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52.
월요일 밤에 그런 사고를 친 뒤.
우리는 PWA로 돌아갔다.
그렇게 경기장에 도착한 우리는 기다리고 있던 바쿠로부터 대충 지금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받게 되었다.
“다들 옆 도시에 있다고 하니까. 시간에 맞춰서 여기 올 수 있을 거다.”
라스베이거스 주변의 위성 도시들.
그곳에 WWF 선수들과 ACW 선수들이 있다가, 촬영 당일에 PWA로 오는 스케줄이 구성되었다.
케이페이브였다.
같은 도시에 레슬러들이 있다면 사람들이 다음 각본에 대해서 바로 눈치를 채고 인터넷에 올릴 테니까.
아무리 잘 숨는다고 한들 밥도 먹고 운동까지도 가야 하는데. 당연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옆의 다른 도시를 거쳐 간다는 느낌으로 둬서 최대한 수요일 밤의 각본에 대해 숨기려는 것이었다.
“경기장이 미어터지겠는데요.”
“그러게 말이다.”
내 말에 바쿠가 씨익 웃었다.
그리고 분명 어려운 촬영일 터였다.
케이페이브를 지켜야만 했기 때문에 최대한 선수들의 이동 경로를 숨기고.
그러므로 백스테이지 난투극도 미리 촬영하지 못하고 실시간으로 찍으면서 쇼를 진행해야만 할 터였다.
하지만.
나는 우리 크루를 믿었다.
“준비는 완벽하죠?”
“그래, 다들 최근에 어려운 촬영을 못해서 근질근질해 보이던 찰나인데.”
“하, 아이디어 좀 팍팍 내야겠네.”
“아니지. 오히려 다들 이 정도니 확실하게 할 마음이 든 거 아니겠냐.”
“동감합니다.”
완전히 엉망진창이 될 생각이었다.
PWA라는 해적선에 WWF와 ACW의 정규군이 들이닥쳐서 난리를 피운다.
그리고 그 정규군 안에도 나의 아이디어에 감화된 선수들이 있을 터였다.
C.M. 펑크와 웨이드 개럿.
그 외의 수많은 이들.
그리고 물론.
랜스 오튼은 이미 왔고 말이다.
바쿠와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마친 뒤, 나는 다른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락커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복도에 누군가 나와서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
두말할 것도 없었다.
바로 랜스 오튼이었다.
녀석은 복도에 설치된 단백질 음료 자판기 앞에서 씨름을 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리고 욕을 해댔다.
대체 뭘까 싶어서 보니 자판기가 계속 녀석의 지폐를 뱉어내고 있었다.
지이이잉~.
퉤엣.
“아오!”
“뭐하냐……?”
“야, 이거 자판기 맛 갔어.”
“아니, 그런 자판기가 아니라.”
나는 주머니를 뒤적거려 지갑을 꺼내들고는 그 안에 있는 직원용 카드를 꺼내 자판기에 대고 툭 찍었다.
띠링!
불이 들어왔다.
철컹! 쿵!
오튼이 재빨리 음료를 선택했고, 목이 말랐는지 급하게 따서 마셔댔다.
“푸하아!”
그리고 새삼 TV광고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호쾌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돈 원래 안 들어가는 모델이야?”
“어, 직원 복지용이라.”
“오…….”
“우리 연말마다 파티 열어서 1등하는 사람한테 최신 게임기도 주는데.”
“너희 로스터 자리 남냐?”
“네가 오면 든든하지.”
“애들 게임은 잘 하고?”
“어디 보자. AK가 기가 막히지.”
실제로 그는 커다란 철제 가방을 개조해서 어디에서나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만들기도 한 진성 겜덕이었다.
“얼마나 잘하는데?”
“난 상대도 안 돼.”
“오…….”
진짜로 흥미로워하는 오튼.
게임과 직원 복지만으로 이렇게 타 단체의 에이스를 빼와도 되는 것일까.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 * *
그렇게 찾아온 수요일.
이른 새벽.
각각의 위성 도시에서 출발한 초대형 전세 버스에는 WWF, ACW의 선수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여성 선수가 다섯.
남성 선수가 열다섯.
각 단체의 선발을 거쳐 올해의 단체 간 통합 페이퍼뷰인 레슬링 월드 시리즈에 참가할 예정인 선수들이었다.
물론 개중의 일부는 ‘배신자’였다.
이미 폴 헤이건과 말을 해두었거나 신의 이야기를 듣고서 감화된 선수들.
수요일 밤은 그들이 어느 편에 서게 될지가 확실히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러셀을 리더로 한 연합군.
신을 리더로 한 혁명군.
분명히 멋진 그림이었다.
‘그렇지.’
러셀은 창문 밖을 스치는 풍경을 보면서 오늘 벌어질 사건들을 예상했다.
경기장에 도착해서는 쇼가 개최될 때까지 버스 안에서 대기였으니 거기에서는 좀 눈을 붙일 생각이었고.
버스 안의 화장실 냄새가 심해진다 싶을 때쯤 PWA가 시작될 테고 그대로 일을 진행하면 될 터였다.
습격하고.
팽팽하게 맞서고.
결국 편이 명확히 정해지고.
여기서 걱정이 되는 점은.
‘팬들이 잘 이해할 수 있는가.’
동시에 임팩트가 느껴지도록 연출이 잘 기획되었나. 그렇게 두 가지였다.
물론, 러셀이 그 점을 느낀 만큼 업계의 프로페셔널들도 다 알고 어련히 잘 짰으리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렇기에 도리어 궁금해졌다.
‘과연 연출을 어떤 식으로 짰을까?’
정답은 간단했다.
‘리허설’이었다.
PWA는 기본적으로 총 열여덟 대의 카메라를 보유했고, 그중 열세 대를 사용해서 위클리 쇼를 촬영했다.
관객을 찍는 카메라가 세 대.
링을 찍는 카메라가 다섯 대.
그중 세 대가 고정, 두 대는 카메라맨이 직접 들고 선수들을 찍었다.
전경 세 대.
엔트런스 세트 쪽 두 대.
이렇게 열세 대가 기본.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예비용 카메라가 세 대. 그리고 백스테이지에서 대기하고 있는 카메라가 두 대.
그 평소의 촬영 방식은 이러했다.
할리나 바쿠, 헤이건이 돌아가며 모니터로 촬영 중인 영상을 확인하고 어느 걸 방송에 내보낼지 지시했다.
그리고 중요한 장면 같은 경우에는 어느 카메라를 써서 어떤 식으로 촬영할지 미리 협의해두었다.
피니시 무브를 쓸 때나.
아니면 신이 러셀에게 슈퍼 킥을 날렸을 때처럼 임팩트 있는 장면이 아주 적절한 예시라 할 수 있겠다.
베테랑들도 많고 설비도 항상 최신이었기에 PWA는 업계 내에서 최고 수준의 카메라워크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오늘은 경우가 달랐다.
외부를 찍는 카메라가 총 일곱 대가 추가되면서 실시간으로 봐야 하는 카메라의 숫자가 훨씬 더 늘어났다.
총 스무 대.
그런 상황이 찾아오자 PWA는 미리 해결할 방안을 모색해두었다.
“카메라를 나누죠.”
헤이건의 아이디어였다.
“어떤 식으로?”
“스토리 보드에 따라서요.”
WWF의 습격을 한 타임 보여주고.
ACW의 습격을 한 타임 보여주고.
일단 두 팀은 각자 다른 입구를 통해서 경기장으로 들어올 예정이었다.
그러므로.
WWF를 보여줄 때는 그쪽 카메라와 링만 집중하면 그만이라는 이야기였다.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걸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선수들이 제 시간에 움직이도록 지시를 내려야만 했다.
“바쿠, 자네가 맡아주게.”
“예, 숙지해두죠.”
고개를 끄덕이는 바쿠.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링 프로듀서인 그렉과 베이다가 각 단체를 맡아 조율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자 금방 결론이 나왔다.
헤이건과 각본팀장, 마지막으로 영상팀장까지 가세해 스토리 보드를 하나하나 세세하게 나누었고.
그것이 각 중요인원에게 배부되면서 PWA는 위클리 쇼를 준비했다.
그만큼 중요한 한 주였다.
그리고 찾아온 11월 3주차.
수요일 밤의 PWA.
방송이 시작되었다.
광고가 끝난 뒤, 화면이 어두워졌다 밝아지며 지하 주차장이 비춰졌다.
안으로 들어오는 트럭.
운전석에서 내린 건 신.
[Waaaaaaaaaaaaaaaaaggghhh!]
팬들의 환호가 이어졌고 차량 뒤쪽에서 스쿼드 멤버들과 폴 헤이건이 내리자 그 환호는 더욱 더 커졌다.
그리고 카메라가 조수석에서 내리는 한 남자의 모습을 잡았다.
바로 랜스 오튼.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신과 랜스 오튼.
두 사람이 뭉쳤다.
이제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 된 그들은 당당하게 링으로 걸어갔다.
여기까지는 미리 촬영된 분량.
그리고 오프닝 영상이 이어지는 동안 고릴라 포지션의 할리 레이시는 마지막으로 기합을 불어넣었다.
“다들 잘해보자!”
거기에 각자 임무를 가진 채 자리를 지키던 팀원들이 호쾌하게 대답했다.
오프닝 영상이 나가고, 광고가 이어진 뒤 경기장 전경을 비추는 메인 카메라가 방송에 나가기 시작했다.
[Welcome To PWA!]
[수요일 밤입니다! 오늘도 출항 준비를 마치고 달려나갈 참입니다!!]
해설자들이 분위기를 잡았고.
쿵-쿵-쿵-쿵-쿵-쿵-쿵-쿵-쿵-!
신의 테마가 이어졌다.
[Waaaaaaaaaaaaaaaaaaggghhhh!]
팬들의 환호가 오디오에 선명히 잡혔고 고릴라 포지션에 있던 신과 헤이건, 랜스 오튼이 커튼을 걷고 나갔다.
그리고 미리 스탠바이를 박아두었던 더 스쿼드도 관객석으로 빠져나왔다.
[Yeeeeeeeeeeeeeeeeeeeaaahhh!!]
박수와 환호.
2,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트럼프 아레나에 엄청난 열기가 몰아쳤다.
스쿼드 멤버들은 온몸을 휘감는 강한 전율을 느끼며 계단을 내려갔다.
“야! 오늘 잘해라!”
“멋지다!”
“우오오! 딘!”
“세스! 여기 좀 봐!”
“로만! 와, 개멋있어!”
잔뜩 흥분한 관객들.
그들이 등을 두드리거나 팔뚝을 만져대면서 관심을 표했다. 몇 달 전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딘 앰브루스.
연습생 신분이었던 그는 이번 일을 통해 확실히 PWA라는 쇼를 느꼈다.
‘최고로군.’
그리고 링 위에 먼저 올라선 사내.
신을 올려다보았다.
벨트를 어깨에 걸친 그는 마이크를 든 채 링 세그먼트를 준비 중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모였다.
더 스쿼드.
폴 헤이건.
신.
그리고 랜스 오튼까지.
최고의 멤버들이었다.
“축배를 들고 싶을 정도군!”
[Waaaaaaaaaaaaaaaaaaggghhh!]
“랜스 오튼! 적일 때 이만큼 성가신 놈이 없지! 말인즉슨 같은 편일 때는 그만큼 든든하다는 이야기거든!”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그래, 오튼. 이쯤에서 슬슬 모두가 궁금해할 이야기를 해야겠지. 왜 굳이 우리 쪽으로 전항하려고 한 거야?”
신은 그렇게 물었다.
마이크를 쥔 오튼은 신의 어깨에 있는 WWF 월드 챔피언십을 가리켰다.
“난 숀 시나가 마음에 안 들거든.”
다소 황당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근거는 확실했다.
“정확히는 그 자식이 ACW 측과 원만하게 합의를 보려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 우리가 언제부터 그쪽과 원만한 관계를 맺었다고 그러는 거야?”
그럴 바에야 차라리 WWF 월드 챔피언십을 차지하고 있는 선수의 편에 붙겠다. 그것이 오튼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난 싸움을 좋아하거든.”
[Yeeeeeeeeeeeeeeeeeeaaahhh!!]
팬들이 환호를 보냈다.
싸움을 좋아한다.
그건 선역이나 악역에 국한되지 않고 마음에 안 드는 놈에게는 먼저 주먹을 날리는 오튼을 표현한 듯했다.
그 모습을 버스에 앉아 지켜보고 있던 러셀 오메가는 미소를 지었다.
“죽여주는군.”
오튼뿐만이 아니라 PWA까지도.
작지만 정말 강한 단체였다.
매력이 넘친다고 해야 할까.
각 단체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와중에도 자신의 개성을 잃지 않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훌륭하게 느껴졌다.
마치 과거의 ECW처럼.
만약 신이 사라지고 선수들이 떠나며 PWA라는 단체가 사라진다고 해도.
팬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테크니컬했던 그들의 모습이 남아있을 듯했다.
그렇게 계속 방송을 보던 중.
“ACW 선수님들!”
직원 하나가 버스 안으로 들어왔다.
러셀은 반가움을 느꼈다.
좁은 장소에 몸을 잔뜩 풀어둔 선수들로 가득 찬 상황이라 열기로 현기증마저 느끼던 순간이었다.
“나오시면 됩니다!”
그들의 의도대로.
WWF와 ACW 선수들은 제각각 경기장의 반대편에서 습격 준비를 했다.
주변은 미리 통제해두었기에 사람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고릴라 포지션의 할리는 신이 마이크워크를 통해서 자신에게 보내는 신호를 기다렸다.
그건 바로.
[누구든 덤벼보라고!!]
“16번으로 돌려!”
외부 카메라.
카메라맨이 허리를 잔뜩 낮춘 채 레슬링 부츠를 신은 선수들이 뚜벅뚜벅 주차장을 걸어오는 모습을 찍었다.
[Uooooooooooooooooooohhh?!]
예상대로 놀라는 팬들.
그들은 확실하게 알아차렸다.
ACW 선수들이 쳐들어왔다.
카메라가 점점 위로 올라가며 주차장을 걸어오고 있는 러셀 오메가와 다른 선수들의 모습을 비춰주었다.
[좋아! 가자고! 러셀!]
[다 박살 내버려!]
[나와! 이 새끼들아!!]
잔뜩 흥분한 ACW 선수들.
그것을 본 해설자들이 소리쳤다.
[ACW! ACW가 왔습니다!]
[경기장 서쪽입니다!!]
카메라가 다시 현장으로 돌아 링 위에서 어이가 없다는 듯 웃고 있는 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화면이 전환되며 동쪽 입구를 통해 트럼프 아레나로 들어오고 있는 WWF 선수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들의 선두에 있는 건 숀 시나.
WWF, ACW.
그리고 PWA.
세 단체의 주요 선수들이 모이면서 제대로 싸움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