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48.
폴 헤이건.
사실 그는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이렇다 할 권력을 쥔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PWA의 사업부 총괄 팀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일개 직원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는 ‘권력자’의 이미지 역시도 가졌고, 업계에서 그런 역할이 필요할 때면 자주 활용되고는 했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개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물론 과거 ECW라는 단체를 실제로 경영했었던 본인의 경력 때문이었고.
나머지는 그 말솜씨 덕이 컸다.
선수들을 아우르고 그 리더로서 링에 올라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폴 헤이건은 정말로 훌륭한 매니저였다.
그렇다.
매니저.
결국 ECW가 몰락한 이후로.
아니, 그전부터.
폴 헤이건이라는 남자는 TV에 역할을 갖고 출연할 때마다 특정한 선수를 옆에서 띄워주는 역할을 맡았다.
그들을 ‘폴 헤이건 가이’라고 했다.
대표적으로.
브룩 레스너.
락콜드 스티비 스틴.
레이 미스테리우스.
C.M 펑크.
락 밴 댐.
빅 죠.
믹 졸리.
디 캐스캣-테이커.
이름만 들어도 엄청난 라인 업.
물론 그중에서도 락콜드나 테이커 같은 선수들은 폴 헤이건 가이에서 벗어난 이후에야 만개하기는 했지만.
폴 헤이건이 선수 보는 눈이 훌륭하다는 사실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팬들은 일단 폴 헤이건이 선수를 서포트한다고 했을 때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기대감을 품었다.
그리고.
“지금은 스쿼드가 그런 존재지.”
정확히는 이제부터 그런 형태의 각본을 만들어가야 하겠지만 말이다.
10월에 들어서서.
사모아 고와 헬 인 어 셀에서 한 번 더 맞붙기로 한 나는 그때까지의 각본을 모두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사실 딱히 필요한 작업은 아니지만.
시간도 남고.
우리 모두가 같은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이야기해둬야 했기에 하는 편이 여러모로 나았다.
“그 말이 맞아.”
고가 동의했다.
“그 친구들을 잘 띄워야지.”
“커피 안의 크림처럼 말이야.”
그 뒤를 이어 뭔가 멋진 말을 하는 척하는 것은 바로 오튼이었다.
……아직 각본에 참가도 하지 않은 녀석이 여기에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최근 들어 랜스 오튼은 날 따라 계속 여행을 다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락커룸에서는 자신을 상대할 사람이 없다’나.
물론 WWF 게임 이야기였다.
눈물이 났다.
‘레슬링 연습이나 좀 하지.’
게임으로 레슬링을 한 것이 실제보다 훨씬 더 긴 놈이 바로 오튼이었다.
그런 놈을 계속 상대해주고 있는 나도 웃기기는 하지만.
어쨌든.
“요는 간단해.”
폴 헤이건이 혁명의 불씨를 다시 당기고 다른 단체에서도 그런 상황에 감화되는 이들이 조금씩 나타난다.
그리고 거대한 전쟁으로 발전한다.
그게 우리가 그리는 큰 그림.
“그 시작은.”
10월 말의 페이퍼뷰.
헬 인 어 셀부터였다.
* * *
헬 인 어 셀.
페이퍼뷰의 이름처럼 그 메인이벤트는 거대한 철창 안에서 하는 헬 인 어 셀 매치를 치르는 게 보통이었다.
몇 년 만의 헬 인 어 셀 매치.
신의 상대는 사모아 고였다.
두 사람의 감정은 돌이킬 수 없겠다 싶은 지점까지 치달았다.
신은 자신을 의심하는 고에게 더 이상 변명하지 않았고, 고는 그런 신에게 다시 한 번 도전하기로 했다.
타이틀 매치.
거기에 감정이 다수 섞인.
그러므로 헬 인 어 셀 매치는.
말하자면, 거대한 철창 안에 가둬진 두 야수의 싸움처럼 진행되었다.
투콰앙-!!
[Uoooooooooooooooooohhhh?!]
팬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경기 중후반에 나온 머슬 버스터.
그것도 링 위에 놓인 철제 계단에.
“크하악-!”
신은 비명을 내질렀다.
고통으로 눈물마저 찔끔 맺힐 정도로 아파한 그는 등을 활처럼 펴며 이내 계단 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링 위에는 무기들로 가득했다.
철제 의자.
슬레지 해머.
야구 방망이.
온갖 것들이 나뒹구는 상황에서 숨을 몰아쉬는 고의 등짝은 처참했다.
철창에 부딪히기를 반복하면서 피멍이 들었고 피가 흘러내릴 정도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아직 셀 바깥으로 빠져나가지도 않은 상태였다.
이어지는 핀 폴.
[1……!]
[2……!]
신이 어깨를 들어 벗어났다.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역시나 하드코어한 경기였다.
‘미치겠구먼.’
철창을 비롯해 온갖 도구들 하나하나가 질릴 정도로 아프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팬들의 반응이 죽여줬다.
그게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환상적인 경기였다.
고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고 거기에 신도 최선을 다해 맞서며 싸웠다.
슬레지 해머를 복부에 꽂아 넣고.
고통스러워하면서 이내 무릎을 꿇은 고의 등에 대고 있는 힘껏 휘둘렀다.
빠악!
쓰러지는 고.
핀 폴.
하지만 벗어났다.
두 사람은 계속 사투를 이어갔다.
감정이 충돌했고.
누구 하나 물러서지 않은 상태에서 링 아래로 내려가 주먹질을 해댔다.
그게 바로 노리던 바였다.
헬 인 어 셀은 하드코어한 매치.
그 정도 경기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 모두 감정을 쌓아야만 했다.
신과 고는 충분히 서로를 증오했다.
“우어어어어-!!”
헤드벗을 맞고 뒤로 물러나있던 고는 우렁찬 고함을 내지르며 철창 앞에 서 있던 신을 향해서 돌진했다.
투콰앙-!
충돌하는 두 사람.
철창이 무너졌다.
[Uoooooooooooooooooohhh!!]
경악하며 일어서는 팬들.
그렇게 철창 밖으로 빠져나온 고는 신의 위에 올라타 주먹을 휘둘렀다.
링 밖으로까지 번진 싸움.
신은 고의 복부에 발을 올린 뒤 그대로 힘을 줘서 위쪽으로 넘겨버렸다.
태클에 당한 게 너무나도 아팠지만.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지만.
그는 계속 고와 맞서 싸웠다.
링 밖에서도 혈전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경기가 이어졌다.
수없이 주먹을 주고받고.
바리게이트 앞을 크게 쓰면서 싸움을 이어가던 중, 신이 기회를 잡았다.
셀 앞에 등을 대고 선 고.
슈퍼 킥이 그 턱에 적중했다.
쫘악-!!
크게 들린 고의 머리가 셀에 부딪혔다. 그리고 이어서 신은 앞으로 비틀거리며 나오는 그를 들고 넘겼다.
그 뒤에는 아나운서 테이블이.
투콰앙-!!
백 바디 드롭으로 크게 떠오른 고의 몸이 아나운서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Yeeeeeeeeeeeeeeeeeeaaaahhh!]
환호하는 팬들.
여기에서.
이번 헬 인 어 셀의 가장 위험한 스팟이 나오려고 했다.
신은 셀을 타고 올라갔다.
숨을 몰아쉬는 고.
사실 그의 첫 헬 인 어 셀 경기에서는 케인 맥센과 함께 셀 정상으로부터 추락하는 범프를 수행했었다.
하지만 그건 미친 짓이었다.
죽지 않은 게 용했고.
이제는 시대가 변해 그처럼 위험한 범프는 수행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와 비슷한 흉내라도 내야 지금 이 경기의 가치가 올라가는 법이었다.
셀을 반쯤 타고 올라간 신.
바로 그때였다.
“끄응……!”
고가 일어섰다.
신이 셀 위로 올라가려는 걸 본 그가 달려들어 그 다리를 붙잡았다.
저항하려는 신.
하지만 버텨내기 어려웠다.
[Uoooooooooooohhh?!]
관객들이 비명을 내질렀고.
신은 그대로 셀에서 추락했다.
그리고 그런 그를 고가 자신의 어깨 위에 파워 밤 포지션으로 받아냈다.
이어서 아나운서 테이블 위로.
힘껏 이어지는 파워 밤.
투콰앙-!!
무너지는 테이블.
신은 완전히 뻗었고 숨을 몰아쉰 고는 주먹을 머리 위로 번쩍 들었다.
[Waaaaaaaaaaaaaaaaaggghhh!!]
환호가 쏟아졌다.
고는 완전히 정신줄을 놓고 있는 신을 데리고 다시 링으로 돌아갔다.
그 후로 핀 폴을 이어갔지만 테이블 위로 떨어진 지 시간이 지나서일까.
신은 어깨를 들어 벗어났다.
[Yeeeeeeeeeeeeeeeeeaaahhh!!]
관객들이 환호했다.
고는 점차 초초함을 드러냈다.
“칫!”
혀를 크게 차며 일어선 그는 탑 턴버클 위로 올라가 공중기를 준비했다.
다이빙 센톤.
공중으로 뛰어 아무런 양념 없이 등부터 떨어지는 단순무식한 기술.
130kg의 거구가 날았다.
하지만 신은 그걸 맞아주지 않았다.
투콰앙-!
옆으로 굴러서 피했고, 사모아 고의 다이빙 센톤은 자폭기가 되고 말았다.
바로 그때가 기회였다.
신은 슬레지 해머를 손에 쥐고 고를 향해 달려들었다. 관객들 모두가 당연히 타격기를 연상하고 일어섰다.
하지만 신은 사모아 고의 양 오금에 슬레지 해머를 끼우더니 그 상태에서 곧바로 샤프 슈터를 걸어버렸다.
[Uooooooooooooooooohhhh!]
“크하아아아아아아아아악-!!”
경기의 마지막 순간.
초반에 나온 일반 사프 슈터는 근성으로 버텨내며 풀어버렸던 사모아 고.
그렇기에 신은 그런 고를 꺾어버리기 위해 슬레지 해머를 가지고 왔다.
고도 억지로 버텨냈지만.
“끄그극……!”
오금 안쪽에 슬레지 해머 손잡이를 끼운 상태에서 앞으로 움직이려고 한들 고통만 가중될 뿐이었다.
하드코어한 헬 인 어 셀 매치이기에 나올 수 있는 그런 기술이었다.
신은 이를 악물고 고의 허리와 다리를 꺾은 채 버텨냈고, 결국 사모아 고는 비명과 함께 마구 탭을 쳐댔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땡땡땡-!
환호와 함께 끝나는 경기.
이번에는 깔끔했다.
더 스쿼드의 개입을 막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사모아 고가 제안한 헬 인 어 셀 매치.
거기에서도 신은 승리를 거뒀다.
물론 중간 과정에서 셀 붕괴 사고로 인해 고가 좀 당황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조차 본인의 실수.
더 스쿼드는 그의 예상과 달리 끝까지 난입하지 않았으며 신은 깔끔하게 그로부터 탭 아웃을 받아냈다.
고도 할 말이 없는.
완벽한 승리.
이걸로 그는 이번 각본에서 벗어나 당분간 휴식을 취하게 될 예정이었다.
1월의 킹스 럼블까지 몸 상태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서 말이다.
“고생 많았다. 신.”
“아, 잘 쉬다 오라고.”
자리에 뻗은 두 사람은 환호 속에서 숨을 몰아쉬며 덕담(?)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페이퍼뷰 하나가 또 끝났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은 아니었다.
[Sierra! Quebec! Uniform! Alfa! Delta! The Squad……!]
스쿼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로 엉망진창이 될 때까지 싸운 신과 고는 몸을 가눌 수조차 없는 상태.
[Boooooooooooooooooooooo-!]
야유가 이어졌다.
아까 무너진 곳을 통해 링으로 들어온 스쿼드 멤버들은 신과 고를 포위하고 그대로 잠시 대기했다.
그러자니 이어지는 목소리.
[Hang on! Hang On……!]
‘기다려’.
그 목소리를 들은 팬들이 자연스럽게 입장로 쪽을 돌아보았고 이내 비명을 내지르며 드러난 진실에 반응했다.
바로 폴 헤이건.
사실, 그렇게까지 큰 반전은 아니었다. 폴 헤이건은 분명히 그들의 리더 후보로서 거론되는 남자 중 하나였다.
거기에 그의 소속 때문에 혹시라도 신이 정말 기여하고 있을지 모를 충격적인 진실이.
그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Go.]
나직이 중얼거리는 헤이건.
반쯤 몸을 일으켜 세운 신이 황당해 그를 바라보았고 스쿼드 멤버들이 링 안으로 난입해 공격을 시작했다.
신이 아닌 고를.
무자비하게 두들겨 패며 철제 의자까지 사용해서 반쯤 짓이겨 놓았다.
그사이.
헤이건이 링으로 들어왔다.
그는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몇 번이고 미끄러지는 신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토닥토닥.
마이크를 내린 채 등을 두들기며 뭐라고 말을 걸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신은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스쿼드의 공격은 잔혹했다.
“Wooooooooo-Ahhhhhhhhhh!!”
로만 레긴스가 포효했다.
트리플 파워 밤 이전의 신호.
사모안 출신으로서 내지르는 긍지의 워-크라이.
세스와 딘이 사모아 고를 들어 로만의 어깨 위에 얹어주었고.
세 사람은 철제 계단 위에 고를 그대로 힘껏 내리 찍었다.
투콰앙-!!
고통 속에 침묵하는 고.
그리고 세 사람은 신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전처럼 공격은 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헤이건의 명령대로 신을 부축해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혁명가, 폴 헤이건.
그는 링에 서서 심판이 건네는 벨트를 직접 받아들고 머리 위로 들었다.
그의 목적은 심플했다.
이 업계의 정상에 서는 것.
다른 누구도 아닌 ‘신’을 중심으로.
하지만 딘과 세스의 부축을 받은 신은 지금 이 상황이 그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