벽한 마이크워크였다.

딘과 세스는 어느새 좀 티키타카가 맞기 시작해 방금 그들이 보았던 세그먼트에 대해서 분석하기 시작했다.

“고의 투쟁심을 잘 나타냈지.”

“고와 신의 차이를 잘 보여주었고. 저런 캐릭터를 어떻게 만드는 거야?”

“정확히는 만들어 가는 거지.”

거기에 레슬링을 계속해서 시청해온 팬들의 반응까지 더해져, 문외한이 보더라도 멋진 장면이 탄생했다.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세스.”

“그게 가볍게 말할 문제가…….”

“우리도 인디 시절부터 징하게 붙어왔잖아. 드라마란 건 원래 거기에서부터 출발하는 법 아니겠어?”

“끄응.”

“피스트 범프나 하자고.”

딘이 웃으며 주먹을 내밀었다.

거기에 세스가 못 이기는 척 주먹을 내밀었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로만이 옆에서 끼어들어 주먹을 내밀면서 세 명의 주먹이 맞닿았다.

“오.”

찰나의 순간.

세 사람 모두 그걸 캐치해냈다.

“이거 좋은데! 로만!”

“그래, 폼 좀 나는데.”

“우리 이거 시그니처 포즈로 삼자. 어때, 세스.”

“나도 동의해.”

고개를 끄덕이는 세스.

그렇게 세 사람의 주먹이 닿았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낸 장본인인 로만 레긴스가 이내 말을 이었다.

“저기, 얘들아.”

“응?”

“뭐.”

“우리가 이제 이번 달 말에 저 경기를 난입해서 망쳐야 하는 거지?”

“그렇, 지.”

“총 맞을 것 같은데.”

“…….”

“크하하하하! 이야, 재밌겠는데!”

“뭐가 재밌어, 등신아!!”

결국 폭소를 터뜨리는 딘을 앞에 두고 세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 * *

9월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데뷔라고 하는 목적이 생긴 이상 세 사람은 거의 매일을 스케줄과 훈련으로 바쁘게 보냈다.

그리고 어느덧, 헤이건의 말이 없이도 세 사람은 함께 지내게 되었다.

의외로 죽이 잘 맞았다.

딘은 조용히 있다가 훅 치고 들어오는 로만의 유머에 낄낄대며 웃었고.

로만은 참다 참다 폭발하는 세스의 모습이 생각 외로 웃음 포인트였다.

마지막으로 세스는 고통 받았다.

그래도 자신이 먼저 할 수 없었을 뿐이지, 셋이서 또라이 같은 짓을 할 때면 곧잘 신나서 날뛰고는 했다.

9월 중순쯤에는 케빈 오윈스에게 잡을 해주러 MXT로 돌아간 세스 롤링스를 따라 가기도 했을 정도였다.

세스는 그곳에서 케빈에게 타이틀을 내어주며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고, 콜 업까지 남은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리고 그사이, WWF에서는 신과 사모아 고의 대립이 계속 이어졌다.

두 사람은 고가 일방적으로 시비를 걸어 감정적으로 부딪혔으며 때로 물리적 충돌까지 번지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대립 자체는 고가 이끌어갔다.

PWA로 찾아와 신을 도발하고 선수들을 박살 냈으며, 다음 주에는 백스테이지 난투극이 이어졌다.

그러다 결국 경기 계약식에서도 난투극이 벌어져서 그것을 말리기 위해 수많은 선수들이 링으로 달려 나왔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거기에 쏟아지는 환호는 엄청났다.

페이퍼뷰의 판매량은 치솟았고 신과 고의 티셔츠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런 상황에서 찾아온 페이퍼뷰.

‘라이트 오브 챔피언스’.

5만여 명의 관객이 모인 경기장.

전날 리허설 때부터 경기장에 있었던 더 스쿼드의 멤버들은 긴장으로 인해 한 숨도 자지 못한 상태였다.

딘 앰브루스.

세스 롤링스.

로만 레긴스.

“…….”

“…….”

“…….”

모두 지쳤다.

검은 조끼에 군용 팬츠.

비슷한 복장을 차려 입은 세 사람은 락커룸의 구석에 앉아 자신들의 차례가 올 때까지 무한정 대기 상태였다.

그러다가 선배 레슬러들이 락커룸에 들르면 일어나 깍듯이 인사를 드리고.

심장이 터질 듯했다.

긴장감은 페이퍼뷰가 시작된 이후로도 전혀 해소되지 않았고, 참다못한 세스가 러닝을 시작했다.

그리고 딘은 그런 그가 경기장을 계속 오가는 걸 보고 말리러 나갔다.

“세스!”

“……허억, 허억.”

“나가기도 전에 힘 빼지 마.”

세스가 돌아왔다.

딘은 가볍게 장난을 걸면서 이어지고 있는 긴장을 풀고자 했다.

“너는 지난번에 섬머 수플렉스에서 경기까지 뛴 놈이 뭘 또 긴장하냐?”

“그때는 더 심했거든.”

“……그래?”

“제기랄.”

세스가 쓰게 웃었다.

“그래도 너희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진심을 말했다.

드문 일이었다.

언제나 비평가적인 성향을 고수하던 세스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이야.

딘은 살짝 놀랐다.

그리고 로만이 말없이 주먹을 내밀어 세 사람은 가볍게 포즈를 취했다.

바로 그때였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폴 헤이건은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세 사람을 보고는 순간 눈썹을 치켜떴다.

“그건 뭐냐?”

“아, 저희 포즈입니다.”

“그런 걸 정했으면 말해줘야지.”

“말 안 했던가요?”

“안 했어.”

헤이건은 락커룸의 문을 닫고는 다시 세 사람이 포즈를 취하도록 했다.

나쁘지 않은 그림이었다.

하지만 세 사람은 꽤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헤이건은 그걸 좀 도와줄까 싶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거 다음 주에 써봐.”

“예?”

“너희 백스테이지 세그먼트 나갈 예정이잖아. 내가 신에게 말할 테니까 재촬영해서 내보내자고.”

“…….”

“잘 들어. 애송이들.”

헤이건은 눈앞에 서있는 세 사람을 한 번씩 돌아보면서 입을 열었다.

“이제 그건 너희 캐릭터야.”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딘 앰브루스.

세스 롤링스.

로만 레긴스.

이 세 사람은 이제 각본진과 회사의 손을 벗어났다. 링에서 그걸 표현하는 건 온전히 그들의 몫이었다.

“그리고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너희는 충분히 잘하리라 믿는다.”

“아니.”

딘이 피식 웃었다.

긴장이 풀린 얼굴이었다.

“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죠?”

세스와 로만도 그 사실이 좀 신경 쓰였는지 고개를 잠깐 갸웃거렸다.

헤이건은 눈을 부라렸다.

“허리가 아직도 아프거든.”

폴 헤이건.

그는 담아두는 성격의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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