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54.
숀 시나.
팬들 모두가 복귀를 바라는 아이콘.
비록 내게 패배한 이후 스스로 팬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은퇴해 그 위상이 많이 깎인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시나는 굳건했다.
일단 상품 판매량부터가 남달랐다.
업계 전체를 통틀어 내가 1위.
그리고 2위가 시나였다.
러셀조차도.
‘That’ 러셀도 시나의 상품성에 미치지는 못했다. 언제나 3위를 굳건하게 마크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애초에.’
러셀 자체가 상품성이 뛰어난 유형의 선수가 아니기는 했다.
시나는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었다.
신발, 리스트밴드, 티셔츠, 모자, 목걸이, 타올, 도시락 상자, 액션 피겨.
온갖 상품이 다 나왔다.
하지만 러셀은?
뭐, 도시락 상자나 티셔츠, 액션 피겨는 다들 발매하니 차이는 없었지만.
여기에서 리스트밴드, 모자, 목걸이, 타올 같은 제품은 오직 시나의 캐릭터 덕에 발매될 수 있는 제품이었다.
하지만 러셀은?
고작해야 티셔츠.
하지만 별로 입고 나오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아무리 러셀의 인기가 좋아도 상품이 잘 판매될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현역 챔피언이 ‘은퇴’한 제너럴 매니저에게 상품성에서 밀린다는 것은 엄연한 굴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사실 가장 큰 굴욕을 느끼는 것은 시나와 직접적으로 붙고 있는 WWF 선수들이었다.
특히 오튼.
전체 4위.
WWF 내에서 2위.
놈은 그래도 티셔츠 정도는 자기 팬티 위에 자주 입고 나오는 편이었지만 그나마도 요새는 다 벗고 다녀서.
마찬가지로 상품성이 엄청나게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는 유형이었다.
자, 그럼.
‘나는 어떤가.’
SIN.
현 시대의 아이콘으로서 나는 다행히 시나의 상품성을 뛰어넘은 상태.
물론 전체적인 판매량을 봤을 때 시나가 나보다 더 많이 팔기는 했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수익은 내가 높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나는 시나와 다른 종류의, 구매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성인 팬을 대상으로 한 상품을 많이 발매하는 편이었다.
선글라스.
가죽 재킷.
후드 티.
조끼.
로고는 최대한 작게 하거나 탈부착이 가능하게 해서 일반적인 패션으로서도 충분히 가치가 있도록 했다.
여기서 가죽 재킷도 디자인을 분기마다 다르게 하고 가격대를 여러 가지로 분류해 상품성을 최대한 높였다.
그리하여 현재 미국의 바이커들 중에서는 내 가죽 재킷을 전문으로 모으는 사람들도 여럿 생겨났을 정도.
바이커들뿐만 아니라 스트릿 패션으로서도 꽤 인기가 좋은 편이었다.
그 모든 게 GCW 시절부터 함께해온 의상팀장이 힘써준 덕분이었다.
‘그 양반도 만족하는 눈치고.’
보통 티셔츠 도안을 그리는 것만 하기 마련인 이 업계에서 굉장히 다양한 형태로 디자인을 하고 있으니까.
어쨌거나.
그래도 언제 다시 시나에게 추월 당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시나는 정말 압도적이었다.
지금도 계속 상품이 발매되었고 그것을 그 복귀를 염원하는 수많은 팬들이 구매하고 있었다.
시네이션.
시나를 믿고 따르는 팬들.
하지만 그 앞에서도 시나가 계속 은퇴를 고집해왔던 이유는, 그 문제를 대충 넘길 수 없다는 고집 때문이었다.
‘나는 신에게 승리를 양보했어.’
지면 은퇴를 약속한 싸움에서 졌다.
그렇다면 은퇴하는 게 맞지 않나.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그 기간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손해였다. 어쨌든 시나는 업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선수였다.
그래서 복귀를 권했다.
“한 번 더 붙자.”
“…….”
“이번에는 네가 이기는 거야. 정확히는 너희 ‘팀’이 이긴다는 말이지.”
아무리 그래도 월드 챔피언인 내가 시나에게 벨트를 넘겨주지 않는 이상 패배하는 그림은 좀 이상하니까.
바로 그게, 우리가 결국 레슬링 월드 시리즈에서의 경기를 룰이 있는 태그 매치로 만들려는 이유였다.
신&랜스 오튼.
VS
러셀 오메가&숀 시나.
그렇게 될 예정이었다.
시나는 복잡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손쉬운 승낙이었다.
나는 그 이유를 알았다.
시나도 알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자신이 계속해서 은퇴하고 있어봤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그러니까 굳이 여기에서 고집을 부릴 필요는 없겠다고 느낀 거겠지.’
러셀 오메가라는 양반이었으면 끝까지 은퇴를 고집했을 텐데. 이런 면에서 시나는 대화가 통하는 상대였다.
“좋아! 그러면…….”
“신.”
시나가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캐릭터를 바꿔볼까 싶어.”
“……?”
순간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숀 시나가 누구인가.
무려 첫 월드 챔피언을 따낸 이후로 지금까지 줄곧 올바르고 건실하며 선량한 청년을 소화해온 선수였다.
일명 ‘무적 선역 기믹’이라고 하지.
그건 내가 기억하는 전생의 마지막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던 콘셉트였다.
악당들의 온갖 유혹이나 이러저러한 더러운 수단에도 절대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운 선수였던 숀 시나가.
‘캐릭터를 변경한다고?’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는 걸까.
“아니, 그냥. 네 시대를 보고 나니까 내가 너무 낡지 않았나 싶어서.”
“글쎄.”
나는 그런 의견이라면 굳이 캐릭터를 변경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시나, 네게는 네 길이 있잖아?”
“그런, 가?”
“야, 지금 시대에 너 같은 방식으로 팬들의 인기를…… 아니, 지금도 너는 언터처블한 존재라고.”
자신감이 좀 떨어진 걸까.
하지만 실제로 그랬다.
시나의 이후로도, 수많은 슈퍼스타들이 나와서 업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런 상황에서도 시나는 공고했다.
놈은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온 이후에도 압도적인, 동시에 누구도 함부로 따라할 수 없는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므로 나는 시나가 앞으로도 딱히 남 눈치를 봐서 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시나는 시나니까.
놈이 쌓아올린 업적과 그 캐릭터는 업계에서 나 이외에는 쉽사리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시나는 단호했다.
“그래도 바꾸고 싶어.”
“좋아, 들어나 보자. 어떤 식으로?”
“반칙을 쓰겠어.”
“…….”
거 참, 큰 결심이구나.
하지만 그 디테일 하나가, 이전까지의 시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시나의 복귀를 위해서 연합군 측이 한 번 위기를 맞이해야만 했다.
그리고 일행은 이 부분을 더 극적으로 보이게 만들기 위해 페이퍼뷰까지 최대한 숨기기로 합의를 보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게 다들 기대하는 바니까.
팬들도 그렇고 각계의 전문가들 모두가 이 각본을 통해 숀 시나가 링으로 돌아오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부분을 굳이 밝히지 않고 에둘러 말함으로써 호기심을 더 유발하게 만드는 일종의 연출.
그걸 위해.
일단은 위기가 조성되었다.
2012년 11월 26일.
월요일.
레슬링 월드 시리즈까지 남은 시간은 딱 7일. 그 시점에서 혁명군과 연합군은 치열하게 대립을 해나갔다.
일단 버닝콩에 C.M. 펑크가 중심이 된 혁명군 무리가 등장해 링을 장악하고 시나에 대한 성토를 이어갔다.
“숀 시나가 회사에서 그 거지같은 제너럴 매니저 역할을 맡은 뒤로, 이 회사는 말랑해졌다고 느끼는데.”
[Uooooooooooooohhh!]
“언제부터 우리가 ACW 나부랭이들과 협력하면서 지냈냐는 거야. 그 자식들은 적이라고! 그놈들하고 사이좋게 지낼 바에야 난 이쪽을 택하겠어!”
[Waaaaaaaaaaaaaaaggghhh!!]
[Boooooooooooooooooooo-!]
어느 한쪽이 절대 옳다고 볼 수 없는 싸움.
그런 만큼 펑크는 WWF 측에서 전향한 이들의 리더로서 계속 분노가 섞인 성토를 이어나갔다.
이어서 숀 시나가 등장했다.
연합군 선수들과 나타난 그는 펑크를 타이르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잘 들어. 펑크. 이건 전쟁이 아니야. 경쟁이지. 신은 그 규칙을 부숴버렸다고.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돼.”
“대체 왜?”
펑크가 받아쳤다.
“잘 들어. 시나. 이건 전쟁이야. 먼데이 나이트 워였다고. 먼데이 나이트 컴피티션이 아니라. 빌어먹을, 역시 너 같은 놈 밑에서는 일할 수 없겠어.”
또한.
팬들은 이걸 원하고 있다.
“실제로 이 전쟁이 발발된 후로 높으신 분들이 원하는 그 시청률이 빡세게 뛰고 있잖아! 신이 개새끼라고 해도 확실한 비전이 있단 말이야!!”
“모든 일에는 정도라는 게 있어. 자극만으로 올라가는 시청률에는 한계가 있고, 너와 신이 자극에만 취해서 그런 짓을 반복한다면 우리는 천만 달러짜리 스폰서를 잃게 되는 거야. 펑크.”
“그런 놈들을 두려워 해서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겠어? 시나?”
“도저히 말이 안 통하는군.”
한숨을 내쉬는 시나.
바로 그때였다.
교주, 브로큰 와이엇과 와이엇 패밀리의 테마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특유의 랜턴을 들고 나타난 그가 시나 쪽에 섰고 이내 마이크를 손에 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펑크, 펑크. 가련하고 불쌍한 선동가.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자신이 피해자라고 말하는 것뿐이지.”
“너라면 날 이해할 줄 알았는데. 와이엇. 언제부터 시나의 개가 됐지?”
“그건 아니야.”
와이엇이 씨익 웃었다.
“우리는 더 스쿼드에 흥미가 있어.”
[Uoooooooooooooohhh……!]
“놈들이 가진 그 숨길 수 없는 야망! 그게 무너졌을 때 과연 어떤 얼굴들을 할까? 흥미롭지 않나?”
와이엇의 옆에 그 부하들이 섰다.
“하지만 일단은 너부터지.”
와이엇이 펑크를 향해 이동했다.
달아오르는 분위기.
바로 그때였다.
[Sierra! Quebec! Uniform! Alfa! Delta! The Squad……!]
[Yeeeeeeeeeeeeeeeeeeaaaahhh!]
환호하는 팬들.
펑크가 웃으며 뒤로 물러섰고 관객석 쪽에서 스쿼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데뷔 후 석 달도 지나지 않은 선수들에게 쏟아지는 환호라기에는 이례적으로 엄청나게 강렬했다.
관계자들 모두가 전율을 느꼈다.
스쿼드 멤버들도 표정을 최대한 감춘 채 링으로 내려왔고, 곧바로 와이엇 패밀리와 마주 했다.
Face To Face.
3대3.
이후 링 서바이벌에서 맞붙게 될 두 팀이 그렇게 얼굴을 마주한 순간.
다시 전쟁이 시작되었다.
* * *
한편 ACW 나이트로.
신과 랜스 오튼을 중심으로 한 혁명군 멤버들이 한창 링에서 마이크워크를 이어가던 러셀을 방해했다.
서로 몇 마디씩 주고받은 뒤 그들은 주말의 페이퍼뷰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 위한 경기를 부킹했다.
신&랜스 오튼 VS 러셀 오메가&코디 로스의 경기가 메인이벤트였다.
그야말로 이 업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선수들이 대다수 포함된 대진.
하지만 그렇기에 그 급에 조금이라도 안 맞는 선수가 있으면 확 밸런스가 무너지고 마는 것이었다.
여기서는 코디 로스가 그러했다.
그 역시도 훌륭한 선수였지만 아직은 자신의 라이벌을 찾으면서 성장하고 있는 단계였다.
반대로 신&러셀은 시나와 함께 업계의 트로이카라 불리는 선수들이고.
랜스 오튼 역시도 이들과 맞서서 몇 번이고 훌륭한 경기를 보여준 베테랑.
그렇기에 경기는 손쉽게 신과 오튼이 승기를 잡아나가는 방향으로 진행이 되었다.
그를 통해 팬들이 시나의 복귀를 더 원하도록 만들기 위한 흐름이었다.
경기 종반부.
쩌억-!
코디 로스가 태그하며 러셀 오메가가 링으로 나오자, ACW 팬들은 어마어마한 환호를 보냈다.
링으로 나온 러셀은 다짜고짜 신과 태그를 하고 나온 오튼을 밀어붙이면서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듯 보였다.
일명 링을 ‘청소’한다고 불렀다.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고, 선역이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카타르시스를 전달하는 뜨거운 순간.
“으아아아아아!!”
[Yeeeeeeeeeeeeeeaaahhh!!]
러셀을 본 팬들이 환호했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일어선 랜스 오튼의 뒤를 잡고 그대로 목말을 태웠다.
원 윙드 앤젤.
일렉트릭 체어 포지션에서 상대방을 앞으로 추락시키는, 러셀 오메가가 사용하는 최강의 피니시 무브.
그게 막 시전되려는 순간이었다.
쫘악-!!
링 바깥에서 달려든 신이 러셀의 안면에 대고 그대로 슈퍼 킥을 날렸다.
[Uoooooooooooooooohhh?!]
경악하는 팬들.
러셀이 무릎을 꿇으면서 그 위에 앉아있던 오튼이 밑으로 떨어지며 어떻게든 중심을 잡고 바로 섰다.
그리고 그사이.
뒤로 정확히 세 발자국 물러난 신이 다시 달려들어 스팅거를 날렸다.
쩌억-!!
아예 넘어가려는 러셀.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랜스 오튼이 휘청거리는 러셀의 머리를 붙잡고 그대로 R.K.O.를 날렸다.
투콰앙-!!
경악을 금치 못하는 팬들.
지금 이 순간. 두 선수의 시그니처와 피니시 무브가 연속으로 들어갔고 그대로 핀 폴로 이어졌다.
[1……!]
[2……!]
[3……!]
땡땡땡-!!
[Uoooooooooooohhh?!]
[Booooooooooooo……!]
경악하며, 동시에 야유하는 팬들.
신과 랜스 오튼.
그 조합은 강력했다.
그러므로.
지금 팬들이 지금 그 무엇보다 강렬하게 바라고 있는 것은 두 사람과 싸워 밀리지 않을 파트너의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