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64.
‘빗자루와 월드 챔피언십 매치를 치르는 챔피언’.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빗자루와 레슬링을 했던 선수 자체가 없었다.
빗자루와도 레슬링을 할 수 있다는, ‘닉 플레어’를 상징하는 격언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솜씨를 띄우기 위한 비유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신은 지금 빗자루와 레슬링을 하겠다고 진짜 그렇게 말했다.
“미~친놈.”
텔레비전으로 그 선언을 지켜본 바트 맥센은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꼈다.
신에게는 은퇴한 이후로 절대 프로레슬링을 보지 않는다고 말했던 그였지만 실상은 그와 전혀 달랐다.
그는 버닝콩에서부터 MXT까지.
온갖 북미 프로레슬링 쇼를 다 챙겨보는 남자였고, 그걸 비판하는 칼럼(?)도 쓸까 고민하고 있었다.
필명은 B.M으로.
싫다, 별로다, 온갖 말은 다 하면서도 그는 누구보다 프로레슬링을 열심히 보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뭔가가 제대로 벌어지겠다하는 생각으로 재빨리 녹화 버튼을 눌렀다.
‘신, 네놈이 빗자루와 레슬링을 하는 장면을 녹화해서 창피를 주마.’
사악한 생각을 한 바트는 빗자루를 손에 쥐고 링으로 올라오는 심판을 보면서 낄낄거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거 진짜냐?”
락콜드 스티비 스틴도.
“…….”
디 캐스켓-테이커도.
“어떤 또라이가 저런 각본을.”
“그야 신이겠지.”
“저 등신밖에 없기는 하지.”
헌터와 자이나 커플도.
그 외에도.
수많은 관계자들을 비롯해 일반 시청자들마저도 빗자루와 레슬링을 하겠다는 신을 보면서 황당해했다.
하지만 신은 진지했다.
입고 있던 가죽 재킷과 선글라스를 벗고 경기복 하나만 걸친 그는 벨트를 심판에게 건네주고 자세를 잡았다.
황당하다는 듯 벨트를 들어 올린 심판이 이어서 경기 개시를 선언했다.
참고로 말하자면.
빗자루는 화장실 같은 곳을 청소할 때 사용할 법한 물건으로, 2미터 정도 되는 얇고 긴 손잡이 끝에 칫솔 같은 사각형 솔이 달린 디자인이었다.
뭐, 왜.
가끔 수영장 청소를 하다 비누를 이걸로 때려봤더니 잘 나가서 아이스 하키로 번지곤 하는, 그런 빗자루.
그게 그냥 바닥에 떨어진 채였다.
그리고 신은 경기를 시작했다.
잠깐의 탐색전.
[Uooooooooooooooooooooohhh!]
하지만 경기장의 팬들은 신을 믿고 계속해서 환호를 보내주고 있었다.
그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분명 뭐라를 보여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실제로 텔레비전으로 보는 것과 달리 경기장에서 신이 내뿜는 카리스마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게 관객들에게 전해져.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이어지는 환호가.
브라운관을 타고 전달되어 텔레비전 앞의 시청자들도 동조되게 만들었다.
관객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쇼.
그게 정확히 들어맞는 모습이었다.
잠시 탐색전을 벌이던 신은 링 아래로 내려가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1!”
카운트를 시작하는 심판.
그러거나 말거나.
신은 긴장을 풀려는 듯 바닥에 팔을 대고 팔굽혀펴기를 하며 싸움으로 들어가기 전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뒤를 이어.
“6!”
심판의 외침에 다시 링으로 올라가서는 그대로 빗자루를 향해 달려…….
콰앙-!
엄청난 소리가 났다.
신이 나서 달려들던 신이 빗자루를 밟았고, 그게 마치 갈퀴처럼 위로 치솟으며 안면을 강타했다.
“크, 헉……!”
[Uoooooooooooohhh!]
쓰러지는 신.
동시에 손을 뻗어 빗자루를 자신의 쪽으로 당긴 신은 자연스럽게 그것이 자신의 몸을 덮도록 했다.
순간 당황해 우물쭈물하는 심판.
팬들이 웃으며 소리쳤다.
[Pin! Pin! Pin! Pin! Pin! Pin!]
핀 폴에 들어갔다.
“1!”
심판이 뒤늦게 카운트를 셌고.
신은 곧장 핸드스프링으로 몸을 튕겨 일어서며 빗자루를 밀어냈다.
가공할 신체 능력이었다.
[Waaaaaaaaaaaaaggghhh!!]
경기는 그 두 가지를 중점에 둔, 일종의 퍼포먼스 쇼에 가까웠다.
신 스스로의 신체 능력과 함께 빗자루와의 코믹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어서 사모아 고를 조롱하기 위한 쇼.
하지만 신은 최선을 다했다.
솔을 일으켜 세워 해머링 앤 찹 콤보를 넣고, 순간 그게 로프에 튕겨 돌아오자 코를 얻어맞은 척 물러났다.
팬들은 자연히 한 명을 상상했다.
‘사모아 고.’
그리고 황당해했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성립한다고?
프로레슬링 경기로서?
아니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심이 필요했다. 이걸 하나의 경기로서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가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봤을 때.
신은 치열하게 경기를 펼쳤고 빗자루(?)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려고 했다.
그리고 기어코.
탑 턴버클 위로 올라가 피닉스 스플래시마저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투콰앙-!!
멋지게 작렬하는 신.
이어지는 포효.
“으아아아아아아아!!”
[Waaaaaaaaaaaaaaaaaaaggghhh!]
팬들이 미친 듯이 환호했다.
그리고 핀 폴.
[1!!]
[2!!]
어깨(?)를 들어 벗어나는 빗자루.
[Uooooooooooooooooohhh!!]
신은 바닥을 주먹으로 세차게 내리치며 분하다는 듯 몸을 떨었다.
정말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치열한 경기였다.
그리고 신은 온갖 퍼포먼스를 다 보여주면서 빗자루의 공격에 당하는 자신의 모습을 팬들에게 납득시켰다.
그리고 결국에는.
투콰앙-!!
안티 크라이스트마저 사용했다.
[안티 크라이스트! 안티 크라이스트!]
[기어코 그 기술마저 들어갑니다!]
[커버!]
[1!]
[2!!]
[3!!]
땡땡땡-!!
[Waaaaaaaaaaaaaaaaaaaggghhh!]
팬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7분 30초 동안의 경기.
승자는 신이었다.
심판에게서 벨트를 받아 벌떡 일어선 그가 머리 위로 그것을 번쩍 들어 올리며 길게 포효했다.
“…….”
티파니 맥센은 할 말을 잃었다.
‘병● 같지만 멋있어.’라는 말이 통용되는 순간이겠지만, 그녀는 지금 상황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팬들은 열광했다.
마이클 ‘아이언’ 타이슨이 무척 먼 과거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자신이 링 위에 올라서 ‘Jerk Off’만 하더라도 메디슨 스퀘어 가든을 매진시킬 수 있다고 말이다.
그와 비슷한 상황일까?
팬들은 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열광했고 이어지는 메시지에 박수를 쳤다.
고를 조롱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오는 놈들을 싸워 이겨봤자 대체 뭐가 되느냐는 거였다.
왜냐면.
“사모아 고!!”
마이크를 쥐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신은 씨익 웃어 보였다.
“네가 상대하는 놈들이 이 빗자루와 대체 뭐가 다르냐는 거야! 생각해봐!”
[Yeeeeeeeeeeeeeeeeeeeaaahhh!!]
“WWF가 어떤 회사야! 티파니 맥센이라고 하는 악녀가 지배하고 있는 장소지! 거기에서 네 럼블 매치의 우승권을 빼앗을 만한 선수를 부킹할까?”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헛짓거리로 네 순수를 증명하려고 들지 말라고! 고! 어차피 네가 싸울 놈들은 다 나라는 남자가 있는 이상 빗자루에 불과하니까 말이야!”
그것은 일종의 선언이었다.
자신감의 표출이기도 했다.
결국.
“내가 누구지?!”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과거도! 앞으로도! 이 업계에서 가장 위대한 남자가 누구지?!”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그런 남자 앞에서는 누구든 빗자루가 될 수밖에 없는 거야! 고! 그러니까 괜한 짓거리는 좀 그만하라고!”
신은 그렇게 이 업계에 있는 레슬러 모두를 도발하고 마이크를 지면에 휙 내던졌다.
그리고.
황금으로 빛나는 자신의 WWF 월드 챔피언 벨트를 높이 들어보였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그런 신을 향해 쏟아지는 환호.
그가 바로.
이 시대의 주인공.
빗자루와 레슬링을 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그림을 뽑아낼 수 있는.
아이콘이었다.
“아주 죽여주는군!”
사모아 고는 호쾌하게 웃었다.
오직 신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시나리오였다.
랙다운 촬영을 앞두고 테네시 주의 녹스빌의 한 호텔에 있던 그는 PWA를 보고는 그만 웃음을 참지 못했다.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대였다.
그리고 그 생각은.
그 주 랙다운에서의 경기를 통해 확신으로 바뀌었다.
* * *
금요일 밤의 랙다운.
레슬 임페리움까지 약 두 달이 남은 시점에서 선수들이 대립을 이어갔다.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선수들 대부분은 2월 페이퍼뷰를 거쳐서 4월까지 대립을 완성해나가는데 초점을 맞추는 편이었다.
하지만 고는 달랐다.
레슬 임페리움에서 럼블 매치의 우승자로 신에게 도전하는 게 확정인 그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만 했다.
그래서 이 길을 택했다.
도전을 받아들이기로.
자신이 4월까지 확실하게 그런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겠다. 그러니 누구든 간에 입 닥치고 나와서 덤벼라.
그리고 코피 퀸스턴이 나왔다.
랙다운의 미드 카더.
경기는 히스 슬라우터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제법 빨리 결착이 났다.
고의 머슬 버스터가 곧바로 코피의 의식을 저편으로 날려버렸고 너무나도 손쉽게 쓰리 카운트를 빼앗았다.
땡땡땡-!!
그렇게 경기가 끝났고.
자리에서 일어선 고는 숨을 몰아쉬며 관객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신이 수요일 밤 PWA에서 했던 이야기가 신경 쓰였던 고는 마이크를 잡았다.
“이쯤에서 내가 신이 던진 메시지에 대답을 해줄 때가 되었군.”
[Waaaaaaaaaaaaaaaaggghhh!]
“그 개자식은 이렇게 말했지. 내 행동이 빗자루와 레슬링을 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말이야.”
고는 술술 말을 이어나갔다.
신이 일부러 틈을 좀 만들어주었고 그곳을 파고들며 고는 자기 자신이 어떤 남자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실.
오직 감사하는 마음뿐이었다.
신이 아니었더라면 이런 기회를 얻지도 못했을 테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 설명할 기회도 얻지 못했겠지.
당연한 말이었지만.
“이건 내 인생이야.”
그리고.
“우리의 인생이기도 하지.”
고는 링에서 퇴장하고 있는 코피 퀸스턴을 돌아보면서 손을 뻗었다.
“코피.”
그가 돌아보았다.
“멋진 싸움이었다.”
[Uoooooooooooooooooohhhh!]
“난 최선을 다했어. 너도 최선을 다했겠지. 그리고 히스 슬라우터 역시도 그렇고. 우리 모두는 매순간 최선을 다한다고 말할 수 있어.”
하지만.
“누군가는 밑에 있어야 하지. 그게 바로 인생의 안타까운 점이야.”
그걸 섣불리 동정할 수도 없었다.
레슬러에게는 수많은 삶이 있다.
누군가는 레슬 임페리움에서 수당을 챙기며 고액 납세자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자동차 하나 렌트해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기약 없는 발버둥을 치기도 하지. 여기에서 내가 랜디 램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겠군.”
고는 자신이 얼마 전까지 알고 지냈던 인디 레슬러의 이름을 이야기했다.
“그는 얼마 전 링 위에서 심장 마비로 사망한 레슬러야. 모두 잠시 그를 기리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자고.”
고가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랜디. 네가 가진 그 꿈은 언제 어느 때나 링에서 빛나고 있을 거야.”
그리고 챈트가 이어졌다.
랜디 램.
유명하지는 않지만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이름이 잘 알려진 선수였다.
[Randy! Randy! Randy! Randy! Randy! Randy! Randy! Randy!]
“우리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야.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서 태어났지.”
고는 씁쓸한 말을 이어나갔다.
“나도 그래. 나는 이 기회를 얻기 전까지 뚱뚱하다며, 인상이 험악하다며 수많은 실패를 겪어야만 했지.”
그리고.
“그걸 되살려준 게 신, 너다.”
고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최근 너는 꽤 허무주의에 빠진 것 같단 말이야. 아마 네 주변의 선수들이 모두 빗자루로 보여 정말로 그러는 건지도 모르겠어.”
신은 그 정도의 남자였다.
그 인상에 자신 이외의 레슬러들이 성에 안 차는 날이 온 걸지도 몰랐다.
“그리고 난 정반대편에 서있지.”
고는 씨익 웃었다.
“나는 너처럼 레슬 임페리움의 영광스러운 엔딩을 장식해보지 못했어. 허세는 부리지만 결국 그게 전부고 마지막 순간에 패배했다는 말이야.”
그게 레슬러.
사모아 고였다.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살아있는 이상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일 하나뿐이니까.”
[Uoooooooooooooohhh!!]
깊은 반응이 나왔다.
관객들 모두가 지금 사모아 고의 도전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했다.
실패하고.
패배해서.
꺾일지언정.
“멈추지는 않아.”
그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렇다. 신.”
[Yeeeeeeeeeeeeeeeeaaaahhh!!]
“그걸 네게 가르쳐주지! 너를 쓰러뜨릴 수 있는 남자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지옥에서 다시 기어 올라온 사모안 몬스터가 여기 있다고! 널 완전히 박살 내 버릴 거라고!”
그렇기에.
“이번 레슬 임페리움은 분명히 네놈의 그 잘난 커리어의 전환점이 될 거다. 신. 내가 네놈을 그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건방을 못 떨게 해줄 테니.”
고는 마이크를 내던졌다.
그 순간 이어지는 음악.
파괴적인 테마와 함께 팬들은 고의 카리스마에 미친 듯이 환호했다.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장했다.