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51.
[Bravo!]
누군가 소리쳤다.
쓰러진 러셀 오메가.
슈퍼 킥을 찬 뒤 그 앞에서 여유롭게 서있는 신. 안으로 들어와 천천히 신의 주변으로 다가오는 더 스쿼드.
[Bravo!!]
입장로를 통해 나오는 폴 헤이건.
그가 링 위로 올라오는 동안 팬들은 줄곧 어안이 벙벙해져 뭐라고 반응을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신의 행동이 준 충격은 그만큼 컸다. 스쿼드 멤버들도 티는 안 내려고 노력했지만 순간 쫄았을 정도였다.
이러다 폭동이라도 나면 어쩌지?
그런 생각이 순간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들은 관객석의 공기를 살피며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하지만 신은.
동시에 헤이건은 전율했다.
‘이건 먹힌다.’
[Bravo-!!]
남은 건 간단했다.
헤이건이 최대한 어그로를 끌어주면서 관객들이 지금 혼란스러운 감정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링으로 올라온 헤이건은 쓰러진 러셀을 바라보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갖은 오버를 다 떨며 그 손등에 입을 맞추고 난리법석을 피워댔다.
신은 마이크를 들었다.
“이게 당신이 원하던 바겠지.”
“그래! 신! 나는 네 이런 모습을 원했어! 무자비함! 폭력! 그리고 압도!”
헤이건이 흥분해 소리쳤다.
“우리는 역사를 써나갈 거야!”
“어이가 없군.”
피식 웃은 신은 그대로 자신의 챔피언 벨트를 폴 헤이건에게 건네주었다.
그가 그것을 보물처럼 받아 들은 뒤 양손으로 받치고 머리 위로 들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Booooooooooooooooooooo-!!]
어마어마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신은 그런 가운데 생각했다.
‘이게 훨씬 낫네.’
죽여주는 반응이었다.
* * *
ACW에서 러셀을 공격하며 폴 헤이건과의 연합을 선언한 신은 팬들로부터 엄청난 야유를 받게 되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자기 단체의 챔피언이 다른 단체의 챔피언에게 공격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점차 선악의 구분이 희미해지는 거였다.
같은 행동을 해도 어디에서는 환호를 받고 어디에서는 야유를 받았으니.
그러므로.
수요일 밤의 PWA.
더 스쿼드, 폴 헤이건과 함께 링에 오른 신은 지난 월요일과는 반대로 어마어마한 환호를 받았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Thank you! Heygun!]
짝! 짝! 짝짝짝!
[Thank you! Heygun!]
짝! 짝! 짝짝짝!
[Thank you! Heygun!]
짝! 짝! 짝짝짝!
완전히 난리도 아니었다.
팬들이 감사를 표하고.
박수를 치면서 마구 환호를 보냈다.
그런 가운데.
스쿼드와 함께 링에 선 신은 벨트를 어깨에 걸친 채로 눈앞의 폴 헤이건이 말을 시작하는 것을 기다렸다.
하지만 자신에게 고맙다고 소리치는 팬들의 반응이 즐겁기 때문인지 헤이건은 꽤나 긴 시간이 지난 뒤에야 겨우 말문을 열었다.
“역시, 역시!!”
특유의 과장된 톤.
“모두가 알아주는군! 신! 우리는 할 수 있어! 우리는 역사를 만들 거야!”
[Waaaaaaaaaaaaaaaaaaaggghhh!]
같은 상황이었건만.
PWA 관객들은 응원을 보냈다.
그들로서는 자신들이 깊이 사랑하는 챔피언이자 캡틴, 신과 더 스쿼드, 그리고 폴 헤이건까지 엮이는 지금 상황이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들었다.
신이 그 말을 받았다.
“그래서 헤이건. 도대체 어떤 식으로 당신의 혁명을 이루겠다는 거지?”
“바로 자네 어깨의 타이틀이지.”
“이거?”
“그래, 정상의 상징. 그 아래에 모이는 선수들은 정말로 대단할 거야.”
“흠, 그게 참 흥미롭단 말이야.”
신이 본격적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재미있는 이야기야. 나도 그런 걸 원했어. 더 이상 이 업계에 단체의 존재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다고.”
그는 벨트를 들어올렸다.
“내가 이 벨트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겠지. 나는 WWF 월드 챔피언이자, 얼마 전까지는 ACW 월드 챔피언이었고, 동시에 PWA의 리더지.”
그 말이 맞았다.
더 이상 어떤 단체에서 활동하는지가 중요한 시대가 아니었다.
실력.
그리고 야망.
“‘꿈’이라고 표현하겠어.”
드리밍 에라.
“나는 그런 놈들을 원해. 어떤 방식을 쓰느냐는 아무 상관도 없어.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있는, 자신 넘치는 놈이 있다면 함께 싸우고 싶다고.”
그는 순식간에 폴 헤이건에게서 바통을 건네받아, 팀을 스스로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나가기 시작했다.
“딘! 세스! 로만!”
[Waaaaaaaaaaaaaaaaaaaggghhh!]
“여기 이 환호가 들리나?! 너희들이 그동안 몸을 던져 만들어온 성과를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있다고!”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너희가 이 업계에 들어왔을 때 미래에 그리는 자신의 이미지가 있었겠지. 내가 그걸 친히 경험시켜주마.”
돈, 명예, 그리고.
“기록.”
“…….”
“…….”
“…….”
입을 다물고 서 있는 세 사람.
하지만 그 눈은 활활 타올랐다.
신이 방금 한 말은 절대로 각본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실제 그들의 삶에도 적용되는 말이었다.
업계에서의 성공.
그들이 그리는 큰 꿈.
그걸 자극했다.
“이 자식들뿐만이 아니야! 누구든지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얼마든지 내 쪽으로 붙으라고!!”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챈트가 이어졌다.
폴 헤이건이 그 모습을 보며 박수를 보내고는 이내 신의 어깨에서 공손하게 벨트를 받아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테마.
웅장한 심포닉 메탈 멜로디.
이 업계 전체를 몇 주 동안 발칵 뒤집어놓을 팀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 *
그렇게 PWA에서 스쿼드와 신의 연합이 발표되자 WWF에서 그것을 가만히 방관하고 넘어갈 리는 없었다.
애초에 ACW 월드 챔피언을 불러내 그 단체에서 공격한 일 자체가 문제의 소지가 없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WWF, 금요일 밤의 랙다운.
오프닝.
현재 각본상의 총괄자인 숀 시나가 링에 나와 그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팬들의 의식이 집중되었다.
그들이 기대하는 11월의 ‘거대한 싸움’이 드디어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
“링 위에서의 일은 링 위에서 풀어야지. 신, 그리고 아마 스쿼드와 헤이건도 같이 나오겠군. 어디 한번 우리 문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고!”
그 말에 음악이 시작되었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신의 테마.
[Waaaaaaaaaaaaaaaaaaaggghhh!]
WWF 팬들은 큰 환호를 보냈다.
이어서 신이 폴 헤이건과 함께 입장로 위로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둘만이 아니었다.
스쿼드 멤버들이 평소와 마찬가지로 링을 포위하고자 관객석을 내려왔다.
그렇게 만난 두 그룹.
신이 평소 입는 검은 재킷과 스쿼드의 조끼 스타일은 무척 잘 어울렸다.
헤이건도 검은 정장을 입으며 팀으로서의 분위기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링으로 들어온 그들.
시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가 폴 헤이건과 같은 비루한 인간과 연합을 맺은 이유를 모르겠는데. 혹시 내게 설명을 좀 해줄 수 있나?”
그 말에 헤이건이 순간 얼굴이 굳어져 항의했지만 신이 가볍게 제지하고는 제멋대로 말을 이어나갔다.
“이러는 편이 더 재미있잖아?”
“재미?”
“그래, 기왕 할 거라면 무대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게 내 스타일이지. 지금 여기 이 친구들을 보라고. 시나.”
신은 자신의 뒤에 있는 스쿼드 멤버들을 가리키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이미 업계의 정점에 이른 너나 나와는 다르지. 이 자식들은 우리의 10년 전과 같아. 이제 막 시작했지.”
그렇기에 치열하게.
매 경기, 매 경기마다.
죽을 각오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승리를.
그게 마음에 들었다.
“그건 나나, 현재 안일한 이 업계가 배워야 할 점이야. 그렇지 않아?”
“단순히 헤이건의 의뢰에 따라 움직이는 용병을 그렇게까지 높게 평가하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인데. 신.”
“그건 네가 은퇴했기 때문이지.”
[Uooooooooooooooooooohhhh!]
“나는 너와 달리 지금껏 나를 등불로 삼아, 이곳까지 항해를 해왔거든.”
업계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나 마찬가지였다.
그 누구도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누구도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되는 곳이 바로 이 업계였다.
“하지만 여기 이 개자식들은, 건방지게도 최악의 데뷔 방식을 택했어.”
그것은 바로 폴 헤이건이라는 업계의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는 점이었다.
“그 누가 그럴 수 있겠어? 이제 갓 데뷔한 신인이, 이 정글에서 가장 싸우기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니까?”
신은 거기에 감명을 받았다.
이 업계의 정상에 서있는 그는 자신이 어느 샌가 잊고 살았던 정신을 하나 다시 머릿속에 떠올렸다.
말은 거창했지만 간단했다.
“나는 혼란을 원해.”
그건 돈이 되니까.
“이 업계의 다른 그 어떤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곳에 가기 위해서는 좀 더 큰 사고가 필요하단 말이야.”
그래서 신은 이 길을 택했다.
“분명 다들 열이 받았겠지? 그렇다면 얼마든지 덤벼보라고! 러셀! 안면을 걷어차여서 속이 쓰리시겠지! 네가 오는 걸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마!”
[Yeeeeeeeeeeeeeeeeeeeaaahhh!]
환호가 쏟아졌다.
호쾌한 세그먼트였다.
신의 이야기는 간단명료했다.
결국, 스스로 업계의 최전선에서 이런 식으로 분란의 씨앗을 뿌려서 크게 싸움을 걸어보겠단 말.
그 말을 들은 시나는 황당한 표정이 되었고, 스쿼드 멤버들과 헤이건은 미소를 지으며 신을 바라보았다.
그걸 황당하다는 듯 듣던 시나가 이내 열이 받는 것을 참고 되물었다.
“월드 챔피언은 모범을 보여야 하는 자리야. 신. 너의 행동은 전혀…….”
“그건 이 벨트를 빼앗고 나서 증명하라고. 시나. 아, 그럴 수가 없나?”
시나의 분노는 한계에 다달았다.
결국, 그가 마이크를 내던지고 신에게 달려들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퍼억-!
스쿼드 멤버들이 먼저 시나의 뒤통수를 치면서 그대로 린치가 이어졌다.
[Uooooooooooooooooooohhh!]
비명을 내지르는 관객들.
그 속에 야유도 다수 섞였다.
한참을 린치한 끝에 이어지는 트리플 파워 밤.
투콰앙-!
시나가 나가떨어졌고, 그 앞에서 다시 마이크를 든 신은 자신의 의지를 마지막으로 확실히 이야기했다.
“이건 이념의 대립이 아니야! 혼돈의 파티 같은 거지! 누구든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 있으면 덤벼!”
동시에.
“그놈이 도리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게 붙어도 좋아! 내 의견에 동조하는 녀석도 나쁘지는 않고!!”
[Waaaaaaaaaaaaaaaaggghhh!]
[Boooooooooooooooooooo-!]
환호도 야유도 모두 있는 상태.
아무래도 이후의 각본은 정말로 반응을 한 치 앞도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혼란의 연속일 터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되려 흥미로웠다.
‘이거거든.’
신은 씨익 웃으며 오늘 처음으로 자신의 편에 붙을 선수를 생각했다.
바로 랜스 오튼이었다.
* * *
이후의 메인이벤트는 총 8인이 참가한 대형 태그 매치가 이루어졌다.
신과 더 스쿼드가 한 팀.
반대편에는 랜스 오튼과 C.M. 펑크, 코피 퀸스턴, 웨이드 개럿이 나섰다.
그리고 경기는 난장판이 되었다.
안 그래도 더 스쿼드라는 팀에 대해 감정이 있던 선수들은 경기가 중반을 넘어가자 마구 링에 난입했다.
태그는 의미도 없었다.
[Waaaaaaaaaaaaaaaaggghhhh!]
혼란 속에 이어지는 경기.
심판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상태에서 각 선수들은 각자 한 명씩을 맡아 곳곳에서 싸움을 이어나갔다.
신이 랜스 오튼을.
로만 레긴스가 웨이드 개럿을.
딘 앰브루스가 C.M. 펑크를.
세스 롤링스가 코피 퀸스턴을.
팬들의 반응은 엄청났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그들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경기를 계속 지켜봤다.
그러던 중.
랜스 오튼과 한창을 맞붙던 신이 이내 어퍼컷을 맞고는 발라당 쓰러졌다.
연기라는 것이 아주 미세하게 느껴졌지만 대부분의 팬들은 그것을 눈치채치 못하고 그냥 넘어갔다.
그렇게 랜스 오튼이 자유로워졌고.
다시 태그 위치로 올라간 그는 링 안에서 싸움을 이어가고 있던 코피 퀸스턴과 세스 롤링스를 바라보았다.
코피가 기세를 잡았다.
기세등등한 신인인 세스 롤링스를 상대로 버거워하던 그는 결국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피니시 무브인 트러블 인 파라다이스를 성공시켰다.
옆으로 돌면서 이어지는 엔지기리.
쩌억-!
머리 옆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세스가 쓰러졌고 코피는 비틀거리며 그 위로 쓰러져 자연히 핀 폴이 이어졌다.
신 팀의 그 누구도 세스를 도와줄 여력이 없는 상황.
[1……!]
[2……!]
팬들이 카운트를 셌고.
바로 그때였다.
[Uooooooooooooooooohhhh?!]
어느새 안으로 들어온 랜스 오튼이 돌연 같은 편인 코피 퀸스턴의 머리를 잡아채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이어지는 R.K.O.
투콰앙-!!
모두가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The Viper.
Apex Predator.
배신이라는 충격적인 사고를 저지른 상황이었건만 그는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고 움직였다.
쓰러진 세스를 코피의 위에 올려놓았고, 황당하다는 듯 상황을 지켜보던 심판이 다시 카운트를 시작했다.
[1……!]
[2……!]
[3……!!]
땡땡땡-!!
그렇게 경기가 종료된 순간.
프로레슬링 팬들 모두가 느꼈다.
정말로 거대한 싸움의 서막이 오늘 이 경기를 통해서 시작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