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574화 (574/634)

Dark Match 60.

자신의 멋들어진 테마곡 속에 링 위로 올라온 드류는 내 면전에 대고 직접 디스를 시전했다.

“레슬 임페리움에서 널 박살 내줄 상대가 필요한 것 같군. 신. 그래서 내가 나왔다는 나쁜 소식을 전하지.”

그리고 고 역시도 디스했다.

“고. 운명을 받아들이란 말은 하지 않겠어! 나 역시 바트 맥센이 ‘선택받은 자’로 만들었지만, 그 운명을 벗어나 여기까지 이른 남자니까!!”

어우, 아주 살벌하셨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남들의 존중을 받아야 한단 말이야! 지금 네가 하는 짓은 뭐지?! 그저 여기에서 타이틀 샷을 달라며 징징거리는 것뿐이잖아!”

고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신 그는 드류를 노려보며 그 앞으로 바싹 다가섰다.

두 사람 사이에 스파크가 튀었다.

사모아 고와 드류 맥킨마이어.

두 사람의 관계는 정말로 묘했다.

드류가 WWF에서의 실패를 딛고 우리 PWA로 왔을 때, 사모아 고는 이미 TMA의 경력을 바탕으로 압도적인 넘버 투로서의 자질을 쌓고 있었다.

그리고 고가 WWF로 이적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이렇게 되었다.

드류는 뼈를 깎는 노력으로, 이 업계에 대한 헌신 하나만으로 결국 이곳까지 올라오는 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나와 사모아 고 사이에 섰다.

“지금까지는 너희 두 사람의 시간이었지만 이제는 아니야, 친구들. 이 드류 맥킨마이어가 보여주고 말겠어.”

[Uooooooooooooooooooohhh!!]

팬들은 박수를 보냈다.

어찌 보면 신기한 일이었다.

드류 맥킨마이어.

그는 몇 년 전, ‘Chosen One’이라는 구린 기믹으로 데뷔해 죽을 쑤고는 산하 단체로 떨어지고 말았다.

아무도 그에게 정답을 가르쳐줄 수 없었다. 바트 맥센이라는 존재가 옆에서 직접 코칭을 했기 때문이었다.

바트 맥센은 그에게서 잠재력을 보았고, 물론 그건 옳았지만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않고 성급히 푸시했다.

그러므로 팬들의 역반응을 살 수밖에 없었다. 왜냐고? 그들에게 있어 드류는 그냥 모르는 남자일 뿐이니까.

모르는 남자.

바로 그게 중요했다.

드류 맥킨마이어는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누가 보더라도 재능이 아깝지 않은 인성과 성실함도 겸비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사정을 모두 다 아는 백스테이지의 사람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리 쪽으로 왔을 때 드류는 자신감을 잃은 뒤였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드류를 만들어나갔다.

놈이 PWA의 링에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철저히 가르쳤다.

그렉 하트가 기술을.

베이다가 터프함을.

바쿠가 타이밍을.

각자 특기 분야가 있는 양반들이 옆에서 코칭하니까 드류는 시간이 지날수록 쑥쑥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놈의 몸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우리’처럼 상처가 가득했다.

자잘한 상흔들은 물론이고 하드코어 매치를 하면서 이마가 잔뜩 찢어졌다.

하지만 그로 인해 팬들의 인정을 받고 우리와 함께 설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아니, 정확히는 말하려고 했다.

“내가…….”

그 순간 드류가 키스를 날렸다.

글래스고 키스.

뻐억-!

순간 강한 통증이 일었다.

뒤로 넘어간 나는 그대로 벨트를 놓은 채 엎어졌고 뒤이어 고에게 달려든 드류가 주먹질을 이어나갔다.

[Uooooooooooooooooooooohhh!]

폭발하는 반응.

팬들이 확실히 이 각본에 흥미를 느낀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나는 이마를 양손으로 감싸쥐고 얼굴을 가린 채, 이내 빙긋 웃었다.

* * *

쇼가 끝나고.

“신!”

백스테이지로 돌아가 씻고 나오자니 기다리고 있던 드류 맥킨마이어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그래.”

“제게 주어진 가장 큰 기회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

“예?”

드류의 물음에 나는 대답하는 대신 옆으로 빠져서 옷을 입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 건 알겠는데.

이쪽은 샤워를 막 마치고 타월 하나만 허리에 걸친 채라 조금 스산했다.

그리고 적당히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존경하는 선수가 말했지.”

“마이클스입니까?”

“아니, 나.”

“…….”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나는 쓰게 웃었다.

“이 업계에서 이 정도 자신감은 있어야 스타가 될 수 있는 법이거든.”

“그렇, 군요.”

“아무튼.”

옷을 대충 챙겨 입은 뒤, 드류와 나는 곧바로 락커룸을 나와 주차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너에게 주어진 기회도 네가 헌신했기 때문이야. 드류. 게다가 그 정도로 큰 기회도 아니라고.”

“하지만…….”

“아, 물론 나와 싸울 수 있는 건 영광이겠지. 그것도 대등한 입장에서.”

그 말이 맞았다.

드류는 예전과 달리 나에게 도전하는 입장이 아니라 음, 뭐라고 할까.

“‘도전’하는 거?”

“같지 않습니까?”

“그럼 이전 거를 한 수 배운다는 느낌으로 싸우려 했단 말로 바꾸자고.”

나는 씨익 웃었다.

그렇게 적당히 농담과 뼈가 섞인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나는 드류와 함께 차를 타고 호텔로 이동했다.

드류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고의 그 기믹, 정말 멋지더군요.”

“…….”

“그런데 그거 정말 사모아 문신입니까? 진짜 멋지던데.”

“그럼 사모아 문신이지. 고가 사모아인인데 마오리 문신을 새겼겠냐.”

“그것도 그러네요.”

머쓱한 듯 웃는 드류.

거기에 내가 한마디 얹었다.

“넌 어떤 거 같아?”

“예?”

“이제 좀 프로레슬링이 굉장히 PC한 느낌이 됐지. 동양인이 챔피언이고 사모아인이 거기에 맞서서 싸우고.”

그 가운데에서.

드류 맥킨마이어는 무엇인가.

거기에 녀석이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저도 해도 됩니까?”

“욕심을 내. 꼬마야.”

답은 간단했다.

* * *

그 옛날.

브레이브 허트(Brave Hurt)라는 이름의 좀 좋은 영화가 있었다.

스코틀랜드 왕자인 주인공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전쟁 영화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었던 명작이었다.

드류는 자신의 새로운 경기 입장복을 거기에서 따왔다.

마침 그도 스코티시였으니까.

이전까지 프로레슬링 업계에서는 그것을 드러내는 선수가 적은 편이었다.

백인이나 흑인은 무조건 미국인으로 포장되고, 아랍인은 무조건 사우디아라비아인으로 포장되고는 했다.

그로 인해 드류도 굳이 자신의 출신을 입으로 언급하지는 않는 편이었다.

입장곡에 스코티시 백파이프 뮤직을 넣어서 소심하게 드러낸 정도였지.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좀 변화했다.

나는 그걸 자랑스럽게 여겼고 드류에게 좀 더 자신의 출신을 드러내는 쪽이 나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그리하여.

빠-밤-! 빠-바밤-!

웅장한 스코티시 백파이프 사운드.

그와 함께 검은 가죽 킬트를 허리에 두른 드류가 링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손에는.

거대한 검.

클레이모어가 들린 채였다.

드류가 그 검을 머리 위로 번쩍 들고는 그대로 지면에 내리 꽂자 불꽃이 입장로 전체를 휘감았다.

[Uoooooooooooooooooohhhh!!]

경악하는 관객들.

확실히 멋진 모습이었다.

링 위의 사모아 고가 평범한 방식으로 입장을 한 것과 무척 대비되었다.

그렇게 링으로 올라간 드류는 킬트를 벗고 사모아 고와 경기를 준비했다.

2012년 12월 16일.

WWF의 페이퍼뷰 파이널 아마겟돈.

세미 메인이벤트.

사모아 고 VS 드류 맥킨마이어.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시작되는군!”

그걸 해설진으로 참가해 지켜보면서 두 사람의 싸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경기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킹스 럼블에서 내게 도전할 예정이었다.

“반갑습니다! 신! 해설로 참가하신 건 지금이 처음 아닌가요?”

“저 두 놈이 지들끼리 승부를 한다고 하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팬들에게 얼굴을 보일 의무가 있잖아?”

“그렇군요!”

“다들 내가 없으면 표를 산 의미가 없으니까 이렇게 나와준 거지.”

“누구의 승리를 예상하시나요?”

“알게 뭐야.”

“예?”

“알게 뭐냐고! 등신 같은 놈들. 오늘 누가 이기던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난 이 월드 챔피언 벨트를 내 장례식에서도 차고 있을 텐데 말이야.”

“하하, 멋진 자신감이군요.”

“물론.”

링 위에서 두 사람이 보다 본격적으로 맞붙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팬들이 집중하리라 싶었던 나는 가볍게 농담조로 두 사람을 조롱하던 태도를 바꾸고 이야기했다.

“저 두 놈은 강력해.”

“그렇군요.”

“하지만 내 상대는 절대로 될 수 없다 이거야. 나는 저 두 놈과 싸워서 절대로 지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까.”

“이유가 있습니까?”

“없어. 하지만 나는 죽어도 쓰리 카운트를 내어주지는 않을 생각이야.”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모아 고가 코너로 드류를 몰아붙이고는 그대로 힘껏 해머를 날렸다.

연속된 엘보.

좌우 연타.

쩌억! 퍼억! 콰앙!

온갖 소리가 다 났다.

[Uooooooooooooooooooohhh!]

“고가 미쳐 날뜁니다!”

“저게 진짜 아프거든.”

“그렇습니까?”

“그래, 한 대 맞으면 별이 보여.”

“확실히 엄청난 소리군요.”

실제로 최근 타격기는 아팠다.

해머링 같은 기술 외에도 시대가 변하면서 선수들은 제각각 상대를 몰아붙일 수 있는 타격기를 익혔다.

내 헤드벗이나 해머링 앤 찹 러시.

동형기인 드류의 글래스고 키스.

고의 고 해머.

러셀의 히든 블레이드.

기타 등등.

해머링 난타를 할 거면 확실하게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만 하는데 모두 그럴 수는 없으니까.

선수들은 저렇게 새로운 기술을 선보였고 그게 시대의 흐름이었다.

고는 다행히 베이다라는 업계의 레전드를 만나 기술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베이다 못지않게 멋진 엘보를 날리면서 드류를 밀어붙였다.

바로 그때였다.

“글래스고 키스!”

쩌억!

터져 나오는 반격.

허리를 젖혔다 상대의 안면에 냅다 헤드벗을 꽂아 넣는 기술. 드류는 거대한 덩치에 맞게 그걸 잘 썼다.

고가 휘청거리며 물러섰고 뒤를 이어 드류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Drew!]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팬들이 마구 챈트를 보냈다.

감정과 감정이 충돌했다.

그것은 연기였지만 팬들은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최고가 되기를 바라는 그 열정을 모두가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이게 바로 프로레슬링.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드류의 등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지난주 고와 마지막으로 맞붙으면서 등에 큰 충격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멍이 제대로 들어서 녀석은 실제로 고통 속에서 싸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걸 알고도 프로레슬러를 무적이라고 생각하며 즐겼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통을 참아내면서 링에 올라 주먹을 마구 휘둘러댔다.

어찌 보면 모순적인 이야기였다.

현대의 프로레슬링은 현실과 가깝게 융화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하지만 팬들은 선수를 무적이라 생각한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링 위에서 경기의 불꽃을 마구 지펴나가는 두 사람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프로레슬링은 두 남자가 서로에게 고통을 주는 BDSM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실제로 그쪽 성향을 지닌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한 가지 요소로 인해 프로레슬링은 단순한 고통의 나열이 되지 않았다.

고 해머.

글래스고 키스.

실제로 정말 아픈 기술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몸을 단련하고 서로를 최대한 생각하며 기술을 걸었기에 그것을 버텨내고 일어설 수 있었다.

우리가 왜 그렇게 하느냐.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프로레슬링에 얼마나 깊이 빠져 있는가.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우리들은 최대한 강하게 기술을 연출했다.

‘물론 정도가 심하면 좀 그렇지만.’

그래도 팬들의 반응을 보자면 영 나쁘지만은 않은 듯해서 다행이었다.

[Waaaaaaaaaaaaaaaaggghhhh!!]

사모아 고의 머슬 버스터가 터져 나왔고, 드류가 거기에 버티고 일어서면서 경기가 계속 이어졌다.

타이틀 샷을 향한 두 선수의 열망.

신이라고 하는 남자와 사투를 벌이기 위해,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이 최고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Yeeeeeeeeeeeeeeeaaaahhh!!]

두 사람은 팬들의 환호 속에서 서로 미친 듯이 주먹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경기는 드류 맥킨마이어의 깔끔한 승리로 막을 내릴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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