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573화 (573/634)

Dark Match 59.

그렇게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11월 말의 레슬링 월드 시리즈에서 연합군이 승리를 거두면서 일단 헤이건과 나의 반란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이 아예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레슬링 월드 시리즈를 통해서 감정이 심화되며 선수들 개개인 간에 새롭게 대립이 시작되었다.

‘좋은 각본이었어.’

나는 그렇게 평가했다.

시나도 잘 복귀해서 팬들의 앞에 다시 나서며 자신이 돌아왔음을 알렸다.

보다 다른 자신으로 말이다.

[솔직히 그 로-블로 한 방이 작았다고는 안 하겠어. 하지만! 남자들이라면 알 거야! 그 한 방은 그날의 동료였던 러셀 오메가의 복수였다고!]

[Waaaaaaaaaaaaaaaaaaggghhh!]

우렁찬 함성소리.

[솔직히 좀 속이 시원했다고. 신에게는 커리어 초창기에 그런 식으로 자주 괴롭힘을…… 안 당했나?]

‘안 했지.’

나는 악역일 때도 말로 어그로를 끌었지 다짜고짜 로-블로를 갈기는 스타일은 절대로 아니었다.

어쨌거나.

같이 연합군이었던 선수 사이에서도 분열이 발생했고 그런 식으로 각자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물론 나도 그 사이에서 뭔가 제대로 된 대립을 시작해나갈 참이었다.

그 상대는 사모아 고.

하지만 여기에서 벨트를 넘겨줄 시기인 레슬 임페리움까지 다시 3개월이 넘게 대립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기에 한 명을 더 추가해서 대립을 보다 복잡한 방식으로 진행해나갈 예정이었다.

문제는 그 선발이었다.

“펑크는 어때.”

“……아마 펑크는 이번 레슬 임페리움에서 시나와 붙게 될 것 같은데.”

“그래?”

“쉬는 동안 쇼는 본 거냐?”

“물론 봤지.”

고가 씨익 웃었다.

어쩐지 거짓말 같은데.

고처럼 영리한 자식이 시나와 펑크가 붙을 거라는 당연한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 리도 없고 말이다.

그러자니 고가 설명했다.

“펑크는 어딜 넣어도 제 역할을 해주는 놈이니까. 이번에도 그래주었으면 했을 뿐이야. 미안하다.”

“사과할 필요까지는 없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C.M. 펑크는 이 업계에서 가장 빛나는 카리스마를 가진 선수 중 하나.

함께 일을 하고 싶은 선수를 떠올릴 때 문득 떠오를 만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말했듯.

“그 자식에게는 시나가 있으니까.”

“그렇지. 두 사람이 어떤 퓨드를 맺게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밀어줄 가치가 있는 대진이야.”

맞는 말이었다.

전생에도 펑크는 주인공이었던 시나의 라이벌 중 하나로서 활약하며 자신의 시대를 만들어낼 뻔했다.

물론 그 후로 또라이 같은 에고라던가. 정치적인 입지가 없다시피 한 성격으로 인해 완전히 망가져 버리지만.

그래도 이제는 옆에 그런 성격을 죽여줄 만한 동료들도 많고 그 스스로도 잘 융화되어 지내는 편 같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자신이 사랑하는 업계에서 계속 활동하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튼. 현재 스토리를 보고 한번 누가 가장 좋을지 생각을 해보자고.”

“……흠.”

고가 팔짱을 꼈다.

나는 쓰게 웃었다.

‘빨리 좀 말해라.’

나와 같은 결론을 낼 거면서.

각본을 생각하자면 이놈 말고는 우리 대립에 끼어들 자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걸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우리가 같은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일단 확인해보고 싶었으니 말이다.

깊이 고민하던 고.

“이 친구가 어떨까 싶은데.”

“누구?”

기대해 바라보자니.

원하던 대답이 돌아왔다.

* * *

일단 레슬 임페리움은 4월.

그것도 초.

그때까지의 일정은 이러했다.

12월 말의 파이널 아마겟돈.

1월 말의 킹스 럼블.

2월 말의 페이 제로.

그리고.

4월 초의 레슬 임페리움.

한 해의 시작.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성대한 쇼.

ACW도 여기에는 미치지 못하고 시기를 바꿔 4월 말에 스타게이트를 개최했다. 그만큼 엄청난 이벤트였다.

다시 말하자면.

레슬 임페리움은 프로레슬링 역사에서, 아니, 그 어떤 스포츠 이벤트를 통틀어도 순위권에 들어갈 만한 쇼였다.

그 누가 20만의 관객을 수용할 만한 이벤트를 개최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그럴 필요가 없기는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굳이 그러지 않더라도 현대 프로레슬링의 위상은 굳건했다. 우리는 시대를 만들어나갔다.

우리 뒤를 꿈꾸고 있는 개자식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멋진 시대를.

그렇기에.

나는 한 번, 한 번.

모든 대립을 필사적으로 진행했다.

하지만 개중에서도 가장 인상에 남았던 놈은 물론 사모아 고였다.

나의 WWF 월드 챔피언 집권기동안 수도 없이 맞붙었던 개자식이었다.

그러므로 그 타이틀을 끝끝내 놈이 따내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가장 먼저 팬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었다.

왜냐면.

‘여러 번 덤벼왔으니까.’

고는.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가떨어졌다.

지금 놈은 말하자면 위상이 어느 정도 깎여나가 있는 상황에 가까웠다.

헬 인 어 셀에서의 경기가 결정적이었다. 그때 셀 안에서 녀석은 정말 변명의 여지가 없이 내게 패배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시간이.

레슬링 월드 시리즈 동안 사모아 고가 각본 상 부상으로 빠져 있다는 점이 그것을 상당 부분 희석해주었다.

동시에.

‘칼을 갈았다.’는 말에 걸맞도록 사모아 고 스스로가 벌크를 다지며 확실하게 준비를 해온 상황이었다.

지금 놈은 등에서 체스를 둬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덩치가 거대했다.

키는 솔직히 평범한 정도였지만 그 점이 바로 고를 특별하게 만들어줬다.

레슬링 역사상 찾아보기 힘든, 거대한 근육과 덩치, 심지어는 살까지 가진 사모아의 흉폭한 전사.

바로 그게 우리가 원하는 이미지.

그걸 보여줄 만한 복귀가 이뤄졌다.

12월 2주차.

월요일 밤의 버닝콩.

더 스쿼드는 헤이건의 혁명이 끝난 이후로도 자신들이 누군지 보여주겠다며 타이틀 도전을 시작했다.

로만 레긴스와 세스 롤링스가 나서서 현 태그 팀 챔피언인 코피 퀸스턴과 론-트루스를 상대했다.

그게 이 날의 메인이벤트였다.

딘 앰브루스가 매니저로 나와 두 사람을 독려하며 타이틀을 따고자 했다.

하지만 트루스와 코피의 태그는 막강했고 결국 링 안으로 딘이 난입해서 경기를 망치며 난장판이 되어갔다.

[Boooooooooooooooooo-!]

야유가 쏟아지던 바로 그 순간.

로만 레긴스가 잔뜩 열이 받아 세스와 딘의 도움을 받아 트리플 파워 밤을 쓰려던 바로 그때였다.

[워-어-! 워-어-! 워-어-!]

[Waaaaaaaaaaaaaaaaaagggghhh!]

사모아 고가 돌아왔다.

팬들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고 링 안의 스쿼드 멤버들이 놀라 코피를 내려놓으며 고를 맞이하려고 했다.

하지만 고는 뒤에서 등장했다.

[Uoooooooooooooooooohhhh!!]

무자비하게 세 사람을 몰아붙이는 고. 그 얼굴에는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흔적이 새겨진 상태였다.

폴리네시안 타투.

전사와 영혼, 인생과 풍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폴리네시안 사람들의 상징과도 같은 아름다운 문신.

하지만 고의 얼굴에 새겨진 페이스 페인팅은 그 의미가 새삼 잔혹했다.

거대한 화살표가 뺨과 눈썹 위를 휘감은 문신.

상어의 비늘과 같은 몸통은 자기 자신이 이 순간을 위해 감내해낸 고통을 뜻했고.

화살표는 그게 이제 적들을 향한다는 표식이었다.

고는 돌아왔다.

자신의 목표였던 WWF 월드 챔피언십 벨트를 차지하기 위해서.

투콰앙!!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챈트가 쏟아졌다.

스쿼드 멤버들은 코피와 트루스와의 경기 때문에 맥을 추지 못했다.

처음에 기습을 당한 딘 앰브루스는 고 해머를 맞고 나가떨어졌고.

세스 롤링스와 로만 레긴스가 달려들었지만 고는 무시하고 세스만 죽어라 패 링 바깥으로 내쫓았다.

그리고 싸움은 두 사모안.

한 명은 순수 혈통.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거대한 이름을 새긴 가문 중 하나. 아너아이 패밀리의 로만 레긴스였고.

나머지 하나는 그런 것 없이 프로레슬링에 대한 프라이드 하나만으로 이곳까지 올라온 사모아 고였다.

투콰앙-!!

나가떨어지는 로만 레긴스.

[우어어어어!!]

[Waaaaaaaaaaaaaaaaaaggghhh!!]

홀린듯 고를 따르는 팬들.

마지막으로 머슬 버스터까지.

120kg에 가까운 로만 레긴스를 거꾸로 번쩍 짊어진 고가 그대로 지면에 떨어지며 충격을 선사했다.

투콰앙-!!

그것이 바로 사모아 고를 설명했다.

그는 굳이 무게가 가벼운 세스 롤링스나 딘 앰브루스 대신 로만 레긴스를 들겠다고 스스로 선택했다.

혹시나 삐끗해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그만한 개망신이 없고 각본 자체가 실패로 돌아가고 마는데.

바로 거기에서.

‘저놈은 분명 자격이 있어.’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실패를 생각하지 않는 과감함.

저게 바로 무리의 우두머리로서 사모아 고라는 남자가 가진 재능이었다.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그래.

Tribal Cheif.

이번 레슬 임페리움 이후.

분명히 사모아 고의 이름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지게 될 터였다.

* * *

12월 3주차의 버닝콩.

링에 오른 사모아 고는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페이스 페인팅에 대해서 설명했다.

팬들의 반응은 엄청났다.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나는 그 빌어먹을 타이틀을 쟁취할 때까지 절대! 절대 이 링을 떠나지 않을 거다! 신! 이 얼굴의 화살표가 다음으로 가리키는 건 바로 너니까!!]

스쿼드 멤버들에 대한 훌륭한 복수를 이뤄낸 고는 복귀 버프라는 기세를 타고 멋진 반응을 뽑아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이 상태에서 다시금 타이틀 샷을 진행한다면 고는 분명히 역반응을 얻을 터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입장을 대변하는 상대를 내세워서 팬들이 납득할 만한 스토리를 뽑아내야만 했다.

일단 내가 링으로 나아갔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Waaaaaaaaaaaaaaaggghhh!]

쏟아지는 환호.

WWF 월드 챔피언십 벨트를 가지고 링으로 나아간 나는 마이크를 들고 사모아 고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너와는 헬 인 어 셀에서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사모아 고. 스쿼드가 뒤통수를 노릴 거나 조심하시지?”

[Uoooooooooooooooooohhhh!]

“그래, 내가 타이틀 샷을 얻을 기회가 없다고 이야기할 수는 있어. 하지만 우습게도. 난 확신한다. 네 어깨 위의 그걸 그 누구보다도 원하는 사람은 바로 나라는 사실을 말이야.”

“가장 타이틀을 원하는 사람이 가져야만 한다면 뭐, 그냥 토론회를 열어서 타이틀을 넘겨주면 되겠군.”

팬들이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좋은 반응이었다.

사모아 고를 그렇게 위기에 빠뜨림으로서 우리는 그에게 과도한 비중이 쏠린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참 신기한 현상이기는 했다.

그냥 타이틀 샷을 줘버리는 거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타이틀 샷을 주는 건 사실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게 없어선 안 된다.

이야기에 살을 붙여서, 과정을 보여주는 게 업계에서는 가장 중요했다.

“미안하지만 사모아 고. 모두가 줄을 서고 있어. 모두가 나를 쓰러뜨리고 이 업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자식임을 증명하려고 하고 있단 말이야.”

[Waaaaaaaaaaaaaaggghhh!]

“그러니 네 차례는 아니야. 나는 작년에 네 엉덩이를 걷어차 줬지.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꽤 여러 번. 네 경기복 엉덩이 부분을 잘 살펴보라고.”

분명히 내 레슬링 부츠 자국이 진하게 남아 있을 테니 말이다.

“너만 아니면 돼! 그게 지금 여기에 온 관객들 모두가 하는 생각이야! 어차피 또 내게 패배하게 될 텐데!”

나는 그런 식으로.

어째서 사모아 고가 타이틀 샷을 받으면 안 되는지를 팬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되려 사모아 고의 앞에 얼마나 터프한 길이 펼쳐져 있는지를 설명하는 꼴과 같았다.

그걸 극복하고 팬들의 인정을 받으면 타이틀 샷을 다시 얻을 수 있다.

거기에.

“난……!”

사모아 고가 뭔가 대답하려던 순간.

경기장이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Uooooooooooooohhhh!]

동시에 울려 퍼지는 스코틀랜드 백 파이프와 드럼 사운드.

드류 맥킨마이어.

키가 2미터에 달하는 거한.

잘생긴 얼굴과 긴 머리칼, 논 슬리브 코트를 흩날리며 그가 나타났다.

그래.

사모아 고와 내가 레슬 임페리움에서 맞대결을 할 때까지 손을 빌린 선수가 바로 드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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