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62.
요즘 10대들에게 있어서 가장 핫한 콘텐츠는 역시나 ‘프로레슬링’이었다.
아주 잠깐, 프로레슬링이 더없이 유치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때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새로운 시대에 나타난 선수들이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자신만의 매력적인 개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점점 성장해, 현실과 각본을 절묘하게 줄타기하며 한 시대를 만들고 정상에 서는 것은 아무리 가짜라고 하더라도 매력적인 드라마였다.
그리고 그런 시대의 중심에 서있는 것은 물론 신과 숀 시나, 러셀 오메가와 랜스 오튼. 네 사람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 서로가 시너지를 내면서 스타로 발전한 선수들.
개중에서도 랜스 오튼은 조금 특이한 유형에 속하는 선수였다.
그는 딱히 아이콘이라 불릴 만한 레벨은 아니었다. 그 정도로 뭔가를 주도해 팬들을 움직인 적이 없었다.
신의 Dreaming Era.
숀 시나의 Hope Era.
러셀 오메가의 Anti-WWF Era.
모두가 어떤 형식으로든 한 시기에 팬들의 마음을 크게 사로잡아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흐름을 주도했다.
하지만 랜스 오튼은 딱히 그러지는 않았다. 뭔가를 이야기한 적도 없었고 그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무법자처럼 링 위를 누비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프로레슬러가 딱히 어떤 시대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지 않고도 프로레슬링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가 된 캐스켓-테이커라는 선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랜스 오튼은 현 시대에서 가장 위대한 2인자였다.
숀 시나라는 1인자를 만들어냈고 이후로도 신을 많이 도와주었다.
모두가 귀찮다고 구시렁대면서도 제 할 일을 하는 그에게 감사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오튼은 고를 1인자로 만들어줄 생각을 가지고 럼블 매치에 참가했다.
숀 시나, 랜스 오튼, 사모아 고.
그 외에도 선수들은 많았지만, 팬들은 세 사람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고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상태였다.
그 앞으로 천천히 다가간 오튼은 스톰핑으로 고를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Uoooooooooooooooooohhh-!]
계속 이어지는 공격.
거기에 저항도 못하고 얻어맞던 고는 이내 중심을 잡고 있는 오튼의 오른쪽 발목을 잡고 힘껏 들어올렸다.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오튼.
직후, 오튼은 고의 옆구리를 걷어차면서 함께 링 바깥으로 빠져 나갔다.
럼블 매치는 3단 로프 위로 나가 바닥에 양 발이 닿아야만 탈락이었다.
그러므로 일단 링 밖으로 나가기는 했지만 1단 로프 아래를 통과한 두 사람은 아직 탈락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게 오튼이 고를 데려나간 이유는 물론, 그에게 더 큰 시련을 부가하는 한편 쉬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오튼은 바닥에 누워 숨을 몰아쉬고 있는 고의 상태를 확인하며 물었다.
“고, 괜찮냐?”
“……그래.”
“죽을 거 같은데.”
아직 24번.
30번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고 이후로도 파이널 4와 최종 우승자가 결정될 때까지는 20분 정도가 필요했다.
고가 먼저 움직였다.
링 바닥에 쓰러져 있던 그가 오튼의 무릎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튼은 그 안면에 대고 어퍼컷을 날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고가 중심을 잃고 바닥에 다시 쓰러졌다.
[Waaaaaaaaaaaaaaaggghhh!]
간간히 이어지는 환호.
카메라가 고와 오튼의 모습을 비추면서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링 아래에서의 싸움을 이어나갔다.
고를 바리게이트로 몰아붙인 오튼은 안면에 대고 마구 주먹질을 해댔다.
그 뒤쪽의 관객들이 미친 듯이 환호했고 한동안 오튼이 고를 몰아붙였다.
이어 오튼은 고의 팔을 잡고 반대편으로 끌어당겨 링 아래의 철제 계단과 충돌하게 만들었다.
투콰앙-!
쓰러지는 고.
“크하아!”
오튼은 가볍게 포효했다.
[Waaaaaaaaaaaaaggghhh!]
팬들은 그 모습에 열광했다.
언제 어느 순간에나 건들대고, 때로는 야비한 모습마저도 보이는 오튼.
그 캐릭터는 팬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그렇기에 사모아 고의 거대한 시련으로서 존재할 수가 있었다.
오튼은 고를 계속 공격해나갔다.
그러다 링 위에서 숀 시나의 공격을 받은 웨이드 개럿이 탈락했고 그것을 힐끔 돌아본 오튼은 웨이드마저도 공격하기 시작했다.
링 위는 숀 시나.
링 아래는 오튼.
두 명의 슈퍼스타가 각각 활약하는 가운데, 선수들이 계속해서 나왔다.
25, 26, 27.
그렇게 시간이 지나는 동안 오튼은 링 아래에서 사모아 고의 의지를 완전히 꺾는데 주력했다.
“오튼! 링 위로 올라가!”
“다치기 싫으면 꺼져!”
심판들이 상황을 통제하려고 했으나 오튼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꼬리를 말고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오튼은 고를 데리고 아나운서 테이블 위로 올라가 R.K.O를 준비했다.
[Uooooooooooooohhhh!]
순간 비명을 지르는 관객들.
오튼이 고의 머리를 붙잡고 뛰었다.
하지만 직후, 사모아 고는 랜스 오튼의 등을 붙잡고 힘껏 들어올렸다.
그리고 옆에 있던 다른 아나운서 테이블로 던져버렸다.
투콰앙-!!
오튼의 추락을 견뎌내지 못하고 붕괴하는 오튼.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그렇게 오튼에게 반격을 가한 고는 아나운서 테이블 밑으로 내려와 쓰러졌다.
그렇게 잠시 소강상태가 찾아왔다.
바로 그때였다.
28번 선수가 나왔다.
콰광- 쾅-콰광-!!
[Waaaaaaaaaaaaaaaggghhh!!]
바로 드류 맥킨마이어였다.
신과 세미 메인이벤트에서 경기를 치렀던 그가 포기하지 않고 럼블 매치의 우승을 노려서 다시 돌아왔다.
복부에 붕대를 휘감고 지친 모습이었지만 그는 링으로 올라와 선수들을 차례차례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순간 잭 라이너에게 정신이 팔려 있던 시나도 글래스고 키스를 맞고는 바닥에 쓰러졌다.
바로 그때였다.
사모아 고는 지금이 바로 싸워야 할 순간임을 깨달았다.
오튼에게 당해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몸을 이끌고 그는 곧바로 링 위로 올라가 드류와 마주 보고 섰다.
그렇게 다시 만난 두 사람.
[Uoooooooooooooooooohhhh!!]
다른 선수들이 모조리 바닥에 쓰러져 있는 가운데, 드류와 고는 서로의 얼굴을 노려보며 곁으로 다가섰다.
주변의 선수들은 모두 드류가 정리했고, 팬들은 이것이 사모아 고의 마지막 기회임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싸움.
드류의 해머링과 고의 해머가 맞불을 놓듯 한 방씩 이어졌다.
먼저 기세를 잡은 건 드류.
밀려나던 고가 클로스라인을 맞고는 3단 로프 위로 몸이 넘어갔다.
[Uooooooooooooooohhh?!]
탈락인가?
아니, 고는 버텨냈다.
로프를 붙잡은 채 링 에이프런에 발을 대고 착지한 그는 이어지는 드류의 공격을 회피했다.
그리고 2단 로프 위로 몸을 내밀며 드류의 복부에 숄더 태클을 먹였다.
퍼억!
“크윽?!”
무너지는 드류.
고는 그대로 로프에 몸을 기댄 드류의 목에 팔을 휘감고 뽑아들었다.
수플렉스.
그대로 넘어가는 드류의 거체.
[Waaaaaaaaaaaaaaaggghhh!!]
순간 다친 복부를 당했던 드류는 저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몸이 들렸다.
그대로 넘기기만 하면 탈락.
하지만 고 역시도 3단 로프 위로 몸이 넘어간 상태로, 함께 떨어지면 동반 탈락이 되어버리는 상황이었다.
결국 고는 넘기지 못한 채로 로프를 붙잡았고 그 위에서 내려온 드류가 똑같이 링 에이프런에 발을 디뎠다.
29번으로 등장하는 진 카라.
이제 마지막 선수가 등장하기 직전.
럼블 매치의 분위기는 최고조에 다다른 상황에서 팬들의 시선은 에이프런에 있는 고와 드류에게 집중되었다.
각자 로프를 붙잡고 미친 듯이 주먹을 주고받는 두 사람.
바로 그때였다.
링 안으로 들어온 진 카라가 달려들어서 두 사람을 탈락시키려고 했다.
그럴 때는 또 협력이 이루어졌다.
달려든 가면 레슬러, 진 카라의 팔을 양쪽에서 붙잡은 두 사람이 그대로 힘껏 잡아당겼다.
[Uoooooooooohhh?!]
어이 없이 탈락하는 진 카라.
그리고 달려든 건 숀 시나였다.
드류의 글래스고 키스를 제대로 맞고 잠시 기절해있던 그가 달려들어 두 사람을 밀어내려고 했다.
그리고 때마침 링 아래에서 정신을 차린 랜스 오튼도 거기 합세했다.
드류와 고의 발을 각각 붙잡고.
탈락이냐. 아니냐.
일촉즉발의 상황, 관객들은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경기를 지켜보았다.
드류가 시나에게 펀치를 날렸다.
그로서 깨지는 균형.
고가 오튼의 발을 떨쳐내고는 몸을 돌려 로프를 붙잡고 뛰어올랐다.
CCS 엔지그리.
발 한 번 잘못 디디면 탈락인 아찔한 상황에서, 사모아 고는 자신의 가장 위험한 기술을 사용했다.
쩌억-!!
그게 드류의 목에 정확히 적중했다.
[Uooooooooooooooooohhh?!]
관객들이 비명을 내질렀고 드류는 그대로 링 밖으로 넘어가 탈락했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사모아 고가 해냈다.
링 에이프런에 등을 대고 착지한 그가 다시 안으로 들어오며 위기에서 벗어났다.
환상적인 복수였다.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드류는 자신의 탈락을 믿지 못하고 경악했다.
링 안으로 들어가 누운 상태에서 씨익 웃은 고가 주먹 감자를 날렸다.
하지만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30번으로 등장하는 선수는.
[Feed-! Me! More-!!]
바로 라이잭이었다.
현재 WWF에서 가장 핫한 신인 중 하나로서 호쾌한 싸움을 바라는 그 기믹이 팬들에게 인기를 끄는 레슬러.
[Waaaaaaaaaaaaaaaggghhh!]
환호와 함께 링 안으로 들어온 그가 링 안에 남아 있던 ‘잡다한’ 선수들을 차례차례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파이널 포를 남겨두기 위해.
차례차례, 라이잭의 괴력으로 제거되어가는 선수들. 그런 가운데에 사모아 고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침착하자.’
정신을 집중했다.
그는 자신이 할 일을 머릿속으로 떠올렸고 링 아래에서 심판이 신호를 줄 때까지 호흡을 되돌리고자 했다.
이어서.
“고.”
심판의 신호를 받은 고는 천천히 몸을 움직여 로프를 붙잡고 일어섰다.
남아 있는 것은 네 사람.
1번, 사모아 고.
14번, 랜스 오튼.
21번, 숀 시나.
30번, 라이잭.
그리고 챈트가 이어졌다.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팬들은 사모아 고가 럼블 매치에서 우승하는 드라마틱한 결말을 원했다.
그렇기에 이어지는 응원.
30인 럼블 매치.
그 가운데에서, 최악의 상황에 몰려 있던 남자는 이제 우승권에 근접했다.
자신을 쓰러뜨렸던 남자를 탈락시키며 복수에 성공했고, 세 명만 더 쓰러뜨리면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었다.
레슬 임페리움의 메인이벤트.
하지만 그 과정은 험난했다.
랜스 오튼과 숀 시나.
그리고 라이잭까지.
세 명의 선수를 넘어서야만 했다.
나머지 세 명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았고 긴 대치 상황이 이어지던 중 라이잭이 먼저 고에게 달려들었다.
단숨에 달려들어 쓰는 클로스라인.
일명 미트 훅.
콰앙-!!
고의 거체가 넘어갔다.
그런 상황에서 숀 시나와 랜스 오튼이 협력해 라이잭을 넘기려고 했다.
체력 안배가 가장 잘된 라이잭을 먼저 탈락시켜야겠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라이잭은 로프를 붙잡고 버텨냈고, 뒤이어 숀 시나가 오튼을 배신해 바깥으로 넘겨버렸다.
[Uoooooooooooooohhh?!]
랜스 오튼이 탈락했다.
팬들이 시나의 ‘비겁한 행동’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고 링 밖으로 떨어진 오튼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라이잭과 시나의 싸움이 벌어졌다.
리드를 잡은 건 물론 체력적으로 훨씬 더 팔팔한 상태인 라이잭이었다.
시나를 번쩍 들어 올린 라이잭은 수플렉스로 넘겨버리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듯 벌떡 일어섰다.
“우어어어어어!!”
[Yeeeeeeeeeeeeeaaaahhh!]
관객들이 호응해주었다.
라이잭.
그는 우승을 확신했다.
그런 가운데.
사모아 고가 일어섰다.
[Uoooooooooooooooooohhh!!]
팬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라이백의 뒤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 그는 숨을 몰아쉬며 주먹을 들었다.
한 시간이 넘는 사투.
럼블 매치는 애초부터 공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개중에서 언제나 승리하는 건 초반부에 나온 선수들이었다.
그 이유가 뭘까.
물론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단지 이게 각본이니까.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이러했다.
그게 더.
드라마틱하니까.
“우어어어!!”
뒤를 돌아본 라이잭이 순간 굳어졌고 그에게 달려든 사모아 고가 클로스라인으로 라이잭을 넘겨버렸다.
로프 밖으로 나가 탈락하는 라이잭.
[Waaaaaaaaaaaaaaaggghhh!!]
환호가 쏟아지는 가운데 고는 자신의 가슴을 후려쳐댔고 그 뒤에서 방금 고처럼 숀 시나가 일어섰다.
이걸로 마지막이었다.
숀 시나 VS 사모아 고.
이 승부로 우승자와 준우승자가 갈렸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준우승자는 잊혀졌다.
그럴 순 없는 노릇이었다.
고는 패배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팬들의 환호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락 업으로 맞붙은 두 사람은 이내 치열하게 힘을 겨루며 상대방을 로프 위쪽을 통해 탈락시키려고 했다.
그리고 숀 시나가 기회를 잡았다.
“크하압!!”
파이어 맨즈 캐리 포지션으로 고를 번쩍 들어 올린 시나는 그대로 로프로 다가가 밖으로 넘겨버리려 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시나의 어깨 위에 있던 고가 그 턱에 엘보를 연이어 꽂아 넣으며 그 어깨 위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시나의 등을 밀어 코너로 몰아붙여서는 머슬 버스터로 연결했다.
[Uooooooooooooohhh?!]
투콰앙-!!
숀 시나의 몸이 순간 링 바닥에 떨어지며 거대한 파열음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건 일반 경기가 아니었다.
럼블 매치.
“끄으윽……!!”
오랜 경기로 인해 거의 기절하기 직전까지 몰린 사모아 고는 세차게 혀를 깨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쓰러져 있던 시나를 일으켜 세워, 로프 바깥으로 넘겨버렸다.
우승자가 정해졌다.
땡땡땡-!!
[Waaaaaaaaaaaaaaaaaggghhh!!]
링 벨과 함께 이어지는 환호.
드디어 해냈다는 생각과 체력의 한계를 맞이한 사모아 고는 그대로 무너지듯 바닥에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