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558화 (558/634)

Dark Match 44.

링 위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신과 고를 뒤에 둔 채 느닷없이 초대형 스크린에 영상 하나가 재생되었다.

어딘가 음울한 뒷골목처럼 느껴지는 장소를 바닥에 떨어진 카메라가 기묘한 각도에서 촬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검은 부츠 차림의 세 남자가 다가와 카메라를 집어 들고 얼굴을 비췄다.

폴 헤이건의 아이디어였다.

[Uoooooooooooooohhh……!]

순간 놀라는 관객들.

[우리는 ‘더 스쿼드’다.]

딘 앰브루스가 입을 열었다.

순간 진지했던 표정.

하지만 이내 그는 눈썹을 찡그리며 웃음을 터뜨리더니 자신의 스타일대로 껄렁하게 마이크워크를 이어갔다.

[뭐, 일단은 그래. 다들 궁금해하는 사실 같아서 말이야. 일단 팀 이름부터 말하는 게 좋겠지. 안 그래?]

동의를 구하듯 돌아보는 딘.

하지만 세스와 로만은 눈썹을 찡그릴 뿐이었고 거기에 순간 어깨를 으쓱한 딘은 그대로 말을 이어나갔다.

[뭐, 좋아. 다들 동의하는 것 같으니 계속 가자고. 우리가 대체 뭐하는 놈들이라 어제 경기를 망쳐놨을까.]

딘이 미소를 지었다.

[딘 앰브루스.]

카메라가 돌아갔고.

남은 두 명이 자신을 소개했다.

[세스 롤링스.]

[로만 레긴스.]

[각각 단체도 달라서 얼굴 볼 일도 없었을 우리가 왜 뭉쳤을까. 그야 물론 높으신 분의 사주를 받아서라고.]

[흔히 그렇듯 말이야.]

세스 롤링스가 카메라를 가져갔다.

딘과 로만이 자연스럽게 그 뒤로 이동해 포지션을 맞춰주었고 세스는 팬들이 납득할 수 있게 말을 시작했다.

[신, 오랜만이군.]

[Boooooooooooooooooooo-!]

[당신과의 경기는 정말 인상적이었어. 내게 많은 걸 남겼지. 그렇기에 나는, 이곳에서 기회를 잡기로 했다.]

세스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로만과 딘이 각각 옆에서 주먹을 가져다대며 더 스쿼드를 상징하는 시그니처 포즈가 완성되었다.

마지막으로 세스가 말했다.

[Believe, In The Squad.]

세그먼트는 그렇게 종료되었다.

영상이 끝나자 화면은 다시 링 위에 서 있는 신과 고를 찍기 시작했다.

한창 난투극을 벌이다, 영상이 나오자 잠시 물러서있던 두 사람은 고가 먼저 앞으로 나서며 다시 충돌했다.

어찌나 흥분했는지 마이크를 들지도 않았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댔다.

네가 사주한 거지?! 앙?!

그게 왜 내가 되는데?!

너 말고 대체 누가 그런다는 거냐!

충돌하는 신과 고.

결국 백스테이지에서 보안요원들이 나와서야 두 사람은 겨우 떨어졌다.

더 스쿼드.

화려한 데뷔였다.

* * *

한편.

한창 위클리 쇼가 진행 중인 ACW에서는 오늘도 마찬가지로 러셀 오메가의 오픈 챌린지가 진행 중이었다.

오늘 도전을 표방한 것은 PWA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니얼 라이언이었다.

현 시대에도 손에 꼽히는 두 테크니션의 대결.

더군다나 현재 대니얼 라이언은 악역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경기 초반.

기회를 잡아 로-블로를 날린 대니얼은 사악하게 웃으며 러셀을 도발하는 방식으로 경기를 이어나갔다.

[Boooooooooooooooooooooo-!]

팬들의 야유를 조금도 개의치 않고, 오히려 장난스럽게 웃은 대니얼은 그대로 잔혹하게 러셀을 짓밟았다.

콰앙-!

링 바닥이 울렸다.

머리를 노리는 무자비한 스톰핑.

심판이 만류하자 또 금방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물러선 대니얼은 러셀을 몇 번이고 위기로 몰아넣으며 ACW 월드 챔피언십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러셀도 그냥 당해주고만 있지는 않았다.

자신의 테크닉으로 끈질기게 매달린 그는 결국 기회를 잡았고 대니얼 라이언에게 저먼 수플렉스를 날렸다.

투콰앙-!!

[Yeeeeeeeeeeeeeeeeeeaaahhhh!!]

팬들의 환호와 함께 그들이 믿는 챔피언이 리드를 가져왔다.

대니얼은 고통에 찬 얼굴과 함께 링을 굴러다녔고 러셀은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고함을 내질렀다.

“우어어어어!!”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쏟아지는 환호.

바로 그 순간이었다.

[Sierra! Quebec! Uniform! Alfa! Delta! The Squad……!]

경기장 안에 울려 퍼지는 포네틱 코드의 울림과, 그걸 종합한 팀 네임.

더 스쿼드.

쿠궁-! 쿠궁-!

러셀이 순간 놀라 입장로 방면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카메라는 다음 순간 경기장의 전경을 크게 촬영했다.

그리고 더 스쿼드는.

입장로를 통해서가 아닌, 관객용 출입구를 통해 링으로 들어왔다.

검은 조끼와 밀리터리 팬츠.

[Boooooooooooooooooooooo-!!]

그 모습을 알아본 팬들이 야유를 보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은 나란히 서서 천천히 링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바리게이트를 넘어온 그들은 링 에이프런 위로 올라와 러셀 오메가와 대니얼 라이언을 포위했다.

잠시 서있던 러셀은 이내 지금 상황을 파악하고 전투를 준비했다.

시작되는 습격.

링 안으로 들어온 로만이 먼저 러셀에게 달려들었고, 딘과 세스가 합류하면서 그대로 난장판이 빚어졌다.

[Boooooooooooooooooooooo-!]

땡땡땡-!

대니얼 라이언의 반칙패였다.

경기가 종료된 뒤에도 스쿼드는 러셀을 계속 공격하며 제압해나갔다.

[Boooooooooooooooooooooo-!]

계속해서 쏟아지는 야유.

하지만 스쿼드는 멈추지 않았고 링 밖으로 나가 아나운서 테이블에 트리플 파워 밤까지 사용했다.

투콰앙-!!

번쩍 들린 러셀이 내동댕이쳐지면서 완벽하게 침묵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관객석을 통해 링에서 퇴장했다.

어젯밤에 라이트 오브 챔피언스에서 신과 사모아 고를 공격했던 세 사람이 이번에는 ACW의 링에 나타났다.

엄청난 일이었다.

지금 이 사태가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의 반증이었다.

ACW 나이트로가 종료된 이후, 그것을 프로레슬링 전문 기자인 데이브 렐처가 짤막하게 정리했다.

[모두 예견된 사실이었지. 더 스쿼드의 삼인방은 각자 다른 단체에 소속된 선수들이니까 말이야.]

[처음으로 단체가 다른 선수들이 뭉친 스테이블이 나온 거 아닌가?]

[어, 그렇진 않아. 정확히 보면 과거 50~60년대에 그런 식으로 스테이블이 구성된 적이 없진 않았거든.]

[뭐 그때는 그때고.]

[그렇지, 놀랄 일이지. 현대 프로레슬링은 아무래도 사업적으로 봤을 때 파이를 나눠먹을 수밖에 없는데.]

[서로 윈윈하자는 거군.]

[그래, 아무튼 흥미로워. 거기다. 지금 데뷔하는 세 친구는 초특급 유망주라고 자주 거론이 됐었으니까.]

[로만 레긴스, 딘 앰브루스, 세스 롤링스. 이렇게 세 사람이었지.]

[각자 GCW와 PWA, MXT에 소속되어있던 놈들이고, 딘과 세스는 인디 시절에는 자주 라이벌로 통했었지.]

[셋 다 비주얼도 뛰어나고 기믹 자체가 상품 팔기에도 참 좋아 보여.]

[뭐, 그건 나중 이야기고.]

렐처는 쓰게 웃었다.

[참 흥미로운 각본이야. 문제는 역시 그 배후에 누가 있느냐는 거겠지.]

[아무래도 ‘권력자’가 아닐까?]

[티파니 맥센?]

[그럴 수도 있지. 쇼에 나온 지 좀 됐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복귀할 수도 있는 거고 말이야.]

[아니면 진짜 신일 수도 있지.]

[맞아. 이번 일을 계기로 스테이블 리더가 되어서 악역으로 턴 힐하는 것도 꽤 흥미로운 그림 같은데.]

물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두 사람 모두, 신이 아직 턴 힐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느끼고 있었다.

신의 상품성은 아직 건재했다.

그의 존재로 인해 각본의 방향성이 크게 변했다. 그건 바로 신이 현재 아이콘이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였다.

그럼에도 그들이 굳이 신도 후보군에 넣어서 밑밥을 깐 건, 신에게 직접적으로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이전과 달리 업계가 크게 부흥하면서 상황이 많이 변한 상태였다.

렐처에게는 각종 강연과 칼럼 요구가 많이 들어왔고, 그의 정보를 받아다 기자들이 기사를 쓰는 일도 많았다.

그러므로 예전과 같이 함부로 업계의 비밀을 까발리는 게 조심스러웠다.

이미 충분히 돈을 버니까.

거기다 업계의 성장과 함께 이쪽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이들도 늘어났고.

그렇기에 이 업계의 중심에 있는 선수의 부탁을 거절하기는 힘들었다.

한편.

늦은 저녁.

방에 앉아 라디오 방송을 청취한 신은 바로 렐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방송 잘 들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사실 이렇게 신경 쓸 필요는 없었지만 업계가 성장하면서 렐처 같은 기자도 그 파급력이 꽤 커진 상태였다.

그러므로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이런 식으로 컨트롤하는 편이 낫지.

그가 내는 기사가 커지면서 이후 어떤 파급력이 생길지 모르니 말이다.

프로레슬링은 드라마였고, 그 끝이 없었기 때문에 렐처는 그 의도와 향후 전개를 자주 예상하는 편이었다.

그것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였다.

프로레슬링을 즐기는 방법.

메이저 뉴스 스테이션에서조차 정규 방송 편성을 생각하고 있다고 하니.

‘가장 오래되고 공신력도 강한 렐처 같은 기자는 통제해두는 편이 낫겠지.’

그런 식으로 잠깐 각본에 대해 생각하던 신은 이내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바로 러셀로부터였다.

[도착, 했다.]

“늦었네?”

[아, 난기류 때문에.]

다 죽어가는 목소리.

피식 웃은 그는 전화를 끊지 않은 채 곧바로 러셀을 마중 나갔다.

라스베이거스의 저택.

약혼한 뒤, 티파니와 살기 위해 구매한 곳으로 수영장에 영화관까지 있는 아주 제대로 된 대저택이었다.

평소에는 티파니나 그나 미국 전체를 돌아다니는 일이 많아 오히려 입주 가정부가 가장 많이 지냈지만.

그럼에도 PWA에 출연할 때면 신은 항상 이곳에서 편하게 머물렀다.

정원을 지나 문을 열자 러셀이 트럭을 끌고 안으로 들어왔다.

“주차장은 오른쪽으로 꺾어.”

“……그래.”

“너 괜찮냐? 속이 안 좋아 보인다.”

“세 번쯤 게워냈어.”

“애들은?”

“호텔로 보냈지.”

여기서 말하는 ‘애들’은 러셀과 함께 ACW 촬영을 끝마치고 곧장 날아온 더 스쿼드의 멤버들을 뜻했다.

케이페이브를 위해 일부러 좀 먼 좌석을 택했지만 이후 공항에서 인사 정도는 하고 헤어졌다는 그들.

러셀은 차를 세우고 나와서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트렁크 짐을 꺼냈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너 좋은 곳에서 산다?”

“마님이 잘 사는 거지.”

“야, 이…… 틀린 말은 아닌데.”

“어쨌든 있는 동안 편히 지내라. 이따 수영이라도 할까? 너 좋아하는 코리안 바비큐 구워 먹으면서.”

“내가 그걸 좋아한다고?”

“안 그래?”

“그건 오튼이지. 나는 오히려 저번에 먹었던 그 소스 들어간 고기가 훨씬 더 내 취향이던데.”

“아~ 양념갈비.”

“Yang-Name Gal-gie?”

“YangNyeme Gal-Bi.”

“오, 그래 그거. 근데 야외에서 먹어도 괜찮으려나? 이렇게 늦었는데.”

“어차피 주변 집에 사람 안 살아서 괜찮아. 다 여기 사두기만 하는 거라.”

“자본주의의 슬픔이군.”

러셀은 쓰게 웃었다.

머무를 방을 소개해주었고, 그는 신의 재력, 아니, 티파니 맥센의 재력에 놀라면서 그대로 몸을 씻었다.

그사이, 신은 마침 집안에 재워두었던 고기를 꺼내 요리를 준비했다.

정작 자신은 엄격하게 식단을 관리하는 중이었으므로 양념된 갈비는 먹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먼 곳에서 찾아온 친구에게는 좋은 음식을 대접한다는 것이 바로 김 패밀리의 오래된 전통이었다.

그렇게 갈비를 준비해 바비큐 통에서 굽고 있자니 러셀이 나왔다.

“오, 좋은 냄새.”

“옆에서 먹어라.”

“너는?”

“난 이거면 됐어.”

신은 프로틴 주스를 들었다.

“그동안 좀 방탕했나보군.”

“제기랄, 스케줄이 그렇게 많은 상황에서 일일이 챙겨먹으면서 버티기에는 정신적으로 힘들단 말이야.”

변명과 함께 주스를 꿀꺽 들이킨 신은 고기를 맛 좋게 구워주었다.

그리고 러셀과 대화를 나눴다.

“어떤 거 같아?”

“다들 자질이 있던데.”

“누가 특히 그래 보여?”

“엄, 세스?”

“엥, 그 자식? 너무 사악하게 생겼잖아. 목소리도 삼류 악당 같고.”

“원래 악당이 기회를 받는 게 이 업계의 섭리잖아. 넌 딘을 꼽겠지?”

“아니, 로만.”

“그 친구? 얼굴은 잘생겼는데 딱히 애티튜드가 좋아 보이지는 않던데.”

“그거면 됐지.”

“흐음.”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게 하면 알아서 팬이 꼬이는 상이야. 그런 말도 있잖아. 같은 짓도 잘생긴 놈이 하면 포장되기 마련이라는 그거 말이야.”

“그건, 그렇지.”

러셀은 씁쓸하게 웃었다.

확실히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로만 레긴스는 훌륭한 재능의 선수였다.

덩치도 가장 좋았고 바트 맥센이 보았다면 분명히 침을 질질 흘렸을 정도로 엄청난 포텐셜의 인재였다.

실제로도 그랬고.

“아무튼 괜찮은 친구들 같아. 사실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신인들이 소화하기 힘든 각본이 아닌가 싶었는데.”

“확실히 그 말이 맞지. 러셀.”

“……? 네가 제안한 각본이잖아.”

“아니, 들어봐.”

신은 프로틴 쥬스를 꿀꺽꿀꺽 마시고는 그대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우리가 함께 있잖아.”

“하하, 그건 그래.”

“더 스쿼드의 데뷔는 단순히 구실이지. 폴 헤이건이 PWA의 이득을 위해서 그 친구들을 고용하고…….”

“그 일을 통해서 서로 의심하고 암투가 벌어지면서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사태까지 일이 번지는 거잖아.”

“그래.”

신이 미소를 지었다.

결국 그랬다.

이 각본을 통해서 더 스쿼드가 신인으로 성공적으로 데뷔하는 한편, 업계의 흐름 역시 분명 크게 바꿀 터였다.

“분명 재미있을 거다.”

내 말을 들은 러셀이 빙긋 웃었다.

그래.

수요일 밤의 PWA부터.

WWF와 ACW를 비롯해서 업계 전체가 큰 혼란에 빠질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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